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
빗물이 하늘을 물고 내려와
꽃밭에 흘러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아침 앞발을 괸 채 죽어있던 어미 고양이
새끼는 빗속에 젖어 날 쳐다보고 있었는데,
국화 꽃밭 속엔 어미가 웅크리고 죽어 있었어요
국화와 고양이 ∥ 가을 밤하늘 보름달이 뜨고 사위엔 고요만이 깃든 시간, 나는 산책에서 돌아와 문득 앞집 베란다를 타고 넘어가는 한 마리 검은 고양이를 보았다. 길을 가다말고 갑작스레 휘익 하고 돌아서는 순간, 나는 고양이의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글을 쓰는 자정 무렵, 지금도 들리는 저 고양이들이 내는 아기 울음소리는 참 기기묘묘하다. 마치 죽은 혼령 같기도 하고, 침묵의 그림자 같기도 한 그것은 내개 형언할 길 없는 시상(詩想)을 가져다준다. 특히 암수의 현란한 짝짓기 울음은 짜릿한 관능마저 불러일으킨다. 어둠 속 달그림자, 그리고 그 너머 감나무의 휘어진 곡선, 수코양이들의 소리는 귀기(鬼氣)가 서린 것이 음울한 색조, 그것이다.
옛날 일본의 닌자들은 고양이 눈동자의 열림 상태를 보고 시간을 예측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민가에서는 아직도 ‘고양이 눈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고양이 눈은 새벽 무렵과 해질녘에 동공이 크게 열려 둥글게 보인다. 오전 8시와 오후 4시 경에는 달걀 모양 정도로 가늘어 진다. 오전 10시와 오후 2시 경에는 달걀 모양에서 점점 더 가늘어지고, 정오 무렵엔 아주 가늘어져, 고양이 눈이 바늘처럼 일직선으로 보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양이는 일찍부터 수많은 시인, 소설가, 화가들의 작품 속에 조연 또는 주연으로 등장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소설가 호프만의「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은,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끼의「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직접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유명하다. 소세끼는 이 작품을 통해 근대 일본 지식인 사회의 모순을 풍자해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불안과 공포,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포우의 고양이가 악마를 닮았다면, 여성을 고양이로 비유한 보들레르의 관능적 고양이는 요망하다. 유령과 신(神)의 사이에 위치한 보들레르의 암고양이는〈마음 깊은 곳, 가장 어두운 곳에 / 방울져 스미는 그 울음소리로 / 운율적인 시처럼 (...) 묘약처럼 나를 기쁘게〉(「고양이」)하고 신비롭게 만든다. 반면, 괴기하기 짝이 없는 음험함으로 가득 찬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급기야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이게 되는 광기의 고양이다.
나는 한국 현대시사 가운데 고양이를 주제로 한 두 편의 시를 편애한다. 나쓰메에게 영향을 받은 이장희의「봄은 고양이로다」와 송찬호의「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한 세기가 지났건만 여전히 감각적이고 참신하다.〈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과〈봄의 생기〉는 고월(古月)만의 독특한 시선과 재기가 아닐 수 없다. 13세 나이에 이미 일본 유학파가 된 그는, 유학 도중 만난 한 일본 소녀를 연모하다 끝내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29세의 젊은 나이로 음독자살한다. 묘하게도 어릴 때 아명이 고양이란 이름(고-양이)과 음성학적 차원에서 유사한 ‘량희(양희)’였다고 한다. 반면, 송찬호의 시는 신화적, 동화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인다.〈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에 시인과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맑은 가난을 온몸으로 터득해 가는 시골 마을의 그 쓸쓸하고 외로운 달밤 정경이 나는 좋았다. 물론 나도 한 편의 고양이 시를 4시집『깍지』에 수록했다.
「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4시집 깍지 그루, 2016)를 쓰게 된 것은 그야말로 슬픈 행운이었다. 전날 밤부터 베란다 앞 국화 꽃밭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세 마리 고양이와 창가에서 가을비를 구경하던 내가 서로 눈이 마주친 건 오후 한 나절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여섯 개의 동공은 무척이나 불안해 보였다. 어미가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 아직 오직 않아 그런가 보다, 라고 혼자 생각해 보았지만, 볕이 좋은 아침 어미 고양이와 함께 베란다 국화 꽃밭에 나와 뒹구는 녀석들이었기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나는 비가 와서 우울한 기분이 드나보다, 라고 재차 생각하면서 읽던 책을 마저 읽으려고 서재로 향했다. 저녁 어스름은 이미 창가 유리문에까지 밀려왔지만, 가을비는 금세 그칠 낌새가 아니었다.
비가 창문을 타고 내리는 밤은, 나는 촛불을 켜고 빗물이 유리문에 비치는 무늬의 신비를 좋아한다. 어룽져가는 빗방울과 그 흐름의 무질서 속에 내비친 촛불의 움직임은 참으로 시적이다. 그날도 촛불을 붙이자마자, 시마(詩魔)가 들어와 내 귓전에서 끊임없이 소곤소곤 말을 건넸다. 순간 유리문 속에 촛불이 고양이 눈빛과 한데 겹쳐 얼비친 것이 환상적이었다. 묘오한 생각이 들어, 문득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그때까지 고양이 세 마리가 빗속에서 국화 꽃밭을 보고 있지 않는가! 오싹했다. 나는 거실 문을 열고 급히 나가 보았다.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국화 꽃밭 속에 어미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게 아닌가. 빗물이 하늘의 슬픔을 물고 내려와 꽃밭에 흘려보내는 것도 모르고, 그 어미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죽어 있었다. 하여, 시「국화꽃밭 문 옆엔 가을비가 울고 있었어요」(4시집. 그루, 2016)는 그렇게 태어났다.
1962년 경북 영덕 구계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2020년『문장21』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구멍』,『처녀와 바다』,『깍지』, 시선집『고흐의 시』,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하였으며, 시평론 대담집『저녁의 詩』를 편저했다. 대구예술상(2015), 고운 최치원문학상 대상(2018), 대구문학상(2018), 영남문학상(2020)을 수상했다. 대구시인협회부회장 역임, 대구문인협회 이사, 한국시인협회원, 대구아동문학회원,『텃밭시인학교』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계간『일연문학』주간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