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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쓸 때만 시인이다. 겨울 설매(雪梅)는 제 스스로 향기를 낼 줄 안다. 몸과 정신이 다르지 않듯, 시는 현실 공간과 시의 공간이 둘이 아니다. 시는 자신의 체험의 깊이를 시 행간 속에 깊이 밀어 넣는 작업이다. 시는 사물을 담는 일이자, 췌사(贅辭)를 버리는 일이다. 시작(詩作)은 깨어있는 나를 만나는 시공간이다.
좋은 시인은 들꽃에게 말을 걸고, 그 꽃의 사연을 시 행간 속에 풀어 놓을 줄 안다. 오랜 응시와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로 작은 세계를 그려낸다. 서정시는 설렘의 언어다. 매화 꽃잎들이 빗물을 받아먹는 풍경이 좋은 서정시다. 파란 하늘이 그냥 좋고, 흘러가는 구름이 그냥 좋고, 저녁노을이 산정에 물드는 것이, 그냥 좋은 사람은 이미 시인이다.
시는 시인마다 독자마다 천 개의 물음과 해답이 존재한다. 언어의 직조 능력과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은 개인의 능력이자 취향의 차이다. ‘어떤 시가 더 좋은 시’냐고 묻는 것은,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라고 묻는 것만큼, 우문愚問이다.
임향식의 2시집『겨울꽃 혹은 불청객』(2023, 그루)은, 크게 ‘전통과 현대’란 두 개의 시선과 만난다. 서정의 감성과 아름다운 울림은 그녀 서경과 서정의 중심축이다. 전자는 사랑과 이별, 고향과 동무들, 여행과 단상(斷想), 바람과 구름의 이야기를 묘사한다면, 후자는 놀라운 이미지와 현대적 미의식이 투영된, 세련된 은유의 시법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집『침묵이라는 말을 갖고 싶다』를 출간한 김석 시인의 시의 요체는 선문답으로 집약된다. 시「그 말, 참」역시, 일종의 선문답禪問答이다. 이 시는 시법에 있어 선시풍禪詩風의 역설적 의미를 갖는다. 깨금발로 뛰었다가 금을 밟고 죽은 아이가, ‘죽었다’고 우는 경계에서 시가 촉발한다.
시인은 나무 벤치에 기대 그의 애잔한 서정시「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를, 그 봄비 오는 고분 곁에서 들려주었다. 곡진한 시인의 목소리는 봉분 주위를 돌며, 꽃잎처럼 비바람에 떨리고 있었다. 마치 시인의 어머니가 낙동강을 타고 올라와 무덤가를 서성거리고 있는 듯 여겨졌다.
이전호 시집 『단풍 세금』(2020, 그루) 속에는 수작들이 즐비하다. 대표시 「단풍 세금」외에도, 「달빛 갤러리」는 시의 의미를 ‘푸른 달빛의 갤러리’로 치환한 점이 독특하다. ‘노을이 번져 행간이 되는 저녁’에 그림 속 같은 아름다운 아파트 마천루에 앉아, 시를 읊조리는 시인의 모습은 참으로 황홀한 정경이다.
시는 시인의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 공간이다. 그 시적 공간은 사실의 세계라 아니라 진실의 세계에 속한다. 시는 침묵한 사물 너머에 존재한 경계의 말이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의 구체화된 이미지이다. 시인은 대상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거나 굴절시킨다. 하여, 사물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같거나 다르다.
저기 샷시문이 보이네 흔들린 바람이 좋은 우리 동네 골목길 모퉁이 오가며 들리는 참새 홈 마트 난 나래 없는 참새 그녀는 연분홍 방앗간 오늘도 어제처럼 출근한 바코드 찍는 여인 날씬한 몸매 싹싹한 매너 당기고 감기는 묘한 마력이 있었네...
시적 묘사描寫description는 서사에서 주로 빛을 발한다.「野한 뒷간 이야기」는 ‘시가 태어난’ 상황과 장소에 대한 감각적 풍경 묘사가 디테일하다. 이 시적 상황은 여성의 ‘급한 볼일’에서 촉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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