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속에 집이 있었네
나, 라는 집
당신, 이라는 집
세상, 이라는 집
나,라는집에서두문불출하며곰팡이로피어있었거나
당신,이라는집앞을라일락향기처럼서성이던시절도있
었네이제세상,이라는집앞에서초인종을누르네
(길이,
무허가건물같은집들을들락거리며
일생의스토리를각색했네)
집을 떠나 길은 집으로 가네
태초의 자궁에서 풀어져 나올 때부터
길은 집으로 가고 있었네
몇 억겁의 윤회, 업처럼 들쳐업고
몸어둠에서 마음빛으로, 길의 어머니
그 피안의 환한 집으로 가고 가네, 길은
한국 현대시사 속에도 '길'과 '집'을 주제로 자신의 존재 흔적을 부단히 찾아 헤맨 수많은 시인들이 존재한다. 그 중 김현옥의 시「길, 그리고 집」을 주목하는 것은 시를 통해 한 여류 시인이 구도자의 길로 접근함을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보통 시 속의 '길'은 시적 화자의 내면적 성찰의 매개체이거나 인생길 의미한다.
시「길, 그리고 집」의 시상 전개 방식은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시법을 따른다. 먼저 1연 첫 행에 시인은 '길 속에 집이 있었네'라고 전제한다. 이때의 '길'은 '나, 당신, 세상'으로 확장되어가는 삶과 세속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다 밟고 간 생활인의 길이자 일상의 길이다. 시적 화자 역시 이 '길' 앞에 서성대며 부단히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 그러나 이내 이 '길'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2연은 매우 의미 있는 발상을 보여준다. 자아 탐색기를 시인은 숙성이 필요한 '곰팡이'로 표현했다. 2연은 시행 전체가 띄어쓰기 없이 통으로 붙어 있다. 시적 화자는 그만큼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고뇌기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다. 그 옛날 사랑에 몸부림친 청춘의 사랑앓이 병도 현재 시적 화자에겐 더 이상 유혹의 족쇄가 아니다. 마지막 4연에서 시인은 '집을 떠나 길은 집으로 가네'라고 진술한다.
비로소 속세를 벗어나 지금껏 그렇게 찾아 헤맸던 탈속의 지경에 이른다. 인간의 '집'에서 벗어나 구도자의 '길'로 시인은 방향을 잡은 듯하다. 고달픈 인간 내면의 길을 또 한 번 내려가고 싶어 한다. “길의 어머 그 피안의 환안 집”에 이르기 위해 지천명을 눈앞에 둔 김현옥은 가파른 시 수행자의 길을 숨 가쁘게 오르고 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