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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유교문화권의 동아시아 삼국은 독특한 과거제도가 있어 통치의 수단으로 관료들을 충원하고 활용해 왔다. 중국을 점령한 만주족은 한족(漢族)들을 통제하기위한 수단으로 관리들을 임명하는 어려운 과거시험공부에 매달리게 해 한족 지식인의 진을 빼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일제 식민지의 관리가 되기 위해 일반인 자제 중 수재라는 사람들이 유일한 출세의 발판인 고등문관시험에 매달렸던 것이다. 이 뿌리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친일 관료들이 해방 후 중용되었고 지금도 가난한 집 자식들이 집안의 한(恨)을 풀기위해 고시공부에 매달렸던 것이다.
▲최기덕 (여의도 정치미디어
그룹 대표)
조선조에서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양반사대부만이 정치에 참여하였고 관직을 독점하였다. 상공업을 천시하던 그 시절에는 유일한 생산수단이 농사였고 관리들에게는 녹봉과 땅이 주어졌으니 생계를 위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과거에 매달렸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전통이 있어서 고등고시에 합격하면 옛날 과거에 급제한 것처럼 동네잔치를 하고 현수막을 거는 등 마을에 큰 인물이나 난 듯이 호들갑을 떤다. 몇 년 전만해도 옛날로 치면 ‘형방(刑房)’에 불과한 판검사를 ‘영감님’이라 호칭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정2품 이상의 판서나 의정부의 삼정승 등 당상관을 대감이라 부르고 종2품 정3품의 당상관을 영감이라 불렀는데 일제 때부터 판검사, 군수 등을 영감이라 높여 부르던 것이 해방 이후에도 습관이 되어 예사로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고등고시시험은 외무, 행정 등은 임용시험이지만 사법시험은 자격시험이기에 합격했다고 해서 무조건 관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에 합격해도 자리가 없는 즉 보직을 못 받아 노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돈 싸들고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리부탁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요즘 사법연수원을 나오고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하여 법률사무소의 말단 변호사로 취업하는 것과 비슷하였으니 모든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외무나 행정직 공무원도 이제는 해외에서 공부한 전문 인력들을 공개모집하는 추세여서 죽자고 고시원에 틀어박혀 공부만 해 가지고는 현대의 자유경쟁시대에는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관료조직은 국민의 머슴인 공복(公僕)이라지만 타성의 법칙(inertia)에 따라 조직을 불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이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현대 민주주의의 큰 시련과 도전이다. 요즘 회자되는 ‘관피아’나 공무원 노조의 연금개혁반대 투쟁 등에서 이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선거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신라시대 화백회의에서 선거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현대식의 민주적 선거제도는 근 200여년의 서양민주주의 역사이다. 제한적이나마 국민들의 선거참여가 시작된 것은 유럽에 계몽사상이 나오고 프랑스 혁명에서 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처형하면서 수많은 혁명가와 민중들이 피 흘려 쟁취한 터 위에 가능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선거를 우리는 해방이후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너무나 쉽게 생각하여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금은 선거가 흔하지만 7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제도였다. 이는 미국식 민주제도에 익숙한 이승만 박사의 공헌이다. 비록 독재자로 매도되어 쓸쓸히 이국땅에서 죽었지만 그분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한미동맹을 통해 안보를 다지고, 선거제도를 통해 민주주의 초석을 놓은 것에 대해서는 재조명해야 한다. 6.25 전란중의 피난수도 부산에서도 선거를 치뤘고 지방자치선거의 틀도 그때 잡힌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국민에 의한 공직자의 선출이다.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의 백미인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방점은 국민에 의한 정부, 즉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정부(elected government)만이 정통성(legitimacy)이 있는 것이며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elected official)만이 공직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토크빌이 19세기 초창기의 미국을 여행 하면서 느낀 가장 독특한 점이 미국인들은 모든 이해관계와 이익의 충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선거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모든 공직자를, 일부 州에서는 보안관, 검찰총장, 판사 등의 치안담당자들도 선거로 뽑으며 주요현안은 ‘마을 토론회 (Town Meeting)’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선관위에 가면 조선말 실학자 혜강 최한기의 ‘천하우락재선거(天下憂樂在選擧)’라는 액자가 크게 걸려있다. 천하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선거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니 누구를 지도자로 뽑느냐에 따라 지역발전과 시민의 행불행이 달려있다. 조선왕조 시대에 선거의 의미를 이렇게 설파하였다니 혜강의 혜안이 놀랍다. 인류가 선택한 차선(次善)의 제도인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국사를 담당할 만한 능력(governability)과 선거에 이기는 능력(electability)은 전혀 다르다. 국가경영능력은 떨어지지만 선거는 잘하는 사람이 있고, 경륜과 국량(局量)은 되는데 당의 공천을 받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위해 ‘줄서고 아부하고 돈질하며 허리를 굽히는 일’에는 젬병인 사람도 있다. 아니 그런 일이 적성에 안 맞아 피하는 사람도 많으니 이것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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