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안상학의 시,「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를 읽고 있으면, 시어의 살점은 아프다. 사랑의 통증과 이별의 슬픔은 적막하다. 행간을 거쳐 의미의 계단을 따라가면, 우리 역시 시인처럼, 그때 그 처녀를, 자유를, 그 사람을 노을 속에서 기다렸어야 했다. 붉은 심장에 불이 붙어 한 生이 다 타더라도, 그 언덕 위에서 천년의 바람이 되어야했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 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공간이 티끌처럼 사라질 때 까지, 온몸으로 기다려야만 했다.
시집『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2014, 실천문학사)의 표제시인 이 시는, 시어의 보폭이 매화 꽃잎 속 달빛 그늘인 냥 서늘하다. 안고 뒹굴고 넘어가는 그 행간의 반복과 여운이, 읽는 이의 가슴 속에 저민다. 화자의 어긋난 운명의 애절함은 그래서 비극적이다.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현실 속의 그 처녀는, 시인에겐 한바탕 꿈이요, 돌아서면 사라져버릴 첫사랑의 그림자이다.
하여, 시는 눈물을 먹고 핀 불행한 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밤마다 절망한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그 무엇에 대한 갈구가 애절하다. 행이 끝나도 그 여운은 붉고 어둡고 깊다. 두 연인의 어긋난 시간과 공간의 레일은, 독자를 관통해 시가 된다. ‘~말아어야 했네’ 그 간절한 숙명의 체념은, 오히려 이 시를 슬픈 이별의 노래로 승화시킨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서정시는 불멸하다. 밤낮 시마가 들러붙어 고뇌하는 시인은 영원하다. 아무리 그녀를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녀도, 한 번 잃어버린 처녀는 다시 볼 수 없다. 그것이 시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뭉클하다. 피 고인 어룽진 얼굴이 시행 속에 흐릿하게 비친다. 그래서 시인은「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이 멋진 제목을, 역설의 시학으로 남겼나 보다.
김동원(사진)
약력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2시집『구멍』, 3시집『처녀와 바다』, 4시집『깍지』출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출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시평론대담집『저녁의 詩』편저.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당선.
현재 대구시인협회부회장. 대구문인협회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텃밭시인학교』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