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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법 정으로 들어가고 있는 문 부식씨. |
1980년 12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인 김현장으로부터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해 전해들은 문부식, 김은숙은 광주의 참상과 독재자들의 만행, 그리고 광주항쟁에 미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상징적 의미로 부산 미문화원에도 방화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1982년 3월 18일 오후, 부산 미국 문화원에 대학생들이 뛰어들었다. 이들은 문화원 입구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지르고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돌렸다.
그러나 이날의 '거사'는 뜻밖의 희생을 불렀다. 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동아대생 장덕술군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부식과 김현장에게 이날 사형이 선고됐고 김은숙 등은 무기형을 선고 받았다. 이날의 사건은 문씨를 '반미운동의 선구자'로 떠오르게 했지만, 자신들의 행위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발생은 끝끝내 그를 괴롭게 했다.
이 사건은 이후 1980년대 반미투쟁과 광주, 대구 등 잇따른 미문화원방화사건 및 점거농성투쟁의 선도적 투쟁이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념이나 명분이 빚어낸 폭력에 대한 새로운 성찰히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문씨는 8년의 복역 후 지식인 잡지 계간 '당대비평'을 창간, 현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여 2003년 2월 4일부터 조선일보에 '폭력의 세기를 넘어-문부식의 시간여행'을 연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