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는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북을 쳐서 임금에게 알리는 옛날 왕조시대의 민원 상소 제도다. 조선시대 때 태종이 이 제도를 도입해 백성의 억울함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신문고는 원래 당나라 태종이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설치한 등문고(登聞鼓)가 최초인데 이것이 조선으로 유래한 것이다.
역사가들은 백성의 뜻을 잘 살핀 조선 태종(이방원)과 당나라 태종(이세민)은 닮은 데가 많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선 태종이란 묘호를 쓴 게 같다. 태종이란 묘호는 본래 건국 후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왕들에게 붙여주는 명칭이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대표적이다.
조선의 이방원과 당나라의 이세민은 둘 다 개국 군주의 아들이다. 둘 다 장남이 아니면서 권력의 실세였고 왕자의 난을 치르며 권력의 정상까지 오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건국초기의 나라 기반을 굳건히 세운 공로자라는 점에서도 같다.
당 태종은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성인(聖人)으로 통한다. 그는 농민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나눠주고,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등용했다. 등문고를 설치, 백성의 억울함을 살피는 등 국가와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푼 황제다. 이승계의 다섯째 아들인 조선 태종도 사실상 조선의 창업군주라 불린다.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개국 공신일 뿐 아니라 아버지를 이어 국가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세운 그의 공로는 대단하다.
1401년 조선 태종이 설치한 신문고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왕이 직접 듣고 풀어주기 위한 제도다. 억울한 백성은 대궐 밖 문루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면 임금이 직접 이를 챙겼다고 전한다. 지금으로 보면 청와대 게시판과 같은 역할을 한 제도다. 이용하는 백성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조시대에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한 왕의 발상이 놀랍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지금의 국민청원은 곧 조선시대 신문고와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넘었다. 정치권이 풀지 못하고 있는 포항시민의 요구에 이제 청와대가 답할 차례다. 어떤 답을 줄지 사뭇 궁금하다.
우정구 케이투데이 편집인
<전 매일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