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명박정권이 영남권 신공항 문제를 무산시킨 이후 박근혜정권이 임시방편으로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추진했으나, 문재인정권은 이를 추진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대구공항 통합이전은 유야무야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대통령은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통해 대구 민심을 달래줘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공항을 이전하면서 추가적으로 활주로 길이를 늘이고 시설을 보강해서 번듯한 모양새를 갖춘 민간공항을 꾸밀 생각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군공항 이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꼼수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기부대양여 방식으로 진행되는 군공항 이전에 얹어서 ‘약간의 예산’만 보태주면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계산아래 대구공항 ‘통합이전’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걸었던 셈이다.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이를 눈치 챈 대구시장 후보들이 이 문제를 쟁점으로 삼으면서 일을 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사정이 명백히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문재인정부는 군공항이전이라는 기본개념에서 한발도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돈을 더 들이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봐야한다. 예산이 얼마가 더 든다느니 하는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재 대구공항 184만평을 개발해서 10조원이 넘는 이전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신도시를 개발하면 대략 전체 면적의 40%정도를 분양할 수 있을 뿐이다. 넉넉하게 100만평을 분양한다고 해도 10조원을 부담하려면 평당 1천만원에 분양해야 한다. 대구에서 개발 중인 부지를 평당 1천만원에 분양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택지는 물론이고 상업용지나 공장용지로도 불가능하다. 결론은 부족한 만큼 수조원대의 예산이 추가되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새로 공항을 건설하는 비용만 10조원 전후의 돈이 들고 접근도로와 전철 등을 건설하는데 또 돈이 더 들어간다. 그렇잖아도 돈쓸 곳이 많아서 고민인 문재인정권이 박근혜정권이 저질러놓은 골치 아픈 일에 생색도 나지 않을 큰 돈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민심’을 핑계 삼아 속내를 밝혔다.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시민의 힘으로 대구공항지키기 운동본부’(줄여서 시대본)는 최근 국무조정실에 질의해서 군공항 이전계획 이외의 어떤 추가적인 계획도 없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어졌다.
군공항 이전문제는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와 수원도 동일한 사안을 숙제로 안고 있다. 도심의 군공항 이전문제는 ‘통합이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해결해 나가면 된다. 민간공항의 존치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다. 사정이 이러한데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고집하면서 그야말로 민심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행정력의 낭비요, 공염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중요한 시점에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결단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기도 하고 몰락하기도 한다. 문재인정권이 적폐청산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보수의 심장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대구에서 내려지는 정치적 결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사소해 보이고 미흡할지라도 정치적 결단이 때로는 큰 파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금 대구경북은 리더십부재의 늪에 빠져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늪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한 떨기 연꽃이 그리운 이유다.(동일문화장학재단 협찬)
남동희 전 매일경제신문 기자, 알리고뉴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