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
―우리(We)와 우리(Cage) 사이
문이레
밖은 우리의 함정이었다
울타리를 친다는 건 거부의 표시일까
아무도 침범하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게 관계망이라면 문 안쪽은 안전하다는 거겠지, 포식자가 걸어온 길엔 왜 자꾸 문이 사라지는 거니! 서로를 겪는 방식이 달라 곳곳에 우리가 필요했지 우리는,
우리가 있어 슬프다가도 우리가 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
아이들과 동물원에 온 인솔교사는 호랑이보고 ‘귀엽다’를 난발하고
발톱을 감춘 호랑이가 원하는 게 뭔지, 이들의 뇌 속 세계
아무것도 모르는 해는 척, 척, 척, 돌아가고
어제는 아버지랑 실랑이하다가 휴지통이 날아왔지
변화구를 던지듯 심각하게 노려보던 눈
누군가의 내일이 여기라면
사각이 좀 더 안전한 방법이길,
모서리는 깎이더라도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있다는 모순!
매일매일 갇힌 동물처럼
어느 것 하나 ‘함께’라 부를 수 없는 나의 우리를
동물원 가서 묻는다, 갇힌 슬픔이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
물려받은 유전자가 그렇다는 걸
동물은 왕국을 포기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는 우리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는데
밖은 여전히 우리를 뛰쳐나간 아이들의 뒤집기가 한창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가끔 내 눈에만 보이지만
선뜻 먹이를 주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는
목숨을 건
네모 속 갇힌 최악의,
2019년 최치원신인문학상(『시산맥, 가을호』) 수상작, 문이레의「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는, 우선 독특한 알레고리(Allegory)로 연결된다. 유추가 논리적 이성에 호소한다면, 알레고리는 우의(寓意), 풍유(諷喩)를 빌어 상상에 호소한다. 하여, 시는 우연을 관통해 필연의 행간을 직조한다.
이 시는 ‘우리(We)와 우리(Cage) 사이’로 규정된, 동물과 인간의 복잡한 현실 세계를 언어 유희적 관점으로 투시한 감각적 시다. 동물원의 ‘안’과 ‘밖’의 세계를 전복적 발상으로 처리한 치밀한 묘사가 돌올하다. 대담한 문장의 압축, 개성적 언어 표현은, 산문시와 운문의 경계선을 밟고 서 있다. 하여,「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는 우리(Cage) 속에서 오히려 동물이 인간을 구경하는, 웃지 못 할 우의(寓意)로 드러난다. 이런 발칙한 상상 시법은 그녀만의 독자적 하나의 시적 대응 방식을 낳았다.
‘문’ 안쪽에 살고 있는 ‘우리(We)’는 정말 안전한 걸까. ‘아버지’로 상징된 이 시대의 부당한 가정 폭력은, 아이들이겐 지옥이다. ‘우리(We)’로 규정된 ‘틀’은 부조리와 법망으로 스스로 옭아맨 인간 군상들을 역설로 풍자한다. “우리가 있어 슬프다가도 우리가 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 속에, 교묘히 숨겨진 언어의 겹 이미지는, 세계를 인식한 통찰의 칼날이 예리하다. “모서리는 깎이더라도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있다는 모순!”이야말로, “갇힌 슬픔이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은 불안한 현실의 투영이다.
실험시가 최상은 아니지만「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는 분명, 뒤집힌 시선과 다층적 은유를 확보했다. 20세기의 발명품 중 “네모 속 갇힌 최악”은 텔레비전이다. 아니, 그 텔레비전에 갇힌 인간의 무지와 몰개성이, 더 최악이다. ‘텔레비전’은 안과 밖의 세계를 외곡하는 공간이자, ‘우리(We)와 우리(Cage) 사이’의 틈이며, 갇힘과 열림 사이, 또 다른 상상 공간으로 연결된 허구이기도 하다. 하여 텔레비전은, 안개와 모서리로 각을 이룬 인간 사이의 벽이자 꿈이다.
결국, 이 시는 스스로에게 ‘시적 모호성’에 대한 질문이다. 따분한 일상의 한 공간을 까뒤집어, 환멸과 위트, 아이러니와 역설, 우리(We)와 우리(Cage), 이 시대 아버지의 폭행, 각진 모서리, 아이들의 뒤집기로 연결되는, 그 모든 시적 필연을, 텔레비전이란 ‘틀’ 속에 갇혀 발버둥치다 사라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있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