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원 자선시집 『고흐의 시』 출간

  • 이번에 출간한 김동원의 『고흐의 시』(2020, 그루)는 26년 간 써 온 그의 시 중 30편을 자선한 시집이다. 5부로 구성된 이 시집의 구성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독특한 편집방식을 취한다.

    각 부마다 짧은 시론을 실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뒤쪽 자전시론은 시인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조된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그 중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표제 시 「고흐의 시」 편들을 소개한다.

    고흐와 나

    인간 삶은 어쩌면 고해苦海인지도 모른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36살 때 밤낮없이 시에 미쳐 몸을 망친 나머지, 갑자기 길을 가다 우주 쇳덩어리로 온 몸뚱이를 맞는 충격에 휩싸였다. 호흡이 끊어지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가슴을 움켜잡고 기어서 집에 들어가 그대로 실신했다. 원인 불명의 병으로 극도로 몸이 쇠약해 2년 새 체중이 78kg에서 54kg까지 빠져 버렸다. 환영과 정신 착란으로 공황장애까지 겹쳐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했다. 한밤중 피를 토하고 오장육부가 오그라드는 혹독한 마비 증세는 귀신 소리까지 들릴 지경에 이른다. 누군가 방문을 열면 문을 통해 들어온 공기의 극미한 파동 입자가 몸 구석구석까지 소곤거리며 달라붙어 지옥도 그런 아귀지옥이 따로 없을 듯했다. 그러다 발작 끝에 응급실에 실려 가면, 의사는 태연히 신경 쇠약증으로 약 처방을 한다. 몸이 뜯어지는 고통이 있던 어느 날 ‘이젠 죽는구나’ 저절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2살 된 딸을 업고 4개월 된 아들(의사의 말로 배 속에 노는 것이 남자 같다고 귀띔해 주어서 알았음)을 배고 일터로 나간 후였다.

    제일 먼저 몇 미터 앞쪽에서 내 눈앞이 어른거렸다. 차츰차츰 시야가 보이지 않더니 두 눈이 힘없이 덮였다. 그러자 배꼽에서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쉬이―’ 소리를 내며 온몸의 기氣가 다 빠져나가지 않는가. 또 어마어마한 속도로 끝없이 어딘가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때 사람 몸속에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걸 직감했다. 찰라나마 그 때는 어찌나 평온하던지, 그렇게도 아픈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참으로 고요하고 고요한 암흑 같은 시간이 흘렀다. 마치 텅 빈 우주로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걸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그 진공의 공간 속에서 희한하게도 연거푸 두 생각이 떠올랐다. 이토록 뼈 가죽만 남은 나의 몰골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알아볼까란 한 생각과, 배 속 아들이 평생 골목 앞에서 아비를 기다리면 얼마나 서러울까 생각하니, 갑자기 ‘살고 싶다’는 강렬한 불길 같은 에너지가 전신을 휘감았다. 그 순간 천지가 뒤바뀌는 듯한, 엄청난 오장 경련이 내 몸의 세포를 찢어발기는 극악의 고통으로 엄습했다. 너무나 살고 싶어 발버둥 치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 한밤중 방 안은 텅 빈 채 나 혼자뿐이었다.

    무의식과 의식의 혼란 속에서 나는 천지신명께 살려만 주신다면, 전 생애를 던져 시詩로써 세상에 헌신하리라 원願을 세웠다. 그때 두개골이 ‘쩍’ 하고 갈라지더니 사방 벽이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삼라만상이 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확연히 보았다. 그날 경험은 기적 같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쏟아지는 눈물과 시의 영감 속에서 우주 일체 모든 만물이 하나임을 나는 온전히 깨달은 것이다. 그 절벽의 투병을 기어오르다 만난 시가, 저 참혹하게 일그러진 고독자의 시, 「고흐의 시」이다. 
     

      수천만 개 밀 이삭들이 그 밤중 폭풍 속 휘감겨 어떻게 시달렸는지, 캄캄한 칠흑의 두려움 더듬으며 떨리는 우주 가는 숨결 붙잡고, 그 뽑히지 않으려던 뿌리들의 외론 몸부림 겪어 보지 않은 자者는 모르지

     ‘가장 큰 슬픔이 가장 큰 아름다움 낳느니.’

      아아아아아! 참혹한 절벽 끝에서 고흐는 절규하고 있었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이상한 눈빛 번들거리는 까마귀 떼들 미친 울음과 퍼드덕퍼드덕 머릿속 마구 쪼아 대는 그 분열의 비명 속에서, 고흐는 전신의 속력으로 명품名品 향해 미친 듯이 인류의 심안心眼을 뚫고 있었다

    ―「고흐의 시 /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년 작)」 전문

    나는 그때, 한겨울 벗 백산과 함께 거대한 팔공산 동쪽 산록인 초례봉에 오르고 있었다. 숨이 멎는 듯한 오장육부 경련을 극복하려고 필사적으로 산악 훈련을 할 때였다. 갑자기 정상 근처에서 수십 마리 까마귀 떼가 까옥 까옥 까옥 까옥 날개를 퍼덕이며 우리 머리 꼭대기에 몰려들지 않는가. 불현듯 그때 왜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 순간 떠올랐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섬뜩하다.

    1890년(37세) 7월 27일 고흐는, 어느 농가 짚더미에서 자신의 심장을 향해 권총을 쏴 자살을 기도한다. 이틀 후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한 고흐의 펄떡거린 심장 소리가 그 순간 불길함과 두려움으로 내게 엄습했다. 수년간 고흐의 귀혼鬼魂에 파묻혀 지낸 나머지, 까마귀로 환생한 그가 지금 나를 저승에 데려가려고 온 듯한 착시를 느꼈다. 한없이 까옥거리는 울음 속의 쇳소리도 싫었지만, 까만 비로드 빛깔의 번들거리는 검은 날갯짓과 눈깔은 저승사자처럼 금방이라도 내 심장을 쪼아 먹을 것 같았다. 우주는 파동으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오로지 한 곳에 집중하면 죽은 귀신도 텔레파시로 불러낼 수 있다고 한다. 그때 체험을 생각하면 지금도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1890년 7월 자살 직전 그린「까마귀가 있는 밀밭」은 고흐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마지막 예술혼의 불길이다. 폭풍 전야의 수천 마리 까마귀로 환치된 검은색과 청색 덧칠은 고흐 특유의 강렬한 밀밭의 노랑과 연두에 뒤섞여, 한 고독한 인간의 절규를 듣는 듯하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다.” 고흐 자신의 말처럼, 이 우주의 가장 큰 슬픔이 가장 큰 아름다움을 낳는 법이다. 나는 분명히 절벽 끝에서 절규하는 참혹한 고흐의 울음소리를「까마귀가 있는 밀밭」그림을 보다가 들었다. 이상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내 뇌수 속으로 파고들던 불멸의 영혼을 지닌 고흐의 흐느낌을 고스란히 들었다.
     

      비로소 고흐는 이 그림 속에서 영원의 미美를 얻는다 저 무한한 우주 별빛 속에서 사라진 혼령과 움직이는 강물의 리듬이 밤 불빛에 흘러넘친 너무나 벅찬 시정詩情이, 그림 「론강의 별 달밤」속엔 있다 몸이 물에 빨려드는 환시와 그림 속 들려오는 환청의 착각 속에서 9월 강둑을 걷고 있노라면, 차원 높은 예술미의 향긋한 향기가 소곤거리는 연인들의 코 밑으로 스며 들어간다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달빛의 관입觀入―보들레르와 릴케와 이백을 온통 뒤흔든, 저 물아일체의 위대한 영감의 극치 인간 영혼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제 육신 불태워 인류 정신사의 한 궤적이 된다는 것,―그저 놀라울 뿐! 이 그림 밖에서 고흐는, 붓 하나로 또 하나 부활을 얻어 점점 더 시공을 타고 넘어 인류 황홀경이 되고 있었다

    ―「고흐의 시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년 작)」전문

    나는 죽음을 뚫고 나오면서, 극도의 정신 분열 속에서도 우주 속 진정한 주인인 ‘나’를 찾은 고흐를 발견했다. 마치 릴케의 산문 속에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돌 속에 갇혀 신음하며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끌과 망치로 돌을 쪼아서 신의 형상을 드러내 줌으로 해서 신을 해방시켰듯” 나 역시 고흐의 예술 작품에 관입돼 자살로 마감한 그의 비통한 이승 세계를 시로써 해방시켜, 지옥의 쇠사슬을 끊고 진정한 신의 자유로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캔버스에 유화. 72×92cm. 1888년 9월 작. 오르세 미술관 소장)이야말로, 고흐가 끝없이 추구한 검은색의 비밀이 가장 시적詩的으로 잘 투영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밤 풍경과 무수히 반짝이는 별빛을 고흐가 좋아했듯, 나 역시 수성못 야경을 통해 별빛이건 달빛이건 물에 접하는 순간 황홀경ecstasy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직관했다.

    고흐는 촛불을 모자 위에 세워 두고 이 그림을 그렸다. 고갱과의 불화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 불과 5개월 전이었다. 밤하늘 별이 너무도 곱고 찬란한 것이 오히려 이 그림을 고결한 비극의 전조로 느끼게 한다. 아니, 무한한 우주 별빛 속에서 사라진 혼령과 강물의 리듬이 혼융된, 참으로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이다. 실제 이 화폭의 붓질은 코발트블루로 채색되어, 밤하늘은 강렬하면서도 군데군데 별빛이 꽃 핀 듯하여, 병든 내 눈에는 마치 흰 국화 꽃밭처럼 보였다. 고흐도 별 무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별의 가운데 부분에 흰색 물감을 튜브에서 짜내 바름으로써 흰 꽃빛 느낌을 주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검정을 색이 아니라 모든 색의 부재, 즉, 색의 여왕(르누아르)으로 보았다. 무채색인 검정을 통해 밤하늘 별과 무한 공간인 우주의 심연을 들여보고자 했는지 모른다. 또한 이 그림 속에 점점이 찍힌 강둑의 노랑색 도시 불빛은, 론강의 9월 정경과 밤 물빛에 불기둥으로 흔들려 도시 아를을,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천상의 도시 분위기로 채색했다.

    나는 밤마다 화폭 하단에 배치된 수직의 돛폭을 단 두 척의 배를 타고, 고흐가 꿈꾸었던 북두칠성까지 상상의 노를 저어 화폭을 건너다녔다. 때로는 강둑을 걷는 두 연인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을 궁금해하며, 밤하늘과 땅 사이 은유 된 못물이 우는 소리를 통해, 나의 아픈 몸과 영혼을 치유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새로운 유럽 미술의 문을 연 ‘앙데팡당전’(1884년)에 출품되었으며, 자유로운 시각과 양식을 취한 전위적ㆍ실험적인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상파 화가들을 세상에 알린 신호탄이 되었다.
     

      인류 여인들이 어떻게 낮 동안 이글이글 겨울 아궁이 불을 피워 저마다 밤 기다렸는지, 고흐의 해바라기 보면 안다 그것은 달빛 아래 처음 누운 꽃의 신음이 아니라, ‘뚝, 뚝, 뚝, 뚝, 뚝,’ 핏물이 살 번지는 시달린 탯줄의 줄기 걷어 내 본 여인만이 아는 방, ―저 존재의 밑바닥 닿아서야 비로소 열리는, ‘벌겋게 달궈진 열락悅樂의 방’

      아흐! 고흐는, 저 모로 누운 여인들 외론 몸이 우주 불구덩임을 어느 날 문득, 해바라기 벌어진 사타구니서 보았다

    ―「고흐의 시 /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1887년 작)」 전문

    해바라기꽃은 고흐 내면의 불의 비유이다. 그 강렬한 노랑을 보라. 황시증黃視症을 앓던 고흐는 마구 황칠한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1887년 작) 속, 그 노랑에 자신을 흠뻑 적신다. 압생트라는 독주 탓으로 훼손된 고흐의 시신경은 영원히 색맹이 되었다. 이 그림은 인류 여인들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사랑이 이글이글 격렬한 노랑 불길로 타올라, 해바라기 속에 투영된 멋진 수작이다. 내가 이 작품에 탐닉해 있을 때, 두 번의 수술로 인한 극심한 우울은 끊임없이 자살 충동을 부추겼다. 신경은 칼날처럼 날카로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밟으며, 신경정신과에 거의 내 집처럼 들락거리고는 했다.

    여름 새벽 4시만 되면 법이산에서 용지봉 아래까지 세 시간씩을 살기 위해 맨발로 짐승처럼 울며 달리곤 했다. 그땐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침 해가 뜨면 수성못을 끼고 집으로 돌아와 죽음의 불안 속에 헛소리와 가위눌림에 잠들고는 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집요하게 고흐의 미술 감상과 2시집 『구멍』 속의 전 작품을 구상하며 미친 듯이 시작에 몰두했다. 숲속 자연 치유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투병을 이겨 나가는 첩경임을 나는 그때 배웠다.

    수많은 평자들이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태양을 향한 강렬한 생명력을 찾아냈듯이, 나 또한 그 작품을 통해 죽어 간 인류 여인들의 슬픈 사타구니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보았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태양에 비유된 남성성에 시달린 여인의 슬픈 통곡이자, 비참한 자궁의 핏물이다. 뚝 뚝 뚝 핏물이 번지는 화폭 속에서 나는 인류 구원의 소리를 고흐를 통해 들었다. 그때 나는 자궁을 우주 창조인 씨앗의 씨방이자, 모성과 동일시했다. 투병은 이렇듯 34살 고흐가 36살 내 영혼 속에 관입돼 ‘그림 속 시’가 있음을 보여 준, 내 인생에서 천국과도 같은 영적인 삶의 눈을 뜨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김동원 시인>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 ‘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 『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출간

    2002년 제 2시집 『구멍』 출간

    2004년 제 3시집 『처녀와 바다』 출간

    2007년 동시집 『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 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 『시, 낭송의 옷을 입다』 출간

    2014년 평론집 『시에 미치다』 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 『깍지』 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 『태양 셰프』 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 『저녁의 詩』 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시선집 『고흐의 시』 출간

    2020년 계간지 『문장21』 봄호 평론 당선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텃밭시인학교』 운영


  • 글쓴날 : [20-07-23 11:09]
    • 김효진 기자[jina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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