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토요일 연재
지하국가2
8. 다섯째의 핏줄
선왕의 다섯째 왕비와 적통장자는 억울하게 죽었지만 평민왕족은 살아남아 그 핏줄을 이었다. 그 평민왕족의 후손이 투발루 손오공과 키리바시 손오공과 더불어 새로운 땅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하늘에 바다를 띄워서 천 년을 사는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제1대서양, 제1인도양이다.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우주에서는 물이 둥둥 공중에 떠있다. 그러므로 제1대서양, 제1인도양에서도 중력이 작용하지 않으면 바닷물이 하늘에 존재하게 된다. 음이온이 생겨서 작용하면 사람은 살기가 정말 좋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천 년을 살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면 무지무지하게 많이 이민을 오는 사람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대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실 천 년을 살 수 있어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정보를 흘려야 한다. 과거 왕이 후궁의 자식에게만 녹용을 먹이기 위해 어린애가 녹용을 먹으면 이상해진다는 거짓말을 퍼트린 것이다. 녹용은 귀하고 실제로는 어린애가 총명해지는데 귀한 것이 많은 사람에게 사용되는 것을 금지하여 자신만 쓰려고 그랬던 것이다. 천 년을 사는 행운을 누리기 위해선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다른 곳도 똑같이 천 년을 산다면 골머리가 안 아프지만 이곳만 적용되니 몰려올 사람의 숫자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중력과 음이온 연구소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나 다이아몬드처럼 귀하고 값진 것이다. 평민왕족의 후손의 이름은 대서인도이다. 대서인도는 사람의 장수유전자와 장수환경에 연구를 집중하는 인물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최고수명 120세에 절식으로 음식을 삼분의 일만 먹으면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수명이 길어지므로 120세에 40년을 더하면 160세가 된다. 여기에서 천 년을 살기위해 음이온이 제공되면 좋은데 160년이면 얼마나 더 연장되었나? 840년이 음이온으로 더 살게 되었으니 음이온 연구가 840년의 생명연장을 보장한단 말인가? 20세기에 인간은 불과 한세대내지 두세대 만에 인간의 수명이 30년, 40년이 연장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중심에는 상수도의 보급으로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음이온도 물과 관계가 깊다. 계곡, 바닷가, 폭포가 있는 곳, 대부분 물과 연관된다. 물과 깨끗한 물, 아름다운 물소리, 물이 공기와 부딪히는 곳, 등이 연상된다. 대서인도는 지구에서 멀리까지 왔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진짜로 천 년을 사는 행운을 누려야 한다. 누구나가 천 년을 사는 땅, 천당이며 극락이며, 유토피아이며, 무릉도원이고, 꿈속의 파라다이스이다. 도전을 해보고픈 주제이다. 대서인도는 투발루 손오공과 키리바시 손오공을 통해 필요한 것들은 모두 입수하고 적용하고 있다. 대서인도가 물을 하늘에 떠있게 만들어보니 사막이 없어지게 된다. 건조한 땅도 거의 없게 되고 대부분이 기름진 들녘으로 변한다. 만물이 번성하는 땅이다. 열대의 뜨거운 지역도 시원하거나 따뜻한 기후를 가지게 된다. 살기에 아주 좋은 기후가 조성된다. 습도조절이 가능하므로 쾌적한 제1대서양, 제1인도양이 된다.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마땅히 수긍이 간다. 인간을 괴롭히는 자연적인 고통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정반대로 행복함을 느끼는 호르몬이 많이 생성되므로 면역력도 증가된다. 기가 발달하여 건강이 넘친다. 대서인도가 사는 이 땅의 사람들이 다른 곳에 가보면 이곳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반대로 말을 하는, 거짓말을 하고, 양심을 속여야하는 심리적, 잠재적, 내재적 고통이 있다. 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 힘들게 사는 너희들을 돕고 싶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이곳에 정착하면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든단 말인가? 온갖 경우마다 거짓말을 준비하고 만들어야 하는 이상한 일이 생기고 교육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상당히 큰 불편이다. 왕래를 끊어버리면 되는데 고립하여 살자는 것이다. 천 년을 살기 위해선 인간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게 증발해 버려야 한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투명 인간이 되어야 하고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엇으로 변해야만 다른 사람이 이들 천 년을 사는 사람을 알 수가 없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천 년을 사는 방법을 전수해주어 똑같이 천 년을 살게 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가르쳐주기 싫으니 어쩌랴? 똑같이 천 년을 살기 싫다. 나는 천 년을 살아도 너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너는 물론 친한 경우라면 되겠지만 생판 남인 경우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감대가 비밀을 그냥 전해주기 싫은 것이 여론이니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독재자도 아니다. 이 좋은 곳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 참. 음이온은 좋다. 음이온이 증가하면 인간의 경우에는 부교감신경을 자극하고, 세포의 활성화, 혈액의 정화, 피로 회복에 효과를 가져 온다. 우리의 주거공간에서 음이온을 증가시키는 방법으로는 800~1,100℃에서 구운 숯을 사용하면 음이온이 효과를 준다. 자장개선, 전자파의 방지 등에도 효과가 있다. 혼란을 방지하면서 사람들이 오래 살도록 해 주려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천 년을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쉬운 해결책이라고 여겨도 실제로 실천하기가 정말 난감하다. 100% 전수해주기는 종교적 신념이 없는 한 대단히 문제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도로 줄여도 반 정도인 오백 년을 사는 비밀을 전해주기로 하는 정도이다. 그러면 무작정 제1대서양과 제1인도양으로 홍수처럼 밀려올 사람들을 막을 방법이라 여긴다. 선진국이 혼자만 잘 살려고 해도 물건을 후진국에 팔아야 이익이 생기는데 후진국이 전혀 물건을 살 힘이 없으면 선진국이 물건을 팔 곳이 없어 못 살게 되니 어느 선까지는 후진국도 선진국의 물건을 살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되어야 서로가 좋으니 최저한도의 구매력 이상을 후진국이 가질 수 있도록 선진국도 후진국을 돕지 않을 수 없다. 대서인도의 나라가 천 년을 잘 살기 위해선 다른 곳도 오백 년은 사는 지역으로 발전시켜 주어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음이다. 그러면 수백 억 명의 사람들은 공짜로 오백 년을 사는 행운을 얻게 된 셈이다. 400년 정도를 덤으로 더 살게 되는 꼴이다. 현재의 인간들도 각 개인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과학자의 힘으로 인해 공짜로 살기 좋은 것을 덤으로 얻어서 복되게 사는 것이나 별반 다름없다. 생활에 사용되거나 세세하게 인간이 활용하는 모든 것들이 일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의 발명품이나 연구로 인해 발전된 것을 누릴 뿐이다. 다 만들어 준 것조차 사용법이 좀 어려우면 귀찮아 할 지경이지만 말이다. 후진국이 공짜로 먹을 것이 생기는 이치가 이런 것처럼 오백 년을 못 살고 있는 지역의 수백 억 명의 사람들도 평균적으로 수명이 오백 년에 도달하는 음이온의 활용능력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굳이 제1대서양이나 제1인도양으로 이민을 가지 않는다. 음이온이 천 년을 살게 해준다는 것을 이제는 사람이라면 우주 어느 곳에 있든지 당연히 다 아는 일이다. 음이온의 역사는 인간수명 연장의 역사가 되고, 무슨 일이건 간에 50% 정도는 혜택이던 손해이던 간에 받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나쁜 일도 반 정도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렇지 않나? 핵폭탄이 터지면 괜히 죽게 되고, 전쟁이 터지면 아무 연관 없이 손해가 생기거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나?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동물인 인간’이다. 어느 곳이 또 이천 년을 사는 곳으로 바뀌면 인류는 대부분이 거의 공짜로 천 년 정도는 살게 된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이웃 나라가 잘살고 발전되어 시기만 할 것이 아니라 훨씬 좋은 조건이 곁에 있음으로 상생하여 살 수 있음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친구들이 좋으면 자연히 자기도 좋은 사람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린 가슴으로 생각하니 천 년을 사는 음이온의 기술을 다 가르쳐 주어도 별로 손해가 나지 않는 것 같고 상대방이 천 년을 사는 방법을 통하여 이천 년을 사는 비밀을 찾아낸다면 그 비밀을 결국은 퍼트리게 된다면 이천 년을 살게 되는 것이다. 발전 속도가 배가될 수 있다. 그런데 100% 다 내어주기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부모가 자식에게 내어주듯 하는 심정이나 종교적 관점이 아니면 힘들다. 결국 100% 비밀을 알아낸다기보다는 50% 선에서 공짜로 얻은 것에서 더 좋게 나머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공짜는 한계가 있고 공짜가 아닌 것은 스스로 만들고 이루어가야 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세상에 보이는 것과 사용하는 것의 좋은 것이 반 정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보다 배 이상 나은 세상일 수 있다는 점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옛날 왕조시대 도공들은 권력자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늘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라는 명령이다. 늘 좋아질 수 없었기에 도공들은 작품 중에 제일 좋은 것은 부숴버리고 제2의 작품을 내놓았다고도 한다. 최고의 작품은 목숨이 걸렸거나 후일을 위해 놔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에서 2배로 발전된 모습은 빠른 시일 내에 달성이 된다는 가정을 해 볼 때 오백 년을 사는 것은 천 년이고 천 년을 사는 것은 이천 년이라 해보자. 10Km를 달리는 사람은 일 년이나 일 년 육 개월 이내에 42.195Km를 달릴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던 사람이 삼 주일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력이 반으로 준다고 하는데 그러면 천 년을 사는 사람이라도 연구와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방에 아니 조금 시간이 걸려서 오백 년만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럴 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만 영원히 나아간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도자기도 현재는 플라스틱이나 다른 것으로 인해 발전이 중단되었으니 말이다. 반도체기술은 이 년에 배가 되다가 이제는 일 년에 배가 되기도 한다. 이상한 방법을 동원하다 보면 천 년이나 오백 년을 살고 있는데 음이온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음이온체계를 망가뜨리면 곧 오백 년이나 천 년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20세기, 21세기에 인간이 전기로 만들어진 세상이 전기를 몽땅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면 지옥이 된다고도 하지 않나? 전기체계가 복구되지 못하면 말이다. 93세까지 별 탈 없이 생존한 노인이라지만 전기가 끊어지면 한겨울에 얼어 죽는 것이다. 인위적인 전기 공급의 중단으로 인해 말이다. 음이온을 800세까지 살다가 음이온이 갑자기 인위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면 그냥 죽게 된다. 음이온체계로 이룩된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이 적이 되어 인간을 멸망시키려 한다면 대응할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대비능력이 없다면 천 년을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될 수도 있다. 백 년도 길다고 하면 긴 세월인데 천 년이면 긴 세월이다. 천 년 전의 모습을 보고 현재를 보면 차이가 크다. 한세대에서도 강산이 뒤바뀌는 데 천 년이란 일생 동안에 얼마나 변화의 폭이 클지 모를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를 보는 것 같지 않나? 살아있는 역사책이 될 판이다. 한 사람의 학자가 백 년 동안에 열권의 저서를 지었다면 천 년이면 백 권이다. 사람의 경험, 삶의 아우르기가 열 배나 되는데 축적과 시너지효과로 인해 열 배가 아닌 백배의 능력이 나온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볼 수도 있겠다. 퇴직하는 노교수가 상당한 경지의 학문적 깊이가 있는데 그만두지 않고 천 년을 계속한다고 생각해보라!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것이 실제 상황이 된다. 무슨 일을 천 년이나 한다면 귀신이 될 정도의 능력이 나와서 일반인들은 정말로 귀신으로 여기게 되겠다. 아무리 둔재라도 천 년이 걸리면 모든 사람이 다 천재수준이 되겠다. 고등학교를 30년 다니면 선생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될 것이고, 대학을 백 년이나 다니면 지금의 교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공부를 삼백 년이나 하고 난 다음에 무슨 연구를 한다면 그 경지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그러면 공부를 팔백 년이나 하고 난 다음에 연구를 한다면 그 경지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감이 잘 잡히질 않는다. 팔백 년을 학생으로 살아온 보통의 인간이라면 21세기의 공부로 따져보자. 백 년에 박사를 하나씩 취득해도 박사학위가 여덟 개다. 50년에 하나씩 취득했다면 16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면 한 사람이 평균20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니 무슨 소리인가? 20개의 학문영역을 서로서로 엮어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천 년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땅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천 년을 사는 사람들의 능력을 적용할 방법을 생각해보자. 한 사람이 20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그 지식이 시너지를 발휘한다. 21세기에서는 다른 분야의 박사 20명을 모아서 백 년의 경험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천 년의 경험을 어떻게 보충할 수 있을까? 그 답이 잘 안 풀린다. 각 분야마다 천 년의 흔적을 연구한 사람을 더 보강하여 20개 분야의 박사와 각 분야에서 천 년 동안의 것을 연구한 사람 또 20명을 보태 40명으로 일을 한다는 것인가? 그러면 근사치에 가까워지는 것이냐! 모를 일이다. 그러면 팔백 년을 한 분야만 연구한 사람의 수준을 가늠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문제는 많다. 어린이 시절이 백 년이 되어야 하나? 노년이 백 년이 되어야 하나? 성장기와 노년기는 짧게 하고 청장년의 기간을 길게 하면 후유증은 없는가? 지구에서처럼 25년간 성장하고 노년기도 25년 정도만 유지하고 950년을 청장년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고 하여 그렇게 살게 되면 사회패턴을 어떤 식으로 조직하여 무리 없이 꾸려갈 수 있나? 950년을 결혼하여 헤어지지 않고 남녀가 같이 살아간다니 쉬운 일일까? 이혼과 재혼이 뒤섞이면 900세와 150세가 같이 살게 되고 나이차를 무슨 수로 극복해갈지 모르겠다. 무지무지하게 많은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또 자식을 낳고 가족관계와 인간관계가 얼마나 복잡해지나? 실험하기가 무척 어렵지만 적응을 하고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900세에 100세의 아가씨와 결혼한다. 800세의 여인이 200세의 청년과 결혼한다. 머리가 복잡하다. 900세나 800세의 남녀가 재혼 이전에 얼마나 많은 자손을 퍼뜨려 놓았겠나? 그렇게 복잡한 촌수가 잘 풀릴 것이다. 라고 낙관하지만 글쎄올시다! 가상의 적국이 침입하면 방비를 하고 막아내면 되겠지만 멸망할 수도 있다. 가상의 적이 침입한 지역을 홍수를 나게 하여 막고 그 홍수가 옆의 지역으로 번지려 하면 열로 데워 수증기를 만들어 버리거나 무중력을 이용해 하늘에 물을 띄워 올리면 되지만 국방문제도 심각하다. 900년이나 800백 년을 군인으로 나라를 지킨다. 청장년 기간이 보장되므로 계속 무술을 연마한다면 무술이 몇 단이 아니라 수십 단, 수백 단이 된다면 태권도가 일백 단, 유도가 일백 단이면 어떤 무술의 단계란 말인가? 의아하네. 지구상에서도 육천만 년 전이니, 일억 년 전이니 이럴 때 상상하기 힘든 공룡들이 살았다. 화석을 통해보면 사실이다. 인간도 공룡의 크기가 되지 말란 법이 없고 수명이 천 년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자연계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지만 공룡이 실존하지 않았나? 그렇다. 인간이 공룡만 해지면 끔찍하기도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개의 후각이나 새의 비행능력이나 동물의 발달된 각각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을 수백 배나 수천 배로 발달된 것도 많다. 그런 식으로 인간도 지능이 열 배나 일백 배로 발달하거나 운동능력이 수십 배나 일백 배로 발달하면 태권도가 일백 단이나 유도가 일백 단이 될 수 있다. 새의 비행능력에 비해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 가면 새보다 일백 배나 더 비행능력이 향상된 결과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의 비행능력이 무한대로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이다. 그러네. 그러니 천 년을 사는 인간이 출현한다는 것이 그리 이상한 것이냐? 타조의 엄청난 시력을 인간은 구글어스의 지도로 찾기를 하면 못 찾는 것이 없는 시력을 가진 동물이 되지 않았나? 그런 것 같다. 총이나 대포 등은 동물의 육체적 힘의 한계를 무한대로 넓힌 꼴이다. 희한한 인간이다. 대서인도는 제1대서양 지역에 900살의 사람들이 몰려 사는 곳에 가보았다. 아직 노년이 되려면 50년이 모자란다. 무술은 수백 단이고 지적 능력을 너무 똑똑하고 힘과 지혜가 철철 넘치는 집단이다. 도술을 부리는 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의 인간의 인식능력으로서는 그렇다. 차원이 다른 인간종족이다. 출발은 지구상의 인간이었다. 인간은 왜 초인을 꿈꾸는 것일까? 현실이 잘 풀리지 않으니 정신세계에서나 무한대로 성공하는 인간을 보고 싶어서 일까? 못 하는 것이 없는 인간, 나중에는 죽지 않는 인간을 꿈꾸고 실현시키려할지 모른다. 천 년을 산다면 자꾸 불려 만 년을 살고 죽지 않으려 할 것이 아닌가? 죽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능력이 너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반대의 메시아를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비현실적인 것에 도피하여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숨기고 공상 속에서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공상이 시간이, 세월이 지나면 실현이 되는 인간세상이기에 놀라운 것이다. 인간의 천 년 이전을 보면 상상의 일들이 많이 실현되었던 것이다. 많이 현실로 실현되었다. 달나라로 가고, 잠수함으로 해저를 살피고, 과학의 발달이 증명을 해준다. 900살이면 90평생을 산 사람의 열 배를 살아왔다. 90평생도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보고들은 것이 만만치가 않다. 900살 동안 보고들은 것이 상상이 되나? 900살 동안 암이 몸속에 있어 고통스러웠다면 그 고통을 이기는 힘을 인간은 습득하게 되었을 것이고, 900살이 되도록 이가 튼튼했다면 상어처럼 이빨이 이만 삼천 개나 다시 났거나 새로운 이가 생겼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몸의 세포가 새롭게 재생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공룡이 생겼다가 없어지듯이 천 년을 사는 인간이 생겨서 지구나, 우주에 살다가 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을 간파할 수는 있다. 인정을 못하다가 그럴 수 있겠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새겨진다. 그러면 대서인도 그 자신도 천 년을 산다는 허무맹랑한 것 같으나 그럴 수도 있다는 그런 요술 같은 일에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다. 천 년 왕국이나 영원한 제국이 아니라 사람자체가 천 년을 생존하니 만 년 왕국이나 만 년 제국을 노래하는 것이 보편화된다. 문학이니 예술이 건축물이니 만 년이 가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그 기준에 맞게 문화와 예술의 코드나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건축물이 만 년을 지탱한다고 어림없는 일이지. 사람이 천 년을 사는데 건물은 만 년이 가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천 년을 사는데 문학책이 만 년을 가야 이론적으로 앞뒤가 맞아지지 않느냐이다. 만 년이 가는 성전을 짓고 만년이 가는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천 년을 간다는 것은 자신의 일생동안에 끝나버리는 일생동안에 몽땅 느껴보았는데 역사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천 년이 역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일생일 뿐이기에 그렇다. 개인의 일생의 열 배는 되어야 문화니 예술이니 역사니 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대서인도는 만 년이라는 단위시간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생활방식으로 살아야 900살이 모인 사람 속에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틀이 보이고 이해가 될 수 있다. 천 년이라는 인간의 수명은 만 년이라는 앞일을 보는 지혜를 인간에게 선물했다. 만 년을 이야기하는 인간이다. 앞으로의 만 년의 그림들이 쭉 펼쳐진다. 만 년 앞을 상상해보라!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만 년 앞을 그리라니 한계에 이르는 인간이다. 기껏 온갖 요설을 다 쏟아내어 천 년을 그리려하니 잠깐 사이에 만 년을 읊어대라니 여간 힘들지가 않다. 밋밋한 주먹돌에서 뾰족한 주먹돌로의 발전이 구석기에서 신석기라니 만 년, 십만 년이 쉽게 증명이 되지만 천 년의 수명을 누리는 인간에게서 만 년의 앞날은 너무나도 발전의 폭이 크다고 여기니 추정을 못 해내는 것이다. 밋밋한 주먹돌에서 뾰족한 주먹돌까지가 그렇게 어려웠나? 질소발전기도 이십 년이 가도 아무런 진전이 없고, 원자력 발전소도 크기를 십억 분의 일이나 백억 분의 일로 용량을 낮추어 실용화하면 가정에서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만 해내는 일에 십오 년이 허비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듣기만 하면 일초 만에 아는 것을 생각하는데 십오 년이나 걸리니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한심한 인간이 만 년 앞을 무슨 수로 예측해낸단 말인가? 보상이 생기지도 않는 일에 말이다. 보상이 없어도 인간은 공상을 하기도 하고 보상이 엄청난 천조 원이 된다고 느끼나 실현이 안 되니 소용없는 일이지만 천조 원의 허황된 꿈을 꾼다. 만 년 앞의 미래는 천조 원을 엄청나게 더 넘는 큰 발전이 된 세상일 것이다. 질소발전기가 천조 원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들 언제 현실화 되느냐? 에서 백 년의 사람은 물러서지만 천 년의 사람은 물러서지 않음이다. 엄청난 차이이다. 백 년 안에 이룰 수 없다고 포기하지만 천 년을 사는 사람은 천 년 안에 이룰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고 믿기 때문이다. 232년이 걸리니 미국에서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제44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었다. 백 년, 이백 년이면 되는 일도 있다. 천 년이면 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 할 수 있다. 800년, 900년을 공부하면 안 될 일이 무엇이라 싶을 정도이다. 인간에게 수명이 천 년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앞선 세계가 보이게 되므로 설명을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 안 보이는, 없는 세계를 있는 것처럼 꿈을 꾸고 실천을 하면 안 보이는 것이, 없는 세계가 있게 되는 것이 사람이 사는 재미이기도 하다. 흑인대통령은 없는 것이고, 안 보이는 것이었으나 보이게 되고 있는 것이 되었다. 원자탄을 없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나 발전소를 만들어 전력생산을 통해 잘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 무시무시한 폭탄인 원자탄을 떨어뜨리니 피신하라고 전단지(삐라)를 뿌렸지만 일본인들은 안 보이고, 없는 것이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수명이 삼백 살이 되는 것이 안 보이고, 없는 것이지만 천 년 안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천 년이나 이천 년 안에 사람이 삼백 살을 사는 현실이 전개된다. 대서인도는 천 년을 사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격차가 커서 혼란이 크지만 삼백 살을 유지하는 사회에 가면 스트레스를 별로 느끼지도 않고 잘 적응할 것이다. 미리 학습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모든 곳이 벌써 오백 살을 살도록 조치된 마당에 삼백 살을 사는 곳은 미개한 종족으로 치부될 것이다. 문명의 정도를 왜 인간의 수명에 맞추는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잘 채워주는 곳이 선진국 아니냐? 그러니 그럴 수밖에 달리 특별한 방법이 있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고 그런 것 아니냐이다. 그러면 대서인도에게 안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 보니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안 보이는 것은 만 년 후의 모습이고, 없는 것은 무언지 모르겠다. 안 보이는 것을 억지로 알아내려니 그것도 대단한 공부이다. 허만 칸이 100가지의 미래의 것들을 예측하여 95가지나 적중시켰다는데 대서인도는 도무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은 선생님이 할 일이다. 학생에게 선생님은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 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고능력을 배양하여 초등학교와 비교하면 대단한 진보를 하여 어려운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게 만들어 준다. 학문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초등, 중등학교에서 배워 대학에서 각각의 학문에 입문하게 되고 계속하여 공부하면 한 분야의 어떤 것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오랜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화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대서인도에게도 그러한 것들이 철저하게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너무 급변해 있으니 깊이와 넓이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함이다. 자신이 원로가 되면 더 앞의 선생님은 저 세상 사람이고 자신이 앞길을 열어주어야 하건만 그 길을 정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할 때 답답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생각하고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그렇다.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하니 머리가 좀 덜 아프다. 건축물이 만 년을 지탱하려면 어떠해야 하나? 만 년 동안 변함이 없는 것은 산 같은 것이 있다. 건물을 산과 같은 식으로 만들면 만 년이 간다. 집이나 일터가 산처럼 만들어져야 한다. 만 년과 산과 집과 일터가 연결고리라니 아리송하다. 산속의 동굴에서 살자한단 말이냐? 그러면 구석기시대의 생활상에 첨단 인공지능으로 보강된 것이다. 이것인가? 어쨌거나 산속의 동굴에 들어가야만 만 년이 지탱될 것 같다. 그것이나 지하세계나 다른 것이 무엇이냐? 지하국가 아니냐? 지하국가2가 아니냐? 대서인도가 끌고 가는 길은 영 신통치가 못하나 ‘제갈량이나, 방통도 큰 묘안은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 생활에서 만 년 동안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변화무쌍한 것 중에 변화하지 않는 것을 찾는다. 천 년을 살지라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면 죽은 후를 볼 수가 없다.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이름 없는 사람이면 아무런 언급도 없을 것이다. 죽고 나면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 매장을 하던, 화장을 하던 할 것이다. 보고 싶지도 않은 장면이다. 보고 싶은 것은 좋은 것일 게다. 현재의 삶도 버거운 개인에게 사후까지 생각하여 무슨 대책을 세우라면 정말 짜증이 날 것이다. 안 보이는 것을 자꾸 보려고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초점이 잘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현미경으로 세포를 연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고 보이지 않는 학문을 자꾸만 연구하다가 사람은 세포를 보게 되고, 우주를 보게 되고, 학문의 앞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말이 생각났다. ‘보고자 하면 보이게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와 비슷한 감정이다. 만 년 후의 모습이 잘 안 보이지만 ‘보고자 하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주를 보고자 하면 허블처럼 허블 망원경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귀머거리 베토벤이 듣고자 하면 귀머거리에서 들리는 것이다. 작곡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 ‘듣고자 하면 들리는 것’이다. 위정자가 국민의 어려움을 듣고자 하면 들리는 것이고, 보고자 하면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는 간난 아기의 옹알이가 들리는 것이다. 어머니는 간난 아기의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는 간난 아기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의 미래를 보는 것처럼 대서인도도 만 년의 미래가 보이면 좋겠다. 허블처럼 볼 수 있는 능력, 베토벤처럼 들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있으면 좋겠다. 갈릴레이도 망원경을 만들어 보고자 하여 보게 됐고, 후크도 현미경을 만들어 보고자 하여 세포를 보게 됐다. 듣고자 하니 에디슨은 축음기를, 전화를 만들었다. 사람마다 보고자 하는 것과 듣고자 하는 것을 열심히 해나가면 무언가를 보고, 듣고 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천 년이나, 만 년 동안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듣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번성이고, 듣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한 웃음소리 아닐까? 너무도 쉽고 당연한 것 같다. 인간의 번성이 여성의 무제한의 출산능력으로 다시 수명이 천 년으로 다시 만 년을 바라보는 것으로 무대는 우주로 향하게 됐다. 행복한 웃음이 성의 무한한 해방과 산삼을 통하거나 다른 모든 방법을 동원한 지혜로 연결되었다고 여겨진다. 대서인도가 엉성한 답을 찾고 있지만 긍정의 힘이 모자라므로 투발로 손오공을 불러 만 년 앞의 미래상을 말해보라고 하니 손오공의 답인즉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란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거나 몰라도 상관없으니 신경을 쓰지 말고 그냥 살라고 한다. 안이한 대처방법을 일러준다. 치열하게 삶과 대적하기를 거부하는 투발루 손오공이다. 어려움이 닥쳐도 맹수에게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타조처럼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소극적으로 현실도피적인 태도를 취한다. 인간이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100% 일어나지 않고 4%만 실제로 일어나니 얼버무려도 확률이 낮은 만큼 대충 넘어가자는 식이다. 만 년을 정확하게 대처하기 싫다는 증거이다. 스톡데일은 냉엄하고 정확한 대처가 타조식의 낙관적인 방식을 이긴다고 말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그는 팔 년 간의 베트남 전쟁포로에서 그가 본 무작정 낙관주의로 대처한 포로들이 가장 먼저 죽었다고 했다. 냉엄한 현실을 정확하게 대처한 포로들이 끝까지 생존했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 년, 십 년도 아니고 만 년을 대비한다고 하니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잘 보여야 하는 앞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비하려니 힘이 드니 꽁무니를 빼는 것이다. 잘 안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는 자신도 볼 줄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조상이 있었기에 아기가 있는 것이다. 노인은 자기의 후손이 어떤 모습으로 올 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서로가 잘 보이지 않지만 서로가 실제로는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3대나 4대까지는 서로가 볼 수도 있으나 그 이상이 되면 힘들다. 그 힘든 부분은 역사나 제사나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고고학은 예전을 보여주고 미래학은 후일을 보여준다. 그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우리가, 인간이, 사람이 보지 못 하거나 알게 되지 못할 때 방향을 잡기 곤란해진다. 선진국, 좋은 곳이란 무엇이냐? 예측이, 예상이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 상호간에 신뢰가 쌓이고 정상적으로 일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용이 정확해야 믿음으로 사회가 존속하기 때문이다. 신용이 엉터리면 질서가 뒤죽박죽되어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알고자 하고 듣고자 하고 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향상되고자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앞서 보는 능력이나 앞서 듣는 능력이 월등하면 어릴 때부터 인간들을 그들을 잘 대우하여 인간에게 이로운 일을 하도록 맡기곤 했다. 제1대서양과 제1인도양에 앞서 보고 앞서 듣는 무엇을 해볼 것이 없을까? 앞서 보는 도시 허블, 앞서 듣는 도시 베토벤, 허블과 베토벤 두 도시를 통해 대서인도는 그의 땅을 빛나게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