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간 집요하게 조약돌만 그렸어요.
80년 접어들면서 자주 조약돌이 눈에 들어왔어요. 밀물과 썰물에 쓸리는 조약돌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당시 내 외로운 처지처럼 보였죠. 그때부터 그림의 화두를 조약돌로 삼았습니다.
조약돌은 색(色)을 통해 나를 버리는 공(空)의 작업이자, 화가로써 겪는 고달픔에 대한 속세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야말로 세월의 무상함 그 자체이니까요.
조약돌을 그린 게 아니라, 화폭 속에 모셔왔죠. 지구의 한 생명으로 살고 있는 그 오브제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내 그림이 너무 일관된 소재라고 말하겠지만, 사람들마다 지문(指紋)이 다 다르듯, 조약돌의 실금도 다 다르죠. 저마다 살아온 곡절의 흔적이 온몸에 물결의 아픔으로 새겨진 겁니다.
▶ ‘조약돌과 나비’는 멋진 앙상블을 이룬 듯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돌과 나비가 전하는 화의(畵意)는 무엇인가요.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소재라도 관련 없는 것이 없겠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돌을 지상 또는 현실로, 나비를 하늘 또는 꿈(이상)으로 보면 어떨까’하고 말이죠. ‘돌’을 통해 존재의 무거움을 ‘나비’를 통해 그 가벼움을 대립시키면서, 만물이 서로 유기적 세계임을 암시와 상징으로 구성해 본 것이지요.
어느 시기까지는 많은 나비들이 화면 속을 날아다녔습니다. 지금의 나비는 애달프고 처연한 몸짓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슬프다고 하더군요. 못 다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갈망을 한 마리의 나비로 대신한 것입니다.
돌에 새겨진 하트는 곧 돌의 마음인 심장입니다. 생명이지요. 사랑과 소망을 담아서 생명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동적인 나비를 그려 넣어 활기를 더하고 돌에 믿음을 새겨서 육체와 정신의 지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작 100년의 삶도 못 누리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돌은 그 자리에 붙박혀 수천 년을 삽니다. 강가에 놓인 조약돌을 하나씩 올려 소원의 탑을 쌓아서 건강과 재화의 돌봄을 기원하기도 하지요.
나비는 수(壽), 돌(石)은 장수(長壽)로 읽습니다. 익수(益壽)입니다. 그래서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뜻으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화업 40년 전시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획을 갖고 준비 중이신가요.
대구대학교에서 대학원까지 그림(동양화)을 전공했습니다. 대학공부를 하기 전인 1979년에 경상북도미술대전에서 ‘입선’을 했습니다.
소급하면 올해가 화업 인생 40년이자 이순(耳順)입니다. 10월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중견작가 초대전이 있습니다. 연이어 수성아트피아 초대전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40년 과정을 죽 펼치는 나열식이 아니라 전시일로부터 최근작만을 발표하는 겁니다. 대다수가 100호 이상 크기의 대작으로 500호, 800호를 포함하여 20여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인 역사로 보자면 첫 수확의 시기지요. 추수하는 개념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이란 무엇이며, 화가로서의 활동계획이 궁금합니다.
저에게 그림은 종교입니다. 아니 삶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숟갈처럼 붓을 들고 밥처럼 색채를 떠먹습니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일모도원(日暮途遠)에서 답을 얻습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했지요. 짧은 삶에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잖아요.
저는 호생관(毫生館)처럼 붓으로 먹고사는 전업작가입니다. 한 해 그룹전에 50여 차례 참여합니다. 사실상 1년 내내 전시를 하는 셈입니다. 대작 뿐 아니라 작은 그림도 그립니다.
당연히 화가의 길을 계속 걸을 것입니다. 화업 인생 50년, 60년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한국미술사에서 가장 기억이 되는 ‘조약돌 화가’로 남고 싶습니다.
<약력>
#남학호(58)화가는 영덕군 병곡면이 고향으로 대구대학교 미술디자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1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신라미술대전, 대구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을 비롯해 전국 공모전에서 150여회의 운영위원,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미술대전, 대구시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경상북도미술대전, 정수미술대전, 개천미술대전, 대한민국한국화대전, 소치미술대전, 김해시미술대전에서 초대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