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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2ㆍ8독립선언'

현상윤, 송계백, 백관수 등 동경조선유학생가 주축이 되어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600여명의 유학생과 함께 동경의 기독교청년회관(YMCA)에 모여 2000만 민족을 대표한 독립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이 이광수가 기초한 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낭독한 후 시가행진을 벌이려 하자 대회장을 둘러싼 경찰들과 일대 격투가 벌어졌고 최팔용 등 시위학생 60여명이 검거, 투옥됐다. 이어 2월 12일과 23일에도 다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히비야 공원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채택된 '2ㆍ8독립선언'은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동경유학생들은 미리 그 전해 말 망년회와 웅변대회를 개최하여 독립운동 추진을 결의하고, 자금 확보, 국내와의 연락, 독립선언서 작성 등의 준비작업을 벌인 끝에 거사를 감행했다.


'2ㆍ8독립선언'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세계평화였다. 그리고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부심에 바탕하여 인류의 발전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한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이들은 대거 국내로 들어와 3ㆍ1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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