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미루나무는 흔들리고
버짐은 핀다
내가 사는 세상
그 곳에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길 위에 길이 있고
타는 하늘 돌아누워도
돌아가는 세상
1955년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터를 잡은 홍승우의 본명은 홍성백이다. 95년 계간『동서문학』신인작품상에「새」외 4편으로 당선되어 등단한다. 첫 시집『식빵 위에 내리는 눈보라』속에 수록된「내가 사는 세상」은, 소월의「왕십리」, 김광균의「와사등」속의 그 막막한 삶의 그늘진 그림자와 한 궤를 이룬다. 또「내가 사는 세상은」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속의, 그 허무와 희망사이의 끈에 비견된다.
그렇다. 푸시킨의 시가 삶의 비애와 실존의 쓸쓸함이 우울에 범벅된 채 한없는 그리움으로 깃든다면, 홍승우의「내가 사는 세상은」이 땅 위에 살다간 사람들이 잠시 잠깐 한 번 쯤 생각했을 법한, 너무나 평범해서 좋은 시구다. "내가 사는 세상 / 그 곳에 / 그 자리에 /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 미루나무는 흔들리고 / 버짐은 핀다." 이 시구를 읽으며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그의 시 감상을 쓰고 있자니, 참 외롭고 쓸쓸하다. 먼 훗날 이곳에 이 자리에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겠지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사는 세상 / 그 곳에 / 그 자리에 / 그 시간에 내가 없어도 / 길 위에 길이 있고 / 타는 하늘 돌아누워도 / 돌아가는 세상" 난 그의 시「내가 사는 세상」의 그 행간의 오슬오슬 추운 느낌도 좋지만 시구 "길 위에 길이 있고" 이 기막힌 표현을 가장 아껴서 본다. 명시는 그렇다. '짧고, 감동적이게, 그리고 무한한 쓸쓸함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 설레어야 한다. 이 시는 또 오카리나 곡으로 만들어져 손방원 연주자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