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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으로 몰리는 자영업자-심충택(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모두가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지만 주택가에 있는 슈퍼마켓이나 빵집, 음식점, 반찬가게 등은 상품을 파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순기능(順機能)을 한다.




​만약 이들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고 가정해 보면 그동안 간과했던 다양한 기능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니까 모두가 그 중요성을 잊고 사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상가나 골목에도 오래전부터 장사가 안 돼 하나둘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의 발길은 줄어드는데 가게끼리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 지니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새로 자영업을 시작한 신규사업자와 문을 닫은 폐업자 비율)이 8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이 수치가 90%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구의 경우 2016년 말 기준 전체 취업자(123만4천명) 중 자영업자(28만1천명) 비중이 22.8%로, 전국 평균(21.2%)을 웃돈다. 7대 특별·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인구 1천명당 사업자 수도 대구는 95개로, 서울(104개) 다음으로 가장 많다.




이처럼 자영업자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하고 매출이 시원찮다보니 빚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대구지역 자영업자들의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3억9천230만원으로,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고 한다.




​일각에선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처럼 파탄상태에 이른 것은 과당경쟁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나는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잠식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상가든 전통시장이든 주변에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서면 보통 한 달 안가 상권이 붕괴되어 버린다. 대구에서도 현재 빈 점포가 즐비한 지역이나 이미 사라진 전통시장 주변을 잘 살펴보면 모두 대형유통업체가 들어서 있다.




며칠 전에도 백화점, 마트, 편의점 등의 넓은 유통망을 보유한 기업들이 외식산업의 일환으로 가정간편식을 출시하자 상가나 골목에 자리 잡은 식당 등 외식 자영업자, 반찬가게 등이 줄줄이 폐업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시장독과점과 자영업자의 몰락을 보면서 과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존속해야 할 절대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대 이정전 명예교수는 ‘시장은 정의로운가’라는 저서에서 “현재 세계 각국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모델을 찾고 있다.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바가 없다.




​이 새 모델에 어떤 내용을 채워 넣을 것인지는 현 자본주의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자본주의 시장이 기본적으로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한다면, 새 자본주의의 핵심 과제는 단지 시장의 뒤탈을 깔끔하게 설거지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구조적인 요인 탓으로 시장이 공정치 못하다고 한다면, 시장에 대한 대수술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며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경제체제는 결국 승자독식(勝者獨食) 현상을 불러오면서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특히 무절제한 탐욕을 드러내면서 영세자영업자의 시장까지 빼앗아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어려운 시절 이웃끼리 콩 한쪽도 나눠먹고 살아온 민족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자본주의 유전인자가 우리 모두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이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는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골목에 빈 점포가 하나씩 생기는 현상은 지역경제에 가장 좋지 않은 모양새다.(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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