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16일 오전 9시부터 30분간 승무원 박지영(여·22·사망)씨가 무전기로 브리지(선교)에 모여 있던 선박직 승무원들에게 10여 차례에 걸쳐 승객들을 비상 탈출시킬 것인지 ‘퇴선명령’ 여부를 물었지만 답신이 없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답신이 오지 않자 박씨 등은 안내데스크에서 계속 “제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는 오전 9시 23분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교신하며 “현재 (안내)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으나 승무원들은 무전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구조된 강병기(41·화물기사)씨는 16일 오전 9시 세월호 3층 안내데스크에서 박씨에게 대응방안을 묻자 박씨는 무전기로 다른 승무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답신이 오지 않았다. 박씨 등 3층 승무원들은 답신이 없자 승무원 A(33)씨는 매뉴얼대로 “구명조끼를 입고 제자리에서 안전하게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박씨는 세월호가 급격하게 기울자 계속 무전기로 “탈출해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답신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오전 9시 30분쯤 세월호 상공에 해경 구조헬기가 도착하자 박씨는 큰 소리로 “모두 탈출하세요”라고 했다.
강씨는 “박씨가 퇴선명령을 하자 승무원 정현선(여·28·사망)와 사무장 양대홍 씨(46·실종), A씨가 3, 4층에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며 탈출을 도왔다”며 “정씨와 교차한 마지막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또 다른 승객 한승선(37·화물기사)씨도 “숨진 박씨와 안내방송을 하던 A씨가 무전기 회신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선장 이준석 씨(69) 등 브리지에 있던 승무원들은 오전 10시쯤 구조된 뒤 전남 707호(급수선) 뱃머리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 씨 등 선원 7명 중 빨간색 작업복을 입은 1명만 옷이 젖어 있을 뿐 나머지 6명은 바닷물에 젖지도 않은 상태였다.
당시 전남 707호에 함께 구조돼 있던 강병기씨는 “선장 이씨 등 선원들이 뱃머리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귓속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쉬쉬하는 행동을 했다”며 “그날 오후 병원에서 지폐를 말리던 사람이 선장 이씨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선장 이씨는 사고 당일 오후 2시쯤 전남 진도군 진도읍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찰과상 치료를 받으면서 물리치료실 온실침상에 바닷물에 젖은 5만원짜리 두세 장과 1만원짜리 10여 장을 널어놓고 말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신분을 묻는 질문을 받자 “나는 승무원이라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