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유네스코가 제21차 총회에서 예술가란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혹은 이를 재창조하는 사람 등... ‘예술가의 지위에 관한 권고’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예술이 인간 감성에 깊이 교류되면서 민중(民衆)의 고단한 삶의 정서를 위무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결같이 돌(石)이라는 소재에 천착한지가 30여년이다. 오랜 세월 구르고 굴러 닳아버린 조약돌, 작가는 그 돌을 꼭 빼닮았다. 발에 차이고 굴러도 둥글둥글 모나지 않은 모습으로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돌 같은 남자. 돌로 회화의 지평을 넓혀온 돌 연작은 수양에 버금간다. 돌 그림이 가득한 근석당(近石堂)에서 조약돌 작가 남학호(61) 화가를 만났다.
근석당은 그의 당호이다. 삼도헌(三道軒) 정태수(鄭泰洙) 서예가의 작명이고, 현판 글씨는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의 작품이다. 유네스코 규범에 속한 남학호 화가의 조형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 화가로서의 하루 일상은?
"당나라 선승 백장(百丈)은 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성서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0절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했습니다. 예술가도 하나의 직업입니다. 노동을 하듯 하루 8시간씩 붓을 놓지 않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작가는 ‘돌을 그리다 도를 닦는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그의 돌을 향한 집념과 탐구, 부단한 노력을 지켜보았기에 자연스레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그 돌을 그리는 작가는 돌의 근성을 닮아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무던하게 40여 년 화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 틈 사이로 파고드는 빛과 바람, 그리고 물처럼 관람객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상과 감동이 더해져 마침내 石心 시리즈는 완성된다.
■ 줄곧 돌(石)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영덕이 고향으로 나고 자란 환경적 요인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산 높고 골 깊은 태백산맥 끝자락 칠보산(七寶山)이 있고, 넓은 들을 가로 지르는 강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성장했습니다. 해변에는 형형색색 이쁜 조약돌, 다양한 모양의 조약돌이 지천에 깔려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천연의 스승인 셈이었고 예술적 감성을 갖추기에 특별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수묵 위주의 작업이었지만 장르 경계를 허물고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작업으로 80년대부터 변화를 거듭하는 돌(石) 그림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조약돌은 작은 우주(宇宙)다. 작은 모래알 하나에도 우주가 있다’는 말을 상기한다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약돌은 우주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삶의 집합체인 조약돌에는 인생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구르고 굴러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곳은 가장 낮은 곳. 낮은 곳에서 빛나는 조약돌은 사랑받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긴 시간 동안 물에 씻기거나 바람에 마모되면서 거친 표면이 둥근 모습으로 갖추어 왔다. 매끄러운 표면은 살이 깎이는 고통을 견딘 인내이자 상흔이다. 이런 조약돌에 인생이 얼비친다. 세월에 부딪치고 닳은 조약돌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같다.
■ 1.000호가 넘는 대작을 연이어 발표하는 이유는?
"화가들은 나름의 설정된 목표가 있다고 봅니다.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그림을 남기려는 열망이 있고,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겠다는 욕망 말입니다. 화업 40년을 결산 한다는 마음으로 3년에 걸쳐 큰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Stone in heart(life)이다. 돌의 마음과 그 생명에 착안해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작가는 자기감정을 조약돌의 극사실적인 묘사에 투영시켰다. 조약돌에 감정을 이입한 작가는 무생물인 돌을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돌은 생명을 부여받고 숨을 쉰다. 보일 듯 말 듯 작으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놓은 나비가 그 의미를 더욱 강화시킨다.
돌 표피에는 암호 같은 기호, heart 문양, 항상 나비 한 마리가 화면 속을 날아다닌다. 화면 속의 나비는 작가의 이상(理想)인 것으로 보인다. 돌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화의 흔적과 함께 작가가 장난스럽게 새겨놓은 문양들이 숨은 그림처럼 새겨져 있다. 그 조약돌은 작가의 작업을 통해 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그렇게 그려진 조약돌은 비로소 ‘石心(生命)’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정적인 그림에서 동적으로 작용하는 나비가 작가에게는 특별한 생명체인 듯하다.
조약돌들의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작가의 내면과 심상풍경을 암시적으로 표출하며, 돌에 인격(人格)을 부여하는 동화(同化)와 작가의 감정을 이입해 그 생명력에 천착하는 투사(投射) 기법이 다채롭게 구사되고 있다.
이태수 시인은 “남학호의 조약돌(몽돌)그림들은 서정시(抒情詩)를 방불케 한다. 서정시가 대상의 재현(再現)보다는 자기표현(自己表現)에 무게를 싣듯이, 그의 그림들은 극사실적인 묘사에 뿌리를 두면서도 선택된 대상을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주관적인 경험과 내적(內的) 세계의 표현으로 심상풍경(心象風景)을 떠올리는 암시성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조약돌에서 계속해서 진화하는 생명체의 근원을 발견한다. 작품 명제를 ‘석심(石心)-생명(生命)’으로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난 돌이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깎여서 둥근 모습을 갖추어 가면서 앞으로도 생명체처럼 계속해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화가 생활 40년이 지났습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이순(耳順)도 넘겼으니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난해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중견작가 초대전이 한 달간 있었고, 올해는 코로나-19 펜데믹에서도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이 이뤄지는 관계로 인생 2막의 원년으로 삼을까 합니다. ‘화가 남학호’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는 진짜 작업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의 과정 40년은 준비의 시간이었고 이제부터 진짜 화가로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작업 방식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수집해 온 조약돌을 작업실에서 연출해서 구도를 잡고 그려나가는 정물화 기법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작업방식에서 큰 변화가 감지된다. 현장에서 담은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조약돌을 직접 채집(採集)해 온 후에 작업실에서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직접 구도를 잡아 작업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른바 정물화 기법의 차용이다. “산이나 바다를 옮길 수는 없지만 조약돌은 옮길 수 있다”는 불현 듯 스친 생각이 실행에 옮겨진 결과다.
조약돌을 수집하고 스스로 구도와 빛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작업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조약돌을 탑처럼 쌓기도 하고, 돌과 돌 사이의 여백을 조절하는 등 자유자재로의 연출이 가능해졌다. 자신의 의도를 이입할 수 있게 되어 작업이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그의 사실적인 조약돌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풍화작용으로 둥글어진 인고의 세월이기도 하며 생명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평범하고 못난 돌에서 그는 자신을 만나고 인생을 돌아본다. 흙이 묻고, 깨지고 닳은, 한 세월을 품은 돌이다.
작가에게 작품은 분신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으니 그 이상(理想)과 다를 리 없다. 그의 가슴이 그려냈으니 그 열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법이다. 작품을 보면 작가를 알 수 있는 까닭이다.
영덕이 고향으로 1979년 스무 살 때 경북도미술대전에서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작가는 대구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신라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1990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 수성아트피아 초대전이 열 네번째 개인전이다. 2019년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중견작가 초대)展, 2018년 김해 클레이아크미술관 초대(빛나는 순간)展, 2016년 광주문화예술회관 초대(실재의 기록-극사실주의)展,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초대展, 모스크바 한국대사관(한국회화 30인 초대)展, 2019년 미술과 비평사 주최(고흥을 그리다)展 등 다양한 기획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한국화에 뿌리를 두고 서양화법의 궤도를 넘나드는 화가 남학호의 ‘화업40년’展이 수성아트피아 초대로 7월21일부터 26까지 호반갤러리에서 열린다. 100호 이상의 작품 20여점이 발표된다. 문의: 010-2515-4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