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16. 사 헤 라
제1지하국가의 다음 여왕이 뽑혔다. 새 여왕은 이십대의 어린 나이가 아니고 아기를 낳은 삼십대로 법률을 바꾸었다. 육아 때문에 여왕의 일을 하기가 힘들므로 최소한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아 간난 아기가 아닌 상태의 여인으로 기준을 삼았다. 새 여왕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인이다. 제1지하국가의 법률은 여왕이 독단적으로 국가대사를 결정하지 못하게 합의제 성격이 강한 견제기구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여왕권이 행사되는 과거보다 축소된 권력의 형식이다. 새 여왕 일행은 지하국가를 둘러보면서 사람들이 살다가 떠난 빈 공간들을 음산하고 우중충한 채로 놔둘 수 없어서 그 해결방안을 강구한다. 한 가정에 스물다섯 채가 넘는 거주공간으로써 땅이 주어졌다. 관리가 힘들어 능력껏 이용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서 도리어 방치하므로 지하국가가 관리해야 할 형편이다. 한 가정이 세 채 이상의 가옥을 배정받아도 사용할 능력이 부족하다. 어린이의 방을 매우 넓은 회의실만큼 만들어봐야 오히려 역효과이다. 전체 도시를 재정비하고 새롭게 꾸며야하는데 또 다시 다른 곳에서 삶의 조건이 변하여 사람들이 역류하여 몰려올 때까지 그대로 두기에는 대비책으로 적절치 않은 듯하다. 제1지하국가의 새로운 도시설계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지하국민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문제도 동시에 발생한다. 같이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견디고 있는 제1지하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 새 여왕은 그녀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거의 타의에 의해 여왕이 되었다. 처참한 일생을 마감하는 여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여왕계승권이 원하는 사람들이 자유경쟁을 통하여 그 자리를 차지하는 민주주의 방식이나, 변형된 형태의 지하국민이 선택하는 쪽으로나, 합당하고 투명한 쪽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함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닌데 초법적 장치로써 떠맡도록 강요할 때 진심으로 봉사하려는 사람과 다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음이다. 확실한 검증으로 다수의 선택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방법과 그와의 반대의 혈통주의 방식이 아닌 여러 가지 방법의 계승은 지하국가의 발전방식에서 적응력을 나타낸다고 느낄 수 있다. 제1지하국가는 내면적 문제를 따로 떼어놓을 경우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다. 사람은 외형적인 것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얽히는 것이다. 제1지하국가의 여러 가지 변화 중에서 남아있는 국민들의 술 소비량이 사건이 나기 전보다 무려 열배에 가까운 점이다. 그만큼 견디기 힘든 삶이란 증거이기도 하다. 먼저 술 제조 공정에 의약품을 취급하는 의료진이 개입하게 되어 술의 성분 중에 치명적으로 인간에게 해로운 물질들을 1/5로 중화시키는 약제를 섞어서 제공하게 된다. 난폭하고 우울한 심정의 사람들을 부드럽고 명랑하게 바꾸기 위한 대책들도 만들어간다. 제공되는 술에 성질이 난폭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전의 술과 다르게 아주 미미한 성분으로 국민의 심성을 순화하기 위한 약제가 첨가된다. 마약을 사용하면 더 나쁜 결과가 발생하므로 마약이 술과 혼합되는 것은 아니다. 답답한 심사를 바꾸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쏟아내도록 많은 운동장을 국가에서 만들어주고 사용하도록 권장한다. 습관적으로 너무 좁은 공간에 순응하여 살아왔으므로 운동을 넓은 공간에서 하는 일에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므로 이점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신중한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많은 토론을 거친다. 갑작스레 일을 추진하다보면 역효과로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 생김이다. 운동을 무지막지하게 원하는 쪽이 월등히 적은데 일의 진행이 강제적 성격으로 변질된다면 알 수 없는 방향으로의 문제제기이다. 예측가능한 길을 이제는 필요로 한다. 일이 추진되는 것들도 빨리빨리 하는 문화적 토양은 사라지고 아주 더디게 진행된다. 앞으로 더 이상 인구가 줄어든다면 어떠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가? 인위적으로 이민비행선을 가로막을 엄두는 낼 수 없다. 삶의 터전을 제1지하국가로 선택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국가정책이다. 지하국가 국민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국적시비나 애국심에 대한 싸움을 포기하는 이상한 지하국가의 기본방침이다.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도록 해주고 파괴적 상황을 원하지 않는 심층구조로 인한 것이다. 제1지하국가를 악착같이 지키자는 것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스스로 죽지 않는 땅으로 마음대로 옮겨가더라도 억압을 않겠다는 지하국민에 대한 간섭을 아주 줄인 형태의 정부이다. 모두 떠나버려 텅텅 빈 지하국가가 되어 도시로 바뀌고 하나의 조그만 도시보다 적어지더라도 그대로 살겠다는 제1지하국가의 팽창주의 노선의 포기이다. 얼핏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망하자’로 국가운영을 기본 축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갈 정도이다. 인명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거주이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여 마음대로 살아보란 것이다. 살다가 못하면 돌아와도 무방하다. 굳이 제1지하국가가 낙원이라고 이야기할 이유도 없다. 애국심을 자꾸 들먹일 것도 아니다. 어차피 비행선으로 몽땅 사람들이 떠나버리면 무정부상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이제는 이민선을 타는 사람이 한계에 다다랐고 살 수 있다는 심정이 약간 있으므로 떠나는 사람도 돌아오는 사람도 안 생기는 현상정체단계이다. 새 여왕은 죽음의 전개상황에 민감하다. 앞선 여왕의 끝맺음처럼 인생이 마감될 수 없음이다. 이왕이면 자연수명을 누릴 수 있게끔 여왕의 재위기간이 문제되지 않는 쪽으로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추진하는 일들이 과감하고 쾌도난마식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은 드물다. 지하국민들의 심리적 기류가 저기압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정책방향도 180゚ 반대로 이끌어가지는 못한다. 음울하고 무거운 공기는 자연적인 조건을 개선하더라도 쉽게 바뀌질 않는다. 인위적인 동원수단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미칠 파급효과와 일이 뒤틀릴 가상변수와 문제점을 있는 만큼, 상상할 수 있는 범위까지 검토하므로 시간적으로 늘 더딘 수가 많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과 같이 섣부른 결정을 잘 내리지 않으므로 새 여왕이 하는 일은 우유부단한 것들이 많다는 측근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새어나온다. 지하국민들의 여론이 빨리 발전하기를 바라야 그와 같은 일이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두들 살만큼 사는 입장이고 일부러 고생을 자청하여 바보 같은 생떼죽음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한 과정 속의 판단과 시비꺼리들이 만들어지면 새 여왕은 하나도 좋은 일로 연결고리가 생기지도 않은 것이므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라는 신중한 정도를 넘어서서 지하국민들과 비슷한 움츠려든 모습으로 살아간다. 새 여왕 자신도 심리적으로 푹 가라앉은 날이 하루도 아니고 여러 날을 넘어서서 매일 매일로 이어지자 당황스럽다. 영영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을 기대해서도 안 되며 그렇게 일 년이고 연장될 수 없다. 남편과의 애정도 변해간다면 새 여왕이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직업이다. 잠자리에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남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전에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사랑의 행위들이 이제는 의식적으로 쾌락을 찾아가는 점이 복합이 되자 자신의 내부세계와 성적욕구가 서서히 노골화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형편이다. 여왕보다는 남편과 재미있는 사랑 놀음이 훨씬 나은 젊은 여자이다. 그녀는 아직도 혈기왕성한 힘을 지니고 밤마다 남편의 품에 안기어야 마음과 몸이 안정되는 샘솟는 정열의 여인이다. 지하국민들의 밤의 잠자리에 대한 통치상의 어떤 대책도 살펴본 적은 없다. 개인적인 경험칙으론 아마도 출생률까지 낮아진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날 관계 담당관을 불러서 알아본 즉 인구감소에다가 태어나는 신생아의 숫자도 몹시 감소한 사실이 증명된다. 인구증가의 기본계획도 마련해야 된다. 타 지역에서 이민을 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빠져나가는 것은 막지 않는 것이 국가의 기본방침이다. 모든 조건들은 그냥 나가도록 만들어 놓고 국민의 수를 늘려야 하는데 멋진 아이디어는 예전에 다 만들었고 신통한 정책도 아니다. 저절로 예전 정도의 출생률이 되도록 하는 방안이 가장 안전하다. 새 생명의 탄생은 제1지하국가의 정치적 안정과 국민들 개개인의 심리적, 경제적 조건들이 순조롭고 안정된 상태라야 가장 바람직한 신생아 출산과 관계된다. 전쟁이 터지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부모들인 성인 남녀들이 죽는 상황에서는 낳은 아이들마저 고아신세가 되고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불과 3년 정도의 전쟁을 치르는 곳에서 60만 명의 전쟁고아가 거리를 헤매고 거지 떼를 따라다니는 것이 다반사이다. 60만 명의 고아가 생겼다면 부모가 많은 자녀를 낳았다 해도 많은 어른들도 죽어버린 것이다. 만약 간난 아기라면 어른이 될 때까지 이십 년 동안 국가는 음으로 양으로 지탱시켜야 한다. 다 망가진 나라가 어떻게 굶주리는 60만 명의 전쟁고아를 보살필 수 있겠는가? 고아수출이라는 기괴한 불명예가 되살아난다. 제1지하국가는 스스로들 더 좋은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산가족이 너무 많은데 가족단위가 아니라 이산국가가 돼버렸다. 지하국가를 뒤덮고 있는 피의 공포에 따른 음산한 기운은 새로운 여왕이 어떤 노력을 퍼부어도 말끔히 치료가 안 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팔다리가 잘린 사람에게 아무리 마음으로, 정신으로, 돈으로 온갖 것을 다 해준들 그 사람의 가슴속에 잘려버린 팔다리가 다시 생기지 못한다. 제1지하국가에는 거지 떼와 밥을 구걸하는 60만 명의 전쟁고아는 없다. 한 가정이 스물다섯 채의 집을 더 가지게 돼도 관리를 못해서 이용률이 형편없다. 부족하여 피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떠나버린 자의 빈 공간이 그들에게 돌아온 몫이지만 소비력과 개인들의 능력의 한계로 인해 황폐한 지경이다. 아무리 식욕이 왕성한 사람이라도 한 끼 식사를 세 배로 하여 한 번에 밥 세 그릇을 먹기는 힘들다. 그래서 정력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평균치의 인간보다 성행위시의 힘을 빼는 일만 하다간 제 명을 지키지 못하고 병이 더럭 날 수도 있다. 제1지하국가로서도 ‘하루에 아홉 끼의 식사를 하여 넘치는 힘으로 많은 아이를 낳으시오.’ 이런 것도 통할 수 없다. 지상국가의 어떤 나라 중에서 수 백 만의 전쟁피난민이나 전쟁고아들이 생기는 곳이 있는가? 생각을 하면서 외교관들을 통하여 알아보아도 엄청나게 많은 전쟁난민이나 환경난민이 다른 곳에서도 생길 수는 있었으나 빈번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기후난민, 가뭄난민, 홍수난민, 공기오염난민들에 대한 보도는 늘 있기는 했다. 제1지하국가의 사건은 어마어마한 인명이 죽은 것만 잘 알고 있고 거기에 가다간 또 그런 변고를 당할 지도 모르는데 당치않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대부분 외교관들의 공통된 줄거리이다. 지하국가를 떠나서 자기들 있는 곳으로 오면 더 낫지 않은가? 반문을 했다는 것이다. ‘혹 떼려다 혹이 더 붙고’ 체면치레가 아니라 한심한 지경이 됐다. 전 우주에 우스개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지하국가보다 나쁜 상황이 있는 곳이 전 우주에 없다. 새 여왕은 고아는 왜 생기는가? 의문부호를 풀어보니 전쟁고아, 전염병으로 인한 부모의 죽음으로 생기는 고아, 천재지변으로 일어나는 고아, 아주 파렴치한 부모들이 내다버려서 생기는 고아들이 있다. 지구상의 인간들의 기준에서는 사실, 고아를 만들기 전에 이미 피임으로나, 낙태의 방법으로 엄청난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없애 버렸다. 산아제한의 의술이 발전하지 못해서 낳아서 고아로서 기른 과거의 국가가 도덕적으로 나쁜가? 산아제한 방법을 동원하여 인위적인 출산억제책으로 고아를 줄인 그 뒤의 국가들이 나쁜가? 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산물들이다. 60만 명의 전쟁고아들을 떠안고도 이십 년의 세월을 이들을 먹이고 입혀서 배가 고프지 않고 다른 나라에게 양식을 공짜로 줄 정도가 되었다면 얼마나 밤낮으로 열심히 피땀을 흘렸는가? 간접증명이 된다. 다른 배부른 나라에서 긴 기간을 굶어죽지 않도록 무엇인가 공짜로 주었다는 배경설명도 유추될 수 있다. 여왕은 굶주림, 공간문제, 출산문제 등은 해결점이 가까운 것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제1지하국민들을 정신적으로 침체된 것에서 밝게 일어서도록 하는데 대책을 세워주지도, 가르쳐주지도 못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지나간 일이 앞으로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 과거는 집요하게 여왕의 현재를 붙들어 매고 있다. 없던 일로 하자. 이것이 안 된다. 어렵고 고통스런 것은 잊어버리자. 안 잊어지는데 어떻게 하나? 제1지하국가와 제2지하국가는 잊어버리자 주의를 열심히 해나간다. 잘 잊어먹지 않는 사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이며 자신들이 학습한 내용도 48시간 이내면 거의 잊어버린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은 잘 증명해준다. 어린 학습자라도 그가 학습한 것들을 48시간 이내에만 간단히 기억을 재생시켜주면 뇌 속에 각인된 정보는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48시간 이내에 학습한 것을 복습하지 않았으면 몽땅 잊어버렸을 텐데 너무도 처참한 살육이 48시간 이내에 망각되지 않고 오히려 반복 재생되어 전 우주의 사람들에게 학습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꽃을 뿜고 살기등등한 전쟁터도 72시간 이상 사흘밤낮 이상으로 사람들이 전투를 하지 못한다. 강인한 체력과 음식과 무기들로 무장한 군인이 72시간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진다. 인간들은 정신구조상 48시간과 72시간을 넘어서지 못하는 생물이다. 남태평양의 과달카날에서 미군과 일본군은 사흘 이상을 육박전을 할 수 없었다. 북한군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지만 나흘째는 한계점에 도달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실인즉, 남한에서 한강 다리도 급박하게 폭파했다. 김일성은 유엔군이 북한을 점령하여 자신이 책임추궁을 당할 위기상황에서 북한 선봉군이 나흘째 계속 남한을 압박하지 않았다고 억지주장으로 살아남았다. 결과적으로 가장 유능한 장군을 숙청했다. 남한으로서는 기억하기 싫은 사람이라 잘 알지를 못한다. 히틀러가 사막의 여우 롬멜을 죽인 것이나, 선조가 이순신을 백의종군 시킨 것이나, 박정희가 월남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채명신 장군을 외국 대사로 곧바로 임명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나, 풍신수길이 장군들을 조선으로 보내 거의 죽게 만들거나 비슷한 측면이 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불가능한 일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국경선이 텅텅 비어 있어도 침략하는 군대나 승전고를 울리며 땅을 회복하는 군대도 사흘밤낮 잠도 안자고 전투를 하면서 나아가지를 못한다. 72시간 한계상황에 이르면 그 거리 이상에서는 무방비상태의 적진이라도 제풀에 군대가 서버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눈을 잠깐 붙여야 한다. 72시간 지치지 않은 다른 군대가 재투입되어야 72시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여왕은 제1지하국민들에게 72시간 이상을 지탱하는 비법을 내놓을 수 있나? 그것이 없다.
여왕은 통치를 할수록 그녀가 생각하지 못하던 벽에 부딪힌다. 전직 여왕이 했던 것들을 잊어버리도록 파묻어버리려고 하면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여 다시는 재발이 안 일어나게 해야 하므로 동의할 수 없으며 잘못이 드러나는 갖가지 증거들을 그대로 두어야한다는 것이다. 전혀 고려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맞는 말이다. 잊어버리기 위해 증거를 없애고 마음 편하게 살자고 하여도 그렇게만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옳은 것만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잊어버리려는 노력에 증거를 남기자는 노력을 반반으로 이루어가는 역사발전법칙을 채택한단 말인가? 여왕은 잘못된 과거지사를 없애버리고 싶다. 무조건 없애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한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도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지워버리기에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신념체계로 바뀌어져 있는 마음을 바꾸라고 강요한들 쉽사리 바꾸지 않을 것이다.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십만 명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신념체계를 바꾸어서였을까? 꼭 그렇게 판단하기도 곤란하지만 생명의 위협에 아주 민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왕으로서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가치문제를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다. 삼천 만 명의 각기 다른 생각들을 다 맞출 수 있는 비법이 없다. 아주 정밀한 여론조사를 통하여 심리적 강제를 동원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도록 하여 지하국민들의 마음을 파악하게 된다.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지하국민들이 정상적으로 의견을 표시하여도 아무런 제재가 없게 하여야 하며 너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지도 않아야 된다. 98%~99%나 찬성하던 사람들을 자유스럽게 판단하도록 검증해보면 불과 30%~40% 수준이 고작이다. 심한 경우에는 5%의 지지도 안 나오기도 하는데 강제적 수단이 동원되면 모두가 찬성했다고 둔갑된다. 혜택을 느끼고 있는 쪽이라 여겨지는 곳에서도 30~40% 지지도면 최고치에 육박한다고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지하국민이 100% 찬성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한심스러운 것은 투표를 하는 사람보다도 더 많은 숫자의 사람이 지지한다면 무엇인가 실수를 넘어서 상당히 중요한 시비꺼리가 된다. 민주주의 제도는 이렇게 검증한다고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타국의 침략이나 천재지변의 경우에는 이렇게 느슨한 쪽으로만 대처할 수 있을까? 생각도 되겠지만 거기에 맞는 조직이 가동된다. 민주주의적 의사표시를 하도록 해야 하는 상황에 조직의 성질이 다른 특공군대조직 원리를 동원하면 사람들은 겁이 나서 싫으면서도 말도 못하고 찬성표를 던지는 엉터리 여론을 만들어 버린다. 지하국가에서는 이런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전직 여왕의 부끄러운 부분을 말끔하게 벗어던지고 새 출발을 하려는 새 여왕에게 발목을 잡고 과거지사를 반성하고 증거를 남겨야 된다고 투표로써 의사표시를 하니 우유부단한 여왕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독단을 취하지 않아야 되는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지경의 여왕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결정권을 가진 존재이다. 독단의 우로 인하여 고생한 경험으로 인하여 여왕의 왕권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무수히 많다. 여왕도 사람이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지하국가를 이끌어가고 싶지만 그럴 능력과 지지를 해주지 않는 통치구조이다. 가장 원시적인 문제인 여왕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신하들은 여왕이 마음대로 임명한 것도 아니고 각 지역을 대표하여 올라온 사람들이다. 원치 않는 상대방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된다. 간혹 여왕의 생각과 같을 때도 있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그녀로서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하면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다. 생각과 너무도 거리감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는데 여러 가지 실제적 자료와 모든 것을 해박하게 알고서 대처하는 전문가들을 여왕이 능가할 수 없고 여왕이 아는 능력은 이들을 종합한 것인데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제1지하국가의 능력이다. 총체적 지하국가의 능력을 새 여왕이 대리하여 그런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힘의 총체적 모음은 대단한 것이다. 사람이 하루에 3km를 걷거나, 뛰거나 이동을 하는데 열흘이면 30km, 한 달이면 90km이다. 빠르게 하루 종일 걸으면 30km도 걷는다. 제1지하국가의 삼천 만 명이 하루에 3km를 일률적으로 이동했다면 그 거리는 구천 만km에 달한다. 이와 같은 논리전개를 하면 모든 것은 거시적 측면의 고찰이 된다. 적절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구천 만km의 길에 행복의 수를 놓도록 만드느냐? 그런 문제이다. 파괴의 반복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필수록 여왕은 단독으로 결정을 내려서는 곤란하고 전문가나 여론의 평가 자료들을 참고해야 되는 부분들이 확실해진다. 그렇지만 왕권을 강화하려는 기본적 권력응집력이 존재한다. 여왕으로서는 견제적인 자문역할을 정상적으로 하는 보좌관들의 여러 문제에 시비를 걸어서는 곤란하다. 심리적으로 여왕 자신이 허수아비란 느낌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가끔씩 잘 짜인 계획표에 이끌려가는 모습이 싫어진다. 정치적 해결책들은 일반적으로 계획구도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법령이나 예산집행은 사전에 따져보고 검증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들이다. 관료조직의 경직성도 금방 어떤 목표들을 바꾸진 않는다. 여왕이 변덕을 부리면서 잘 짜인 계획표를 뒤바꾸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제1지하국가의 미래지표들은 이미 청사진이 드러난 셈이다. 여왕의 시대가 끝날 때에 이렇게 될 것이란 예상 발전모습들이다. 거기에 못 미칠 것도 있을 것이며 의외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간혹 여왕은 자신의 하루 일과를 바꾸거나 귀찮은 것은 미루거나 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몸이 아프거나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일 때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만 내심으로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도 강짜를 부릴 때도 있다. 벌써 다 만들어진 내용이나 일들에 장식용으로 여왕이 필요한 형편이라면 아무리 선한 공적을 쌓는다지만 여왕도 그녀의 왕권을 펼치길 바란다. 여왕을 보좌하는 측근들은 하루 중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대비책으로 이중삼중의 일과계획을 마련하여 나날을 보낸다. 이것도 뒤틀릴 공산이 크다. 여왕의 마음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여왕이 거처하는 처소에서는 가능하나 대궐 밖으로 나가는 경우에는 변덕이 너무 심하면 일거리가 무척 많아진다. 대궐 밖에서의 활동은 대부분 사전포석에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므로 앞서의 경우보다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여왕으로서는 신변안전에 대한 염려도 은연중에 느끼므로 돌출행동이 많아진다. 여왕의 마음이 별로 반영되지도 않으니 신하들의 모든 것을 쉽게 믿지도 않음이다. 제1지하국가의 상층부는 불신으로 이루어지고 이끌어져 가는 불안정한 구도이다. 아울러 지하국민들은 더욱 제1지하국가의 어떤 것들도 잘 믿지 않는다. 수직적으론 여왕, 신하, 국민의 왜곡구조이고 수평적인 지하국민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흐름이 흐르기에는 시간이 흘러야 될 사정이다.
이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 제1지하국가를 건설할 때 강제노동으로 고생하다가 겨우 몸이 나아질듯 하다가 묘지건설에 많은 사람들이 가서 죽어버리고 또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세블국으로 가버렸다. 그는 이곳저곳에서도 이동하기에 선뜻 아픈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주저앉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제1지하국가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쩔 수 없어서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형편이 이러니 의사전달을 할 생각도 없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텅텅 빈 공간들을 바라보면 스스로들 좋은 곳을 찾아 잘들 떠나고 있지만 그도 제1지하국가로 온 것은 살기 위해서 왔다. 그래서 지하에서 죽지 않고 겨우 살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움직이지 못해서 묘지건설에 가지 않아 새옹지마가 됐지만 세블국에 갔더라면 어떻게 인생이 바꿨을지 알 수 없다. 그로서는 공짜로 주는 스물다섯 채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있던 집까지 합하니 서른 채 가까운 집이 정말로 거추장스럽다. 아프다 한들 누군가 와서 간호하고 도와줄 사람도 점점 적어진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노인이나, 병자에 가까운 사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쪽, 이런 부류의 사람이 많은 편이다. 지상국가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았다.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 고생을 하면서도 잘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 범죄행위를 당하고도 아무런 대응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사람, 앞으로의 일생을 속수무책으로 사는 사람, 수입이 하나도 없어서 세간을 팔다가 그것이 떨어지자 갈팡질팡하는 사람, 문제성 있는 사람들이 모두이다. 그중에서도 상황이 극히 나쁜 사람에 속하는 부류가 지하국가에는 많이 남았다고 판단 지을 수 있다. 언제나 무반응인 사람도 있다. 반응을 나타내보아야 아무런 득이 없고 오히려 피해만 생기는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도 무표정의 얼굴이다. 강대국이나 다른 나라 속에 들어가 힘겹게 살아가는 소수민족, 이민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무표정의 세월을 살아간다. 자기가 사는 곳이 조국이 아니므로 싫지만 싫다고 할 수 없고, 조국으로 가자니 갈 수 없거나, 가본들 더욱 비참해진다면, 심리적 파탄을 짊어진 채 그대로 사는 것이다. 제1지하국민들은 누구나가 영혼에 상처를 입은 듯 심리적 파탄의 굴곡이 미미하게 스며있다. 속속들이 속마음을 몽땅 끄집어 내어버리면 오히려 급작스런 붕괴가 일어날 사건도 생각하면 갈수록 멍든 부위는 곪아든다. 파국을 막아내는 방법에서 주장을 숨죽이고, 양보하고, 수구려 떨이면서 지하국가의 공기와 흐름이 음울하고 이상스런 형편으로 이루어진다. 뭔가 다른 것 같다. 어쩐지 찜찜하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변수가 밝은 편에 적게 분포된다. 그는 큰 목표를 세울만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다가 큰 꿈을 말하면 주위의 사람도 없지만, 듣는 이는 더욱 없지만, 들어본 사람은 아주 우습게 무시를 한다. 그는 말이 없어지고 표정도 없어진다. 제1지하국민들은 갈수록 말이 줄고 표정은 어두운 것 같다. 입을 뗐다하면 좋은 것이 안 나온다. 해봐야 고통스런 결과에 대한 것들이다. 사람이 고통과 아픔도 너무나 오래 계속되면 잊어버리게 된다. 불편한 일도 당연시되면 불편한 줄 느껴지지도 않는다. 노인들일수록 갈수록 살기는 좋아지고 편리해져도 그만큼 심리적 곡선들을 빨리 따라 붙이지 못한다. 그도 그렇다. 심리적 직선들은 성직자나 판결을 내리는 판사에게는 엄격하게 요구되는 것들이다. 직선적 개념은 명확 정밀하다는 것과 통한다. 원리주의 사고패턴이다. 모든 계획과 법령은 여왕에게는 심리적 직선들이다. 이 힘겨운 심리직선형 행동적응력이 대단히 고통에 다다른다. 그렇다고 노인이나 뒷걸음질 치는 아픈 사람인 그가 느끼는 심리적 곡선, 심리직선이 아닌 심리곡선의 현실 상태에서의 만남도 힘들다. 누구는 심리직선형의 삶에서 어느 정도 성공, 출세하였다라고 할 때 그와 같을 수 없는 수많은 일반국민들은 심리곡선의 괴로움에 시간을 보낸다. 심리곡선, 심리직선에도 들어가지 않는 무사고형 심리변형 타원도 존재할 수 있다. 심리변형 타원의 생활을 하는 집단은 분리하여 사회와 다른 묘지건설 후 생긴 신도시에 모두 보냈다. 심리직선형 나날에 가슴이 답답한 여왕은 바깥으로 놀러가고 싶어서 길을 나서면 준비상태가 미비하니 시간을 달라고 가로막는 여왕 측근들을 상대해야 한다. 예정행로 수시변경은 신하들이 제동을 거는 구조이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윤리 규범적 가치질서를 신봉하는 사회와 무엇이던 된다는 무규범의 땅에서 사람들은 후자 쪽을 바라볼 공산이 클 수 있다. 심리직선을 완전하게 버리고 무위자연에 합당한 천의무봉한 상태로 완전한 해방인으로 살 수 없는가? 그런 마음을 품으면 신천지로 날아가야 하건만 아프고, 형편상 곤란한 지경인 사람들은 내리누르는 힘의 논리 앞에서도 인정하고 살아가는 심리직선형 행동이 나온다. 대부분 자신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의 정신구조를 동원하여 받아들인다. 다핵성 정신질서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능력은 기본적 기능과 오랜 세월의 경험칙이 합하여 나타난다. 여왕은 단핵성 사고유형에 빠지므로 경험칙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심리직선형 각인을 하는 측근은 발견하기 정말로 어렵다. 이런 이야기는 밖에만 나가면 퍼져 다니는 소문들이다. 있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원리주의 직선사고와 심리직선의 행동이 한 치의 오차도 만들지 않고 살아가면 참 좋겠는데 수월한 성질은 아니다. 엄밀하게 생각하면 측근이나 신하들은 더 힘든 심리직선형 행동규범에 옥죄여 있다. 여왕은 자신보다 직위상 아래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과 언사를 기필코 지켜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둔하다. 제1지하국가는 생길 때부터 심리직선의 삶을 강요받았다. 그러니 자연적 조건을 비교하여 편안한 곳을 찾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더우면 두꺼운 옷을 벗고 추우면 털옷을 껴입는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배부르면 더 이상 먹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음식을 찾는다. 합리적 선택만을 찾아서 모두 제1지하국가를 버릴지라도 최소한 남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남은 자와 떠난 자는 모두 그들이 살고 있는 생존의 조건들을 살펴보았다. 그럴 능력이 모자라는 병자와 노인이 주저앉아 산다고 가정하더라도 이제껏 행해진 일들은 현실적으로 발생했던 것들이다. 측신들은 여왕이 바깥으로 나가면 텅텅 빈 도시들에서 인적이 끊어진 거리들을 둘러보고 밤이 되면 그 무서운 고요와 인간이 떠난 슬픔이 밀려올 것을 두려워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한 풍경과 사연들이 나타난다. 여왕이라고 모를 리는 없지만 실제로 눈앞에 계속 전개되는 사태는 즐거운 추억은 못된다. 심리적 위축에 부채질을 한다. 인위적으로 한 도시를 사람이 사는 것처럼 꾸미기는 너무 벅차다. 전체 지하국가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며 서서히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다. 허망한 폐허의 인류문화 유적에 꽃을 피우자. 말이야 참으로 쉽다. 허망과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한다. 사랑하는 꽃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아와 아름다운 지하국가로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할 것인가?
가상의 꽃을 사헤라꽃이라 하자고 한들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으면 사헤라꽃은 한낱 웃음거리에 속한다. 젊은 청년이 사헤라꽃을 가지고 왔다. 아무리 보아도 대단한 점을 발견하기 곤란하다. 엉성한 줄기에 조그만 노란색 꽃이 피어 있다. 향기도 시원찮아서 모여드는 벌도 없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용가치를 따져보아도 장식용으로도, 향수원료로도, 식용으로도, 관상용으로도 맞지 않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런 고약한 행동을 하느냐? 문초하니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 가져온 사헤라꽃이라고 우긴다. 무슨 궤변인지 괘심하다. 사소한 것을 들고 와서 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죄목으로 묘지건설 후에 만들어진 땅으로 쫓아 보낸다. 쓸모없는 사헤라꽃을 청년은 유배지에 심고 가꾸었다. 그는 넓은 땅에서 덩그러니 외로운 나날들을 사헤라꽃이 퍼져나가는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단순한 그의 목적도 가끔씩 수난을 받아 금방 몽땅 뽑히기도 하지만 또 피어나서 번져간다. 그의 심리직선은 알게 모르게 심리곡선과 더불어 사헤라꽃이라는 매개변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어쩌다가 이곳을 찾아본 사람이 넓은 초원에 펼쳐진 꽃을 보고 기뻐서 사헤라꽃을 다른 땅에 옮겨갔다. 아무런 이용가치는 없었지만 약간씩 사헤라꽃은 자신의 땅을 만들어 내었다. 정신적 황폐함으로 사는 묘지건설 후의 새로운 땅에는 사헤라꽃이 피어난다. 죽음의 땅에 쓸모없는 꽃이 자란다.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반가워하지 않아도 땅은 정직하게 꽃이 피어나서 꽃씨들이 떨어지면 새 꽃을 피운다. 인위적인 자연파괴만 생기지 않으면 생명력을 지닌 사헤라꽃이 번성해간다. 이 땅은 사헤라의 땅이라 불리게 된다. 사헤라땅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단 이유로 제1지하국가의 처분을 받은 사람들이다. 지상의 햇볕이 쬐이고 비가 오면 사헤라꽃은 자꾸만 불어난다. 이제는 몽땅 사헤라꽃으로 몽땅 뒤덮인 사헤라땅에서 무엇을 하려면 피어있는 사헤라꽃을 치우고 길을 만들고 집을 지어야 할 단계이다. 그는 아무것도 한 일 없다. 사헤라땅에 사헤라꽃을 피운 일이 전부이다. 제1지하국가에는 아직도 사헤라꽃이 피지 않는다. 여왕은 하찮은 청년의 사헤라꽃을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하지 않는 곳, 잊혀버린 땅, 그 땅에서 그 꽃이 피고 있다. 여왕은 사람들이 제1지하국가의 부끄러운 모습을 잊어버리길 바라도 쉽게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잊어먹지 않는다. 사헤라땅처럼 사헤라꽃 같이 몰라보면 좋겠는데 사헤라꽃 초원에 바람이 분다. 사헤라꽃은 꼿꼿하게 서 있지를 못하고 살랑살랑 움직인다. 바람이 거세어진다. 사헤라꽃은 땅바닥에 쫙 달라붙는다. 비가 내리면 꽃잎은 후드득 떨어진다. 꽃씨는 무수히 사헤라땅에 떨어진다. 사헤라땅의 한 귀퉁이에는 노란색 꽃색깔이 약간 다른 사헤라꽃이 피어난다. 제2지하국가와 가까운 곳이다. 제2지하국가는 사헤라꽃을 가지고 갔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헤라꽃이 제2지하국가로 들어간다. 사헤라꽃은 사헤라땅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옮겨간다.
사헤라꽃은 무성하지만 혼자서 살게 되는 외로움은 무척 크다. 비바람을 피하는 오두막을 얼기설기 사헤라꽃 줄기로 엮어서 만들었지만 태풍이나 폭설에는 내려앉을 형색이다. 어쩌다가 사헤라땅에 사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거주민들은 상대방에게 과거지사를 물어 보는 것이 불문율로 금지된 곳이란 점을 시간이 꽤 지나도 느끼지 못함이다. 그는 결코 자랑할 만한 이유로 이 땅에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의에 의한 삶이다. 만난 사람과도 곧바로 헤어지지만 이렇다 저렇다 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선이주자로서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개념이 상실됐다. 오히려 괴롭히지 않으면 좋으련만 바란다. 골탕을 먹이지는 않아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란 설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들 내팽개쳐진 사람들이 또 무관심과 타인무의식의 행동유형이 깔려 있다. 내적구성 요소들은 반가운 쪽에 기울어지지 않아도 외적 풍경, 조형물, 인공적 삶의 형편들은 잘 다듬어지고 어렵지 않게 생존 가능한 땅이다. 과거는 묻혀버리고 장밋빛 인생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으며 현실을 수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도 혼자 사는 현실의 입장에서 밝은 표정이 생기지 않으며 즐거움이란 개념도 만들기 어렵다. 사헤라땅과 사헤라꽃에서 무형적, 정신적 허공을 채우는 나날은 가능하지만 가장 건강한 행복과 가정은 설계되지 않은 상태이다.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 빨리 갇힌 곳에서 자유롭게 나오고 싶어 한다. 스스로의 공간에 몸을 묶어서 정신을 가다듬는 일도 있으나 일반적 경우에는 갇힌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 사헤라땅에서 그는 풀려 있다. 어디로 가던, 무엇을 하던,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살아간다. 혼자서 너무나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기란 더욱 힘이 드는 이상한 현실이다. 상호불간섭은 필요하다. 처음 적응하여 살 사람에게는 기초적 설명과 안내가 따라야한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고유형이다. 외롭게 혼자 멋대로 살아가라는 구조이다. 그는 혼자 살기가 싫다. 외로운 것은 참기 힘들다. 이런 심정이 되면 사람들은 누구든 해치지 않고, 무섭지 않다면 사람을 붙들려 한다. 서로가 같이 공존하려는 몸부림을 치게 된다. 사랑꽃이라 할 사헤라꽃의 전파자인 그가 인간에 목말라 하여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 과거는 물을 수 없다. 제1지하국가에서는 죄수, 부랑아, 거지에 속했던 신분을 노출하기 꺼려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사랑과 포용력의 상대로서보다 경계의 시선이 먼저 움직이고 머릿속에는 과거의 행동거지를 연상해보고는 언급이 없이 서로 수인사를 해야 된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꾸려면 그 자신이 바뀌어져 상대방이 변화하도록 유도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외롭더라도 일부러 사람을 모우고 같이 살아가려고 악착같이 애쓸 마음이 자꾸만 줄어든다. 여자를 찾는 것도 지치고 지쳐서 포기할 정도인 과정에서 쓸데없이 그와 처지가 비슷한 동성의 상대와 관계를 넓게 하려고 힘을 쓸 바보스런 일에 대해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식이 되다. 그러면서 혼자라고 느끼고 지내는 이율배반적인 듯한 심리구조주의이다. 오히려 서로를 모르고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힘들게 사는 관계 무정립을 생각하는 속성이 숨어 있다. 만나서 어울려 살아야한다고 몸부림치면서 떨어지는 것이다. 자연이란 공동의 적, 침략을 해오는 공동의 적, 인간관계상의 공동의 적에 대하여 대항하기 위해 협력을 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공동의 적도 사라지고 협력의 관계에서 서로 갈라져 무시와 반목의 단계를 지내다가 적으로 서서히, 급작스럽게 바뀐다. 사헤라땅의 사람들은 공동의 적도 상실하고 내부의 적도 방치해 버리고 현실에 그럭저럭 도피적 삶을 산다고 여겨진다. 더욱 한심한 점은 공동의 협력, 사랑의 전파, 인간성의 회복, 이런 문제는 거론을 안 한다. 과거지사를 되새기면 가장 싫은 대목들이다. 절도범에게 도둑질하지 말라만 말하고 이와 유사하게 살인자는 살인을 하지 말라만 세월아 흘러라 계속하면 조금 돌아오던 정신이 뒤바뀌어 터져 버릴 폭탄으로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터지는 시한폭탄이므로 건드리지 말라고 얼굴에 쓰고 다니는 듯하다. 인간폭탄끼리 짝을 만들고 마을을 만들길 싫어한다. 낱낱의 위력이 약한 무기로 돌아다니려 한다. 범죄폭탄, 부랑아총, 거지칼, 등이 부딪혀 또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사헤라땅의 사헤라꽃에 피를 흠뻑 적시길 원치 않는다. 현재를 이해하여 상대방이 범죄적 행동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점을 서로가 관찰하면서 만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을 넘어서서 아예 마주치는 것을 예방하고 싶어 한다. 더욱이 사헤라땅에 사는 사람은 기존질서란 것을 진정으로 혐오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자신들에게 벌을 내린 여왕을 사랑하지 않고 증오하며 제1지하국가를 반가워할 하등의 이유가 발생치 않으며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는 부분도 크게 두텁지 않다. 세상이 뒤바뀌길 원한다. 완전히 혼돈과 무질서로 뒤덮여 과거가 묻히길 좋아한다. 과거는 환영받지 못하는 버리고 걷어찰 부분이다. 사헤라땅에선 그것이 저절로 굴러들어온 듯하나 자신들의 능력으로 제1지하국가가 엎어져 죄수들의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 여왕이 강제로 보내어 격리되어 잘살고 있다. 그들 스스로 바꾸지 못했으므로 원초적으로 불능의 힘의 관계가 가슴깊이 거부감으로 가라앉아 있다. 세상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혼자서 해낸 사람은 대단한 것이 되며 자신도 아주 뛰어난 느낌으로 두둥둥 내내 즐거워 할 수 있다. 사헤라땅의 버림받은 자들도 이십 년을 혼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자들이다. 제1지하국가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도 간난 아기 때는 젖을 먹으며 살았다. 젖을 못 얻어먹었다면 유아사망이 됐을 것이다. 그처럼 혼자 살 수 없는 족속들이 서로에게 영향 받아 혼자 살기를 택한다. 무엇인가 잘못된 발걸음은 분명하다. 내용이 약간 빗나가지만 과거의 왕이나 현대의 국가도 모든 사람들의 지혜와 능력의 결합에서 그 왕국의 결과치들이 나온다. 그 총체적 집합을 왕이나 국가란 이름으로 세상에 선보이면서 이렇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사헤라땅에 모인, 흩어진 그들도 사람들의 영향관계와 삶의 궤적에서 발생한 인간들 자신의 모습이 변형되어 있는 것이다. 교도소에 죄수가 많으면 그렇게 만든 사회전체에 책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앞뒤가 틀린다. 사헤라땅에 사헤라꽃이 핀 것은 여왕의 노여움의 산물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만 했으면 그는 제1지하국가에서 그냥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헤라꽃을 피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초적인 문제는 그가 지하국가를 사랑했으므로 사헤라꽃을 소중히 하였단 사실일 것이다. 어느 것이나 혼자서 멋대로 한일이지만 인과관계는 얽혀 있다. 사헤라땅의 사람들은 그래서 과거지사를 가장 싫어한다. 어떻게 전개될지 파악되지 않는 미래에도 무게를 싣지 않는다. 사헤라꽃 줄기로 엮은 초막에 돌아와서 두 다리를 펼치고 누워서 서글픈 현실에서 아름다운 공상만을 해보아도 옆에는 아리따운 아내가 나타나지도 않는다. 어째서 무심한 땅이지만 사헤라꽃이 퍼져 가면 그렇게 퍼지면 안 된다는 억압도, 더 퍼지라는 격려도, 그가 누구인가를 묻지도 않는 비인격적 구도로 이어지는 사헤라땅이다. 너든 나든 무엇을 하던 아무런 의문도 관심도 서로간의 교류도 하지 않는 무정부, 무관심, 무표정, 무의 세상이다. 말라비틀어진 사헤라꽃 줄기 묶음으로 만들어진 천정엔 햇볕이 어질어질 조금씩 비친다. 빛이 차단되어야 정상적인 천정인데 그는 그만한 기술수준이 못된다. 풀 더미를 이용하거나 말려서 아무리 집을 지어도 햇볕이 고른 날만 사용이 가능하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땅을 파서 굴을 만들기도 했다. 할 일이 없으니 굴을 여러 개 만들고 흙으로 집을 짓고 풀 더미로 집을 짓고 부수고 수십 채의 집은 가졌지만 같이 사는 여자가 없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이다. 사헤라땅의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만 너무도 먼 길을 떠나도 사람을 만날지도, 못 만날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있는 쪽이 유리할 듯하여 그냥 바보처럼 지낸다. 바보의 기준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것을 찾는 중이다. 사헤라땅에 온 사람은 일차적으로 바보임을 인정했던 사람이다. 싫던 좋던 타의에 의한 평가를 받았다. 상대적 진실에 기초하여 서로 반대로 생각하고 따지는 것이다. 바보는 스스로 바보라고 잘 말하진 않겠지만 모두들 그렇게 대우하므로 바보가 된다. 아무리 바보가 아닌 사람도 스스로 바보임을 자인하고 살아간다면 타인과 자신의 인식의 차는 존재한다. 사헤라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보스럽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여 생의 환희를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상당히 멋있고 가치 있는 부분이다. 나서길 좋아하던 그였지만 그 때문에 이리됐다는 생각에 활동범위는 심리적 요인으로 위축된다. 자신이 바보라고 심각히 자각할 시점부터 바보임을 거부하는 속성을 띤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제1지하국가에서는 틀리는 자연법이다. 아직도 바보들의 집단은 동서개념으로 해를 생각한다. 낯선 사람들이 사헤라땅으로 오게 되면 제1지하국가와 비교하여 사헤라땅이 나은 것을 느낀다. 역사적 사실과 인적 구성이라는 개념이 다음 차례로 입력이 되면 첫 이미지는 혼란에 빠진다. 정보전달상 새로운 사람에게 과거지사가 묻히면 참 좋은 땅이다. 들추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제1지하국가로 발걸음이 많이 바뀐다. 그는 지하국가로 돌아가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거주이전이 제한된 신분이다. 마음대로 아무 땅이나 옮겨 다니게 하면 사헤라땅의 사람들이 심리적 직선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 훨씬 나은 삶을 살 것이다. 마음속의 먹구름을 벗어던지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정신적 힘이던, 외부사정의 변화이던, 개인적 인내력이던, 잘 조화시키면서 견뎌내어야 인격적 파탄을 면하면서 살 수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지탱하는 과정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부서지거나 고통으로 답답해하는 수준을 낮추어야 한다. 누구든지 시험받는 개인수양정도라고 넘겨버리면 간단할 문제점들이지만 심리직선 속에 쌓여진 먹구름은 전체적인 범위와 치유책으로 복합해 있다. 스스로 한계라는 벽을 쌓아놓고 허물려고 생각도 하지 않음이며 서로들 어울리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느끼지만 넓은 땅에 사람은 너무도 적다. 범죄조직에도 우두머리가 있고, 거지 떼도 왕초가 있고, 깡패도 두목이 있다. 그런 사람의 무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아직까지 법의 힘이, 행정의 힘이, 교묘히 피해버리는 영역의 경험칙을 생각지 않는다. 사헤라땅에서 멋대로 살다가 제2지하국가나 제1지하국가의 텅텅 빈 도시로 살며시 돌아가 버리는 날에는 사헤라땅은 더욱 텅텅 비어 아무리 헤매어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땅굴을 파고 지하에 숨어버려도 찾기 힘들다. 그는 사헤라땅의 면적에 비례하여 어느 정도의 사람이 왔으며 법망을 피하여 세블국으로, 지상국가로 날아가 버린 사람들에 대하여 정보도, 들은 기억도 가지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형편을 감안하면 바보인 그 만이 열심히 사헤라꽃을 피우고 있지만 그 이전에 세블국으로 살금살금 몽땅 도망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처럼 엄청난 지하국민이 빠져나가도 무방비로 속수무책인데 범죄적 기술이 발달한 그들이 도망가는 재주는 다양하다. 더욱이 강력하게 억압하고 조사하지도 않는 시기였다. 그러면 앞서 사헤라땅에서 온 사람들은 한 명씩 온 것이 아니라 무리지어 왔단 말인가? 그는 만나는 사람도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거니와 과거지사를 거론하지 않는 괴상한 불문율로 답변을 듣기도 힘들다.
준거집단이 같이 행동하지 않는 곳에서 홀로 생존을 이루어 문화적 간격을 후대에 검증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는 연구 분야에 속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체계에서는 돌연변이적 연구에 해당된다. 그가 여기까지 온 것은 변화의 축적물을 전수받을 만큼 소화한 후의 일이다. 생존조건이 파괴되어도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다시 복원시키고 더 나은 환경을 가꾸면서 인간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우리들이 생산성의 문제와 효율성제고에서 낭비적 요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 민주적 토론, 정치적 정책결정과정은 지루하고 답답하여 융통성 없는 긴 시간을 요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같은 내용을 어제도, 일주일 후에도, 일 년이 지나서도 반복 토론한다. 경제적으론 참 한심스러워도 마지막에 도출되는 결론은 가장 먼저 토론을 시작할 때 보다는 무엇인가 좀 나아졌다는 점을 사람들은 느끼게 된다. 그도 처음 사헤라땅에 떨어진 날보다 많은 것들이 생겼다. 쓸모없어 보이는 굴과 풀로 엮은 집들이 만들어지고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외롭지만 살아간다. 이것이 그가 삶의 방식을 풀어가는 형태이다. 경쟁이란 개념은 수정자본주의나, 복지자본주의적 정치이념에 의미부여가 작아질 수도 있다. 여왕의 제1지하국가의 정치 논리적 이념정의에서는 비교적 논점을 찾지 않으려는 피해적 정치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사헤라땅에 살고 있는 그도 비교대상이 안보이고, 경쟁의 축이나 상대방이 어느 곳에서 숨죽이고 호시탐탐 기회를 만들고 있는지 감을 못 잡는 아주 우매한 바보의 길에 서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는 무조건 발전했다는 점은 고고학적 증명으로 가능하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우리가 발전하여 행복한 세상으로 진입한다는 섣부른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는 오늘도 밝은 하늘을 보고 노랗게 퍼져 있는 사헤라꽃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꽃이 많은 것을 보니 시간이 흘렀다는 간접증명이 된다. 원래는 꽃이 없던 땅이었다. 생태계는 변화의 주기율에 따라 움직인다. 사헤라땅에도 사헤라꽃이 번성하다가 다른 새로운 꽃이 피게 된다. 그는 예측은 하지만 무엇으로 바뀔지는 식물생태학자가 아니므로 확실하게 맞추지는 못한다. 많은 굴속에서 그는 공통된 고고학적 자료들도 찾게 되었다. 생긴 모습이 여자의 모습을 띤 동상들이다, 더 이상 그 지점에서 굴을 파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전직 여왕의 얼굴이다. 허구한 날 굴속에 지내는 동안은 여왕의 얼굴과 몸매가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상태를 보게 된다. 각각의 굴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다른 방법을 동원하기 전에는 토용에 어떤 시도도 어렵다. 어두컴컴하여 사헤라꽃을 굴속에 가져가면 안이 밝아진다. 밤에는 너무 많으면 잠들기 곤란하므로 낮과 밤에 굴속의 사헤라꽃의 양은 다르다. 낮에는 낮잠을 자거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굴에 들어가지 않는 생활이다.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멀리까지 이동하여 표집을 만들고 계속하여 나아가면 똑같은 풀집만 만들게 된다. 방사선형으로 16개 방향으로 길을 만들고, 임시거처를 만들고, 굴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라비행선도 못 만들고 다른 나라로 옮겨가지도 못한 세상이다. 그는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던 사헤라꽃에서 야광기능을 우연히 찾아내어 밤에 불을 훤히 밝혀 전직 여왕의 토용을 보면 상당히 잘생긴 점과 깊이 생각을 하면 악마 같은 행위를 실천하여 무수히 죽은 사람들이 토용 밑에서 살아서 튀어 올라 올 것 같아서 겁이 더럭 났다. 그런 날은 풀로 엮은 집에서 자는데 기후조건이 아무래도 나빠져서 굴속에 생활할 때와는 다른 알 수 없는 분위기로 고생이 많다. 매우 심심하여 토용에다가 사헤라꽃잎으로 문질렀더니 토용에 피부가 생기듯 윤기가 반들반들 살아있는 사람처럼 바뀌어 깜짝 놀란다. 반갑기도 하고 상대하는 사람이 생겨서 시간 보내기가 덜 지루한 것 같지만 생명감이나 움직이지는 못하고 다만 동상이 매끄러운 사람처럼 된 정도이다. 그것도 자주 사헤라꽃잎으로 마사지를 해야 상태가 바뀌고 내버려두면 원상태가 된다. 처음에는 신도 나고 시간을 보내려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지 않는다. 별 소득도 없고 삶의 방향이 바뀌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로빈슨크루스가 되기엔 지쳐서 길을 떠난다. ‘문서 없는 상전은 없어도’ 아무도 없는 것이 어려움이다. 동서남북을 겨우 맞추어 걷는 속도로 쉬엄쉬엄 옮겨간다. 어느 날인가 길쭉하게 솟아오른 기둥이 멀리서 보인다. 가던 방향으로 재수정하여 기둥 쪽으로 향한다. 가까워질수록 우뚝 높이 솟아 있다. 거기까지도 사헤라꽃은 피어 있다. 덩굴이 아니라 기둥에 다닥다닥 붙어 올라가지는 않았다. 거대한 기둥이다. 한 바퀴 빙 도는데 십리나 되는 듯하다. 아무런 설명이 없이 땅속에서 하늘을 향해 만들어져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주위에 거처를 만들고 차곡차곡 굴도 뚫는다. 예전과 똑같이 토용이 나오고 더 이상의 진전은 곤란하다. 돌기둥을 타고 올라가기도 어렵다. 사헤라꽃이야 자연법칙으로 씨앗이 흩뿌려져 퍼졌지만 토용과 돌기둥은 조직적인 인간의 힘과 땀의 산물들이다. 아무도 없는 사헤라땅이었는데 며칠이 더 지나보니 사람이 있다. 그 곳을 지키는 제1지하국가의 군인들이다. 그의 신분을 확인하고는 어디서든 살아도 무방하지만 제1지하국가로는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하도 사람이 없어서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모여 사는 사람이 없으며 어떻게 된 셈인지 사람들이 증발해 버리는 것 같다는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지하국가로 옮기지 말라는 것은 참으로 한심할 정도로 강제력이 부족하다. 국경선에 빽빽이 지키지 않으면 슬쩍 제1지하국가의 텅텅 빈 도시에 들어가 살면 그만인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사헤라땅이다. ‘여자는 제 고을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는 좀 알아야겠는데 장날이 서지를 않는다. 장날이 서는 옛적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다. 회귀주의 행동과 마음으로 그득하다.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사람이 모인 동네나 도시로 자꾸만 모이는 족속임이 확연하게 드러나 버린다. ‘작은 며느리 보고 나서 큰 며느리 무든 한 줄 알듯이’ 같이 사는 행복을 너무도 강력하게 깨닫는다. 넓은 바다에 배가 떠다닌다. 만나는 배는 보이질 않고 목적지로 쉬지 않고 간다. 며칠 만에 만나는 배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큰 만족을 받는다. 육지 가까이 등대불빛이 한 줄기 비치면 이제야 사람이 사는 땅에 배가 닿을 것이란 가벼운 흥분이 일어난다. 원치 않는 파수꾼이 있을지언정 국경선 근처로 가는 것이다. 부지런히 길을 따라서 국경선에 당도하여도 그로서는 경계를 구별하기도 힘들다. 자꾸만 이동을 하자 텅텅 빈 집들이 나온다. 인적이 끊겨 있다. 직감적으로 제1지하국가인 것을 알아차리지만 도대체 살고 있는 동네사람이 안 보인다. 기가 막힐 지경이다. 더 이상 이동하기보다는 좀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앞으로 갈 길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집에서 너무 피곤하여 잠에 푹 빠진다. 실컷 자고 일어나니 잠들기 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사헤라꽃을 키우지 못한다. 제2지하국가이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곳이 제1・2지하국가 중 어느 쪽인지 정확히 판독이 돼야 된다. 제1지하국가가 분명하면 신분을 바꾸어야 하고 제2지하국가라면 공포에 덜덜 떨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 더욱 안쪽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제1지하국가이다. 그는 사헤라꽃을 들먹이는 것은 금기이고 그의 예전 신상명세부터 이제껏 정리한 대로 바꾼다. 숨죽이며 살기보단 제2지하국가로 가는 것이 편안한 것 같아 괴로운 발걸음을 제2지하국가로 향하여 되돌린다. 사헤라땅을 거쳐서 가거나 국경선을 빙빙 돌아서 제2지하국가의 국경선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다. 예전에 와본 길을 왔다가 갔다하는 것이 덜 괴롭겠지만 발걸음을 옮기려니 반겨주는 사람 없는 제1지하국가이지만 서러움이 몰려온다. 자신이 태어나서 살던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살던 집을 버리고, 얼굴이 익은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언제나 마주치던 자연적 조건들도 바뀐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붙잡히면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전 되냐?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제2지하국가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또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동행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길이다. 누구보고 같이 가자고 할 성질이 못된다.
우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국경도시로 되돌아간다. 황량하고 음산한 공기가 흐른다. 죽음의 유령들이 여기저기서 춤을 추는 도시이다.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살기 좋은 곳으로 갔건만 돌아온 결과는 아무도 생존하지 않는 국경마을이다. 그는 배가 고프면 만생초를 뜯어먹고 피곤하여 빈집에서 잠을 잔다. 긴장과 피로가 계속 몰려오다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므로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 하여도 꼼짝하지 못한다. 몹시 깊은 잠이 든다. 꿈속에 만들어지는 세계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인간만사가 필요하지 않다. 일장춘몽도 잠깐이고 잠이 깬다. 기운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예정대로 길을 나선다. 국경선이다. 일부러 철조망이나 검문소도 만들지 않고 지키는 사람도 안 보인다. 슬쩍 넘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어느새 사헤라땅에 왔다. 두 번째 왔다가 갔다가 하는 길이지만 방향감각이 없다. 겨우 동서남북만 찾아내어 제1지하국가와 반대쪽이라 판단되는 곳으로 걸어간다. 뛰어가는 일은 숨이 가빠져서 멀리까지 이동은 곤란하다. 시간에 쫓기어 빨리 다닐 조건도 아니다. 제2지하국가라고 해서 일평생 순탄한 인생이 기다릴 것이란 예상도 곤란하다. 여러모로 거주이전의 문제는 가혹할 만큼 엄격하지 않다. 처지에 따라 요령껏 살 수 있게끔 운영된다. 이제는 풀집을 짓거나 굴을 파지도 않고 목적지를 향하는 걸음이다. 날씨가 몹시 마음에 거슬리면 임시거처를 찾아보거나 만들기는 한다. ‘지게를 지고 제사를 지내도 제멋이다.’ 라고 하지만 연극은 상연되어도 관객이 나타나지 않으면 공연한 헛수고이다. 먼저 살던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임시거처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가 살던 곳도 찾지 못해 어쩔 도리가 없어 풀집을 만든다. 그에게 돌아오는 궁궐은 한 사람이 겨우 견딜만한 한심스런 거소이다. 사헤라꽃이라도 있으니 손쉽게 만들지 그것마저 없으면 고생스럽게 굴을 파야 한다. 풀집도 이용가치가 오래가거나 완벽한 것이 아니고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는 일시적인 집이다. 시간이 흘러 제2지하국가에 당도한다. 여기는 텅텅 빈 집도 없고 아직도 사람이 살지 않는 미지의 나라이다. 일일이 사람을 조사하지도 않는다. 보호본능으로 자신을 과거에서 현재에 맞도록 그의 형편에서 변화시킨 상태이다. 자연환경들이 약간 다르다. 대체적으로 더 나은 듯하다. 그는 이름을 사할리로 행세하게 된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기본적인 흐름들은 같은 원리들이다. 늙은 사람이 죽고, 새 생명이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그 나라 내부의 가치구조와 법으로 살아들 간다. 사할리는 제2지하국가가 내부에 흡수 동화되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타인의 의도대로 꼭두각시가 된다면 자기정체성을 상실하는 노예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관적 견해는 변하지 않고 동화된다면 알 수 없는 조화이고 괴상한 논리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인위적으로 접목시키고자 함은 타방의 문화가 상위이거나 생존의 필요상에서 나온다. 그는 적극적으로 제2지하국가를 옹호하는 쪽으로 일이 진척될 것이지만 상대방이 존재의 확인을 거쳐서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된다. 상대방이 배타적 입장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사전노력이 절실하다. 제2지하국가를 어느 정도 훤히 알아내어야 가능한데 주먹구구식 수준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그의 현실이다. 가족, 동료, 2차 집단, 3차 집단, 이런 정상적 절차의 집단개념을 넘어서서 연고가 없는 집단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된다. 사할리는 어느 정도 정신적 압박에서 벗어난 것만도 다행이다. 괴롭히며 따라다니던 이상스런 것이 떨어진 감정이다. 두려움이 약간 남아있기는 하나 제2지하국민을 숨어서 보았는데 외형적 모습을 살피고 또 몇몇 사람의 행색을 정확하게 알아내어서는 그도 자신의 현재 행색을 보고는 그들과 비슷하게 다시 꾸민다. 얼굴의 수염, 머리손질, 장신구 등을 비슷하게 만든 다음 재차 접근하기 전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들어보고 완전히 다르다면 대책을 세워야 된다. 말씨와 억양은 들어도 알 수 없는 다른 나라 말이다. 그는 벙어리 행세를 처음엔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된다. 사할리는 모습은 비슷하되 말은 통하지 않으므로 벙어리로 신세를 바꾸어 동화 흡수되는 방법에 접근을 하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과거지사를 덮어버리려 노력중이다. 사람을 만나서 생짜로 벙어리가 되어버리니 답답하다. 여기서 사는 동안은 영영 벙어리이다. 말을 이해하고 다 배워서 벙어리를 벗어나면 다른 땅으로 이사를 가야지 하면서도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벙어리가 되니 상당히 고통스럽다. 제1지하국가에서는 ‘생초목에 불이 붙는 일’로 죽을 지경에 이르다가 이제는 살기 위해 벙어리가 된다. 사할리는 제2지하국가의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져야 말을 배울 수 있다. 벙어리 신세를 면하려면 대단히 긴 시간이 필요하고 싫던 좋던 벙어리를 상대해 주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벙어리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인데 무엇이 답답하여 사회사업가도 아니고 일반인이 벙어리에게 큰 관심을 가지겠는가? 병신취급을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상사회에서는 병신을 정상인과 같이 대우하여 잘살고 멋있는 사회라고 하고 사람들은 그렇기를 마음속에 바란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병신은 병신대접을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 대우가 돌아간다. 힘이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대접이 다르다. 그에게는 벙어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나온다. 참기 어려운 대목들이 툭툭 터져 나오면 정신이 가끔 돌 지경이다. 꼬마아이들도 그가 나타나면 병신인 벙어리가 나타났다고 깔깔거리며 놀린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벙어리이므로 사회에서 벙어리를 대우하는 방식으로 대했을 뿐이다. 그는 과거에 벙어리가 아니었으므로 정신에 이상이 오는 것이다. 과거에 왕이었던 사람이 평민이 되면 평민 대우를 받는 것이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보아야 사회에 적응하기만 어렵다. 그나마도 놀림감으로 상대하는 시간이 많은 쪽은 꼬마들이다. 성인들은 귀찮아서 마주치기도 꺼려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지만 꼬마들은 다루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의 과거가 노출될 위험도 현저히 적다. 그는 재빨리 어린이들의 언어수준을 따라간다. 문제는 벙어리이니까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유창한 말을 할 수 없다. 참으로 사람 미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낮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 곧바로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말더듬이 정도로 행세할 수 있다. 말의 연습을 해야 말더듬이도 빨리 되겠는데 말더듬이 되는 과정이 벙어리이니까 앞뒤를 맞추는 묘책이 있어야 된다. 곰곰이 생각하여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벙어리보단 나은 말더듬이로 바뀌어 행세한다. 한 계단 고통의 늪을 벗어난다. 말더듬이도 좀 꺼림칙하게 사람들이 여긴다. 머리가 모자라는 것이 아닌가? 병신이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말더듬이도 곧 벗어나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뿌리내릴 기초가 된다. 그는 좀 더 제2지하국가의 국민으로 흡수 동화되는 중이다. 같아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원래 같지 않았으므로. 문제는 말더듬이를 벗어나 완전한 언어구사력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해도 평생 절름발이 언어로 대화가 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언어가 혀가 굳어진 어른이 다시 배워서 똑같게 되기까지의 지루한 과정이 있다. 제2지하국가에는 공식적인 여왕이나 총독도 존재하지 않고 그럭저럭 다스려지고 있다.
그는 제2지하국가의 국민으로 적응하고 있다. 이곳에는 참담한 사건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나 전직 총독이 사형당한 것은 분명히 소문으로 돌아다닌다. 그래서 별로 좋은 자리도 아니어서 경쟁적으로 총독이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혼신의 노력으로 말더듬이 상태를 개선하여 꽤 괜찮다고 느껴져도 상대방은 금방 어딘지 서툴다고 반응이 나타난다. 육감적으로 들통이 나버리므로 어릴 때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그렇다고 둘러대야만 한다. 그는 같이 살아갈 짝도 구해야 된다. 생존위협이 줄어든 시점부터 원초적 본능이 관계된 상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로서는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다. 부모, 형제, 친척을 엉터리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불가능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고아로서 자랐다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니 잘되던 일도 뒤틀려서 깨져버리곤 한다. 약간 말더듬이로 고아로서 성장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실망하여 제2지하국가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중심도시에 이른다. 인구 삼백 만의 제2지하국가이므로 가장 큰 도시의 인구가 오십 만 명 정도이다. 과거 지구이면 중간크기나 작은 도시정도이다. 훨씬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익명화하여 살기가 쉽다. 이제부터 마주치는 집단은 계속하여 3차적 인간관계의 연속이 줄을 잇는다. 사람이 제일차적 가정이 없이 완전한 타인과 타인이 살아가는 형태로 끊임없이 부딪히니 심리적 파탄이 쌓여만 간다. 3차 집단은 모래알갱이들의 집합이다. 모래알갱이는 시멘트 성분이 섞이지 않으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아침부터 밤까지 주르르 흘러내리다가 집에 돌아와도 시멘트 성분이 없으므로 또 허물어진다. 무너져 내리는 연속이다. 너무 세차게 미끄러지지 않으려 짝을 찾아 온갖 힘을 쏟다가 또 그 끈이 잘라져 버리면 처참한 지경의 상태로 떨어져 살고자 노력하던 심정이 일시 중단되어 버린다.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에게서 무심히 듣는 이야기는 마음의 동요가 크진 않으나 믿어줄 상대방을 찾아 나서서 짝을 구하려다 듣게 되는 소리들은 더욱 힘 빠지게 만든다. 고아란 것이 곤란하다. 말더듬이는 안 된다. 사실인즉,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자신이다. 상대방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위치에서 사회의 반응으로 응답했는데 큰 잘못이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 심리직선형 단순행동유형이 지배하는 현실이다. 그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심리직선형 단순행동을 유도하는 사고를 사랑이라는 것이던, 봉사헌신이라던 지 그 어떤 것으로 벽을 허물어야 하겠지만 상대방도 똑같은 수준의 벽을 넘는 애정이 결핍하면 성립되지 않는다. 참으로 쉬운 일 같지만 막힌다. 막힌 것은 뚫리는 것이기도 하다. 땅이 꺼지면 다시 단단해지고 다시 단단해지면 높은 건물을 세운다. 좋은 사람만 많을지라도 고아처럼 힘든 상대방도 존재할 수 있으며 희망이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찾아나서는 사람이 있으니 찾아지는 부분도 생길 것이다.
사할리는 제1지하국가라면 말더듬이가 아니다. 고아도 아니다. 제2지하국가이므로 사할리이지 실제론 사할리도 아니다. 이 부분에선 사할리는 자신의 존재를 나타날 수 있는 현실치에서 접근하는 행동유형이라야 여러 가지 맺힌 매듭이 풀린다. 반벙어리이며 고아에게 평생을 보낼 짝을 찾아야 된다. 이쯤까지 심리적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의 모든 지혜를 동원한 것인데 참으로 속은 상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된다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되므로 그는 굴복한다. 원래 고아로서 태어나서 말더듬이로 살아온 사람은 아무런 심리직선형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만난 상대방은 부모가 제2지하국가의 국민들의 열화 같은 책임추궁으로 사형당하여 고아가 된 여자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장가를 오지 않아 부득불 그를 만나게 된다. 과거의 기준은 필요가 없다. 이 여인은 부모가 전직 총독의 측근이었지만 그것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서 밑뿌리는 모르는 채 속아서 그에게 시집을 오는 것이다. 그의 아내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피인물이다. 말더듬이의 고아에게 기피인물이 시집갔으므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웃음이 현실로 존재한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제2지하국가에서 비웃음과 멸시와 천대의 대상에 속하게 된다. 전혀 원하지 않던 사태의 진전이다. 갈수록 도시에서 살기가 어렵다. 숨어 들어온 새로운 땅에서 짝을 만나자 사랑하는 아내는 지긋지긋한 도시를 떠나서 사람들이 없는 곳이나 아주 조용한 곳으로의 이주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보따리를 싸들고 제2지하국민들이 가기 싫어하는 국경 쪽으로 마음 내키진 않지만 마지못해 옮겨간다. 그것만이 가장 합당하게 그와 그녀에게 돌아오는 현실에서의 몫이다. 현재 그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그에 대한 세상의 대우이다. 워낙 힘들게 버텨온 그로서는 어렵게 따지지 않고 아침의 형편만 살피면 이런 비참한 그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많이 나아졌다. 아내가 생긴 것이다. 감옥에 사는 죄수에게 아내가 생기기 어렵다. 예전에 결혼을 한 사람이면 몰라도 새로운 결혼은 거의 드물다. 제1・2지하국가에서 살 수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사헤라땅이 가까운 국경에 와있다. 과거의 국경은 언제 전쟁이 터져서 죽을 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땅이다. 겉으로 보이기는 아무런 불안도 나타나지 않고 평화스럽다. 심리적으로 국경선 가까이 가기를 싫어하던 사람들이다. 현재의 국경은 이동을 막지 않는 듯한 거의 무방비 상태이고 전운은 감돌지 않는다. 사할리는 사헤라꽃을 피우고 아내와 살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사헤라 꽃밭에서 알몸으로 알몸의 여인을 품에 안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열매가 맺혀서 어여쁜 아기도 생산될 것이다. 부모가 반역을 했다하여 아내의 아름다운 몸이 별다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싱싱하고 젊음이 넘치는 여인이다. 얼마든지 건강한 자녀를 낳을 수 있다. 국경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과거지사를 모두들 잘 알 수 없다. 그녀도 과거의 인연은 가능한 모조리 바꾸어 버렸다. 상대방인 마을 사람들도 그들과 엇비슷한 행동유형을 지녔다고 가정할 근거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으로는 ‘오지자웅의 세월 속에 넘겨진 부분’일 수도 있다. 그는 어떻게 하여 사헤라땅에 사헤라꽃이 피게 만들었나? 첫째는 지하국민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무엇인가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모르겠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정신이상이 생길까봐 사헤라꽃을 가꾸었다. 어느 것도 명확하지는 않아도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사할리는 확실한 삶의 터전을 찾은 듯하나 거세게 닥쳐올 앞으로의 풍랑은 어찌될 것인지 예견은 못한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심리적, 육체적 안정을 통하여 만족을 맛본다. 짝을 만나서 위험과 공포를 덜 느끼게 되고 육체적 긴장과 표현도 사랑하는 상대방을 통하여 쏟아낼 수 있다. 힘겨운 인생을 참고 넘어가는 일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축이 순기능적으로 작용하면 어느 정도의 고통도 감내하면서 삶의 단계를 높일 수 있다. 반대의 현상도 생기겠지만 그 보다는 협력, 애정, 뒷받침으로 이루어진 가정으로 인하여 깨어지지 않는 인간사회가 된다. 흩어지는 상태를 끌어 모아 새 세대를 통하여 영속성을 부여해준다. 앞으로 사정이 뒤바뀌지 않는다면 두 내외는 공든 탑을 통하여 자식을 키우며 늙어서 죽게 되는 단순한 인생주기율을 따라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파괴시킬 정치적 회오리, 국경선을 통한 전쟁이 터지지 않고, 전염병으로 죽지 않으면, 커다란 불행은 비켜갈 수 있다. 행복한 순간들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 느껴보지도 못할 지경이란 하소연도 있지만, 자꾸만 흘러간다. 그가 걱정하던 아내에게서의 부정적 요소는 사실 소용이 없다. 국경마을에서 사헤라땅으로 가던 하등 어려움이 못된다. 그의 문제도 내막이야 모르지만 아무런 장애요소가 아님을 차차로 느끼게 된다. 선입견에 나타나는 부분들은 시간이 바뀌면 전혀 성질이 바뀌는 현상과 맥이 통한다. 시부모를 모시지 않으려 장남을 택하지 않아도 살다보면 장남 몫인 일을 해야 되고 장남 몫인 재산을 많이 가져보려 하지만 세상이 호락호락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가 좋은 것으로 생각하던 사헤라꽃으로 엄청나게 뒤바뀐 인생이 돼버렸고 그의 아내 또한 부모님의 좋은 지위가 그녀로선 좋지 않은 결과로 되돌아 왔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바람개비’이지만 예측이 가능한 바람개비를 찾는 심정인 것 또한 사실이다. 두 사람에게 현재 돌아온 몫은 서로 사랑하며 즐거운 잠자리가 보장되고 아침이면 사랑하는 상대방이 곁에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며 괜찮은 나날이다. 부수어지지 않고 유지만 되면 끝끝내 제1지하국가로 돌아간다던가? 제2지하국가의 도시에 묻혀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평생 지낼 수 있다. 어떻게 마음들이 들고 일어나 이동의 유혹을 느낄지 현재의 모습에서 유추해보면 두 사람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