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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선택과 한국인의 선택

우정구 편집인<전 매일신문 편집국장>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로 점쳐졌던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도널드 트럼프의 일방적 승리로 결판났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여론조사였다. 미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앞서왔던 민주당 힐러리 후보가 어이없이 참패하고 말았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를 두고 각국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하다. 미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의 승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평범한 중하위층 백인들의 승리라 분석한다. 미국사회를 끌고 왔던 주류 계층에 대한 반발과 분노라고 설명했다. 정쟁을 일삼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염증도 반영됐다. 월가와 유착한 귀족 정치인의 비도덕성에 대한 경고였다. 정직하지 못한 엘리트들에 대한 좌절감도 내포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부인과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지낸 화려한 경력의 후보보다 비록 아웃사이드지만 서민 편에 서서 그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변화를 이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가 비록 음담패설과 막말을 해대는 품격을 잃은 후보일지라도 그를 통해서 기존질서의 변화를 원했던 것이다.

기성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놀랐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즈 기고에서 “우리가 몰랐던 나라(our unknown country)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민주주의적 규범과 법치주의를 소중히 여긴다고 봤지만 틀렸다“고 했다. ”미국의 이상을 공유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인의 선택’은 미국인을 위한 미국에 있었다. 세계 평화와 평등, 인권 등의 정책보다 미국인을 위한 정책을 요구한 것이다. 외국인에게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길 원했고 평등, 인권으로 오히려 역차별 받는 미국인들, 특히 백인 남성을 위한 정책을 요구했다.

모든 민생과 경제가 자국민 중심으로 짜여 지는 것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지난 6월 기득권 정치에 반기를 든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의 투표결과와도 일치하는 점이 많다. 일본의 군구주의 부활을 노리는 아베총리의 등장과 필리핀의 두테르테 현상도 미국 대선결과와 유사성을 가진다는 분석도 이런 자국 이기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뒤로 하고 지금 ‘최순실 국정 농단’이란 정치적 파고에 모든 것이 휩쓸려가고 있다. 이런 한국적 현상에 대한 결과는 한국인의 몫으로 남겠지만, 사태 해결의 지혜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책임추궁만 있고 안보와 경제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상황을 지금보다 더 나쁘게 후퇴 시킨다면 그 책임은 지금의 정국을 주도하는 야당에게도 있게 된다. 한국인의 이상을 공유하지 못한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수습하는 여야 정치권의 역량이 지금부터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해도 틀리지 않다.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고 한국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안보가 튼튼해졌음을 느끼게 한다면 이 사태를 주도한 세력에게 국민은 분명하게 국정을 맡길 것이다. 그것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은 정치집단을 가장 불신한다. 여든 야든 국민들이 보는 불신의 정도는 비슷하다. 지금은 야당이 호재를 만났으나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야당도 모처럼 얻은 호기(好機)를 허망하게 잃어버릴지 모른다. 난세에 영웅이 나는 것과 같이 우리 정치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시기란 뜻이다.

지난 주말은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거국적 촛불시위가 있었다. 대통령을 압박했지만 따지고 보면 시위에 참여한 야당의 책임도 시위의 무게만큼 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국가를 혼돈의 상태로 몰고 갈수는 없다. 촛불시위 이후 정국에 정신을 바짝 모아야 한다. 대통령의 하야를 포함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 사태를 해결하는 정치권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도 정치인이 쏟아낸 온갖 지혜 속에서 ‘한국인의 선택’을 현명하게 찾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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