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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12. 포수와 나무꾼
참새가 한 마리 죽었다. 참새구이를 하려니 적어도 열 마리는 되어야 한다. 참새가 보지 못하는 움푹한 곳이나 땅바닥에 나직이 몸을 낮춰 열 마리쯤 잡았다. 털을 뽑고 참새 몸에 박힌 납탄을 뽑아낸다. 한나절 내내 한 일의 전부이다. 돈으로 따져 보아서 전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참새들이 계속하여 잡히지도 않는다.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이 잡아서 술집의 안주로 넘겨야 한다. 이래저래 수지타산이 맞지도 않고 심심풀이로 총을 쏘는 것이다. 이제껏 모두 앉아 있는 참새만 잡았다. 날아다니는 참새는 사실 한 마리도 맞추질 못했다. 날아가는 방향을 미리 예견하여 그쪽으로 탄알이 나가도록 시간조절을 하여야 되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참새에게 명중을 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들로 산으로 참새를 찾아나서야 되고 숨을 죽이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정확하게 조준을 해야 된다. 한 번 방아쇠를 당기면 두 마리가 잡히면 좋겠는데 그런 일은 발생치 않는다. 수십 마리, 수백 마리 참새 떼에 총질을 딱 한 번 하여 한 마리 잡는 것이 고작이다. 늪이나 강물 쪽이면 잡아도 참새 시체를 못 찾으면 헛일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참새가 나타나지 않으면 술안주꺼리도 장만하지 못한다. 꿩이나 매를 잡아야 수지타산까지는 안 되어도 좀 나은 수준인데 도대체 잡히질 않는다. 노루나 멧돼지는 공기총이 아니라 엽총으로 바꾸고 준비도 하여야 하므로 문제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새잡이 공기총으로는 생계수단으로써 아무런 가치가 못된다. 기동력을 갖추고 엽총으로 바꾸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사냥꾼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상황이다. 사냥꾼으로 영원히 남고 싶어도 생활이 안 되므로 부득이 다른 일을 찾아야 된다. 산에 가서 나무를 베고 숯을 파는 나무꾼도 할 일이 없다. 더 이상 나무를 벨 수 없고 불을 피워 연기를 내면서 많은 숯도 구울 수 없다. 나무꾼과 포수는 살길을 찾아 봇짐에 약간의 준비물을 챙겨서 이 고을, 저 고을로 다니기 시작한다. 어느 곳에도 필요성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뿌리박고 살 수 있는 농토가 없고 사회조직 속에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은 영원히 열려지지 않는 곳과 그 외에는 하찮은 일거리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려다 힘이 들어 고달픈 나날을 보내다가 세블국으로 왔다. 이제는 제1지하국가만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 살던 이주민도 섞이기 시작한다.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 고통 받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배분에 있어서 균등을 기하지만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 쪽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많은 성공을 하고 나아졌지만 오히려 살림살이가 줄어든 층도 많았다. 원래 많이 가진 것이 없어진 부류와 사회가 바뀌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수입이 한 푼도 생기지 않아서 살기가 어려운 부류들이 세블국을 찾는다. 누구든 선점을 하면 자기 땅이지만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넓이는 한계에 도달하므로 아무리 많이 가져도 소용이 없다. 그곳의 수확물을 따내지도 운반하지도 못하므로 개인의 부지런함과 지혜로 이용할 수 있는 이상은 그저 주더라도 원상태로 남아 있다. 금화왕국이 처음부터 개입하여 이것들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가 못하는 부분만 국가가 관리한다. 국가도 감당하지 못하게 너무 풍부한 것이 탈이다. 포수나 사냥꾼은 나무를 베지 않고도 멋있게 살 수 있다. 할 줄 아는 일은 새를 잡고 나무를 베어 숯을 굽는 일인데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하려니 손에 맞지도 않고 습관상 체질화되어 하루가 지겹다. 어떻게 하면 의식주를 장만하려던 고통에서 해방된 마당에 이제는 어디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여 살아갈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가지게 된다. 나무꾼과 포수는 가족이 없다. 어떤 여자도 그들에게 시집을 오지 않아서 다음세대가 태어나지를 못했다.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은 예쁜 색시를 만나 자식이 생기고 행복한 일로 끝났지만 세블국에 온 나무꾼에게는 그런 전설상의 이야기는 없었고 현실적으로 죽지 못해 세블국으로 온 것이다. 의미도 없는 삶이지만 죽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고를 견디다 못해 죽고 싶다는 말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어왔지만 그들이 입으로는 죽고자 하면서도 실제로 자기의 목숨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율배반성을 가지고 억지로 살아왔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사람이 죽고 싶다는 말이 약간 줄어들고 실천에 옮길 사정이 약해졌음이다. 어찌하여 두 사람은 타인을 살해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어쩌던지 죽어 버리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일이 너무도 안 되었고 사회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돌아갈 몫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희망을 주는 일도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의 직업조차 말하기가 어려웠다. 나무꾼이나 포수라고 하면 무슨 범죄인을 만난 것처럼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너무 심하게 그들을 대우하므로 사회에 대하여 공포를 심어주고 파괴와 방화를 생각하였지만 대단한 자제심을 발휘하여 참아 내었다. 이런 마음을 두 사람만 가졌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은 하지 않았다. 사회 스스로 잘못된 상태가 계속 유지되므로 범죄자 집단이 생기도록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그런 방향의 진행을 막지 않는 것이다. 이왕 이럴 바엔 세상이 뒤집혀 빌딩도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어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기 때문이다. 빼앗길 것 다 뺏기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죽고도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고 불특정다수인이 죽던지 말든지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세상이다. 마음이 허망하고 백척간두의 위급함에 다다른 많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 편한 사회의 나날이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방향으로의 진행을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정상적인 마음이며 이런 사회적 공기가 감돌기 전에 처방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비돌기가 재빠르게 날아다닌다. 한 마리나 무리지어 있을 때에도 사람 곁에서 떨어지지도 않는다. 포수의 입장에서는 사냥하기가 훨씬 수월한 비돌기이다. 세블국에선 비돌기에게 총을 쏘는 일이 없다. 나무꾼의 입장에서도 애래우캐리야 나무를 베어내기는 참으로 쉽지만 한 그루의 나무도 베지 않는 것이 세블국의 운영방식이다. 실제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차선책으로 만들어진 놀이형식을 찾아야 된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행동을 모방하여 동화되어야 한다. 모두들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데 비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두 사람이다. 제일 우선시 되는 것은 비정상의 문제를 정상으로 바꾸는 일이다. 손쉬운 일이 아니다. 세블국으로 이주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해결이 나면 좋으련만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구경거리와 사는 환경은 월등히 나아졌다. 두 사람의 행동도 오래지 않아 헤어지는 쪽으로 결말이 난다. 나이든 두 남자가 붙어 다닐 이유가 마땅치 않고 같이 지낸다는 것은 더욱 말씀이 아니다. 곧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소식두절이 된다. 약간의 관심은 남아 있을지라도 일부러 다시 연결시킬 성질의 것이 못된다. 구름도 둥실둥실 떠다니고 쾌청한 나날들이다. 생각보다도 많이 독신세대들이 살고 있다. 의식주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곳에서 사람이 모이게 되고 북적대어 시끄럽고 답답한 쪽보다 외롭고 낯설지만 아예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없는 쪽을 택한다. 조화 때문에 속을 썩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간섭받기 싫은 사람, 늙은이들을 보살피기 귀찮은 사람, 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 여인의 등쌀에 이겨낼 재간이 없는 사람, 사람이 무서운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로빈슨 크루소처럼 완벽하게 혼자일순 없다. 아침이 되면 하루가 시작되고 정해진 순서는 아니지만 음식을 먹게 되고 그 자리에 가만있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반복된 일과를 내일도 한다. 지루한 일들이지만 십 년은 어떻게 지나갔고 앞으로도 무미건조한 나날들이 기다린다. 그런 중에 포수는 겨우 생각해낸 것이 모형으로 만든 총에 물을 넣어 애래우캐리야 나무 꼭대기나 맨 위쪽 이파리에 충격이 가지 않게 물을 뿌리고 그것이 정확하게 명중되면 모형 총에 불빛이 들어와 확인되는 장난감을 만들었다. 날이면 날마다 어깨에 둘러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처음에는 가깝고 낮은 나무에 성공시키면서 실력을 닦아서 멀리 있는 큰 나무에도 적용을 했다. 심심하고 지겨운 시간이 많이 줄어든다. 이제는 길을 걸어가면 앞쪽, 뒤쪽, 옆쪽에도 나무의 높이와 맨 위의 이파리가 수십 개씩 눈앞에 어른거린다. 동시에 조준할 수는 없으므로 하나를 명중한 다음 계속하여 불빛이 들어왔으면 바라지만 그렇게 빨리 몸을 움직여 다음 목표에 적중하기는 꽤 힘들다. 포수 자신의 수준이 이런 정도인 만큼 일반인의 수준은 형편이 말이 아니다. 하고 하여도 일거리는 줄어들 상황은 발생할 수 없다. 참새에게 총을 쏘던 버릇을 도저히 고칠 수 없어서 바뀐 방법으로 비돌기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그들의 먹이를 비돌기가 알지 못하게 쏘아 올려주는 총질을 한다. 정확하게 비돌기가 날아가다가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게끔 쏘아 올렸으면 적중했다는 신호가 오는 총이다. 똑같은 총인데 나무에 물을 뿌리는 것, 비돌기에 먹이를 주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된다. 하루 종일 해보면 가장 성과가 좋아야 서른 번 정도 성공하고 아주 기록이 저조한 때는 1/3수준에 머문다. 이것을 토대로 건강상태와 매일매일의 능력도를 점검한다. 일주일 내내 기록상태가 1/3수준이면 피로와 건강에 대한 염려를 해야 할 수준이라 생각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일주일 동안 반대의 현상이 생겨도 너무 심하게 일을 할 수 있으므로 관심을 약간 다른 쪽에 쏟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포수는 오십여 성상을 홀로 떠다니는 총잡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바보스러움을 꿋꿋이 간직한 채 한평생을 살고 있다. 포수는 나이가 들어도 눈이 나빠지지 않고 더욱 또렷이 비돌기나 나무 이파리를 볼 수 있다. 손가락의 감각은 고도로 발달하여 후각이나 청각적 기능이 손가락에 첨가된 느낌이다. 그가 포수가 된 것은 같이 살던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했던 것이다. 이제는 자식도 없으니 물려서 계속할 사람이 없다. 포수의 아들이었지만 실제로 총알을 사용하여 날짐승을 처음 잡던 때는 성년이 가까워서였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총알을 주지도 않고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제야 돌이켜보면 총알은 상당히 위험한 물건이다. 얼마나 긴 세월이 흐르니 귀신도 잡을 만큼 총을 잘 쏘았지만 큰 쓸모가 있는 기술이 아니다. 다음날도 쉬지 않고 어깨에 총을 메고 허리엔 총알대신 사용할 물건을 둘러차고 바깥으로 나선다. 자연과 인사를 반갑게 나누고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이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어색한 여운이 춤을 추지 않으므로 물 흐름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붓듯 사냥의 바뀐 모습도 세월 속에 그려져 있는 자연스런 변화이다. 문화가치로 따져보아도 인류가 살던 원시적 모습을 몽땅 지워버리면 사람은 무엇으로 그들의 옛일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겠는가? 포수도 엄연히 존재하던 사람의 한 부분이다. 인간의 조상들이 동굴 속에 그려놓은 유치한 그림을 통해 진정한 사람이 이러했다는 점을 되새기는 마당에 포수가 살아온 일생도 그와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당시에 총을 가지고 들짐승을 사냥하는 포수야말로 위대한 왕이며 동굴시대의 인간들에게 틀림없는 영웅이었다. 수십 명의 원시인들이 합심하여 한 마리 들소를 힘겹게 잡는데 포수가 나타나서 총 한방으로 깨끗하게 잡는다면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차지했을 것이다. 포수는 원시인들이 사는 땅에서 꿈에도 그리던 멋있는 사람일 수 있는데 현실은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존재이며 누구도 그 일을 배우려하지 않는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그 직업에 대하여 배우지 않으려는 세대로 채워진다면 참으로 김빠지는 일이다. 문화가 바뀌는 속도는 갈수록 빠르다. 극심한 변화로 말미암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과 정신적 압박으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포수처럼 살아간다. 원래 자신이 하던 일을 세블국의 방침에 위배되지 않게 변형시켜서 시간을 채우면서 살아간다. 포수는 일 년 계획도 짜지 않고 죽는 날까지 지금 일을 꾸준히 하리라 마음먹었다. 좀 더 개량이 된다면 길을 걸으면서 목표물들이 손바닥에 그려지면 낫겠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고 일일이 고개를 돌리면서 확인을 해야 된다. 구름이 잔뜩 낀 날, 비가 오는 날, 바람이 심한 날, 눈이 오는 날, 몸이 아픈 날, 이래저래 빠지는 날이 무척 많다. 이런 날은 총이나 손질하고 빈둥빈둥 하루고 이틀이고 시간을 보내야 된다. 찾아갈 여인도, 찾아오는 누구도 없는 한심한 생활이 위협받지 않는 것이 행복이다. 불안,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대단한 정도의 활력이다. 얼굴 없는 폭압으로부터 숨을 쉬지도 못하면서 지내진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든 원하는 것이다. 세블국에서 폭력이 아직 생기지 않음은 사회가 미분화되었거나 상대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만큼 답답하고 암울한 땅이 아님을 입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 것이 무식을 면하기도 하지만 포수의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낼 필요성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포수는 사냥터를 전전하지만 전리품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살 수 있으니 그런 일이 가능하다. 전혀 의식주가 보장되지 않으면 사냥터에 아예 나서지 않는다. 포수는 벌써 많은 것이 생겨버린 세대에 속한다. 갖고 싶어도 구하기 곤란한 시절의 사람이 아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많은 별이 떠있다. 헤아려 보면 쉰 개가 넘는다. 부질없는 소일거리지만 별을 향하여 총을 쏜다. 아무리 쏘아도 별에 도착한 것도 아니고 전혀 표시도 생기지 못한다. 약간 고칠 수 있는 것은 색깔을 넣어 밤에 쏘아 보면 쭉쭉 올라가다가 끝끝내는 피시식 땅으로 떨어진다. 어쩌면 사고자유권 중에서 물거품이론이 정답일 가능성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결과론에서는 물거품현상에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연 질서를 놓고 볼 때 아주 보잘 것 없는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고, 쓰고 있는 언어란 것도 국가만 바뀌면 쓸모가 없다. 세블국은 혼합 언어체계로 운영된다. 비행선만 타고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말, 글, 돈, 인맥, 재산, 인격, 학식, 기술, 정말 쓸모가 없는 것으로 바뀐다.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한 번 더 물거품인 그의 인생에서 포수를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땅이 우주에 있는가? 고생하여 찾아간들 말도 다르고, 글도 다르고, 돈도 소용없고, 인맥은 원래부터 없었고, 재산은 무일푼에, 나머지 조건들은 거론할 수준이 못된다. 비루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을 보내기는 더욱 비참하다. 그런 일과 비슷한 일이 훌륭한 학자에게도 생긴다. 그가 쌓아올린 학식은 몽땅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말로만 만들어졌다. 그것을 다른 나라말로 바꾸어 이용가치가 발생하지 않으면 구태여 그 학자를 받아들일 다른 나라는 한 군데도 생기질 않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영토고권, 대인고권, 국가존재여부에 따라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땅에서 포수도 상황이 비슷하다. 영토고권을 책임지는 부분으로 국방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국방이 필요치 않는 세상이며 늙어빠진 군인도 받아주지 않는다. 대인고권의 영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가치상실의 존재였다. 국가존재여부에서도 좋은 곳으로 영주들이 이동하는 마당에 포수가 이동한다고 막거나 남아달라는 애원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가려거든 미련 없이 가버리시오. 형편이 이렇다. 참으로 기가 막힌 오십 년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 나이가 되기도 전에 살아남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사람도 적지 않다. 아무리 실기가 힘들어도 자연사로 세상을 뜨는 사람이면 아직도 대부분 생명이 남아있는데 일찍 죽은 사람은 사고사나 급작스런 질병에 의한 것이다. 이름도 없고 남김도 없이 너무도 허망하게 없어져 버린 수많은 포수들이 있다. 향수도 미련도 갖지 않고 포수의 일을 그만두고 살아간다. 너무도 변해 버린 전직 포수들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심하여 정신이 아찔아찔 한 형편이다. 마음으로야 하늘에 떠있는 모든 별을 정복하고 싶지만 당장 비행선을 구할 형편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노력과 지혜의 결집으로 별을 향하여 날아가는 단계에서 별을 연구하고 기록물을 모우기도 한다. 한두 개만 발견하여 인간이 거주하도록 성공시킨다면 모든 노력의 대가는 회수되기도 한다. 포수가 하는 일은 미래에 나와야 될 사람의 모습과 과거의 끈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굴들을 생각하면서 오십 개의 별을 향해 또 총을 쏘고, 불꽃을 올린다. 물거품이 되어 세블국의 땅으로 주저앉아 버리지만 그 일을 요즈음 밤마다 계속한다. 지난 오십 년을 되돌아보면서 한 해, 한 해의 부분들을 연결해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주 어릴 적은 어떻게 지냈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반평생 이상이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다. 사회는 바뀌어서 포수를 사람의 영역과 필요한 직업세계로 받아들이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고로 그는 홀로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만 괴롭힘을 당하므로 적절히 순응하여 허수아비총을 보존하면서 이처럼 참으면서 살아온 길이다. 총이란 물건은 인명을 살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인명이든지 살상이 되면 어김없이 총잡이였던 그에게, 현재에도 허수아비 총잡이인, 그를 주목하여 괴롭힌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하여 총을 잡기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에게도 총을 놓으라고 강요했지만 워낙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므로 아직도 남겨두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다. 인명을 살상하고 강도짓을 하면서 총을 가지고 돌아다녔으면 벌써 그 옛날에 조사받고 잡혀 갔겠지만 그런 현상이 생기지 않았던 것은 그가 나쁜 일은 안했기에 그런 것이다.
물거품이 되는 포수도 많았다. 왜 포수가 되려는지 집요하게 따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했던 한 사람은 당장에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버렸다. 수백 명이 모여도 정신병자와 같이 사람을 죽이겠다거나, 복수를 위하여 총질을 배워 원수를 갚겠다는 말을 하거나 글을 발표하는 포수 지원자는 싹 실끈을 잘라 버렸다. 그래도 또 지원하는 자들을 모아 포수를 만들긴 해도 시대상황에서 살아가기 힘들도록 하니 도중하차하는 포수뿐이다. 그처럼 물거품을 쫓고 쫓아서 무슨 대단한 것이 있는가? 가장 어려운 관문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정신적, 경제적, 육체적 압박 속에서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고 정확한 능력을 발휘하여 잘못된 행동이나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 포수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보상은 없는데 과정은 질기고 질기게 사람의 정신구조상 바른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니 견뎌내기가 무척 힘들다. 그런 경험과 훈련을 마친 자들에게 실제로 총알을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허가가 났지만 그것도 얽히고설킨 감시로 인해 한 번도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제약했다. 그가 그처럼 다른 일을 못한 것은 이것 한 가지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다보니 어깨에 걸친 허수아비총 한 자루에 그의 오십 년 인생이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그가 허수아비총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만큼 혹독하게 많은 과정들을 거치고서 얻은 물건이며 쓸모없는 자격일지언정 그것마저도 없다면 그의 전 생애는 허물어져 버리고 세상을 살 의욕이 줄어들어 두문불출 제풀에 쓰러져 죽어버릴 지도 모를 상황을 염려해서이다. 만약 그에게 포수의 일을 그만두게 하거나 그 일을 잃게 된다면 세월의 아픔이 각인되어 생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
이리저리 정처 없는 유랑길에 허수아비 총잡이의 하는 일에 관심을 나타내는 엉뚱한 사람을 만난다. 포수는 제정신이 나간 사람으로부터 하는 일의 요모조모를 심문당하는 것이 몹시 불쾌했으나 사실은 비돌기와 나무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좋은 방향에서 해석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워낙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그이므로 낯선 사람의 의도는 알아차렸지만 미심쩍은 구석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나무숲과 비돌기에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면 사람도 좋은 것이다. 약간 사람이 더 불어나서 포수의 일을 전수하는 입장에서 신중한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됐지만 이제까지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전해준 적도, 전해 받으려는 쪽도 존재치 않았었다. 예전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덜 밟아서인지 배우는 사람들의 수준이나 실제 나타나는 기술적 능력은 아주 형편없다. 그래도 쉽게 중단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와중에 전직 천문담당관을 만나서 넓은 범위로 세블국에 보급하는 것이 월등히 유리하다는 확실한 검증의 단계에 들어선다. 무관심의 영역에서 필요하기는 하다는 인정의 단계가 그의 인생에서 처음 나타난다. 전직 천문담당관은 세블국이 만들어지도록 온갖 고생을 다했던 인물이다. 세블국이 잘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여 잘 활용하려는 마음으로 삶을 사는 입장이다. 매일매일 암담하게 지내는 사람일지라도 알 수 없을 만큼 세블국에도, 모두에게도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으므로 열심히 하는 일을 권장하고 사람들에게도 스스로의 기준에서 합당한 일들을 하여가기를 늘 주장하는 쪽이다. 합리주의, 실용주의 측면이 상승작용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적용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다. 포수는 고집스럽게 그의 모습을 지키려고 살아온 것이지만 살아오면서 세상을 나무라지 않고 도움이 되게끔 그 자신을 절차탁마함으로써 서글픈 인생이나마 괜찮은 사람들을 만남으로서 값어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현실이다. 전직 천문담당관은 공상 속에서는 구름을 타고 다니고 싶었다. 한 번도 성공치는 못하고 구름 속에 숨어서 비행물체를 움직이기는 해보았다. 구름이란 무엇인가? 너무도 쉽게 생겼다가 금방 없어지는 조화를 부리는 신기루이다. 땅에서 물총으로 수분을 쏘아 올려서 구름층이 없어지지 않고 타고 다닐 만큼 계속 유지되도록 만들던지, 타고 다니면서 천문조화를 통해서 구름비행기, 구름양탄자가 되었으면 싶다. 이런 의미로 포수에게 물총을 쏘면 어디까지 올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보니 한심한 높이까지만 가능하다. 시작은 모든 것이 한심한 것이 정석이다. 세블국을 만들 때를 생각하면 더 심한 지경이었다. 구름비행기를 성공하여야 금화 영주에게 포수를 소개시킬 정도는 되겠는데 미미한 지금의 수준으로써 영주를 만나기는 곤란한 상태이다. 포수는 자신이 하던 일을 몇몇 사람이 하게 되고 덜 외롭게 지내도 됐지만 전직 천문담당관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하는가? 는 정확한 내용을 알 형편도 아니고 굳이 따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사격솜씨가 수준이하인 사람들을 어떻게 능숙하게 단시간에 만들어 낼 것인가? 고민을 떠맡게 된다. 예전같이 선발을 거친 부류도 아니다. 시력도 늙은이보다 못하고 운동신경도 젊은 사람이라고 여기기엔 납득하기 곤란한 정도다. 포수 자신이 너무 한쪽으로 발달이 된 사람임을 염두에 두고서 따져보아도 그렇다. 포수는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교육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짜야한다. 포수보다도 모두가 사격술이 못할 것이란 예견을 해서도 안 되지만. 지금 당장도 간격이 심하게 벌어진다. 삼십 년이 비워져 있는 사람에게 하루나 이틀 만에 사격술을 비약시키는 교육방법이 없는가? 포수는 여러 날을 교육방법, 피교육자의 습득정도라는 케케묵은 문제가 가장 어렵게 그에게 가로막아 선다. 삼십 년을 하루에 라는 신념의 목표를 총에다 걸어 메고 길을 나선다. 문명과 문화의 산물은 시간을 넘어선 것들이다.
포수의 생활상은 명맥이 끊어지던 것을 다시 이어가는 현상이다. 무엇이던지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정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포수의 입장에서는 모든 어려움을 참아가며 지켰으므로 접목이 가능해졌다. 대부분의 일상사에서 사람들이 악착같은 마음으로 보존할 의시표시나 실제의 행동방식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세블국의 장래도 마찬가지이다. 흡족한 채로 지킬 마음을 가지지 않고 긴 세월이 흐른다면 스스로의 원리에 의하여 교육도 필요 없이 허물어질 것이다. 아직까지 비참한 흐름이 나타나진 않아도 부지불식간에 생겨나므로 금화왕국으로서도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 이들은 또한 소유의식이 너무 희박한 사람들과 살고 있다. 무소유의 삶이 좋은 것이라 하여 세블국 전체가 누구의 것도 아니고 주인도 관리하지 않는 땅이라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황폐한 폐허의 나락으로 떨어질 기초가 마련된다. 사람들이 살던 곳을 잘 보존하면 유적이 되겠지만 방치하여 그대로 내팽개치면 을씨년스런 황량함과 귀신이 늘 출몰하는 죽음의 언덕과 흡사해진다. 환영받지 못하는 포수의 문화적 가치가 포수의 노력과 사람들의 무관심이 약간 사라진 덕택으로 다시금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스스로 가꾸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한 것은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아예 부숴 없애려는 의도로 인생을 살아가는 삐뚤어진 심리적구조의 인간들을 치료하여야 한다. 심리적 고리가 들쭉날쭉하지만 근본적으로 일을 엉뚱하게 꾸미는 계층이나 개인을 합리적 걸음을 걷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자율성에 근거한 낙천적 희망으로만 채워도 가능할지 알 수는 없다. 사고자유권은 점점 행복이 샘솟고 부풀어지는 세상도 물론 찾아 나선다. 포수는 곧 오십 일개 성상의 세월에 들어설 것이다. 미래예측지표들은 사람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결집하여 이룩한 것이다. 실제성과 예측성에서 맞지는 않아도 순기능적으로 존재하는 포수의 부분은 분명 미래예견에서도 찾지 못한 일이다. 세상은 원래 과거성, 현재성, 미래성이 복합적 시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포수는 꾸준히 과거성을 유지시키면서 버텨온 인물군이다. 과거성이 잘못된 방향으로 오랫동안 유지되면 세상은 뒷걸음을 반복한다. 뒷걸음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 나이가 많아지고 기력도 약해지면 뒷걸음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숙명론자적 지위의 정신구조에 서게 된다. 불가항력적 사항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은 아무래도 미래보다는 현실에 근거를 둔 세력군이라 볼 수 있다. 세블국이 만들어진 것은 미래적 목표와 행복에 큰 힘을 실었기에 가능하였다. 모든 분위기가 미래적 삶의 안락과 풍요를 꾸준히 생각하므로 과거영역의 부분들이 자꾸만 잊히는 문화패턴이 된다. 잊어버리자는 적극적 행동유형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흘러온 것이 그 방향이므로 쉽게 느끼지 못하는 점이다. 너무 많은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시달린 시민들도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면 거칠게 항의할지라도 약간의 불편이라면 시달린 나머지 귀찮고 골치 아파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전시에 약자의 게릴라군이 지탱하는 것도 강자의 승리의 입장에 선 군대도 도저히 응징하기 힘들어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사람의 몸속에도 꼭 이로운 것만 생기지 않고 병원체도 침입이 되고 이래저래 인간을 괴롭히면서 저항이 약해지면 목숨까지 위험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경우는 스스로의 면역체계와 건강으로 이겨내게 된다. 세블국은 미래성에 기초를 두고서 만들어진 행복과 이름다움을 지닌 견고한 거주공간이다. 게릴라군이 세블국에도 생겨난다면 그 넓은 지역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단이 있을까? 의문이다. 게릴라군은 도망 다니는 것이 일과이며 강력한 군대에 대하여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며 간혹 상대방 군대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이 고작이다. 완벽한 국가라면 게릴라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덜 완벽한 국가도 무엇이 잘못되어 있다면 인심이 사납고 흉흉한 기운이 그 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세블국 지방정부에는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땅이다. 세블국 중앙정부에는 드러나지 않는 군대가 있다. 존재론적 입장에서 군대가 없다면 과거기준으로는 너무 국력이 약하여 그럴 것이다. 판단 지울 수도 있다. 판단기준을 다시 마련하는 입장에서는 군대가 없어도 유지되고 지켜지는 땅이라면 그 보다도 더 나은 곳은 없다는 결론이다. 개인들도 신체상 잘못을 만들 수 있다. 적당한 정도의 체중은 필요하지만 너무 살이 과잉으로 찌거나 배가 나올 만큼 이상 나온다면 오히려 나쁜 쪽으로 생각이 되고 조심을 하게 된다. 군살을 빼어야 된다. 세블국에도 형성될 여러 가지들이 있어도 무방하지만 없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도 있을 수 있다. 포수는 그러한 논의의 차원에도 속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본류에는 해당하지 않고, 실개천에 흐르는 물이다. 도랑물이 모여서 큰 강이 되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만 포수는 역사의 흐름에서 긁적거리는 존재에도 속하지 않으며 무의미 그 자체이다. 문화사적으로는 퇴보된 백 년을 공존한다는데 그 값어치를 억지로 찾아내어 본 흔적에 불과하다.
공존모형에 적합한 모델이 20세기 후반의 정치제도 중에는 민주주의가 꼽힌다. 사람이 서로 모여 사는 공존형 삶은 더욱 각양각색이다. 나무꾼과 공존생활을 하다가 뿔뿔이 흩어진 포수들이지만 나무꾼의 삶의 방식도 흔적에 속하는 부분이다. 포수와 헤어진 나무꾼도 그의 방법을 찾아 살아간다. 그는 나무를 베는 일보다는 나무끼리 오밀조밀 붙어서 살지 못하게 하는 곳에 가서 세블국 관리가 지정한 것에 한해서만 옮겨 심는 일을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엉겨 붙은 나무숲이 제대로 큰 키로 살기 어려워버리면 지체 없이 연락을 취하곤 한다. 나무는 늘 손질을 하고 간격을 맞추어야 한다. 대도시를 만들려면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쭉쭉 살아가도록 배려하여야 하므로 공간에 해당하는 부분은 비슷한 나무를 옮겨주고 밑바닥에 아주 작은 묘목만 살려두도록 일을 한다. 나무를 옮기는 일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옮긴 나무를 심을 곳이 마땅찮은 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된다. 하늘에 높이 띄워 수경재배식으로 나무를 키워야 하는데 사람이 아닌 나무에 대하여 너무 많은 혜택을 주기 곤란한 처지이다. 옮긴 나무는 대도시 건설을 생각하지 않는 지역에 밀도가 빽빽하게 심겨지는데 가는 곳마다 이미 많은 나무가 살아있는 형편이라 나중을 생각하여 분재형태로 더 이상 크지 않으면서 나무의 성질을 유지하다가 상황에 따라 땅에 옮기면 큰 나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식물・나무의 생태학이 발전한다면 분재형식의 나무가 오랫동안 살았을 경우에 유전자조작을 하면 원래 나이만큼 돌아가서 분재로써 10년 살아온 것이 금방 커지게 만들면 좋지만 나무꾼이 담당할 부분이 못된다. 사람도 죽으면 그만인데 냉동하여 다시 살 방법도 강구를 하지만 나무는 한 그루도 없애지 않고 식물의 생명을 끊어버리지 않는 법률이다. 나무꾼은 이제껏 잘라버리며 살아온 인생에서 세블국에 온 이래로 나무는 한 그루도 벤 적이 없고 옮겨 심거나 다음을 생각하여 분재만 해온다. 그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어째서 나무가 그토록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하나? 예전 기준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되어 당연시한다. 나무는 도시를 만들고 사람의 호흡을 책임지는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나무를 꺾지 않는 규칙도 아울러 시행한다. 자라는 나무는 가지치기를 하여야 되건만 넓이를 차지한 정도는 그대로 뻗어가는 가지의 형세를 관찰만 하지 꺾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완전히 전개되는 방향을 모두 연구한 다음에야 잔가지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가? 관찰만 하게끔 한다. 나무꾼은 점점 식물학자의 보조원으로 바뀌어졌다. 어떻게 하면 톱질과 칼질로 쓰러뜨릴 것만 연구해온 그의 일생으로서는 정반대의 개념과 대립하여 정신적 압력이 솟구치기도 했지만 적응하여 살아가는 동안에 나무에게도 엄연한 식물권이 존재함을 서서히 느끼게 된다. 식물권을 정직하게 나무들이 행사할수록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 되기 때문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몹시 흔들리는 나무이지만 그래도 부러지지 않고 용케 버텨온다. 태풍이나 지진이 일어나도 뿌리가 뽑히지 않아야 인명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나무자체가 태풍, 지진을 이겨내도록 나무꾼은 키우고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무꾼이 함부로 나무를 캐내어 버리고 잘라버리면 도시가 무너지는 꼴이 된다. 도시와 마을이 보존되도록 나무는 키워져야 한다. 태풍을 막으려는 사람과 기관, 지진을 예방하려는 사람과 단체도 나무를 살리고 가꾸는 일에 속하는 부류이다. 나무꾼은 그들의 모든 고려사항을 설명을 들어야 나무에 대하여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원칙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세블국이다. 대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큰 나무들이 병이 생겨서 썩기 시작한다면 대도시가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하므로 더욱 철저히 나무의 건강상태를 점검한다. 기후, 토질, 여러 조건들이 조사받고 기록을 통하여 이백 년이고 수백 년 동안 무너지지 않는 나무숲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의 안전이 보장된다. 사람의 안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써 나무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나무꾼은 처음엔 몹시 화가 났다. 사람보다도 더 정밀하게 건강진단을 받고 적어도 몇 백 년을 살아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나무가 썩지 않고 태풍이나 지진으로 파손되지 않으면 그와 같이 사람들도 좋은 기후와 토질에서 고통 받음이 없이 태풍, 지진의 무서움을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옮겨 심은 나무가 곧 죽는다면 그런 토질에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쉽게 뿌리가 뽑힌다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애래우캐리야 숲의 건강함은 사람의 건강과 동일한 것이다. 나무의 키가 100m 넘으면 그 키를 지탱하는 뿌리도 지하에 100m 키만큼의 힘과 크기로 굳세게 얽히고설킨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금화왕국의 나무관리국의 검색시스템에는 한 그루의 나무를 촬영하면 뿌리의 퍼진 정도가 세밀하게 화면에 드러나고 잔뿌리들의 영양공급회로가 나온다. 뿌리 중에 손상 받는 부분이나 옆 나무와 겹쳐지는 부분도 파악된다. 겉모습의 나무뿐 아니라 밑뿌리도 동시에 매일매일 건강상태를 점검받는 것이다. 사람에게도 하기 힘든 일을 일상사로써 처리한다. 토질의 변화사항도 일일이 시간대별로 파악된다. 토질이 하루 만에 변질되어 모든 나무가 쓰러지면 도시는 아수라장의 지옥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세블국의 모든 나무는 신상명세와 건강상태가 기록되고 관리된다. 나무가 죽으면 다음 차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사람이 죽지 않으려고 나무를 정성껏 관리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속사정을 알고 있는 세블국 사람들로서는 나무를 부러뜨리거나, 잘라버리거나, 훼손하는 일은 생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인간의 생명권은 존귀한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하더라도 받아들이기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나무를 가꾸는 일을 하거나 생각을 해보면 그것이 사람이 살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나무보다도 월등히 중요한 존재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포수도, 나무꾼도 세블국의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비돌기가 죽는 것도 나무가 쓰러지는 것도 찾아보기가 어렵고 그런 일이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전직 천문담당관은 포수와 나무꾼이 만나게끔 주선을 한다. 두 사람은 다시 마주쳤지만 반가운 기색도 찾아보기 힘들다. 계획한 일거리치고는 대단한 것도 못되지만 세블국 사람들이 워낙 원자화된 개인적 합리주의 모형으로 생활을 한다. 그도 총독 보좌관을 통하여 세블국이 여섯 곳으로 나뉘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도 그가 사는 곳이 금화 영주의 영역임이 밝혀졌음으로 영주와도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도 포수와 나무꾼처럼 굴곡과 부침이 심한 인생이다. 순탄한 걸음을 걷지 못한 세월이다. 어느 쪽에서 부르는 사건도 발생 않으며 섣불리 쫓아가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 나날이다. 적절한 선에서 약간의 활동만 무리하지 않게 하는 매우 소극적형이다. 세블국을 유지하고 끝까지 지키겠다는 신념체계는 누구보다 강하다. 그 자신이 힘들여 창조한 세블국이므로 그러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참선을 한다. 바른 자세를 취하고 무념무상의 공간으로 그를 침잠시킨다. 건강상태, 먹은 음식물, 전날의 형편에 따라 대부분 아침 명상은 정상적이지만 어떨 때는 어제 잘못 먹은 음식물, 무리한 일과에서 비롯된 피로, 알 수 없는 병원체 등으로 시달릴 때도 있다.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 주었으면 싶어도 문제꺼리는 발생한다. 선업을 쌓기 위해 한 일도 상대방으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섭취하는 음식물은 정해져 있으므로 몸속에서 아픈 일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 아픈 경우도 생기는데 의심스러운 구석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믿지 못하는 기괴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전염병이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병원체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 인위적인 잘못에 의한 것이거나, 성격상 고의적으로 남을 아프게 하거나, 괴롭힐 일을 주기적으로 행한다면 세블국의 장래는 암담한 지경이 된다. 언샘에 독소를 주입하고 단계적 관찰로는 곤란한 병원균을 퍼뜨리는 사회가 연속된다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가져오더라도 전쟁범죄 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미량의 독극물, 감지하기 힘든 분량의 수면제, 동원할 나쁜 방법으로 사람에게 죽음이나 고통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하는가? 전직 천문담당관은 이제껏 그러한 방법으로 타인을 간접 살해한 경험이 있는가?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아무리 시궁창에 처박히는 인생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답답하였지만 양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독극물을 통한 방법으로 살인한 적은 없다.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나 너무 어려운 과제를 떠맡기어 감당하지 못하여 정신적 압박을 받게끔 한 것은 분명 사실이기는 했다. 그러면 오늘도 맑은 정신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무엇인가 옳은 일을 찾아보려고 명상도 하는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해 달라. 또 힘든 계획을 맡아서 몇 개의 세블국과 비슷한 곳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냐? 물론 어느 정도 축적된 기술은 있지만 벅찬 시련을 떠맡고 고생하기보단 작은 일을 하면서 편안하고 싶다. 안빈낙도로 여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생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생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를 파악해보면 욕심을 과하게 낼 이유도 사라진다. 남과 다투고자 할 명분도 줄어든다. 그가 죽었을 때 세상이 슬퍼할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목숨이 끊어지면 의미 없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살아온, 지나온 날들을 뒤바꿀 묘책은 나타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가 평가의 대상이 될 만한 분위기인지도 염려스럽다. 질병, 죽음, 그에게 가로막아서는 현실들이다. 아프지 않고 싶다는 소망도 무참하게 그를 짓밟아 버릴 수 있다. 무병장수하고픈 심정이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깨끗한 물을 마신다.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아프면 재빨리 병원을 찾는다. 마음을 즐겁게 가진다. 음식을 조심한다. 무병장수하려고 온갖 것들을 다 지킨들 타인이 남몰래 생명을 해친다면 적절히 막아내면 되겠지만. 전혀 무방비로 막지 못한다면 곧바로 독살도 되고, 늦게 병을 얻어 죽을 수도 있다. 타인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면 무병장수와는 거리가 먼 사고사를 당한다. 전직 천문담당관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으려 온갖 꾀를 내어봤지만 상대방이 결단코 살해할 의도로 행동한다면 그 상대방을 찾아내어 싸우거나, 붙잡거나, 응징하거나, 화해하거나 하는 수준의 행위들이 생긴다. 곧잘 생기지는 않는 일이지만 살해코자하는 상대방 범죄인을 찾아내지 못할 때는 무슨 방법을 택해야 하는가? 자체방어수단을 동원하는 길뿐이다. 세블국은 너무 태평천하이다. 그는 명상을 하면서도 이처럼 무방비로 사람들이 생명을 내어놓고 잘살아 가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그렇게들 살고 있다. 그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무엇을 하려고 하면 꼭 장애물이 가로막아 섰다. 멀리 여행을 하려면 다리가 아프고, 공부를 하려면 눈이 아프고, 큰일을 벌이면 자금이 한 푼도 안 들어오고, 중요한 고비에는 푹 쓰러지고, 병이 생기고 하는 인생이었다.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이 없었다는 사람도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을 뒤바꾸지는 못했다. 그는 명상을 하면 할수록 사람의 일생이 허무하기만 하다는 심정이 있었기에 나무꾼과 포수를 불러 보았으나 결과는 비참한 허무의 늪에 빠지게 만든다. 희망과 영원의 세블국에서 심하게 허무를 퍼뜨리고 다니면 국법에 어긋나는 사항이기도 하므로 남에게 권하는 것은 아니다. 어째 살아온 그림이 허무주의의 물감으로 계속 덧칠이 되고 있다. 그는 다음날 아침에 정신을 가다듬어 허무한 인생, 영원, 희망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선문답을 시작한다. 죽기는 왜 죽어야 하나? 죽기 싫기도 하고, 어차피 죽는 것은 받아들이는 심정이기도 하다. 모두들 사람은 죽더라. 그러니 아무도 그 자연법칙을 거역 못하더라. 거역하여 다시 살아났다는 것들은 종교상의 일이지만 그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에서도 나이가 이백 살이 넘었으면 죽지 않고 부활한 인간이다. 여기고 보아도 엇비슷한 현상도 없었다. 그러니 죽는 것은 분명하다. 죽기는 죽는데 좀 그럴듯하게 죽고 싶다. 사고사하거나 생목숨이 끊어지기보단 자연수명을 살다가 무엇인가 추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인정되게끔 죽고 싶다. 가치 있는 쪽으로 가고자 한다. 없어지는 마당에 영원이란 존재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니가? 끝이 없는 길, 길이길이 남아 있는 것, 어떤 것이 영원이란 뜻인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앞선 세대는 죽었지만 후세대가 이어져 오므로 영원하다. 앞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보태어 다음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니 무엇인가 이어져 영원한 것이다. 그럴 지도 모른다. 전통계승, 문화전수, 문명변천이 관련된 것이다. 인류도 스스로 멸망해 버리면 영원함도 끝장이 나는 것이다. 영원함은 사람의 유전형질이 보존되므로 똑같이 복제된 인간이 태어남으로이다. 영원은 DNA와 관련 있다. 몸에 걸치는 의상, 건축물, 인간과 관련된 것들은 변화한다. 유전자는 그렇지 않으므로 영원하다. 그것도 변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과거의 인간과 조금씩 차이가 나므로 영원과 가깝지만 완벽하게 영원일 것이라고 규정짓기는 힘들다. 그러면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의 언덕, 희망의 불빛, 희망의 서곡, 희망의 합창, 희망의 미래, 희망의 인간, 온갖 희망을 만들어내는데 무엇이 희망을 만드는 것인가? 희망을 정복하는 것인가? 희망을 조작하는 것인가? 희망은 불행과 비극을 간직하고 이겨내는 것인가? 불구자의 희망은? 고아의 희망은? 환자의 희망은? 부자의 희망은? 권력자의 희망은? 신의 희망은? 종교의 희망은? 군대의 희망은? 어떤 것들이 희망인가? 희망과 허망은 무엇이 다른가? 세블국에 온 사람은 희망을 찾아와서 희망을 발견하여 희망을 펼치기를 원한다. 그는 희망의 땅에서 허무를 느끼기도 한다. 허무와 허망이 어느 정도 다른지 확실한 구별도 못해내는 그이지만 세블국은 희망의 존재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희망의 땅으로 그는 날아왔던 것이다. 희망의 땅이 여섯 곳으로 나누어지고 여섯 영주도 존재한다는 정치적 사항을 이제야 파악하는 그는 더욱 허무한 존재에 속한다. 금화 영주란 사람을 접견하기는 했지만 인물자료를 정확하게 제공받지도 못했다. 세블국은 영원과 희망이란 주제가 대부분 목표로 되어있다니 관찰을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니 꿋꿋하게 접힌 다리가 찌르르 경련이 일어난다. 거창한 범위로 전개되어 결말을 알 수도 없는 화두의 뒷걸음이다. 심심풀이로 꽤 긴 시간을 잡아먹는 생각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거나 요청이 있을 때는 실제의 문제로 바뀐다. 그럴 경우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므로 얼토당토않은 줄거리로 많은 이들을 이끌어 가서도 안 된다. 점차로 화두의 발전과 선문답을 체계화시킬 의무적 개념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