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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제(영진사이버대학교 총장 교육학박사) |
교육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의 스승과 제자는 굉장히 소중하고 의미 깊은 만남의 상징으로 지칭되곤 했다. 최근에 와서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는 개탄 섞인 반성론이 회자되기까지에는 그만큼 스승이라는 존재에 담긴 의미와 철학은 깊고 높았다. 때문에 스승과 제자라는 이 관계는 단순한 양자간 관계정의가 아니라 우리들의 정서 깊은 속에 자리한 의미 깊은 교육에 대한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하는 깊은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지극히 존경스런 대상이신 스승은 그 위치에 적합하게 반드시 도리를 다하고 의를 실천함으로써 존경 받는 대상으로서 위치를 점해야 하고, 제자는 그러한 스승을 받듦에 있어 극진한 존경으로 대하는 가장 인격적인 관계성의 정립이 이 양자 간에 흐르고 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했던가. 군주와 스승, 아버지의 은혜가 같다는 이 말이 지닌 뜻은 우리 사회에서 스승의 존재가 단순히 가르치는 정도의 의미를 초월한 위치에 있음을 우리게 말해준다 하겠다.
제자들은 지극히 존경스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을 정도로 스승이라는 존재는 위엄과 존엄을 지닌 존경의 상징이었다고 하겠다. 어떤 권력자라할지라도 스승에게는 굽히고 존경을 다해 대했던 것이 우리의 정서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어쩌면 가르침, 교육이 지닌 가치에 대해 가장 극진한 존경으로 대할 만큼 우리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교육이 지닌 철학적 가치에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교육적 가치에 깊이 공감하고 준중하는 가치를 두었기에 배움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인간됨을 갈고 닦도록 읶는 스승에 대해 당연한 지극 존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진정한 스승의 상이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요즘 사회분위기를 분석해 보면 그 원인은 우리사회의 모두가 공감하는 교육적 가치, 교육철학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과적 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배움이 급속하게 변모하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는 초고속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가 이 발빠른 배움의 과정 속에서도 이 같은 오늘날의 교육 분위기에 적응된 새로운 가르침과 배움의 인격적 관계, 이 속에서 서로가 공감하는 교육적 가치를 정립한다면, 시대에 맞춘 새로운 사제(師弟)간 아름다운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바로 이 같은 취지에서 필자는 새로운 사제(師弟)간 관계를 지식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지고 변모되어가는 지식주도의 현대에 맞는 교육철학을 공생, 상생의 원리 속, 상호신뢰에 근간을 두고 탐색함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이는 동서고금을 두루 살펴보아도 낯선 얘기가 아니다. 예기(禮記)에는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의미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이 기록되어 있다. 또 교육학자 에드거 데일 (Edgar Dale)은 가르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즉 널리 알려진 그의 ‘학습의 원추(cone of Learning)’이론에서 배운 지식을 다른 이에게 나눔으로써 90% 이상을 기억하게 된다는 가르침과 배움의 선순환 작용, 상승작용을 설명한다. 그리고 또 하나, 영어 표현에 ‘Learning by teaching’이 있다. 모두가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의 교감과 선순환을 풀이한다고 하겠는데, 이는 동서양 일맥상통하는 정서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바로 쉼없이 공부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자기관리를 요구받는 현대인들이 직면하게 되는 부단한 배움의 관계들 속에서 서로 유익을 주고 받으며 상호발전 해나가는 공생•상생하는 인간관계를 정립해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현대에 걸맞는 실용적인 교육철학으로 사제(師弟)관계를 새로이 피어나게 하지 않을까. 사제(師弟)간에 피어나던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육철학이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한번 꽃 피어나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