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기덕 (여의도 정치미디어 그룹 대표)
|
우리가 잘 모르고 넘어가는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신문에 관한 편견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서울을 위시한 중앙에 편중되어 있다 보니 신문도 중앙지(中央紙)만을 선호하고 지역신문은 아류(亞流) 취급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면 우리가 세계적인 신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는 워싱톤 포스트(WP)나 뉴욕 타임즈(NYT)는 실은 지방지(local paper)이고 그들 스스로도 이를 자랑으로 안다.
그래서 지면의 탑 기사(Headline)는 언제나 그 지역에 관한 것이고 정치나 경제, 국제관계 기사는 해당 섹션에서만 머릿기사로 취급한다. 수십 년간 워싱톤을 주름잡던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 팁 오닐의 유명한 말이 “나는 지방 정치인이다 (I'm a local politician)”였던 것처럼 정치나 언론도 자신을 낳아준 지방이 있기에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은 선거 때만 지역에 관심하고 그 이후는 중앙에서 놀고 중앙정치의 거물로 행세하려 드는데 이는 신문 등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의 영남은 중앙정치로부터 소외된 동인 남인들이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을 닦고 지역에 세거하며 살던 고장이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후 경북지역의 인사들이 출세하고 지역이 발전하여 TK 운운하지만 긴 역사로 보면 최근 50여년의 발전과 활약일 뿐이고 오랜 세월 소외받고 척박했던 곳이 영남지역이다. 오죽하면 영조가 이인좌의 난 이후에 경상도를 평정했다고 대구부 입구에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우고 영남사람들의 과거시험을 제한하였을까? 그 이후 영남 선비들이 정조시절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과거제한과 반역향(反逆鄕)의 억울함을 상소한 것을 보면 이들의 한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징비록을 보아도 서애 류성룡 선생이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벼슬을 그만두고 하회마을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셨던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낙향한 사람과 동네, 지방에는 기사거리가 없는가? 사람과 문물이 있는 곳이면 다 뉴스가치(news value)가 있지만 단지 보도되지 않을 뿐이다. 여기에도 언론의 차별과 소외가 있는 것이니 현대판 과거응시 제한과 다름이 없다 할 것이다. 요즘같이 언로가 발달한 시대에 지역을 대변하는 신문 하나가 없다면 시대에 뒤 떨어지고 시대를 호흡하지 않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나라는 언론과잉이다. 인터넷 언론은 물론이고 수십 개의 중앙지와 또 그만큼의 TV 방송이 있고 전문지, 경제지, 스포츠 신문 까지 있어 광고시장은 포화상태이고 넘치는 것이 기자이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 마다 한 개의 신문 뿐이고 방송도 4대 방송사의 뉴스를 받아 방영하는 로칼 방송사 뿐이다. 전국지라고 USA Today 가 30년 전 창간했지만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치판에서 무슨 일이 있거나 유명인사가 검찰청에 출두하는 것을 취재하려고 모여든 수백 명의 기자, 사진기자, 촬영기자들을 보면 인력과 자재, 시간의 낭비이다. 어느 신문 방송이나 똑같은 보도기사를 왜 이리 많은 언론사가 취재하는가? 통신사나 뉴스배급사가 취재 촬영하고 나머지 신문들은 일정액을 지불하고 사진과 기사를 받아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한국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도외시하며 바꿀 생각을 않는다.
그러나 언론환경이 바뀌고 경영압박이 되면 결국은 기사나 사진은 풀(pool)제로 바뀌고 신문방송도 특색 있는 평론(opinion)과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이래야만 치열한 경쟁의 온 오프라인 언론환경 하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신문의 미래는 오히려 밝다고 할 수 있다. 중앙지가 안 다루거나 못 다루는 틈새를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신문의 기사를 중앙지가 인용(quote)하여 다루고, 좋은 평론은 여러 곳에서 동시 게재(syndicated columm)할 때 진정한 언론의 발전은 물론이고 지방과 중앙의 균형과 분권이 이루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