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19. 국경마을
OOO 의전관은 이해하기 힘들다. 예전과 다름없이 행한 일에 대하여 유배라는 대가로 돌아온다. 사람들을 일부러 동원한 것이 새 여왕의 판단에는 죄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잘못이 없다고 항변해도 그로서는 이겨낼 재간이 없다. 평생 동안 국가의 법을 잘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죄인이 된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제1지하국가의 조직체계는 그를 죄인으로 다루는 것이다. 자유가 박탈되고 저항권을 행사하더라도 오히려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므로 심할수록 다칠 위험만 많아지니 일단은 생명보존을 약간 연장하기 위해서는 강제력 앞에 굴복을 해야 된다. 손에 수갑을 채우고 몸에 포승줄을 묶은 형편에 설쳐대면 입에 재갈을 물리고 통제하니 가만히 있어야 신체적 고통이 적다. 아무리 생각해도 죄인이 아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유배를 가는데 이 처참한 꼴로 끌고 가려하다니 받아들이기 심히 마땅찮다. 몸이 불편하여 벽에 기대거나 누우려 하면 대나무 작대기로 몸을 툭툭 쳐서 똑바로 앉아 있게 한다. 처음에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여겨지고 마음이 뒤틀릴 대로 뒤틀려 먹지 않았는데 그것도 안 먹으면 자꾸만 기운이 빠지고 엎어질 것 같다. 쓰러지지 않게끔 신체적 적응력을 관찰하고 있다. OOO 의전관은 살아오면서 잘못한 일들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착한 일만 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지금 당하는 일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그가 인간으로서 지나온 날들이 몽땅 옳은 일만 추구하면서 깨끗하게 살아오기가 힘들었다는 점은 인정이 된다. 부모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나쁜 태도를 보인 때도 있었고, 이웃이나 사회에 대하여 한 번도 불평불만을 품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죄악에까지 이르지 않는다고 해도 약간의 잘못은 포함된 인생이다. 그 죗값으로는 극히 심하다는 것이다. 죄인에 대한 교육이 시작되는데 모두가 위협적인 것들이다. 현재나, 호송 중에도 도망을 치면 죽인다는 것이다. 그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죄수들에게 똑같이 이야기 한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 깜짝 놀라서 새파랗게 질린 사람들이다. 국법에 따라 가만 있지 않고 도주하면 죽는다니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사형이 확정된다면 이래되나 저리되나 도망을 생각하겠지만 사형이 아닌 경우엔 절대로 도망을 할 마음이 생기기 힘들게 그에게 쐐기를 박아버린다. 죄수들은 사실을 들었다. 그것은 현재 상황에서 거짓이 아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여겼지만 이미 죄인이고 도망갈 생각은 안 했지만 아예 도망갈 마음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도망가지 않는 범위에서 그에게 허락되는 것들이 약간 나아지면 좋겠다는 구차한 지경의 사람이 된다. 포승줄을 좀 풀어주면 좋겠다. 수갑을 헐겁게 해주면 좋겠다. 벽에 기대더라도 때리지 않으면 좋겠다. 이런 형편이다. 어느 것도 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도 진수성찬으로 마주보게 된다. 하루 중에 두 번 밖에 아주 적은 양만 공급된다. 몇 겹으로 철문이 만들어지고 빙빙 돌아 감옥에 넣어지자 수갑은 채워두고 포승줄을 풀어주는데 그것만 해도 몸뚱어리를 움직이기 편하여 다행이라 여겨진다. 그 대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 시간이 또 지나자 수갑도 풀어준다. 그렇지만 석방되는 것이 아니라 감옥 안이다. 두 손이 자유롭지만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들어오던 대로 재판을 받는다는데 아무런 언급이 없다. 죗값을 정하여 적은 죗값을 받던지, 사형 이외의 가장 무거운 벌이던 그 중에서 그가 당해야 하는 재판이 감감 무소식이다. 그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도망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사형이라고 여길만한 그런 근거는 개인적 판단에서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감옥이 고생스러워도 죽지는 않는다는 마음이 들자 처음보다는 훨씬 견뎌내기가 쉽다. 그래도 죄인임을 감옥의 생활 때문에 인정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정하는 딜레마로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두 끼 식사만은 정확하게 제공되는데 가장 기다리는 것이 식사이다. 운동시간은 아직 없다. 오래된 죄수들은 하루 중에 반시간 정도 체조를 시킨다. 모범수들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시킨다. 그들에게 제공된 것은 최소한의 원칙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머릿속의 상상뿐이다. 솔제니친이 유배지에서 수학공부를 할 수 있어서 괴로운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수학적 상상은 구소련의 감옥에서 허용되기도 했다. 결과는 노벨문학상이지만 상상력은 죄수라도 가질 수 있다. 가만 두지 않고 심하게 졸면 대나무 작대기가 날아온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놀리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하는 모든 것들이 차단된다. 바깥의 소식은 깜깜하다. 오직 교육이 있는데 또 모아놓고 한다는 교육이 현재나 호송 도중에 도주하면 죽인다는 것이다. 기가 팍 죽어버린다. 죽고 싶은 죄수는 없다.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면서 죽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인 죄수도 있다.
유배지로 향하는지 또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는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끌어내어 다른 곳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햇빛을 보게 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그는 잠깐 동안 자연의 고마움에 감사한다. 햇빛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감옥은 처음부터 컴컴했다. 문을 따고 깊은 곳으로 갈수록 더 어두웠다. 식사가 제공될 때만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굶겨 죽이지는 않는구나 생각했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꼼짝 못하게 하고는 두 발에다가 족쇄까지 채워서 더욱 도망을 못 가게 만든다. 그는 그가 저지른 죄가 살인범이나 사형수를 다루듯 가혹하다는 점이 느껴진다. 족쇄를 채우지 않더라도 도망갈 의사가 없다. 잡히면 죽을 텐데 왜 도망을 가겠는가? 그것을 실천할 용기도 없는 사람이다. 호송을 하는데도 밖을 못 보게 하여 또 깜깜해진다. 지하국가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뺏어버린다. 국경 쪽으로 간다는 느낌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될까? 모르는 것은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감옥에서 외부와 차단되어 모르는 것은 대단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국법대로 처리하겠지만 두 끼 식사가 한 끼로 줄어들지, 국경마을로 유배를 보낸다고 하고선 가다가 어떻게 바뀌어 버릴지, 등골이 오싹해질 수 있다. 풀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그의 개인적 희망이다. 고분고분하고 반항을 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때리거나 억압을 행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교육이라는 것들이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여서 겁이 무척난다. 그는 소변이 마렵다. 대변이 마렵다. 용변을 볼 수 있게 몸을 좀 풀어달라는 요구만 할 수 있다. 그것도 그들이 허용할 때 그 때 하라고 하므로 쉽사리 해주지도 않는다. 똥, 오줌 누는 것도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따라야 된다. 왜냐하면 손과 팔을 쉽게 사용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호송관들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호송관이 죄수를 놓치거나 일부러 풀어주면 호송관도 죄수가 된다. 그들이 바보처럼 고통스런 죄수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과거를 생각해본다. 그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잠깐씩 꿈을 꾼다. 지나온 날들이 언뜻언뜻 지나가는데 깨어보면 몸이 부자연스럽게 되어 있다. 현실과 너무도 많은 차이가 난다. 재판도 못 받고 무슨 죄목에 구체적인 것들은 정확하게 모른 채 죗값을 치르려니 사람의 마음이 답답하다. 살인을 하여서 죄인이 되어 재판을 통해 정당한 절차로 벌을 받으면 죄인도 승복하게 된다. 분명히 잘못을 했고 그것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죗값을 받게 되면 끝까지 싸우다가 지칠 것이다. 싸우도록, 지칠 때까지 허용해주는 것이 국법이다. 그 과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당한 국가가 아니고 잘못된 제1지하국가법이다. 그는 죽을 것 같지는 않지만 확실치 않으므로 불안하다. 호송관들도 귀찮은지 죽는 것은 아니고 유배이므로 자꾸 묻지 말라고 한다. 그 자신이 현재에서 받아들여지는 죗값은 유배가 분명한데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1지하국가법이 재판 없이 사형을 감행하지 않으리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도 있다. 재판을 받고 싶다. 잘못했으므로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정식재판을 통해서 죗값을 받고 싶다. 어디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죄수들이라면 가장 원칙적 사항은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절차가 생략되면 무섭기도 하다. 계속되는 이동을 하면서도 마음이 밝지는 않았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눈을 가린 것을 치우고, 족쇄, 수갑, 포승줄을 모두 풀어주고는 등을 떠밀어 내려버린다. 갑자기 온몸이 자유스럽고 햇빛이 보인다. 자유가 온 듯하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황량한 초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들이다. 비좁은 감옥이 아니다. 노란 꽃들이 피어있다. 향기도 나지 않고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지천으로 널려 있다. 여기가 유배지인가? 그는 약간 이상스럽다. 머릿속에 그리던 유배지는 독사가 득실거리고,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모래가 뜨겁고, 물도 없는 사막이나, 황무지이며, 맹수들이 설쳐대거나, 망망대해로 막힌 무인도일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초원이다. 사헤라꽃이 만발한 사헤라땅이다. 첫인상은 과히 나쁘지 않다. 말로만 듣던 살육의 땅이라고 했는데 너무나 평화스러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현실이 이상하다. 유배지가 이렇게 자연조건이 좋다니 아직 더 있어봐야 알 수 있겠지 그렇게 여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유의사로 왔다가 갔다가 하면 더욱 좋은 일이다. 원하진 않았지만 좋은 듯한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라든지, 방향감각도 아직 찾기 힘들다. 생명의 위협은 없다고 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보아야 증명이 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똑같이 지평선만이 나타난다. 두 발로 어느 쪽으로 향할까? 선택은 마음대로이다. 행복이 기다리는 길이 어느 쪽에도 없어도 할 수 없고 무작정 길을 간다. 걸어가는 것이다.
그는 그가 만드는 원칙에 따라서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상황판단에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걸음을 걸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갇힌 공간이 아니므로 육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까지 초원을 걷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경치만 계속된다. 변화무쌍한 장면들은 한 번도 생기지 않고 처음 본 그대로이다. 무의미한 행진을 멈추고 휴식이 필요해진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무방하다. 온갖 규제를 받다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니 낯선 느낌이다. 그가 하던 일들은 정해진 대로 꼭꼭 지켜야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을 따져보면서 무슨 변화나 메시지가 있을 것인가? 기다려 보아도 완전개방의 개인의 판단으로 살도록 이루어진다. 그는 마음대로 행동해 본 사람이 아니다. 의전관이란 일 자체가 사람들을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교육시키고 실제로 행사 때는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고 연습했던 대로 하게 하는 직업이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의전행사 동안만 묶어두는 일만 해온 그로서는 멋대로 살라니 살아온 경험칙과 맞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그 자신의 뜻이나 마음을 나타내서는 안 되고 모시고 있는 사람에 맞도록 새 여왕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정하게 규정된 한도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끝나면 정리하는 것이다. 늘 하던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경향이 세었다. 그런 형편에 지침이나 방향이 전혀 그에게 전달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현재이다. 이것이 유배인가? 생각하니 어리둥절하다. 이리저리 헤매어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다가 어디선가 군인과 관리가 나타나더니 인적사항을 모두 조사하고 근처의 거처로 가더니 더 세밀히 알아보고는 정확한 판단이 섰는지 다시 다른 곳에서 확인을 거치고 다음으로 여러 가지 신체검사, 지문검사, 피검사를 해보더니 동일인라고 여겨지는 지 전직 의전관은 유배가 풀렸으니 자유인이며 죄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대로 제1지하국가로 돌아가도 되고 자유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는 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큰 동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일어났던 것은 모두 현실이었고 원상회복은 안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죄가 없으니 자유인이지만 예전의 직업을 가진 그는 아니다. 사람이 죄인은 아니나 원래의 직업인이 아닌 바뀐 그 자신으로 살아가야 된다. 어쨌거나 죄가 없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짐이 가벼워진다. 심리적 압박과 긴장은 일시에 해소된다. 잠깐 스치는 감정에는 무슨 책략이 숨어 있을까? 여겨보아도 그런 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 없는 부분이 된다. 여러모로 생각을 정리해 보아도 사람이 거주하는 땅으로 발길을 돌린다. 방향감각은 서툴지만 겨우겨우 제1지하국가의 텅텅 빈 국경마을로 되돌아온다.
그는 좋은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긴 기간은 아니지만 처참한 대우를 받은 원인이 된 곳이 국경도시 방문이다. 그처럼 험한 일이 발생한 근거였지만 또 발길이 그쪽으로 가는 것은 인간의 이상스런 심리이다. 오면서 본 다른 마을보다는 엄청나게 공을 들여서 많은 손질을 단시간에 했던 곳이라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니나 다를까 폐허의 건물보다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 덜 흉측스러운지 기거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 보는 민간인이다. 기력이 매우 쇠한 노인이다. 간사스런 인간의 심리는 금방 이 노인네를 내내 수발해야 된다고 생각되자 어서 떠나고 싶다가 다시 돌이켜 생각하니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양심적 울림이 나타난다. 아직까지 심사숙고하지는 못했지만 낯선, 아무 연고가 없는 노인을 평생 동안 보살펴준다는 것은 전직 의전관이 쉽게 판단내리지 못한다. 머잖아 그에게 닥칠 모습이라 여겨보니 한심스럽다. 얼마 지나지 않는 세월에 죽음이 다가오는 노인이 된다. 정말로 국경마을, 도시에는 어린이, 젊은 사람, 장년층이 없다. 오도가도 못 할 노인이 눈에 띌 뿐이다. 상황을 살펴보니 고생스럽게 이사 다니다 죽느니 있던 땅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려는 심사이다. 그는 국경마을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 속에서 공기를 마시며 살아온 그로서는 무인지경의 무인도보다 무시무시한 풍경 속에 갇히고 싶지 않다. 그도 죄인의 길을 걸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사람이지만 국경마을의 노인에게 지푸라기 역할도 크게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평범한 인간이다. 사람은 평범한 것이다. 자기의 자식들을 키우지 못해서 뻘뻘 매는 사람에게 아무 피도 섞이지 않은 고아를 키우려 하지 않는다. 너무 이상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보면 거지와 같이 살려고도 안 한다. 평범한 사람을 상대로 예수님이 되라, 부처님이 되라고 해서 그렇게 쉽사리 되지 못한다. 약간의 양심의 문제가 발동하지만 평생 내내 양심대로 신처럼 봉사하면서 희생하기는 어렵다. 그는 의전관으로서 새 여왕을 위하여 규칙대로 복종하면서 살아왔고 그러면서 기초적인 생활조건들을 구했다.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 친부모도 아닌 노인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행동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일반인이다. 그에게 비난을 퍼붓기에는 좀 곤란한 구석이 있다. 노인은 처음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 나왔다. 자식들을 키웠다. 그리곤 혼자 살게 된 인생이다. 이 노인을 제1지하국가가 부양해주어야 되는 현실도 있지만 거기까지 힘이 못 미친다. 일반적인 현상으로 노인은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다. 자식들이 죽었거나, 멀리 떠났거나 곡절은 있을 것이다. 그는 더욱 국경마을을 떠나고 싶어 한다. 늙어서 이 노인처럼 된다면 곤란하므로 한시바삐 사람이 많은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늙어 죽더라도 아무도 송장을 치워주지 않는 곳보단 송장이라도 묻어줄 남모를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이런 마음이 더 앞선다. 아무런 관련 없는 노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 시신을 묻어줄 형편이 못된다. 유배지를 벗어난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죽어버리면 송장도 묻어주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부터 움직이면 시체는 묻지 않을지라도, 화장정도는 해줄 것이란 예감이 든다. 자연 상태에서는 독수리가 죽은 동물사체를 말끔히 먹어치우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히말라야에서 독수리에게 보릿가루를 섞어 시체를 제공하면 이십분 이내에 해골까지 부수어 먹어버린다고 한다. 절대로 독수리는 생명이 있는 것은 먹지 않는다. 말이 심하긴 하지만 인간이 묘지를 만들지 않고 시신을 방치하면 독수리가 해결하므로 묘지로 땅이 모자라는 일도 없다. 사람은 양심과 법 앞에 평등하다. 맞는 말이다. 현실은 새 여왕과 의전관과 노인을 대우하는 방식이 확실히 다르다. 여왕은 명령을 내리고 의전관은 복종하는 일뿐이다. 노인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약간은 가지나 아주 깊이까지는 가져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국경마을과 도시와 그들이 사는 땅을 똑같이 대우하지 않는다. 차별화하여 행동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사람들은 능력이 닿는 데까지는 자신이 사는 땅을 선택하고 있다. 선택할 힘을 상실하면 노인처럼 국경마을이나 죄인들처럼 유배지에서 살게 된다. 그는 아직도 살고 싶다. 아직은 그의 삶의 선택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며 향유하면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짧은 기간이나마 유배지에서 살 뻔 했으므로 더욱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모여 사는 황량하지 않은 주거공간으로 찾아가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따지면 잘못된 현상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행동하는 그대로이다.
아주 애착이 가는 도시는 아니지만 더 나은 곳을 찾을 길이 없다. 살던 집으로 되돌아온다. 가족들이 반긴다. 원상태로 돌아온 가정이다. 풍비박산이 되었으나 제 자리로 돌아온다. 그에게 내렸던 유배가 풀렸기 때문이다. 도시는 일차집단이 모인 곳이 아니라 복잡다기하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살므로 상대방을 알아보기 무척 어렵다. 전직 의전관도 이름 정도만 바꾸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원래 아무런 영향력이 없지만 더욱 낯선 사람으로 마주 대하게 된다. 돌출된 행동만 하지 않으면 큰 애로사항은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현재론 직업이 없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다가온다. 가정에도 수입이 줄어들고, 활기도 많이 감소된다. 모두들 각자의 몫이 주어지는 곳을 찾아 나서지만 그는 나설 형편이 못된다. 많은 것들이 상실됐다. 만날 수 있는 사람, 어디로 가든 마주치던 것들과 남남처럼 느껴지는 이상스런 감정들이다. 공장에서 잘 돌아가던 기계가 고장이 나서 수리하면서 못쓰게 되어 빼낸 나사나 톱니바퀴처럼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쓸모없어 보이는 현실에서 이것이 그 자신의 모습인가? 생각하면 서글프다. 원천적으로 여자가 아니므로 온갖 여건들이 여왕이나, 혹은 왕으로 되기엔 불가능한 그였다. 평범한 사람 중에는 대단하다고 여겨질 의전관을 오래 했지만 결과는 이런 수준이다. 실직자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다가 어느 부류들이 모이는 노인세대보단 어린 축에 서서히 끼이게 될 것이다. 국경마을보다는 살기가 훨씬 편리하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건들이 많다. 대부분 공짜는 드물지만 형편에 맞추어 입장이 개방된 곳들을 찾아다니면 된다. 운동장, 공원, 공간 등을 둘러보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오곤 한다. 무슨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조건 주어진 시간이다. 정확한 시계추처럼 일과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운동장에 나온 사람은 겉으론 건강한 사람이다. 병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는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튼튼한 몸으로 많은 몸놀림을 하고 나이던 사람은 심하게 운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이 형성되어 하루 중에서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정해진다. 몸을 움직인다. 하루 종일 집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만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고 과거의 사람들과는 급작스럽게 연결이 끊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의전관이 아니므로 일하러 갈 수 없고, 일하고 있는 사람이 오지도 않는다. 그 외에는 매일매일 만나던 사람들이 아니다. 안면이 있는 정도뿐이다. 그것도 운동장에 나가면 몽땅 타인들이다. 그는 사람들이 꼬치꼬치 그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현재 상태는 기억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공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참으로 무의미하다. 따라오는 사람은 없다. 그를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다. 여왕처럼 의전관을 데리고 다니는 형편이 아니다. 철저하게 무용지물의 사람처럼 대우받는 현실이다. 사실 가족들도 그들 나름의 생활을 하여야하고 무엇인가 사회로부터 조그만 것이라도 구해 와야 살 수 있다. 그러니 그를 따라 다니면 만사가 헛일이다. 타인이 따라올 일은 발생할 수가 없다. 의전관의 나이든 모습은 별 것이 못된다. 사람이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누구도 인정을 안 해준다. 이름 없는 인생으로 끝이다. 그는 줄곧 돌아다녀 보니 모두가 그렇다. 인정받지 못한 인생뿐이다. 개중에는 의전관까지 인정받은 사람이 없다. 놀랄 지경이다. 삼천만 제1지하국민 중에 직접 여왕을 본 사람이 그가 만난 사람 중에 없다. 하릴 없이 무료한 그는 일반 지하국민과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다. 그는 몹시 혼돈이 생긴다. 정말 힘없는 의전관이었다고 하여도 일반 지하국민들은 힘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그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점이 있다. 그는 어쨌거나 제1지하국가의 지배구조의 상층부에서 일했던 의전관임이 드러난다. 의전관은 별것이 못되지만 지하국민과 살아가려니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식당이나 연회를 볼 것 같으면 모두가 하위의 것만 같다. 의전관이 생활하고 본 것들이 제1지하국가에서는 가장 나은 것들이니 지금 만나는 것이나, 보이는 것들이 모두 초라한 것들로 느껴진다. 사실 맞는 현상이다. 그처럼 발전되고 좋은 것으로 여겨지던 제1지하국가의 여왕이 생활하는 최고 모습에 비하여 지금부터 느끼지는 것들은 의전관이 행하던 것보단 나은 것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지하국민들은 여왕보다 훨씬 못한 상태로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직 의전관은 양쪽의 문화차이로 고민스럽다. 자꾸만 추한 모습이 지하국민의 낱낱의 현실이 되어 나오므로 자신은 무엇인가 잘못된 환경을 계속 조장하며 살아온 듯하다. 마주칠수록 괴로워하느니 보다 숨어서 모른 채 지내는 것이 마음고생이 덜 되는 것 같아 더욱 제1지하국가에서 지하로 숨어버리는 그가 된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귀를 막는 세월로 들어선다. 아무리 생활상을 안 보려고 하여도 봉사가 아니니 그대로 드러난다. 판단력을 마비시켜야 된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하지 못한다. 입을 봉하고 살기도 어렵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말을 안 하면 진짜 벙어리가 될 수 있다. 아무리해도 말이 나온다. 자연적 현상을 벙어리로 만들기가 어렵다. 귀머거리가 아니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의 말이 들린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온갖 문명의 이기들로써 귀에 들린다. 듣고 싶지 않아도 일방통행으로 들어야만 된다. 눈, 귀, 입은 아무리 은거를 하여도 속이지 못한다. 잠자다가 깨어나면 눈이 뜨인다. 그 눈으로 봉사가 아닌 다음에야 계속 무엇이던 보인다. 귀는 뚫려 있으니 온갖 소리들이 들린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는 방식대로 말을 안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환경이 바뀌었으므로 다른 세상이 그에게 인식되고 있다. 모든 것이 차단된 감옥 안의 사람들은 궁금하고 답답하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일방적인 알림으로 은거가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은거하여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여 제1지하국가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해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법을 지켜야 하고 온갖 일들이 듣기 싫어도 들려지는 것이다. 완벽하게 세상을 차단시키는 방법은 존재하지 못한다. 국경마을에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도 개인 개인의 신상자료는 모두 파악하여 관리할 지하국가이므로 죄수들이 도망가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은거를 하느니 차라리 세블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오히려 잊어버리기 쉬운 방법이다. 그는 세블국 이민은 고려하지 않은 단계이다. 사람이 일순간에 바보가 되기에는 대단한 충격 외에는 힘이 든다. 바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여도 뜻대로 허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을 그가 내려도 지하국가는 모두 바보가 되도록 하지는 않는 그런 이해하기 힘든 국가기능이 숨어 있다. 국가는 전 국민이 바보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되는 점이 포함된다. 물론, 세블국이 좋은 곳이란 것은 알지만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 세블국으로 가야한다고 지하국민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국가이기주의는 어떤 때는 바보가 강력하게 되지 않게끔 하기도 하고, 무작정 바보가 되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그나 일반 사람들의 개인이기주의는 지하국가의 국가이기주의를 이겨내기 어렵다. 어린 학생이 학교의 선생님을 원천적으로 이기지 못한다. 모범적 삶을 살아야하는 사람은 모범적으로 살기 어려워도 대체적으로 지켜가면서 살아간다. 너무 많은 부분이 노출된 개인도 은거를 원한다. 세상에 드러나면 날수록 불리해지는 사람도 은거를 억지로 하게 된다. 귀찮고 능력을 벗어나는 일로 다가와도 은거를 한다. 그는 현재 상태를 숨기고 싶었지만 그의 개인의사를 받아들이기 곤란해 하는 지하국가의 도시이다.
그는 그가 가는 곳에서 경계심을 낮추고 타인과 간단한 대화를 하는 수준까지 발전한다. 겉치레로 나누는 몇 마디로써 금방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도 무리이다. 심하게 작동하던 심리적 방어기제들이 다시 원상태가 된다. 끝없는 힘으로 솟구치기도 어려운 사람이지만 허무하게 일시에 주저앉았다가도 힘을 기울여 일어서려는 것이 사람이다. 대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인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밝은 얼굴이지만 분명 귀찮아하면서 억지웃음을 보이는 축도 있다. 그는 의전관이었으므로 억지웃음이나, 억지춘향의 흉내는 기가 막히게 훈련된 사람 쪽이다. 접촉을 해보면 초기단계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금방금방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으로 진실형, 무응답형, 반대성향이냐를 빨리 알아차리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까지 똑같은 것으로 이해하기까지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개인의 문제까지 포함되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하던 일에 비추어 사람들이 너무 무표정한 것이다. 늘 무표정하고 반대적 성향의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웃게 만들고 열광까지는 못가도 흥분하게끔 만드는 일이 짐스런 의전관의 몫이었다. 때로는 정숙하고 근엄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쓸데없는 행동을 못하도록 조치하곤 했다. 이제부터는 접촉하는 사람에게 강제력을 동원하지 못한다. 자발적인 의사와 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야 하는데 채찍은 동원이 불가능하고 당근도 없다. 그가 찾아먹을 부분도 시원찮은데 타인에게 줄 것도 없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노련한들 그의 접촉에 크게 반응하거나 귀를 쫑긋할 지하국민은 아주 적다. 갈수록 그는 전직 의전관의 한계에 직면한다. 전직 의전관이 사람을 부르지도 않지만 불러봐야 오는 사람이 없고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왕권한을 빌미로 하여 의전관이 일반국민을 불러내면 직장이나, 집에 없거나, 아프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 거절하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과거 지상국가에서 국왕의 초대장은 초대받는 개인의 의견을 묻지 않는 일방통행의 방식인데 그것과 비슷하다. 일방통행으로 행하는 군주권한에 어쩌면 위험이 내포될 수 있다고 여겨져도 거부하기가 ‘식은 죽 먹기’처럼 간단하지는 않았다. 제1지하국가의 새 여왕이 그처럼까지 심하진 않아도 호출에 거부할 권리를 멋대로 행사 못하는 지하국민이 많다고 보아야 된다. 여왕과 아무런 면식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점이 발견되지 않는 사람은 이상스럽게 여길 것이다. 나를 부를 이유가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겠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전직 의전관도 의전관 입장에서 접촉한 지하국민들의 반응이 처음에 곧바로 인정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정도가 아니라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몇 번 그런 초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반응이 처음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으로 변하긴 했다. 의전관의 권한도 없는 그이므로 일반 지하국민들을 길거리에서 만나서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나오느냐? 기껏해야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다. 그는 그만큼 힘과 영향력이 없는 개인이다. 그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궁리를 해보니 강자의 논리는 상대방과 그에게 아무런 필요가치가 없어졌다. 불러도 올 사람은 전혀 발생치 않을 것이고 먹을 것이나 얻을 것이 있다고 판단되거나 가여워서 한 번 와보는 사람이나 겨우 접촉인사로 나타날 현상이다. 그가 했던 일의 성격이 그랬으므로 약간 부조화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일반인들이야 만날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고 일부러 만남의 문제로 골머리도 썩히지 않는다. 그도 만남을 토대로 일을 벌일 이유도 없지만 가장 많이 해본 것이 그러한 일이므로 하루아침에 이제껏 해오던 직업적 행동들을 말끔히 청소해버리기에는 거리와 시간이 가로막는다. 적응력을 발휘하여 지하국가에서 유용하게 쓰이도록 그가 해낼 부분이다. 접촉은 아주 세밀한 계획까지 짜지 않아도 되지만 활동으로 바꾸려면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하여 해나가야 된다. 쉽게 친구가 되지도 않고 모임으로 가기까지에는 단계적 수순이 너무 필요하다. 그도 시간은 많고 꼭 해야 되는 절박한 일도 없으므로 부담 갖지 않고 꾸준히 해보는 것이다. 목표치가 정해져 있으면 조급함과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찌들겠지만 그런 형편은 아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면 여행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 는 의견제시를 한다. 마음에 있어 하는 사람, 원치 않는 사람, 무반응인 경우도 있다. 여행을 하려는 사람에게 행선지를 물어보면 구체적인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현상도 있다. 구체적인 경우에 국경도시나 국경마을을 선택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만난 사람 중에는 나오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사표시인데 그 종합을 해보면 지하국민들의 여행유형과 기호들이 판단된다. 국경마을과 국경도시들은 제 기능을 찾으려면 일반지하국민들이 스스럼없이 왔다 갔다 하게끔 자연적 현상이 일어나야 된다. 현재 그가 파악해 본 바로는 원치 않는 여행이다. 좋아 하지 않는 일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가는 잘못을 고치려면 그 자신이 돌이키기 싫어도 국경마을과 국경도시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그 스스로 사람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무가 생긴다. 분명히 도시보다 못한 것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뭔가 국경마을, 국경도시에는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된다. 떠나버리는 마음들을 엮어내기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지하국가와 지하국민의 공론이 변경지역에도 관심이 비치도록 여론화되어야 여행이나 개발의 계획이 가능하다. 그는 일부러 계획을 짤 위치도 아니다. 국가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일을 하기는 해야 된다. 일의 연결고리가 과거에 그가 생각했던 것들은 아니지만 현재 상태에서 거부감이 발동하지 않으므로 시간은 풍부하고 꼭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므로 하향 조정된 목표에서 하는 일이다. 기대치를 낮출수록 외형적인 모습은 초라해지지만 정신적인 압박으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는 의도적 관점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아무런 검증을 거치지 않고 무작위로 잡은 일거리이다. 국가가 통제하지 않음은 국가적 중요사업에서 빠진 일거리이다. 누가 큰 시비를 걸지도 않음은 아무런 소득이 없는 현상이다. 생선 중에서 먹을 만한 부분은 먹어버리고 남은 가시 부분이다. 국가가 관장하는 일에 지하국민이 참가할 수 있는 부분은 제1지하국가가 꼭 필요해서 징발하거나 협력을 요청하는 때이다. 그는 크게 소용이 못되는 존재이다.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도 반기어 역할을 맡기는 인사가 못된다. 그러니 아무런 성과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나타나지 못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지하국민들이다. 그에게 제1지하국가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는 때때로 하는 일이 바보짓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아주 소집단에서 그는 여행안내자의 위치를 찾는다. 사람들이 그만 보면 가기도 싫은 곳에 가보자는 사람으로 알아차린다. 그러니 계속 시비로 연결되면 말꼬리가 잡히니 어느 선에서 대화가 바뀌어 버린다. 상대방의 의도가 너무도 분명하므로 아무런 찬반을 유도하지 않는 것이 주제로 바뀐다. 그는 다른 소집단을 찾아가야 된다. 낯선 사람에게 또 좋다고 전파를 해야 된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도 약하다. 새 여왕의 목소리는 한 번만 발표하면 제1지하국가에 나타난다. 그가 발표하면 그가 만난 열 명도 못되는 사람들에게 먹혀들지도 못한다. 활동의 효과를 가장 높이자면 여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이고 그런 욕심은 아예 없다. 그가 만나는 지하국민들은 그 자신보다도 더 약한 목소리이고 의견을 나타내지도 못하는 수준도 포함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더니 열심히 활동하니 좋은 점도 있다. 동행자를 구하지 못해서 그는 혼자서 한 번 더 국경마을을 방문하기로 생각하고는 실천에 옮기려니 가족들이 무슨 일로 그러는가? 알아보고는 선뜻 동행하려는 의사표시가 없다. 그러니 독불장군도 아니고 부득불 혼자서 한 번 더 가게 된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는데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기고 지하국민들이 계속적으로 이동하게 할 수 있는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바보스런 점이 확실히 발견된다. 사람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하면 된다. 그도 예전에는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는 조금 대처방법이 바뀌어 동조자, 동행자가 없어도 일을 하게 된다. 신념화됐다기보다 마땅히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므로 사람들을 모아서 공론화시켜야 그의 활동이 공식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론이란 것은 지하국민들에게 올바른 쪽으로 흘러가면 일부러 꾸준한 노력을 쏟아 넣지 않았어도 그런 방향에서 논의된다. 정당한 공론이라도 향후의 질서와 일 때문에 중도에 자꾸만 저지되어지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개인의 논리에 머물러 있으면 큰 압력은 받지 않겠지만 공론이 된다면 반대쪽의 엄한 질책을 듣게 된다. 공론화의 길을 걸으려면 얼마 전에 생긴 후유증을 깨끗하게 잠재워야 되는데 그가 그것까지 소화시켜 낼 구세주는 절대로 못된다. 그러면 반대논리에서 엄청나게 모자라는 여론에서 나오는 힘의 공백을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는가? 사람은 실패를 거울삼아 또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민부의 대신들이 새 여왕의 여왕권한을 견제하는 마당에 그가 힘없는 여왕권한을 옹호하는 쪽으로 공론화의 주역으로 등장한다면 대민부 대신들의 수완에 떠밀려 정치적 보복을 받을 점을 그도 알아차려야 되지만 전직 의전관치고는 정치 감각이 몹시 둔한 사람이다. 직업 자체가 복종만을 해온 사람으로서 지하국민에 대한 머슴으로의 분골쇄신이어야 함은 마땅하지만 새 여왕의 의전관이었으므로 그 범위 안에서의 미세판단능력이지 거시적 판단을 염두에 둘 처지가 아니었다. 이제는 제삼자적 입장에 설 수 있는 기초토대이다. 하루아침에 과거의 경험칙이 제삼자의 관찰자 입장으로 돌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발 없는 소문이 천 리를 달리듯’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화답이 생겨주면 좋으련만 그런 기적은 전혀 나타날 징조가 아니다. 소수 의견이 막히지 않고 표현되는 것이 지하국가로서는 앞서가는 통치력이다. 그가 메아리가 없는 소수의 여론을 펼쳐도 탄압이나 잡아가지는 않으므로 현재까지는 미미한 존재이며 큰 두통거리로 대민부가 판단하지 않음이다. 공식화의 길로 들어설수록 약간씩 정치적, 문화적 감각이 발달된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스치게 되는 경향이 세다. 그가 처음에 만났던 일차집단보다는 관심의 폭이 느껴지는 쪽이지만 그들이 곧바로 의사표현을 나타내지 않는 성질도 있다. 서서히 전직 의전관 부류들처럼 그들의 세계로 가까워지는 듯하다. 아직까지 대민부의 의사를 표현하는 세력군과 개인적, 단체적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어도 그러한 분쟁거리가 터질 것이란 것은 둔한 그이지만 피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전관은 정치적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싸움은 여왕이 하는 것이고 그는 중심세력권 밖의 주변인물군이다. 드디어 대민부의 낮은 사람으로부터 그는 도전받는 기분을 당하는데 처음에는 상대방이 너무도 부드럽게 나오는 터라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세블국으로 이민을 주선해주고 좋은 조건들을 제시한다. 하는 일을 그만두란 압력도 없고 같이 해보자는 것이다. 세블국으로 갈 생각이 없으므로 시비가 생기지 않지만 같은 길을 협력하여 가자는데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안전의 문제, 상대방을 의심하는 태도, 이런 전제조건들이 없어야 협력이 가능한데 반대편의 성질인 듯 느껴져도 같이 하자니 곧바로 거부하지는 못하고 진실한 의도인지, 속셈을 판단내리기가 그는 어렵다. 그들이 그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호랑이굴로 그보다 월등한 힘으로 위장시켜 밀어 넣으면 그는 꼼짝없이 허수아비 꼴에 조종당하는 위치가 된다. 너무 힘없는 사람은 힘이 월등한 상대방이 합하자 하여도 오히려 잡아먹힐 것이란 위험을 느낀다. 그는 둔한 정치적 판단력에 그러한 육감이 느껴진다. 호랑이 새끼와 같이 살아야 된다. 원군이 없어서 쩔쩔매는 그이지만 대민부의 사람과는 손을 잡지 않는 현상이 당연하게 일어난다. 이것을 빌미로 공세를 취해 오는데 호의를 무시한다는 논리이다. 싫으면 싫은 것인데도 억지와 같다. 아편전쟁이나 정명가도처럼 억지로 사건을 만든다. 아편을 사들이는 국가는 없다. 강제로 사라니 안사겠다는 데 전쟁이 터진다.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비켜라 하면서 대군이 상륙한다. 길을 안 비킨다고 쑥대밭의 전쟁터가 된다. 그는 아편을 살 여유도 없고 길을 막으려 해도 군사도 없다. 대민부의 사람을 열 명만 동원해도 그는 십대 일의 싸움에서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그의 주장은 실제적 힘을 수반하지 않는 모래성이다. 상대방은 견고한 성을 갖고 있다. 싸움은 불리하다. 그는 볼품없는 패장의 신세와 같다. 장군의 수준에도 못 이르므로 더욱 비실비실하다. 아무런 힘도 없고 바보처럼 허물어진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생각해보니 이것은 비참한 심정 정도를 넘어선다. 동조자, 군사, 원조자, 현실을 이길 묘안이 나오지 않는다. 고작 최대한 방어한다는 것이 협력은 않겠다. 저항도 못하여 무저항이면서 잘 따라가지 않겠다는 주의 이외는 실천을 하지 못한다. 대민부의 대신들은 싸움이 너무도 싱겁게 끝나고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옹호세력, 뿌리를 받치는 부분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므로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것 같이 판단되기도 한다. 너무 힘이 없어서인지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흩뿌려지고 소리도 없이 끝나고 만다.
그는 곰곰 생각해보니 국경마을과 국경도시에 대하여 큰 반감을 가진 대민부의 견제 세력군이 과연 세다는 점을 현실로 인정한다. 대민부의 열 명의 대신들이 한 사람도 그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부터 해결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전체적 의사표시는 반대였지만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쪽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런 모험이 간단치가 않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되는데 그와 같이 고양이를 잡을 바보 같은 쥐가 많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국경마을과 국경도시를 그의 모든 것에서 지워버리고 손을 떼어버리면 된다. 하다가하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손을 떼려던 참에 OOO 대신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온다. 어떤 의도인지 확실히 알 순 없어도 반대하려는 쪽보단 어떤 사람이며 호랑이 굴에도 가 볼 필요성도 있으므로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 생각보다 국경마을과 국경도시의 발전에 관심이 있는 듯하며 여왕과도 자주 만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워낙 대민부의 대신들은 여러 가지 카드를 가지고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므로 단정하기는 곤란하다. 상당히 젊은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대신치고는 비교해서 여왕과 호흡이 맞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첫 번 만남에서 큰 기대를 해서는 금물인데 그는 상당히 기운이 회복된다. 수렁에 빠진 듯하다가 정상적인 길을 가는 수레인 듯 생각된다. 절대적 절망도 완벽한 희망도 아니다. 제1지하국가의 하늘에는 지상국가에서 내리쬐는 빛을 받아서 인공이 가미된 하늘로 존재한다. 너무도 낮은 하늘, 하늘이라고 생각하기에 부족하여도 사는 데는 큰 지장이 못된다. 그는 국경마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하국민에게 전하고 싶지만 낮은 하늘처럼 그도 아주 낮은 목소리이다.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귀를 몹시 쫑긋해야 된다. 귀를 쫑긋하여 귀 기울이지 않으면 OOO 대신이나, 그의 메아리나, 새 여왕의 생각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는 OOO 대신과 한 번 더 만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몇 번 더 접촉하여 그의 생각과 계획들을 알리게 되었고 그러므로 인하여 구체적인 계획안을 만들어 보게 된다. 결과적으론 OOO 대신을 통하여 새 여왕이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채택을 할 시점이다. 도시의 인구를 적정수준에서 유지하고 잉여인구나 잉여인구가 나오지 않으면 기존인구에서 삶의 터전을 이동하여 국경마을, 국경도시, 타 지역으로 균형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자발적 의사가 존중되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강제에 의한 인구재배치이다. 상당히 위험하고 무리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현재의 불균형상태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가 후에 터질 것이므로 미리 조치를 취해야 나쁜 결과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직 의전관 개인의 입안계획서는 OOO 대신의 사람들이 모여서 재검토와 수정보완이 이루어지고 최종적으로 새 여왕에게 전달되어 또 고쳐진다. 이리저리 다 바뀌어 원래 계획과 달라진 듯하나 근본원칙은 인구재배치이며 줄거리를 뒤바꾸긴 힘들다. 큰 골격은 누구도 뒤죽박죽 하기는 곤란하다. 제일 처음이 문제이다. 시범적으로 이주할 지하국민을 찾아내는 일이다. 채찍을 동원하기는 이미지에 먹칠이 되므로 또 실수할 위험성이 있는 당근정책이 나온다. 대민부의 대신들이 거세게 반발하므로 새 여왕이 선택할 방도는 보류결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새 여왕은 지하국민을 상대로 직접적인 호소 방법을 생각하는 수순을 찾는다. 여론은 새 여왕에게 불리하다. 세가 현저히 적은데 여론화에서 불어나지 않으면 강제, 독재화의 발걸음이 분명해진다. 세상에 집안싸움을 하고 싶은 사람이 없다. 대민부의 힘이 줄어들지 않으므로 새 여왕으로서는 항상 신경이 곤두선다. 제1지하국가의 전체적인 힘은 형편없이 줄어든 상황에 여왕의 독단을 견제하는 기능은 완벽할 만큼 작용되고 있다. 대민부의 힘은 지하국민들이 상당부분 지탱하므로 새 여왕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