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의 「맨발」은, 시집 『맨발』(창비, 2013)의 표제시다. 어물전 밖으로 맨발을 내민 개조개를 통해, 삶의 극단적 고행을 걸어간 부처와 그런 삶을 견뎌내는 가난한 가장을 성찰과 연민의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처리한 사유시이다. 이 시는 전체 1연 16행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물전 개조개의 ‘맨발’과 죽은 부처의 관 밖으로 내민 ‘맨발’은 직접 시 속에 드러난다. 그러나 시 「맨발」 속에서 가장(家長)의 이미지는 배경 처리되어 언뜻 알아채기가 힘든다. 시어와 시행간의 의미망을 세밀히 쫓아가다보면,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밥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져서는 캄캄한 밤중에 집(움막)으로 돌아오는 한 가장의 신산고초가 드러난다. 즉, ‘개조개의 맨발’, ‘탁발승의 맨발’, ‘가장의 부르튼 맨발’은 고귀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살다간 것들을 일깨워준다. 나는 이 시에서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이 표현이 왠지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개조개가 그 느린 몸짓으로 시련을 견디며 살아왔듯이, 슬픈 가장 역시 늘 맨발처럼 아등바등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쳤겠다. 가족들이 굶고 있는 캄캄한 한밤중에 양식을 구해 들어가는 가장의 뼈저린 외로움은 차라리 고행이자 부르튼 맨발이겠다. 이 시의 주제는 개조개의 맨발을 통해 성찰하는 삶의 고단함이다. 맨 끝 행의 ‘아-’하는 울음소리는 가족을 책임질 수밖에 없는 가장의 극적 심리를 참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14행의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에서는, 가난을 은유한 “벌벌벌벌”이란 의태어도 볼 만 하지만, 시각을 후각화한 공감각적 표현이 돋보인다.
1970년 김천 출생인 문태준의 시는, 초기 고향을 원형으로 한 자연의 풍경세계와 반(反) 도시적 세계를 지나, 삶을 기반한 낡은 서정을 새롭게 인식한 시들을 썼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시세계는 이후 성찰과 구도의 불교적 시세계를 보이다가, 최근에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따스한 시 편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 시집 『가재미』(2006, 문학과 지성사)에서 문태준의 시의 요체를 가장 잘 꿰뚫어 본 이광호의 해설은 빛난다. “문태준의 시학은 낭만적 자아의 확장을 통해 우주와의 충만한 합일로 나아가지 않고, 서정시의 심미적 권위마저 비워버리는 ‘극빈’의 상태를 지향한다. 그 극빈의 태도는 서정시의 재래적인 위계적 질서를 ‘수평’의 미학으로 전환하는 작업과 결부된다. 사물의 현실적 효용성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체의 심미적 욕망마저 비우는 극빈의 시학은 사물과 인간의 ‘수평적’ 관계에 대한 사유와 만난다. 이제, 이 ‘극빈과 수평의 시학’을 ‘겸손한 서정성’이라고 명명하려 한다. 무엇이 겸손하가? 사물을 일인칭 주체의 인간적 시선으로 대상화함으로써 그것을 단지 ‘나’의 내면의 표상으로만 규정하는 서정시의 근대적 ‘오만함’에 대한 겸손함이다. 그의 시에서 세계는 ‘자아화’되지 않으며, 단지 작은 존재들과의 사소한 교감을 통해 시적 자아는 자신의 존재론을 조심스럽게 탐문한다. 이 겸손한 시적 자아는 어떤 아름다움도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산골 출신인 문태준은 친구 김연수 시인의 등단 소식에 자극받아, 군대에서 시집을 섭렵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2005년 시작품「그맘때에는」외 15편으로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에서 우러나오는 빼어난 시적 언어를 건져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세영 시인은 “생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미학적 형상성과 잘 결합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문태준 시인의 탁월한 시적 재능”임을 극찬했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