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우선으로 주당 최장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서 사회·경제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낙연국무총리가 경제계 건의를 받아들여 ‘6개월 계도기간’을 두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당장 고소고발이 들어오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검찰지휘하에 사건을 조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근로시간 단축은 현재 진행형이 됐다.
정부가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을 강하게 밀고 나가려는 취지는 누차 발표한 대로 일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고, 일자리를 나누자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이러한 당위성은 현 정부 말고도 이미 200년 전에 태어난 칼 마르크스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 연구의 권위자인 동아대 강신준 경제학과 교수는 몇년 전 ‘열린연단 프로그램’ 강연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은 ‘근로시간’이라고 해석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전체노동시간을 생산된 가치의 크기로 환원할 때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부분(임금)과 그 잉여가치(자본수익)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자본주의의 본질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본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기업의 목표가 이윤극대화로 나와 있는 것처럼, 잉여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임금을 최소한 줄여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가 생산해 낸 소득(임금과 잉여가치) 가운에 임금은 생계를 위해 대부분 소비되지만 잉여가치는 일부만 소비되고 나머지는 축적된다. 자본가의 잉여가치 축적이 지속될 경우 소비되지 않는 생산이 늘어날 것이고, 생산과 소비의 격차 때문에 생산력이 한계상태에 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초 전 세계를 휩쓴 경제공황을 경험하면서 이 이론을 정립했다. 마르크스는 생산력 한계상태의 원인이 잉여가치 축적에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여 생산력이 소비능력과 균형을 맞추어야 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OECD 가입국가 중 최장에 속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간한 '올해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을 보면 한국 근로자들이 오래 일하면서도 임금은 적게 받고 있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2015년 2071시간(2016년 2052시간)으로 OECD 가입 28개국 중 두 번 째로 길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2016년 63.3%로 21번째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강 교수는 “실패한 마르크스와 돌아온 마르크스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잉여가치론은 185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완성된 이론이며 1848년에 집필한 공산당선언에서 그의 모든 사상을 유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배경에 마르크스 이론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갑작스런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찮은 것 같다. 기업의 경우 사법기관이 직원 근무시간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연장근무를 못해 임금이 줄어드는 상당수 근로자들도 반발하고 나서 정부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주변을 보면 수당이 줄어 고민하는 직장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얇아진 지갑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일상의 여유’는 오히려 사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그 방향이 옳다고 보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과거 산업화시대처럼 직장인은 밤낮 일에 매달려야 하고, 학생들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공부하는 생활패턴이 언제까지 지속돼서야 되겠느냐는 회의감 때문이다.
유럽쪽으로 여행 가 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그들의 여유 있는 삶을 우리라고 누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심충택
(언론인,대구경북언론인회 부회장)
경북대학 치과병원 상임감사
대구문화재단 이사
대구지방법원 조정위원
전)영남일보 편집국장,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