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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덕 (여의도 정치미디어 |
호(號)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그저 예술가나 몇몇 정치인들만 쓰는 줄 알지만 우리 선조들은 미국인들이 서로 편하게 first name을 부르듯이 누구나 별호(別號)로 호칭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를 부르는 호칭 때문에 기분 상해 싸우는 일이 적지 않다. 서양인들은 한번만 보고 알면 “우리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말한다. 타이틀이나 Mr. Mrs.를 붙이면 형식적인 사이로 느껴 오히려 싫어한다. 이들은 제 부모도 이름을 부르는데 그렇게 서로를 부르는 것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동양의 유교적 위계질서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쌍놈소리 듣거나 건방지다고 왕따 당하기 딱 좋은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민주적 풍토가 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호칭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서로를 호로 부르는 좋은 전통이 있었지만 60년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英文 이니셜로 자신을 호칭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961년 5.16 쿠테타의 주역인 36세의 김종필이 처음으로 JP라는 이니셜을 쓰기 시작했다. 검은 안경을 쓴 미남풍의 김종필은 중앙정보부장의 무서운 이미지를 개선하고 친미(親美)를 과시하며 구 정치인과 구별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당시의 정치인들은 모두 아호를 썼고 유(柳) 진산(珍山)은 아예 호를 이름으로 썼다. 해방 후의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창랑 장택상, 해위 윤보선 등에서는 양반 선비 지사의 풍모가 있었지만 새 시대에는 맞지 않는 무거운 이미지였다.
정치판에서도 이들 구세대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듯 197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40대 후보론’을 들고 나오며 YS로 불렸고, 역전승을 이룬 김대중은 DJ라 했다. 이때 DJ를 지지한 구 세대 정치인의 막내인 소석(素 石) 이철승만 이니셜로 불리지 않았으니 한국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원래 YS나 DJ 라는 이니셜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외무부 직원들이 당시 부내의 양대 산맥이었던 김용식과 김동조 장관의 인맥을 구분하며 저들끼리 사용했던 것이다.
요즘은 아예 대권주자들은 서로 앞 다퉈 영문 이니셜을 만들고 언론에서는 한술 더 떠 자기들의 기준에 맞는 인물만 이니셜로 호칭해 주는 관행이 생겼다. 그동안 영문 이니셜을 쓰며 대권을 노렸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사라 졌지만 아직도 불리는 사람을 보자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MB 였고 아직도 대권 꿈을 못 버린 이인제는 IJ, 정몽준은 MJ, 정동영은 DY이다. 김무성은 무대(무성대장)이라는 별명을 좋아 한다니 그만 두고라도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등 잠룡(?)들에게는 무슨 이니셜이 있는지 아직 과문이라 듣지 못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계기로 한국 정치판의 마지막 낭만인 허주(虛舟) 김윤환과 후농(後農) 김상현이 정치판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킹메이커로 한때를 풍미했으나 이회창에게 배신당한 허주는 ‘빈 배’에 다시는 사람을 태우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고, 후광(後廣) 김대중을 이어 ‘나중에 익을 것’이라 장담하던 김상현도 동교동계에 밀려났다. 이제 백범(白凡)이나 몽양(夢陽) 같은 소박하면서도 의미 있는 별호를 가진 정치인을 우리시대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련하지만 한번 흘러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적(餘滴)이란 문자 그대로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남은 먹물이니 한가하게 써내려가는 글이다. 젊어서는 시평(時評)이니 시론(時論)이니 해서 주의주장을 강하게 내 세우는 글을 많이 썼다. 그때는 비위에 안 맞는 것도 많았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강박감, 내가 독자들을 선도해야 한다는 오만, 나의 지식을 뽐내려는 교만함 등이 그런 글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 물이 덜 빠졌겠지만 물 흐르듯이 내 생각의 단편들을 써 내려 가보고자 한다. 2006년 7월에 미국교포들을 대상으로 잡지에 쓰다가 중단했으니 10여년 만에 재개하는 것이다. 예전 글들을 다시 보니 치기(稚氣) 어렸던 내 젊음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이제는 모든 것을 관조하며 담담하게 세상을 볼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혜량(惠諒)과 질정(叱正)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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