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친구로부터 여유자금이 있으면 금속제품인 구리에 투자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솔깃해졌다.
그 분야 전문가인 친구 얘기로는 전기차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배터리를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구리가 귀한 광물이 됐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북미·유럽의 전기자동차 투자 증가와 함께 아시아 신흥국들의 전력·인프라 구축 붐까지 겹쳐 구리 수요가 증대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이 구리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얼마전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테슬라 등 다양한 다국적 업체들이 전기차 제품 출시에 나서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구리와 코발트, 리튬, 니켈 등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정거장을 짓기 시작하면 금속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무디스는 “만약 구리와 니켈 공급이 부족하면 전기차 생산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구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전망이 밝은 구리 가격이 최근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15일을 기준으로 보면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메트릭톤(1천kg)당 5천903달러에 거래됐다. 지난달만 해도 7천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도 구리 가격은 연중 최저치 수준이다.
왜 구리가격이 갑자기 떨어질까. 미국이 4차산업 인프라 구축 때문에 의도적으로 금속 값을 떨어뜨린다는 음모설이 나오고 있지만, 한마디로 구리가격이 주요생산국인 신흥국 경제와 강한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최근 들어 G2(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과 터키 사태로 글로벌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터키 리라화에 이어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웠고, 남아공 랜드화와 인도 루피화 등 주요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 이들 신흥국들은 중요한 구리 생산국들이다.
이 칼럼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미래 전망을 보고 구리라는 투자상품에 돈을 넣은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G2 무역전쟁과 이에 따른 터키의 화폐 폭락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터키 리라화 폭락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2배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비롯됐다. 터키는 한국과 같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관세폭탄을 무기로 휘두르는 트럼프의 펀치가 언제 한국을 향할지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터키의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거둬들이지 않아 이번에 보복을 당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터키사태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레닌이 말한 ‘약한 고리론’이다. 미국이 주된 역할을 맡고 있는 세계 경제 시스템 속에서 한국도 터키처럼 끊어도 되는 ‘약한 고리’로 분류되지 않을까라는 우려 때문이다. 부존자원 없이 수출로 하루하루 먹고살고 있는 한국은 안 그래도 약한 고리의 대표적 국가로 분류된다.
이미 미국은 외국산 철강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철강 산업도 무역전쟁에 휩쓸려 혼돈상태에 휘말려 있다.
전쟁의 속성이 그렇지만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부존자원이 없는 수출주도형 나라들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이처럼 잘 말해주는 사자성어도 없는 것 같다.(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