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화장품(K-뷰티) 바람이 지구 반대편까지 불고 있다. K-팝과 손을 잡고서다. “레드벨벳이 쓰는 화장품은 뭔가요?” 멕시코 등 중남미로 진출한 한국 화장품 매장에는 요즘 이렇게 묻는 고객이 많다고 한다. 레드벨벳은 5인조 걸 그룹이다. 이들은 아이돌 사진을 내밀며 “사진 속에 바른 립스틱과 비슷한 색을 달라”고 말한다. 덕분에 중남미 지역 한국 화장품 수출은 2016년 835만달러(94억원)로 10년 전의 8배가 넘는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북한은 어떨까.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한국산 선호가 유럽이나 미국, 일본 브랜드를 앞선다. 신부가 혼수품으로 한국산 화장품을 받으면 “시집 잘 갔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산을 받으면 “보통이네” 중국산은 “고생문이 열렸다”는 말이 돌아온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이설주가 한국산 화장품을 쓴다는 이야기는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나온 지 오래다.
K-뷰티 바람이 반도의 북쪽으로도 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북한 화장품이 요즘 변신 중이라고 진단한다. 바뀐 분위기는 북한 매체의 최근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1일 “김정은 동지께서 리설주 여사와 함께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시었다”고 보도했다. 또 ‘로동신문’은 김정은이 방직공장과 화학섬유공장은 질책했지만 신의주 화장품공장은 “소문 없이 정말 많은 일을 해놓았다”고 칭찬했다.
북한의 화장품 정책은 특별한 데가 있다. 국가주석 김일성 이래로 최고지도자의 ‘관심 산업’이었다. 김일성은 화장품 어록을 남겼다. 항일유격대 시절이다. “노획한 전리품 중에 종종 분(粉)이나 크림 같은 화장품이 섞여 있을 때도 있었다. 대원들은 이를 버리거나 발로 짓뭉개 놓곤 했지만 나는 이걸 분하게 여겼다….” 김일성은 여성 대원들이 전투 중 챙긴 화장품을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일까. 북한은 정권 수립 이듬해인 1949년 일찌감치 신의주 화장품공장을 세웠다.
스위스 유학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이후 랑콤‧샤넬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언급하며 북한 화장품의 품질 향상을 주문하고 있다. 할아버지를 따라 하는 지도자로선 당연한 행보일지 모른다. 독려와 지원 덕분일까. 신의주 공장의 ‘봄향기’ 브랜드는 북한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한 세트에 1000위안(17만원)씩 구매한다는 것이다. 화장품 수출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북한 제품은 어느 수준일까.
아모레퍼시픽과 고려대 통일외교학과 남성욱 교수팀은 2016년 북한 화장품 64종을 확보해 성분 등을 분석했다. 은하수 입술연지, 금강산 물크림, 봄향기 미안막, 옥류 인삼비누 등이다. 연구는 북한의 화장품 기술이 기초화장품은 국내의 1990년대, 색조화장품은 1980년대 수준으로 분석했다. 거기다 화장품 용기 뚜껑은 잘 닫히지 않고 디자인은 촌스러운 등 낙후된 ‘포장술’을 지적했다. 소비자를 끌어들일 디자인이나 마케팅 수준이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그래도 로동신문은 지난해 김일성종합대학과 국가과학원 출신 고급 인력이 화장품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보도했다.
경상북도와 경산시는 지금 화장품을 지역의 미래성장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지난해는 지역 화장품업체의 마케팅을 지원하는 공동브랜드 ‘클루앤코(CLEWNCO)’를 만들어 베트남에 첫 매장을 열었다. 대구한의대는 교육부 지원을 받아 K-뷰티를 이끌어갈 국내 최대 규모의 화장품 인재를 양성 중이다. 품질과 디자인, 마케팅을 망라한다. 학교 주변 경산시 여천동에는 15만㎡(4만5000평) 화장품단지가 조성 중이다. 산학 협력으로 K-뷰티를 확대시키는 전략이다.
북한 장마당에는 지금 한국산 BB크림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신의주에서 봄향기 화장품을 구입한 중국인은 “고려인삼 등 한방 성분은 괜찮은데 선물하기엔 좀 걸린다”고 말한다. 남북은 지금 새로운 경제협력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한류를 통한 K의 반쪽 끌어올리기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K-뷰티는 남북이 협력할 틈새가 많다. 화장품 경협을 떠올린 까닭이다.
(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宋義鎬 (언론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1985∼2017)
저서 『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