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송종규
기억의 반을 세월에게 떼 준 엄마가 하루 종일
공중에게, 공중으로, 전화벨을 쏴 댔다 소방호수처럼
폭포를 이룬 소리들이 공중으로 가서 부서졌다
휘몰아치는 새떼들
머리 위에 우두커니 떠 있는 공중, 나는
공중에 머리를 박고 공중에 대해 상상하다가 공중을 증오하다가
털신처럼 깊숙이 발 밀어 넣고 공중에서,
공중을, 그리워 하다가 들이 마시다가
깊은 밤 불 밝힌 네 창으로 가기 위해
내 방의 불을 켠다
네 불빛과 내 불빛이 만나 공중 어디로 가서
조개처럼 작은 집이라도 짓기나 한다면
이것은 연애가 아니라 공중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방식
모든 공중에, 모든 공중을, 의심하거나 편애하거나
생략하기도 하면서
휘몰아치는 저 새떼들
송종규(안동 출생, 1952~)는 시간과 장소의 문제를 시의 비극 속에 끌어들인다. 하여 “실존적 비애를 그리는데 탁월한 시인이다. 신비감과 비애에 물든 미학적 풍경은 부재와 결핍의 산물이며, 나아가 시에서의 풍경은 부재와 결핍을 경험하는 실존에 대한 연민 그 자체다.”(신상조) 사실 많은 평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녀가 보여준 시의 특징은 몇 마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스펙트럼을 보인다. 이런 말하기 방식은 시인의 개성적인 호흡인 동시에 풍경 또는 묘사의 촉수가 예민하기 때문이다.
시집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의 표제시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은, 인간 숙명의 문제를 시간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이 시의 일관된 주제는 존재의 근원적 비애와 결핍의 문제로 귀결된다. 궁극의 한계에 직면한 자아를 통해, 초월적 대상 찾기로 시적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휘몰아치는 새떼들”은 시적 모호함을 관통한 기억의 혼돈이다. ‘공중’이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둘러싼 숙명적 환경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삶처럼 느껴진다.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함의한 시어로써 ‘공중’이 지시하는 바는, 결국 죽음으로 가는 인간의 외로운 절규이다. 공중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든 의식의 뿌리는, 현재성과 초월성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다. 결핍 의식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임계점이다. 문학이든 시든 틈의 비밀이자, 경계의 예술이다.
송종규는 시의 절벽을 풍경에서 찾는다. 하여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극단에 놓고 싶어 한다. ‘언어를 통해 언어의 절벽을 뛰어넘는 아슬아슬한 시의 외줄타기’, 그 지점이야말로 송종규 시의 카타르시스다.
어느 대담에서 그녀는「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을, “시어를 따라가면서 그냥 받아 적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홀연히 시가 왔다’는 건데, 그만큼 그녀에게 시가 절실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시 속의 ‘공중’은, 치매에 걸린 엄마의 환청에서 출발한다. 기억이 사라져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화자의 비극은 절규에 가깝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지워진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그녀의 엄마는 “하루 종일 시인에게 전화를 하셨으면서도, 금방 또 한 걸 잊어버리시곤 했다.”고 한다. 결국 시인은 ‘공중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방식’을 통해, 기억의 복원을 꿈 꾼 셈이다. ‘내 불빛’과 ‘너의 불빛’이 공중 어디에서 만나 작은 집을 지을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란다.
특히 마지막 시구의 ‘너’라는 존재는 초월적 부재의 존재이다. 영원한 것에 대한 어떤 시적 지향점이다. 가 닿을 수는 없지만 끝없이 꿈꾸게 되는 그 어떤 지점이 ‘공중’이다. 하여, 시인은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가 갖는 근본적인 결핍의 한계점을, ‘공중’을 통해 ‘자유’에까지 다다르게 한다. 결국 송종규에게 있어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은, 한밤에 웅크린 그림자의 외로운 시간이자, 비극적인 것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의 장소이기도 하다.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제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시 대담 평론집『저녁의 詩』편저
2018년 대구문학상, 최치원문학상 대상 수상.
한국시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