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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룡은 박헌영이 월북한 이후 3년간이나 남로당을 이끌어온 실질적인 책임자였고 이주하는 김삼룡의 고문으로 무장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특히 김삼룡은 머리가 비상하고 변장술에도 뛰어나 경찰을 골탕먹이기가 일쑤였다. 체포될 때도 엿장수로 변장한 모습이었고 색안경을 7개나 소지하고 있었다. 비밀 아지트도 서울에만 8개나 돼 수시로 장소를 변경하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주하는 일제하의 노동운동가로 그가 이끌었던 '태평양노동조합'은 1930년대의 가장 중요한 현장조직이었다. 일제하에서 5년간 복역하기도 했던 이주하는 일제 말에 대부분의 공산주의자들이 전항하거나 은둔하고 있을 때 끝까지 노동운동에 몸 바친 '전위혁명가'였다.
남로당의 몰락은 1949년 9월 김삼룡의 한 심복이 검거되면서 시작됐다. 김삼룡의 은신처를 확인한 경찰이 비밀 아지트를 급습하자 김삼룡은 철조망을 넘어 피신하고 이주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당시 이주하는 극약을 삼켰지만 경찰의 응급조치로 20여 일간 병원 신세를 지는데 그쳤다.
김삼룡이 검거된 뒤 김상룡과 이주하는 1950년 5월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둘은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의 소재로 이용된다. 6월 10일 북한이 강제 억류 중인 조만식과 이들을 38선에서 교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제안을 수락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교환일자를 연기하는 등 교묘한 지연책을 쓰다가 6.25 남침을 감행했다. 6.25가 발발하자 김삼룡과 이주하는 이튿날인 26일 한강 백사장에서 총살형으로 처형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북한의 공식 역사에서도 이름이 지워져 남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혁명가로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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