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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이전호

하늘 목덜미에 다가선 안데스

삶의 벼랑길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서,

돌에도 피가 돌고 살이 도는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여!




저승과 이승의 경계던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콘도르

초록빛 계단, 하늘 길로 가는

영혼의 문 태양신전

잃어버린 하늘 도시여!



잉카제국의 한과 외로움

누구를 위한 몸부림이며

누구를 위한 기다림일까

신이 허락한 신성한 마추픽추여!



사람과 신이 함께 만든 걸작품

풀리지 앉는 수수께끼

하늘 기둥 받치고 선,

오, 장엄한 마추픽추여!


―「마추픽추」전문



이전호 시집 『단풍 세금』(2020, 그루) 속에는 수작들이 즐비하다. 대표시 「단풍 세금」외에도, 「달빛 갤러리」는 시의 의미를 ‘푸른 달빛의 갤러리’로 치환한 점이 독특하다. ‘노을이 번져 행간이 되는 저녁’에 그림 속 같은 아름다운 아파트 마천루에 앉아, 시를 읊조리는 시인의 모습은 참으로 황홀한 정경이다. 불교적 사상을 흡수한 놀라운 시 「봉정암」은, 산 자체가 한 편의 경전이요, 적멸보궁으로 형상화 된다. 반야능선을 타고 넘는 구름 떼의 모습은 웅장하며, 삼매든 내설악 공룡 능선에서 바라보는 보름 달빛은 시선일여詩禪一如의 관觀을 얻었다. 수록된 시편마다 ‘상상력과 기발한 시선視線’의 새로움은 놀라운 서정을 함의하고 있다. 특히, 세무稅務를 은유한 시편들은 현대시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여도 좋은 만큼, 깊고 놀랍다. 멧돼지를 세금을 포탈하는 자者들로 의인화하는 가하면, ‘매화, 개나리, 모란 꽃 / 꽃집’을 「햇살 거래처」로 명명한 시적 상상력은, 높이 사 줄 만 하다. 시 「부가가치세」에선, ‘바람을 국세’를 거둬들이는 세리稅吏로 은유하는 가하면, 「구름 증여」를 통해선, 현대 사회의 부당한 증여세에 대한 예리한 풍자도 서슴지 않는다. 자식에게 증여할 것은, ‘오로지 무형의’ 사랑뿐임을 일갈한다.

특히, 남미 여행을 통해 얻은 몇 편의 시는 서정시의 전범이다. 여행 시는 풍경을 통해 사물에게 말 걸기이자, 사물의 말을 듣는 놀라운 영감靈感이 존재한다. 이런 유類의 시는 언어의 드로잉을 통해 압축보단 서사적 배경 이미지를 이야기 형태로 그리듯 쓴다. 화폭 속에 그림 그리듯 풍경의 직관을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느낌과 순간의 흔적이자, 기분과 체험에 따라 행간이 달라지는 묘한 지점에 놓인다. 남미 안데스의 마추픽추 여행을 통해 바라본 풍경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경이롭다. 천상의 물길이 쏟아지는 「이과수폭포」에서 바라본 폭포의 장엄은 황홀하다. 천지개벽하듯 아우성치는 폭포의 소리를‘수천 만 명 아우성치는’생령들의 외침으로 들은 시인의 청음은 불교적이자 윤회적이다. 또한 시「마추픽추」는 시적 공간이 장엄하다. 페루의 사라진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풍경은 보는 순간 압도된다. 깊고 깊은 계곡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장엄하고 신비롭다. 절벽 단층에 켜켜이 찍힌 바람의 시간과 공간의 흔적은 태고적이다. 영원한 흐름의 기록이자 성스러운 신령들의 투영이다. 시인의 표현대로 ‘하늘 목덜미에 다가선’ 느낌이다. ‘돌에도 피가 돌고 살이 도는’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공간이다. 잉카는 ‘저승과 이승의 경계’의 지점이자,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이다. 12세기 초 만코 카팍(Manco Capac)의 아들 신치 로카(Sinchi Roca)가 그의 누이동생 마마 쿠라(Mama Cura)를 왕비로 맞으면서 잉카는 신화가 아닌 역사 시대로 들어선다. 제9대 파차쿠티 유판키(Pachacuti Yupanqui, 1438~1471) 시대에는 인구가 1,100만 명이나 되었다니, 그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하여 시인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콘도르 / 초록빛 계단, 하늘 길로 가는 / 영혼의 문 태양신전 / 잃어버린 하늘 도시여!’라고, 그 멸망을 안타까워한다.

마추픽추는 1909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이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란 뜻이다. 잉카인들에게 이 도시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신성한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마추픽추는 태양신의 처녀들, 즉 ‘아크야’를 위해 건설한 도시라고 한다. 마추픽추를 건설하는 데 사용된 돌들은 600미터 아래의 깊은 계곡에서 채취한 것으로, 운반 도구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여, 시인은 그 장엄한 광경을 ‘사람과 신이 만든 걸작품’으로 노래한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북쪽의 주主 의자와 남쪽의 보조 의자가 그것이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夏至는, 한 해의 시작이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잉카제국은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1541)가 이끄는 200여 명의 군사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하얀 얼굴의 사람들이 나타나 자신들을 지배할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던 잉카인들은, 자신들을 멸망시킨 백인들을, 태고 적 전설의 신들이라고 믿으며 죽어갔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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