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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조선일보 창간

조선일보 창간호 제3면 지
"조선일보 창간이오! 조선일보 나왔습니다!" 1920년 3월 5일 해질 무렵 서울 시내 곳곳에서 때아닌 요란한 방울 소리와 함께 배달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날 창간된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순수 민간 신문이었다.


조선일보의 탄생은 1919년 3ㆍ1운동의 피로 얻은 우리 민족의 성과였다. 우리민족의 독립의지에 놀란 일제는 조선 통치 정책을 종래의 가혹한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했고, 조선인의 민간 신문 발행도 허가했다. 그러나 총독부에 접수된 신문 발행 신청서만 십수 통에 달하자 이에 총독부는 조선일보ㆍ동아일보ㆍ시사신문 3개의 신문 발행만을 허가했다.


조선일보의 발행장소는 경성부 관철동 249번지로, 1916년 조선 실업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경제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가 발행을 맡았다. 조선일보 창간의 진용은 사장 조진태, 부사장 겸 발행인 예종석, 편집인 겸 편집국장 최강으로 주요 간부를 포함한 발기인 중 11명이 대정 실업친목회 사람들이었다.


석간으로 발행된 창간호는 배대판(倍大版ㆍ지금의 신문 크기)으로 모두 16면이 발행됐다. 당시 조선일보의 문체는 국한문 혼용체로, 제호에 봉황과 꽃무늬의 바탕위에 붓글씨로 '朝鮮日報'라고 썼다. 머리기사로는 '조선일보가 탄생하다'라는 논설을 썼고, 조선 무역 상황에 대한 분석 기사와 연재소설 '춘몽(春夢)'등을 실었다.


10년 만에 나오는 '우리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은 뜨거워 수만 부를 찍어내고도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조선일보 창간호는 일부 지면 이외에 완전한 형태가 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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