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나무꾼의 신고로 비상경계에 돌입해있던 군경의 불심검문에 걸렸으나 훈련을 마친 군부대 행세를 하며 계속 청와대로 향했다. 의심을 풀지않은 군경이 따라붙자 정체가 드러난 것으로 착각한 공비들은 기관총을 난사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뒤따라 붙던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즉사하는 등 우리측 군경에 피해를 입히며 세 갈래로 흩어져 도주하던 공비들은 경복고등학교 후문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공비측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김신조가 생포된 것은 이튿날 새벽 1시 30분쯤, 인왕산 기슭에서였다.
공비소탕작전은 31일까지 계속돼 27명을 사살했으나 나머지 3명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측의 피해도 적지않아서 민간인을 포함해 32명이 전사하고 52명이 부상당했다. 1.21 사태로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군사도로인 인왕ㆍ북악스카이웨이를 건설해 대비책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