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한 켤레 섬돌에 놓여 있다
빗소리에 지쳐 새우잠 자는 아이
그를 내려다보면
앞산 캄캄하게 무너져온다
숟가락조차 이기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면
펜대가 내 손가락에서 자꾸 빠져나간다
하얀 운동화 팔아 비행접시 바꿔 오라며
장 보러 가는 제 엄마한테 떼쓰다가
새록새록 잠든 그믐 칠야
둥둥 건넛마실 가거라
나의 작은 神이여!
(장하빈,「빛 바랜 운동화」전문)
이 시 속엔 병마에 시달리는 한 아이와 그 응석을 다 받아주는 엄마와 안타까이 곁에서 지켜보는 한 시인의 슬픈 가족사가 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 9살 때 처음 아이의 병명을 알았다고 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병, 근무력증이다. 대개 초기엔 눈꺼풀과 목 근육들이 내려오고 차츰차츰 사지나 온몸 근육들의 쇠약과 함께 시작된다.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이 병은 결국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폐렴과 다른 합병증에 이르는 호흡근육들의 마비손상으로 생을 마감한다.
장하빈의 맏아들은 91년에 발병해 2002년 20살에 저 하늘로 가서 '작은 神'이 되었다.
"손가락조차 이기지 못하는 그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저 두 딸과 아들을 잃은 허초희의 한시(漢詩) 시구처럼 '피 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였다.'는 '혈읍비탄성(血泣悲呑聲)'이었을까. 이 시대 곡진한 평론가 고(故) 김양헌의 말처럼 “참척(慘 慽)의 아픔보다 더 절절한 것이 있으랴.”
"하얀 운동화 팔아 비행접시 바꿔 오라며 / 장 보러 가는 제 엄마한테 떼쓰다가 / 새록새록 잠든 그믐 칠야"
이 시구에서 가장 나의 주목을 끄는 표현은 '그믐 칠야'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이 그믐 칠야다. 왜 시인은 '새록새록 잠든 그믐 칠야'라 했을까. 그 숨은 은유가 묘하고 놀랍다. 이 은유의 열쇠는 앞 행 '제 엄마'의 슬픈 가슴 속 고인 피의 색깔을 판별해야 답이 풀린다. 즉 '그믐 칠야'는 죽음으로 건너가는 자식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어미가 따뜻한 품안으로 감싸 안는 차원 높은 은유다. 그래서 아이는 삶과 죽음을 다 잊고 '새록새록' 곤히 잠들 수 있는 것이다.
천전모정(天前母情)이다. 하늘 앞 쪽에 어미의 정이 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