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면
조인호
철과 장미의 문명 속에서 그는 용접공으로 일했다 철가면을 쓰면 산소용접기 밖으로 장미처럼 피어오르는 불꽃이 보였다 그는 철과 장미를 사랑했다 불이 붙는 독한 술을 즐겨 마셨고 쇠못을 씹어 먹는 철인이었다 중금속에 중독된 그의 눈은 세상이 온통 붉은색 셀로판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용접 불꽃이 그의 눈을 멀게 만들수록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붉은색을 지닌 철의 장미를 그는 볼 수 있었다 그의 피는 붉은 철로 철철 넘쳐흘렀고 그는 조금씩 녹슬어갔다
그의 철근콘크리트 지하방은 습하고 어두운 철가면 같았다 철가면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자물쇠처럼 무거웠다 강철 수면(水面) 위로 드러난 그의 얼굴은 점점 철가면을 닮아갔다 그는 눈을 뜰 때마다 철가면을 쓴 채 욕조 안에 몸을 담근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파이프들이 붉은 녹을 떨어뜨리며 삐걱거렸다 욕조 속의 물이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그의 알몸은 장미 잎 같은 붉은 화상 자국투성이였다
그는 일생 동안 불꽃만을 바라본 몽상가에 가까웠다 그는 용접 불꽃 속에서 살아 있는 구멍들을 보았다 오, 입 벌린 구멍들 모음들 비명들이 불타오르는 지옥을 보았다 그 구멍 저편에선 아름다운 붉은 장미의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두 눈엔 콘센트 구멍 같은 어둠이 고여갔다
그는 철가면을 쓴 채 홍등이 켜진 도살장 골목을 붉은 쇳물처럼 흘러다녔다 도살장 골목 어둠 저편 번쩍거리는 칼날들이 뱀의 혀 같은 용접 불꽃처럼 쉭쉭거렸다 붉은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소 머리가 가득 쌓인 수레를 끌고 다녔다 도살장 담벼락엔 덩굴장미가 대퇴부 핏줄처럼 번지고 있었다 담벼락 너머 높다란 송전탑에서 철근들이 금속성의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도살장 시멘트 바닥 물웅덩이 위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고 고압전류 같은 찌릿찌릿한 비가 내렸다
그는 송전탑 꼭대기 위로 덩굴장미처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번쩍, 가시철조망 같은 번개가 송전탑에 내리꽂혔다 고압전류 속에서 그는 자신의 철가면과 함께 흐물거리며 녹아들었다 철가면이 송전탑의 철근 속으로 들러붙고 있었다 송전탑 밑 지상의 사람들이 붉은 뼈를 드러낸 채 해골처럼 웃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거릴 때마다
송전탑은 거대한 한 송이 붉은 장미로 피어났다
조인호 “그는 21세기 소년 아방가르드인가?
아방가르드들은 존재를 부정적으로 증명하는 ‘부정적 재현’을 전략으로 택한다. 즉 ‘재현될 수 없는 것의 재현’이라는 역설적인 방법을 이용한다.(장프라수아 리오따르, 이현복 편역,『지식인의 종언』, 문예출판사, 34~35쪽) 이것이 아방가르드의 전술―전략이라면, 그 역시 ‘부정적 현시’를 재현의 방법으로 원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21세기 소년 아방가르드다. 그는 “의미가 있으면 기능이 있는 것이다”라는 명제 하나가 지배해온 20세기, 그 필패(必敗)의 역사를 뒤집어서 자신의 시적 존재태를 묻는다. 서정 장르가 시적 선험의 가능성을 물을 때, 그는 시적 사실의 필연성을 제시한다. 그는 밀도 높은 서정이 다른 방식으로 선취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21세기 소년 아방가르드인가?
모든 원정기는 필패의 기록이다. 그가 필패를 가장하는 원정기를 쓰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강철로 만들어진 그의 가슴은 굳게 단련되었다. 그는 21세기 소년 아방가르드다. 누군가 나서서 그를 두들기는 일만 남았다. 아마도 우리 함께. 두들기는 순간 승리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이미, 홀로, 앞서서 스스로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조인호 원정기 ― 필패(必敗)를 가장하는 승리의 기록」신동옥 시집 해설)
조인호의 시집『방독면』(2011, 문학동네)은, 1934년 시인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와 궤를 같이 하는 전위시의 첨단이다. 그의 시를 분석하기 전, ‘아방가드르(Avant-garde, 전위예술)를 살필 필요가 있다. 본래 군사 용어로,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전위 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20세기 초 사진의 등장은 기존 회회와 극사실적 미학 방식을 위협하였다. 이런 흐름은, 전통적인 기법이나 제재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찾자는 초현실주의 예술운동으로 번진다. 미술에 있어서는 쉬르리얼리즘(초현실주의), 추상주의(입체파·미래파)의 전위미술로 파생된다. 음악에선 과거의 모든 음의 소재를 부인하여, 피아노 줄에다 나무토막이나 고물을 매고 소리를 내거나, 악기가 아닌 빈병, 톱, 쇠판 등의 물체를 소재로 하는 전위 음악, 전위 재즈 등이 나타났다. 근대의 미학적 아우라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등장으로 급속히 무너졌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선언은, 마리네티, 발라 등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기술 혁명, 도시 문명을 찬양했다. 이후, 1914년 1차 세계대전 전후로, 과거와의 완벽한 단절을 선언한 다다이스트에 접속된다. 아방가르드가 정점을 이룬 것은 프랑스 예술가들에 의해서이다. 파리의 아방가르드는 스스로를 초현실주의라고 불렀다. 초현실주의는 낡은 예술을 무너뜨리고, 꿈과 상상력의 가치를 역설하였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흡수하여, 자신을 외부 세계와 완전히 분리시킨 상태에서 생겨나는, 모든 형태의 사고를 가능한 한 빨리 기술하는 자동기술법을 고안하였다. 이런, 미래파,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들은, 아방가르드의 전사로써 새로운 현대 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하였지만, 대중과의 교감에 실패하여, 결국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한계점에 직면하였다.
근대 한국 미술의 아방가드르의 출발은 구본웅(1906~1953)이다. 그는 20세기 야수파 화가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대표작 <친구의 초상>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친구 이상을 모델로 하였다. 그는 한국 미술의 원점과 한계를 비판하며,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서구적 전위미술의 선두에 섰다. 천재 시인 이상(李箱)의「오감도(烏瞰圖)」연작시(1934년 조선중앙일보 연재)는 초현실주의적 경향 시로, 기존 전통시의 형식을 파괴하며, 새로운 기법으로 현대인의 불안 심리와 두려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런 ‘낯설게 하기’ 기법은, 실험적 자동기술법의 도입을 통해, 실존의 무의식 세계를 파헤친다.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일상화된 지각이나 인식의 틀을 깨고 사물의 모습을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즉 ‘낯선 것은 주의를 집중시키고 낯익은 것은 관습적으로 지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착안된 기법이다. 그런 점에서 ‘낯설게 하기’란 형식을 난해하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표현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양식인 셈이다. 이상은 ‘오감도’를 통해, 아해(兒孩)’란 시어 사용, 동일 동사 구문의 지나친 반복, 띄어쓰기를 무시하면서, 전통 시법을 부정한다. 이런 분열된 자아의 분신, 까마귀의 불길한 상징, 막다른 골목, 질주의 본능 등의 반복은, 일제 식민치하의 불안 의식의 발로이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 갔던 인물이다. 게다가 자유와 개성을 추구했던 그로서는 모든 인간적 가치가 박탈된 식민지 상황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비극의 시대를 살았던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방황,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 현실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이상은 냉소적 인식과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런 근대적 아방가드르는 조인호의 시집『방독면』에서 현대적 아방가드르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두 시인의 공통점은, 무의식 속에 잠재한 불안과 불확정성에서 오는 막연한 공포이다.
조인호의 시집『방독면』속의 대부분의 시편들,「뉴 키즈 온 더 블록」,「태양의 흑점」,「옴의 법칙」등은, 이상의「오감도(烏瞰圖)」와 궤를 같이하는 초현실주의를 지향한다. 그의 시「철가면」은 미래시의 절경이다. 2000년대 한국 시단에 들불처럼 번진 미래파의 한계점을 새로운 실험으로 극복한 시로 읽힌다. 그는 다가올 시대에 걸 맞는 현대시의 방향을 언어의 표현주의로 격상시킨다. 체험을 통해 감각한 몸의 언어, 사물의 과장과 왜곡을 통한, 심미적 미학까지 번진 그의 언어는, 표현추상주의 언어를 만든다. 시적 화자의 ‘페르소나’는 절망과 실의에 찬 공기를 호흡한, 시대인의 비명이자 야수파적 비극의 종말을 보여준다. 온갖 실험적 언어와 기법 등의 동원은, 언어에 색채 이미지를 입히기도 하며, 극단의 형식 파괴는 행간의 입체감을 살리기도 한다. 한편, 현대인들의 절망과 불안 등을 간파해, 시대의 우울과 회의, 광기와 악의 축을 파고 들기도 한다. 첫 행의 “철과 장미”는 단번에 기존 시법을 무너뜨린다. 두 언어의 불안한 동거는 시니컬하다. 장미처럼 피어오르는 불꽃을 사랑한 그는, “철과 장미를 사랑했다”. 철저히 골수에 각인된 낯선 언어다. 경박한 언어유희가 아니라, 부정어법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찔렀다. “쇠못을 씹어 먹는 철인”은 용접공의 은유이자, ‘철가면’의 주체이다. “중금속에 중독된 그의 눈”은, 병든 시대의 눈이다. 가스 절단 시 3천℃에 달하는 그 불꽃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온통 세상이 붉은색 셀로판지로 보일 것이다. “불꽃이 그의 눈을 멀게 만들 수 록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붉은색을 지닌 철의 장미를 그는 볼 수” 있다. 붉은 피의 색채는 녹슨 철의 산화를 연상케 하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장미’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미래 시는 불확실한 언어 구조를 가졌다. 헛소리는 아니더라도, 행과 연의 유기적 서사구조가 허약하며, 현학적이자 그로테스크하다. 한편, ‘철과 장미’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어의 겹 이미지는, 미래시의 탁월한 장점이다.「철가면」은 미래시의 불협화음을 멋지게 극복한다. 2연의 시상 전환은 적확하다. 음습한 지하방과 철가면의 은유적 알레고리는 유기적이다. “철가면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 자물쇠처럼 무거웠다” 이 고통스런 시적 암유야말로「철가면」의 묘수이자, 발버둥치는 삶의 비명 소리가 절박하다. 하여 화자의 눈에는 욕조 속의 물이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알몸은 장미 잎 같은 붉은 화상 자국투성이로, 고통의 흔적이다. 시는 어쩌면 “불꽃”을 바라보는 몽상가의 언어일지 모른다. 그는 날마다 파란 불꽃 속에서, “오, 입 벌린 구멍들 모음들 비명들이 불타오르는 지옥”을 본다. 어떻게 지옥을 견디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 구멍 전편”에서 “아름다운 붉은 장미의 정원”이 펼쳐진 세계를 보는 시인의 시안(詩眼)은 놀랍다. 두 눈의 구멍을 콘서트의 구멍으로 본 직관 역시 놀랍다. 그 눈 속에 고인 슬픈 인간의 어둠의 풍경은,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다. 마치, 미래시가 기존 서정의 동일성을 부수고, 타자성으로 직전한 혁명과도 같이, “철가면을 쓴 채 홍등이 켜진 도살장 골목을 붉은 쇳물처럼” 흘러 다니는, 화자의 극적 전환은 전복(顚覆)적이다. ‘철가면’이야말로 고통의 가면이자, 착취의 페르소나다. 미래시에는 서정적 자아 ‘나’가 없다. 대신 ‘나’가 지워진 자리에 ‘그’가 있다. 조인호의「철가면」역시 ‘철과 장미’의 끝없는 갈등과 긴장 속에서 격렬하게 싸운다. 용접 불꽃을 “뱀의 혀”에 직유한 묘사는 원죄에 괴로워하는 아담과 이브적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는 욕망의 뱀들로 엉켜 붙어 사는지도 모른다. “붉은 장화를 신은 인부들이 소 머리가 가득 쌓인 수레를 끌고”, “도살장 담벼락엔 덩굴장미가 대퇴부 핏줄처럼 번지”는, 한 폭의 지옥도(地獄圖)는 환상 시에 맞대있다. 이런 아비규환은 “송전탑에서 철근들이 금속성의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뒤틀”리는 묘사적 이미지로 크로즈업 된다.
조인호는 시적 장면 전환의 귀재이다. 행간 속에 느낌으로 존재하는 시어들의 유기적 관계망을 다층적 겹 이미지로, 다음과 같이 처리한다. “도살장 시멘트 바닥 물웅덩이 위로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고 고압전류 같은 찌릿찌릿한 비가 내렸다”. 이런 극 묘사적 시상 전환은 ‘철과 장미’, ‘지하방, 수면, 욕조, 용광로’를 거쳐, ‘구멍들, 비명들, 지옥’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것은 일종의 ‘반인간적인’ 시대의 도착증(倒錯症)을 고발하고 있으며, “고압전류 같은 쩌릿쩌릿한 비”에 감전된 밑바닥 삶들의 발버둥치는 소리이다. 4연은 비극적 아름다움의 극지다. 송전탑 꼭대기 위로 덩굴장미처럼 기어오르는 순간, 번개에 내리꽂힌 ‘그/철가면’의 죽음은, 철근 속으로 들러붙는 놀라운 은유로 환치된다. 릴케는 시의 이런 광기의 순간을 ‘관입(貫入)’이라고 불렀다. 송전탑과 “붉은 뼈”가 “해골처럼” 한 몸이 되어 웃는, 그 시적 광기는, 차라리 황홀하다. 하여, 조인호는 “송전탑”을 “거대한 한 송이 붉은 장미”로 피어나게 한다. 이 극적 전환은 ‘동일성의 나’를 죽여 찬란하게 ‘타자, 그’로 부활한다.「철가면」은 현대 사회의 지배와 피지배, 가진 자와 빈자의 모순 구조, 억압과 부조리한 현상들을, ‘철가면’과 ‘장미’의 은유를 통해, 죽음의 역설로 통쾌하게 찔렀다.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