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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탑

정범효

                                   

청령포 높은 절벽
이끼 쌓인 돌탑 하나
한양을 바라보고 외롭게 서있다

구비 구비 천리 먼 구중궁궐
고운님 남겨두고
치솟은 기암절벽 굽이치는 동강에 갇혀

두견새 벗 삼고 *관음송 놀이터 삼아
긴긴 하루 외로움 달래려
하나 둘 올려놓은 돌조각들

그리움 하나, 원망 하나
한숨 셋 올려놓고
눈물 대신 텅 빈 하늘 쌓아놓고
 
해지는 저쪽 어디 그리운 이 그렸으리
유배당한 몸 갈 수 없는 길
돌탑을 쌓으며 한(恨)을 삭였으리

정순왕후 흘린 눈물 한강이 되고
단종이 흘린 한숨 동강 되어
바다에서 다시 만나 뜨거운 포옹 나누었으리


*망향탑 : 청령포 뒤편 높은 곳에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쌓은 돌탑
**관음송 : 단종이 즐겨 논 두 가지로 뻗어있는 소나무 


시는 시인의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새롭게 해석된 공간이다. 그 시적 공간은 사실의 세계라 아니라 진실의 세계에 속한다. 시는 침묵한 사물 너머에 존재한 경계의 말이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의 구체화된 이미지이다. 시인은 대상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거나 굴절시킨다. 하여, 사물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같거나 다르다. 각자의 몸을 통해 우주의 방식을 해석하는 시법詩法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당한 량의 투고된 응모작들의 면면을 살폈다. 시를 추억이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매만지거나 사유한 흔적이 돋보였다. 특히 묵은지와 같은 서정시들이 주류를 이뤘다. 문장이나 문체의 세련된 맛은 적었지만, 나름의 인생 경험에서 나온 이미지들의 축적은 볼 만 하였다. 난해한 시들이 판을 치는 현대시의 흐름에서, 사뭇, 비껴난 풍경들이 좋았다. 그리움과 외로움, 추억과 슬픔, 울음의 시적 사유는, 서정시가 줄곧 지향해온 바이다.   

합천 출생인 정범효의 시「망향탑」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재위 1452∼1455)을 역사를 소재로 쓴 비극 시이다. 비(妃)는 돈령부판사(敦寧府判事) 송현수(宋玹壽)의 딸인 정순왕후(定順王后)이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다음의 역사적 사건 전모를 살필 필요가 있다. 1452년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王位)에 올랐는데, 그 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11세)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1453년 그를 보필하던 그들이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 의해 제거 당하자 수양대군이 군국(軍國)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1455년 단종을 보필하는 중신(重臣)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한명회(韓明澮) · 권람(權擥) 등이 강요하여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응부(兪應孚) ·유성원(柳誠源) 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처형된 후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강원도 영월(寧越)에 유배되었다. 그런데 수양대군의 동생이며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경상도의 순흥(順興)에서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자 노산군에서 다시 강등이 되어 서인(庶人)이 되었으며, 끈질기게 자살을 강요당하였다. 1457년(세조 3) 실록에 따르면 10월 24일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영월에 도착하자 단종은 목을 매 자진(自盡)했다고 되어 있다. 사후의 처리도 비참했다. 야사에 따르면 시신이 청령포(淸泠浦) 물속에 떠있는 것을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해 현재 장릉(莊陵) 자리에 안장했다고 한다. 단종 나이 17세였다. 정범효의「망향탑」은 역사 시가 갖춰야할 사실성을 넘어, 화자의 감정이 오롯이 이입되어 감동의 깊이를 증폭시킨다. “청령포 높은 절벽” 안에 갇혀 “그리움 하나, 원망 하나” 돌탑을 쌓으며 사랑하는 비(妃), 정순왕후를 그리는 소년 단종의 모습은, 눈물겹다. 정범효의 시의 특징은 서정을 통해 기억과 추억을 복원한다. 그의 놀라운 서정 시편들은 삶의 편린들을 자기류로 노래하는 독창적 시안이 있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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