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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정당 유승민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
홍준표·유승민 이른바 보수 대선후보의 행보가 기이하다. 두 후보는 대선을 불과 30일 남겨둔 상황에서 대구경북, 부산경남만 헤메고 있다. 유 후보는 무려 2주째 대구경북을 맴돌고 있다. 홍 후보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사표를 던진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대구와 경북을 오가고 있다.
이들이 대구시장이나 경북도지사에 출마한 것이 아닌가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물론 두 후보 지지율이 합쳐도 15%가 되지 않으니 '집토끼'부터 잡고보자는 속 타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큰 그림을 그리는 정공법이 필요한 것이 선거다. 기왕 동네에서도 세 과시를 못할 바엔 적지에 뛰어들어 장렬히 산하하는 것이 후일을 기약할 수도 모양새도 좋다.
과거 대선 사례를 1개만 한번 살펴보자. 1987년 민주화 열풍에 이어 치러진 1987년 대선이다. 당시 3김으로 불리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가 대선에서 무명에 가깝던 군부출신 노태우 후보에 퍠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막강한 3김이 너무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영호남과 충청권에 안주했기 때문이다는 주장이 그럴 듯한 이유다. 자신의 지지기반이 오히려 독이된 것이다.
이번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문재인 후보에 안철수 후보가 바짝 다가간 것은 호남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데다 갈 곳을 못 찾은 영남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이번 대선은 과거 지역주의와는 달리 보수, 진보, 중도로 대변된다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결국 진보라는 것이 호남을 대변하고 보수는 영남권에 매여 있다. 중도라는 것은 이도저도 아닌 세력이 만들어낸 말장난에 불과하다. 밑바닥에는 지역정서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남보수는 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나. 대통령 탄핵의 돌덩어리가 영남민심을 꽉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후보가 자신을 아무리 밀어달라고 호소해도 탄핵의 돌덩어리를 치우지 않고는 민심은 일어설 수가 없다. 그런데도 무조건 집토끼에 매달리는 것은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거나 알고도 대선 이후 '지역대장'을 노리는 소인배의 '꼼수'에 불과하다.
홍 부보는 국민의 당을 '얼치기 좌파'로 규정했다. 많은 보수는 드디어 홍 스트롱맨이 전면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반겼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경남도지사란 단체장에서 대구시장 출마(?)로 바뀐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경남도지사 선거를 하지 목하도록 희한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대선은 포기하고 차기 도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4월 9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사퇴와 사퇴 사실의 선관위 통보가 모두 4월 9일 자정 이전까지 이뤄져야 경남지사 보궐선거는 5월 9일 대선과 함께 치러질 수 있는 것이다. 사퇴했다 하더라도 의회 의장과 선관위에 통보하기 전에는 법적으로 사퇴가 아닌 것이다. 문재는 "보궐선거는 없다"는 홍 후보의 '몽니'다. 4월 9일 밤 11시 59분 59초에 지사직을 사퇴했을 경우 4월 9일 안에 선관위에 사퇴 사실을 통보할 방법은 없다. 당연히 날짜는 4월 10일로 넘어가고 경남지사 보궐선거는 실시되지 못하게 된다. 법률의 미비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보궐선거를 막으려는 검사 출신 법률 전문가의 나쁜 '꼼수'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본인의 피선거권은 챙기면서 400만 경남도민의 참정권은 무시해버리는 반민주적 행태인 것이다. 홍 지사 본인도 2012년 김두관 당시 경남지사가 사퇴하자 대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선거를 통해 지사에 당선됐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는 "300억 원 이상의 도민 혈세가 낭비되며, 경남 도민 대부분도 보궐선거를 원하지 않는다"는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각에서는 홍 후보가 5월 9일 대선 결과에 따른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차원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현실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악화된 민심을 볼 때 자유한국당 후보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결국 이대로라면 경남도는 내년 6월 30일까지 무려 14개월 20일 동안 도지사 공백사태가 빚어지게 된다.
홍 후보는 보수단일화를 위해 유 후보를 고사시키는 압박전을 펼치고 있다. 유 후보만 잡으면 대권은 넘어온다는 '아집'은 이제 그만 부려야 한다. 상실감에 빠져있는 보수는 '산토끼 잡기'에는 엄두도 못내고 경남지사 보궐선거를 막고 있는 홍 후보의 쫀쫀한 모습에 또 한번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대구시장에 출마할 바가 아니라면 홍 후보는 지역을 넘어 국가 지도자의 강한 면면을 보여야 한다. 현충원 방명록에 적은 '필사즉생'을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