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복귀와 관련해 대변인을 통해 “인사권자로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전날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 직무 복귀 결정을 내린 지 약 16시간 만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의 사과는 신중해야 한다’는 쪽이었지만 문 대통령이 ‘내가 직접 하는 게 맞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을 신속히 털어내고 국면 전환을 하지 않으면 레임덕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사권자로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독단적 국정 운영의 변화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전날 밤 10시쯤 법원 결정이 난 직후부터 이날 아침까지 측근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참모는 “여기서 밀리면 검찰 개혁이 더 힘들어진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문 대통령 본인이 법원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앞서 추미애 법무장관의 윤 총장 ‘직무 배제’ 조치와 이에 따른 법원의 1차 윤 총장 직무 복귀 결정 때는 아무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거꾸로 윤 총장 징계에 반발해 사표를 낸 고기영 전 법무차관 후임으로 이용구 현 차관을 곧바로 임명해 징계 절차를 계속하도록 도왔다. 오히려 지난 16일 윤 총장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사인하면서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이번에 자신이 재가한 징계안을 뒤집는 법원의 2차 직무 복귀 결정에 신속하게 사과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징계의 ‘절차’를 강조했는데 법원이 ‘절차’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포괄적’ 사과를 했지만 국정 운영 기조를 말하지 않았다. 이른바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은 밀고 갈 거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윤 총장에 대해선 일종의 경고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범죄 정보 외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거나 사찰한다는 논란이 더 이상 일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고 했다. 법원이 사찰 문건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고 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또 “검찰 개혁과 수사권 개혁 등의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법원 결정은 존중하지만 윤 총장에게는 ‘선을 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협조하라는 것이지만, 원전 수사 등 정권을 향한 수사에 대한 경고로도 해석되는 부분이다.
야당은 “아전인수”라며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인사권자로서 사과는 대체 무슨 뜻이냐”며 “추미애 장관에 대한 마음의 빚인가, 아니면 윤 총장에 대한 분노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검찰 장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으로 읽힌다”고 했다.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윤 총장 징계는 대통령의 승인 아래 추 장관과 여당의 공조로 자행된 권력남용 행위인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결과 책임’만 운운한다”며 “유체 이탈 화법이고 책임 회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