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마 바늘 한 쌈만 있으모 소워이 엄겠따
뾰족한 할매 말투 한 땀 한 땀 귓전 찌른다
-이러키 뚜꺼분 놈을 무신 수로 당하노
시오릿길 천창 장을 땀 뻘뻘 걸어서
묵 한 그릇 못 자시고 사 온 대바늘 두 개
고리땡 광목 소똥에 찌든 군복 바지에
얄짤없이 부러져 패댕이 치는 말
-보들 야들 명주 속곳 언제 한번 꼬매보노
미안한 울 아배 할매 산소 옆에다
원 없이 쓰시라고 심어 놓은 바늘꽃
하늘하늘 하늘나라서 웃음꽃 만발이다
시는 시인마다 독자마다 천 개의 물음과 해답이 존재한다. 언어의 직조 능력과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은 개인의 능력이자 취향의 차이다. ‘어떤 시가 더 좋은 시’냐고 묻는 것은,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라고 묻는 것만큼, 우문愚問이다. 모든 삶이 다 소중하듯, 모든 시가 다 귀하다. 작품의 해독 능력은 각자의 수준과 깊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작詩作을 하다 보면, 문득‘시란 무엇인가? 왜 시를 쓰는가? 시는 정말 존재하는가?’란 근본적 질문에 맞닥뜨린다. 시는 정체성에 대한‘자신을 향한 질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이별에 대해, 죽음에 대해……’혹은‘의미와 무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고독한 작업이다.
전영귀(경북 성주 출생) 시집『더 깊이 볼 수 있어 다행이야』(2021, 시와반시) 속의「바늘꽃」은 사투리 시의 수작이다. 사투리는 한국문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소월과 백석의 북방 사투리, 영랑과 서정주의 전라도 사투리, 이문구, 이정록의 충청도 사투리, 김광협의 제주 사투리는 계보가 만만치 않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박목월을 필두로, 정숙, 상희구, 박진형의 시집 속에서 다채롭게 변주되었다. 사투리는 어머니의 말이자, 가장 따뜻한 모국어이다. 그 지방의 산색山色과 지형을 닮았다. 하여, 저마다 독특한 표정을 짓는다. 사투리는 육화된 언어이다. 시 속의 사투리는 행간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종결어는 감각적이다. 사물 간의 섬세한 느낌을 감칠맛 나게 한다. 사투리의 고저장단의 음색은 말맛의 백미이다. “사물의 근본에 닿아있어서 삶을 더 환히 비춰 준다”(문무학) 그 중「바늘꽃」은, 시인의 고향 성주를 포함한 경상도 북부 사투리의 흔적을 띈다.
60년 대엔 바늘 한 쌈도 없는 집이 수두룩하였다. 시「바늘꽃」은 근대 한국 농촌의 가난한 흑백 풍경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울 아배 할매 산소 옆에다 / 원 없이 쓰시라고 심어 놓은”바늘꽃은 눈물겹다. 가난한 할매는 툭하면 아들 들으라고, “뾰족한”말을 내뱉는다. “내사마 바늘 한 쌈만 있으모 소워이 엄겠따”그 말 들은 착한 아들, “시오릿길 천창 장을 땀 뻘뻘 걸어서” 먹고 싶은 묵 한 그릇도 꾹 참고, 대바늘 두 개를 사다 준다. 하지만 “고리땡 광목 소똥에 찌든 군복 바지”가 너무 두꺼워 바늘은 댕강 부러지고 만다. “얄짤없이” 대바늘을 “패댕이”치며 하는 할매의 다음 말은, 사투리가 아니면 못 볼 고도로 함축된 은유적 표현이다.“-이러키 뚜꺼분 놈을 무신 수로 당하노” 그렇다. “보들 야들 명주 속곳 언제 한번 꼬매보노”와 더불어, 참 할매의 말투가 얄라궂다. 하여, 시「바늘꽃」은 시작詩作에 있어 어투가 얼마나 시의 맛을 내는지를 증거 한다. 이 시는 경상도 방언 시의 꼭두이자, 전 시대 여자들의 맺힌 한恨을 ‘바늘꽃’을 통해 사투리에 비벼 수준 높게 형상화하였다.
물론 전영귀 시집『더 깊이 볼 수 있어 다행이야』속에는,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한 그녀만의 독창적 무늬와 놀라운 풍경 이미지의 시편들로 빼곡하다. 전통의 날실로 감성의 씨실을 짠, 시「능소화, 하늘 꽃」은 사백오십 년의 시공을 애절하게 불러낸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이 엄마 편지〉(조선 58.5x34cm,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에서 시적 영감을 받았다. “해와 달 수백 년 돌고 돌아 / 귓불 붉힌 능소화”로 은유 된 ‘원이 엄마’를 통해,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여인의 슬픔이 행간에 절절切切하다. 반면 시「킬 힐」은 유니크하다. “간택의 눈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현대 젊은 여자의 상징인 하이힐을 시적 소재로 삼았다. 킬힐이야말로 당시 여자들의 “자존심”이자 각선미였다.「비밀 한잔」은 시인의 시법이 교묘하다. 방백 형식을 빌려 쓴 이 시는, 이미지를 끌고 가는 행간 장악력이 특출하다. “쉿, 그 안에 제가 있어요”로 시작하는 첫 행은, 얼마나 시적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농익은 몸”과 “짜릿짜릿 당신”은 “홉”에 연결되며, 이런 놀라운 시적 전개 방식은, 시인으로써의 전영귀의 내공을 가늠케 한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했으며,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