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면서 독서도 하고 더위도 식힐 수 있는 ‘서점피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구시내 백화점 대형서점에는 하루 종일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서인파가 북적이고 있다. 나도 요즘 주말이면 가족들과 같이 백화점 서점피서를 즐기고 있다. 모든 분야의 책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최근엔 나이가 들어서인지 개인의 역사를 담은 자서전류에 눈길이 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인사든, 장삼이사(張三李四)든 개별적인 삶의 역사가 궁금해서다. 다양한 자서전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움을 느낀 것은 개인 삶에 대한 기록을 도외시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이다.
돌아가신지 오래된 부모님이 생각날 때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부모님은 그 흔한 편지 한 장, 사진 한 장 남겨두지 않고 세상을 떠나셨다. 어릴 때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는지, 두 분은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셨는지…. 그리움이 커질수록 궁금한 것도 많아지게 되는 법이다.
사실 우리 부모세대 만큼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사람들도 드물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대기는 개인은 물론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의미 있는 자료가 된다. 그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양제국이 아니라 잔인한 일제의 식민지 생활을 경험했다.
광복 후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오면서도 기적처럼 조국 근대화의 업적을 이뤘다. 2차 대전 후 해방된 140여개 국가 중 석유생산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과 싱가포르만이 부존자원 없이 오로지 국민의 피땀으로 성장한 나라다.
식민시대와 좌·우익의 싸움, 그리고 전쟁. 폐허가 된 이 땅을 번영의 땅으로 바꾼 그들 개개인의 역사는 모두 우리 근·현대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는다.
그들이 어린 시절 받았던 빛바랜 상장과 성적표, 방학책, 일기장은 훌륭한 역사자료가 된다. 일제 당시의 삶의 흔적, 화전을 하며 근근이 버텨온 애환, 4H활동을 통해 농촌계몽 운동을 한 청년 시절 자료, 골목길을 넓히고 초가지붕을 개량한 스토리 등은 꼭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우리 부모세대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사진자료나 문헌, 경험 등을 기록물로 남겨 자서전 형태로 출간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냥 두면 소중한 개인의 역사자원들이 소멸돼 버린다.
지금은 많은 공공도서관이 자서전 쓰기에 대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다행이다. 지난 2014년에는 숙명여대가 전교생을 대상으로 ‘미리 쓰는 자서전’이라는 교양과목을 필수로 지정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었다.
당시 숙명여대 황선혜 총장은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오늘날 우리는 속도계 계기판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그 속에서 점점 자신의 고유한 색깔도, 자신감도 잃어가고 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마치 케케묵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넋두리로 치부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글쓰기를 위해 자신을 책상 앞에 놓는 순간부터가 자신과 세상 사이를 넘나들면서 가장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훈련하는 긴 호흡의 과정이라고 생각 한다”며 자서전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취업난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대학 4년간은 그래도 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울 때다. 자신의 생활을 하루하루 완벽하게 인식하면서 내면세계와 인간관계, 다양한 경험을 차분히 기록하는 작업을 해 보면 아마 눈부신 미래를 창조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일기를 써 봐서 알겠지만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꼭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은 개인의 다채로운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