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홍천이 마침내 최고기온 섭씨41도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도 올 여름 대구는 더워도 너무 덥다.
‘대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신문에 연일 등장한다. 인터넷 다음 한국어에서 대프리카를 검색하면 ‘아프리카의 날씨처럼 지나치게 더운 여름철 대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돼 있다.
2014년 신어 자료집에 수록한 어휘라는 설명도 붙어 있다. 누가 처음 이 말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고담 대구’처럼 지역을 비하하는 뜻이 바닥에 깔린 것으로 의심되는 말이다. ‘폭염 아프리카’란 전제는 이른바 ‘섣부른 일반화’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못 견딜 정도로 덥다’는 게 사실이 아닌 것은 이미 여러 글에서 언급됐다. 아프리카는 54개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이다. 기후 등 서로 다른 자연 환경이 존재한다. 적도 주변이야 당연히 덥겠지만. 한국에 와 있는 앙골라 출신 한 대학생은 방송에 나와 “앙골라는 여름 햇볕이 따갑지만 한국은 습도가 높아 땀이 비처럼 몸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며 견디기 어려움을 말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더위의 결이 다르다. 대구 등 한국은 습도가 높은 무더위가 사람을 못 견디게 한다. 아프리카가 가장 덥다는 표현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과 무관심을 드러낼 뿐이다.
여하튼 올 여름 더위가 이제 끝나 가는 건지 중간 어디쯤인지 여전히 분간하기 어렵다. 견디기 어려운 폭염 속에 지역의 한 선현을 떠올린다. 피할 수 없는 처지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지혜일지 몰라서다.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 가면 도잠서원과 지산종택이 있다. 임진왜란 시기를 살았던 선비이자 의병장이었던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1545∼1609) 선생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지산 선생은 월천 조목, 학봉 김성일, 간재 이덕홍,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와 함께 퇴계 이황 선생 문하의 ‘6철(哲)’로 불린다.
지산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퇴계의 가르침을 받고 고향에서 도덕을 실천하다 32세에 불운을 맞닥뜨린다. 지역 유지로서 군적(軍籍)에 올릴 장정을 검사하고 감독해 달라는 경상 도사(都事)의 요청을 따르지 않아서다.
그는 당시 모친상으로 상복을 벗지 않은 데다 시묘 등으로 병이 난 상태여서 그 일을 수행할 형편이 못되었다. 지산은 바로 나랏일을 거역한 토호로 몰려 전 가족 이주 명령을 받는다. 관서 지역 평안도 강동이 유배지다. 지금의 평양 동쪽이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창원에서 강동까지 2000리 길을 편안한 얼굴로 떠났다. 유배지 고지산에 도착해서는 거처할 곳을 대강 지은 뒤 책 읽는데 빠져 들었다.
인근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관서는 나라의 변방으로 배우고 싶어도 선생이나 덕망 있는 사람이 드문 곳이다. 그는 20여 년을 머물며 그곳에서 숱한 제자를 기르고 지역을 교화했다.
『가례고증』을 집필하는 등 학문적 업적도 깊어졌다. 대표적인 제자가 대동법을 주창하고 효종 시기 영의정을 지낸 김육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그의 명망으로 관서지역 제자 등을 규합해 의병을 일으켰다.
굵직한 전과를 올려 형조정랑이란 벼슬을 받기도 한다. 선조 임금이 ‘관서부자(關西夫子, 관서의 대학자)’란 글자를 크게 써서 하사한 배경이다. 지산은 만년에는 성주목사 등을 지내고 선대의 고향 남녘 영천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한다.
그래서 그를 기리는 서원은 평안도에 두 곳(학령서원‧청계서원)과 영천 등 남북에 세워졌다. 지산은 퇴계학을 북쪽으로 확장시킨 주역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유배라는 불운이 없었던들 좀체 이루기 힘든 성과였다.
숙명이 된 대구 더위도 역설을 만들 수 없을까. 비슷한 이야기는 있다. 몇 년째 하위에 머물러 밉상이 됐지만 대구 연고팀 삼성 라이온즈의 여름 경기 성적이다.
삼성은 올해도 7월 들어 네 차례 3연전에서 2승 이상씩을 하며 중위권 판도를 흔들었다. 무더운 대구에서 자란 선수가 많은 삼성의 ‘여름 DNA'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혹여 말만 들어도 시원한 ‘수박 대구’ ‘아이스크림 대구’ 같은 것을 상품화하거나 축제로 만들 역설의 아이디어는 없는 걸까.(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宋義鎬 (언론인, 대구한의대학교 교수)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중앙일보 기자(1985∼2017)
저서 『청량산엔 인문이 흐른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