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화산(休火山)이라예
- 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정숙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가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서답 ; 월경
*시상에 ; 세상에
*카는 ; 하는
*카믄 ; 하면
경산 출생 정숙의 시,「휴화산(休火山)이라예」는, 폐경기에 접어든 한 중년 여인의 어쩔 수 없는 우울한 삶의 외침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쩌면 넋두리 같고 어쩌면 한탄 같다. 이 외로움에 사무친 고백적 독백 시는 읽는 나로 하여금 마음 속 소리가 시에 비침을 보게 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펄펄 끓는 가슴 속 용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땅의 무수한 여인들의 마음고생을 '처용아내'를 통해 역설적 배설 시법으로 정숙은 재구성했다. 마치 조선의 명시인 허난설헌의「규원가」같은 시「휴화산(休火山)이라예」는,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에?" 의 자조 섞인 시구 속에서도 느끼듯, 님의 사랑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눈물겹게 배경 처리된다.
난 이 시행이 너무 좋아 저녁답 마루에 혼자 서서 읊고 또 읊조렸다.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 떨어지고 있지예. 혼자 지샐라 카이 /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애닯고 애닯다. 애상이 있는가 하면 여자의 애심(愛心)이 있고, 한(恨)이 있는가 하면 비(悲)가 넘치지 않는다.『예기·악기 편』의 한 구절처럼 "말로썬 부족하므로 길게 말하고, 길게 말하는 것으로썬 부족하므로 탄식하며 한탄하고, 탄식 한탄하는 것으로썬 부족해" 마음 속 시의 환영을 좇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저 천 년 전의 고승 일연은『삼국유사』에서 '처용' 이야기를 쓸 때, 이 설화가 한 고향 사람 경산 출신의 까마득한 후인(後人) 여류 시인 정숙에 의해 다시『신처용가』로 태어날 것을 예견했을까. 인연의 고리는 이렇게도 연면한가?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