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26일 청송지역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현서면에서 ‘화목장터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독립유공자 유족들과 관내 기관단체 및 학생을 비롯한 군민 700여명이 참석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100년 전 화목장터에서 울려 퍼졌던 함성을 되새기기 위해 만세운동 재현행진을 시작으로 기념비 제막식, 각계 분야 군민들의 독립선언서 릴레이 낭독 순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화목장터에서 현서체육공원까지 이어지는 만세 운동 재현행사에서는 일제경찰 대치, 붓글씨 퍼포먼스 등을 통해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렬히 저항했던 1919년 3월 26일 그날의 만세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숭고한 애국정신으로 목숨 바친 선열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지난 100년을 거울삼아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청송의 자랑스러운 미래를 위해 군민과 함께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서면의 화목장터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6~27일 주민 조현욱·조병국씨의 일제 항거에서 시작됐다. 26일 오전 조현욱씨는 신태휴·조병국씨와 함께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장터로 향했다. 오후 1시쯤엔 주변 군중까지 호응해 수백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일본 경찰은 무력으로 시위 군중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현욱·신태휴씨 등 2명이 붙잡혔다.
이튿날인 27일 조병국씨는 동민 1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다시 화목장터로 향했다. 화목장터로 가는 도중 사람들이 늘어나 시위대는 500여명에 이르렀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은 총격을 가했다. 결국 만세운동으로 조현욱·신태휴·조병국·이형씨는 징역 2년을, 김기수씨는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