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금발로 뛰어다가
죽었다 한 아이가
아이가 울고 있다
금 밟고 죽었다고
산 아이, 죽은 아이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다
죽어도‘괜찮다’고
정말로‘괜찮다’고
사방치기* 놀이니까
다시하면 ‘괜찮다’고
죽어도 ‘괜찮다’라는 그 말, 참 울고 싶다
* 마당에 놀이판을 그려놓고 돌을 던진 후, 그림의 첫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다녀오는 놀이.
시집『침묵이라는 말을 갖고 싶다』를 출간한 김석 시인의 시의 요체는 선문답으로 집약된다. 시「그 말, 참」역시, 일종의 선문답禪問答이다. 이 시는 시법에 있어 선시풍禪詩風의 역설적 의미를 갖는다. 깨금발로 뛰었다가 금을 밟고 죽은 아이가, ‘죽었다’고 우는 경계에서 시가 촉발한다. 진짜 몸은 살아있는데, 놀이 속에서의 몸은 죽어 있다. 삶과 죽음 사이의 ‘비약과 파격’은 시의 묘처이다. 언어의 자가당착이자 모순어법이다. 언어유희이자 말장난이며, 불가능한 초월적 은유이다. ‘이런 어법은 시적 대상에 상상력의 자유와 초월적 인식을’(공광규) 보여준다. 현대시에서 이런 모순어법은 시적 모호성과 더불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시「그 말, 참」은, 어린 아이의 착각이 오히려, 생과 사의 핵심을 꿰뚫는 화두를 던진다. “산 아이, 죽은 아이를 보며 배시시 웃고 있다”. 시적 형상화가 기기묘묘奇奇妙妙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선가(禪家)의 공안(公案)의 극치를 보여 준다. 산 아이가 죽은 아이를 본다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지만, 왜, 산 아이가 죽은 아이를 보면 안 되는 것인가?란 질문을 할 수 있다. 물음의 띠를 비틀어 역설의 답으로 꼬아 붙인 간화선의 화두는 무한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비슷한 구조를 지니다. 물음 속에 이미 답이 숨어 있고 그 답은 또다시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장자의 제물론의 “내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지 분별이 되지 않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오묘와 같다. “죽어도 ‘괜찮다’고 / 정말로 ‘괜찮다’고” 이 시구야말로 역설적이자 주체의 의중이 개입한다. 정말, 아이가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사방치기 놀이야 말로 처음부터 ‘가상 세계’이기 때문에, 죽음과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지구 위에 숨 쉬고 사는 인간은, ‘사방치기 놀이’와 무엇이 다른 가. 죽지 않는 집이 없고 태어나지 않는 집이 있던 가.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타면 꿈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이 된다. 원래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이 ‘화엄 세계’가 아닌 가. 화엄은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무진연기(無盡緣起)이다. 상입상즉(相入相卽), 중중무진(重重無盡), 즉, ‘산 아이’의 몸속에 ‘죽은 아이’가, 끊임없이 뒤바뀌면서 함께 사는 것이다. 두보의 표현을 빌면, 산 자의 문을 열면, 뒷문엔 죽은 자가 웃고 있다.
하여, 다시 묻는다. “사방치기* 놀이니까 / 다시하면 ‘괜찮다’고” 생각해버리면, 죽은 몸이 부활할까. 화엄은 ‘현상과 본체’가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과거 현세 미래는 한 몸이자, 각각 다른 셋 몸이다. 모든 생사 놀이는 서로 차별이 없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세계이다. 하나가 곧 전체, 전체가 하나이다. 상극을 버린 상생의 세계이자, 음양의 갈등을 흡수한, 그 너머의 태극의 조화로운 세계이다. ‘둘로 나뉘지도 않고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는 무이이無二而 불수일不守一’의 화엄사상이다. 하여, “죽어도 괜찮다’라는 그 말, 참 울고 싶다”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삶이 희극이라면, 죽음은 비극이다. 삶이 지나가야 죽음의 역설이 성립한다. 아니, 죽음을 지나온 자만이 산 자의 비극이 된다. 하여, ‘괜찮다’라는 말은 참 슬프다. 아니, 참 울고 싶은 말이다. 하여, ‘괜찮다’는 괜찮아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역설의 절묘가, 시「그 말, 참」속에 숨어 있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 『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 『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구멍』, 『처녀와 바다』, 『깍지』, 『빠스각 빠스스각』, 시선집 『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 『시에 미치다』,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 『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 수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 『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