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다니
이상하다 일찍이 나는
스무 살 언덕에 꽃씨 하나 심었는데
오늘 일흔의 들판에 웬
늙은 나무 한 그루 서 있나
지난 봄 이오가 동쪽 울타리에
푸른 리본을 매 놓았는데
어째서 이 가을 붉은 노을이
오이산 서쪽 능선을 물들이는가
씨앗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싹은 위로 솟아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니 이상하다
작년에 죽은 살구나무는
봄이 와도 잎이 나지 않는데……
이진흥(李震興, 1945~ 서울 출생) 시집『어디에도 없다』(2016년, 동학사)는 시의 질문과 답이 묘를 얻었다. 그에게 시란, 시로써 철학하기이다. “정신의 벼랑 끝에 선 / 가장 아름다운 여자”일 뿐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미소하며 (…) 어디에도 답이 없는”(「시」) 영원한 질문이자 가슴을 뛰게 하는 여자가, 시이다.「은유의 꽃」은 1962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꽃’을 은유한 이 시는, ‘시는 보는 것이다.’란 평소의 그의 이미지 시론을 대변한다. “우주가 하나로 집중할 때 / 비로소 열리는 눈”이 ‘꽃’인 셈이다. 그는 사물의 밖을 통해, 안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눈에 보이는 시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대상을 끈질기게 응시하고 있으며,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편들의 기시감이 있다.
시,「이상한 일」은, 언어를 통해 언어를 뛰어 넘는 선시(禪詩)류의 통찰이 깊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을 감으면 보인다.’고 하였다. 즉, ‘눈을 감으면 외부의 대상들은 차단되고 내면인 열린다.’는 것이다. 보려고 애쓰면 애 쓸수록 보이지 않게 되는 이유는, 보려는 대상에 집착하다보면, 무엇인가가 ‘눈’을 가린다는 것이다. 우주의 본질은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다. 하여‘, 시는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며,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다. 하여, 그는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뿐만 아니라 감각 너머의 것들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이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종으로 태어나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하늘에 떠서 반짝이는 별들이 이상하고,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이상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도 놀랍다. 예컨대 나는 지금 우주를 떠도는 티끌만한 별(태양)을 돌고 있는 지구의 껍질 위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그게 사실인가? 지금까지 읽었던 철학, 종교, 과학 책속의 다양한 설명들 모두가 어쩌면 꿈속의 잠깐일 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시골 흙집에서 텃밭에 김을 매다보면 호미에 뽑혀나가지 않으려고 흙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잡초들의 힘이 대단하고, 어제 풀을 뽑은 자리에서 오늘 또 다른 새싹이 살그머니 돋아나는 것이 놀랍다. 실낱같은 돌 틈에서 작고 여린 풀잎이 연둣빛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한 것은 참깨를 심으면 참깨가 나고 오이씨를 뿌리면 반드시 오이가 열린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그게 어떻게 당연하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참으로 놀랍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놀라는 일 뿐이다. 내가 시를 쓴다면 그것은 다만 놀라움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이진흥「시인의 말」)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출간
2002년 제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제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 『저녁의 詩』 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시선집 『고흐의 시』 출간
계간지 『문장21』 봄호 평론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텃밭시인학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