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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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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13 총선을 거치면서 필자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과 실제 표심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국의 브렉시트(EU탈퇴 국민투표) 이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투표 당일까지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힐러리 후보를 가볍게 꺾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결심은 더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작심삼일도 아닌데 또다시 여론조사를 보게 된다. 하기야 깜깜한 밤길을 걸을 때 희미한 손전등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손전등의 그 희미함이다. 희미하기 때문에 전체를 비추지 못하고 아주 제한된 부분만 보인다. 자칫하면 전체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상상하면서 엉뚱한 길을 걸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 데 참고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론조사를 맹신하게 되고 심지어는 의사결정을 하는 데 지표로 삼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대학원에서 조사방법론을 전공한 필자도 그런데 하물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이 자신과 다를 경우 ‘침묵의 나선’에 빠지면서 침묵하는 다수가 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하고 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부터 각 정당에 대한 지지율, 그리고 유력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추이를 마치 경마 중계방송하듯이 연일 쏟아내고 있다. 눈이 절로 갈 수밖에 없다. 물론 큰 틀에서는 우리 사회의 일정한 경향성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 우리는 여론조사 결과에 자신의 의견을 맞추어가는 것은 아닐까.
여론조사는 ‘당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보수, 중도, 진보 중 어디냐고 묻는다. 10일자 한국갤럽(보수 30.7 - 중도 30.1 - 진보 39.2), 13일 자 리얼미터(24.9 - 41.6 - 33.4)의 조사결과에서도 마찬가지 물음이 있었다. 사실 누가 나에게 정치성향에 대해서 물으면 나도 ‘중도’라고 대답할 것이다. ‘보수’라고 하면 무슨 수구꼴통으로 비치는 것 같고, ‘진보’라고 답하면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구도는 ‘보수4 - 중도3 - 진보3’이 정설이다. 그런데 지금 보수성향의 국민들은 위축돼도 너무 위축됐다. 스스로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위의 한국갤럽이나 리얼미터 조사 둘 다 진보성향의 응답자들은 적극적으로 설문에 응하는 데 반해, 보수성향의 응답자들은 쭈뼛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나마 중간에 전화를 끊지 않고 끝까지 응답한 것도 기적에 가깝다.
13일자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20대는 229명이 응답했는데 목표치 440명에 맞추기 위해서 가중치 1.92를 곱했고, 50대 724명(목표치 495명), 60대 739명(목표치 600명)이 응답하여 가중치를 0.68 및 0.81을 각각 주어 깎고 있다. 가중치가 높을수록 한 사람의 답변이 과다하게 반영되는 것이니, 20대 한 사람의 목소리가 50대 세 사람의 몫을 한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탄핵을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집회를 통해 헌재를 압박한다. 탄핵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민심은 탄핵을 찬성하는 비율이 80%에 이른다고 헌재를 압박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여론조사의 응답률이 10~20%이고 80~90%의 국민의 뜻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탄핵 결정을 할 것인지는 단지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 여부가 아니라, 그 위반 사항이 중대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더 이상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과연 국민의 신임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헌재의 결정에 눈이 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