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은 과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장소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말 이후 조선 초기까지 경상도 지역에는 왜구의 원정 노략질이 잦았다. 경상도 지역 여러 항구에서 출몰한 그들은 상업 활동을 핑계로 자주 말썽을 일으키자 조선시대 태종이 그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왜관을 설치했다. 왜관의 설치로 그들의 왕래와 상업 활동을 공식 인정하고 교역상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왜관에는 관사와 숙소, 교역장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이 있은 후 우리나라에 설치된 왜관은 모두 폐쇄됐다. 이후 조선시대는 일본과의 외교 사정에 따라 왜관은 설치와 폐쇄가 반복됐다.
지리적으로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던 동래의 부산포와 내이포, 울산의 영포 등이 왜관이 설치된 대표적 장소다. 일본인의 입국이 많아지자 서울에도 낙선방, 동평관이라는 왜관이 설치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다. 조선시대 많을 때는 한 해만 6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관이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에서 파생한 단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역사적으로 미묘한 관계에 있다. 최근 벌어진 한일간 무역전쟁도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일간 무역전쟁으로 빚어지고 있는 반일운동 분위기 속에 칠곡군 왜관읍 지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고 한다. 일부 시민단체는 차제에 “일제 잔재 명칭인 왜관이란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을 제안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본인이 거주한 곳의 단순 의미의 명칭일 뿐이라 맞서고 있다.
1996년 전국적으로 일제 잔재 지명을 바꿀 때도 지금의 왜관읍은 사용해도 무방한 것으로 판단된 바가 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번 명칭 변경 의견이 나왔지만 실행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종합된 생각이다. 반일감정이라는 일시적 시류에 흐르기보다는 역사적 시각 등 지명에 대한 종합적 상황 등을 고려해 지역사회 스스로가 판단, 결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