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그녀를 무시한다 거울 속의 풍경은 그녀를 무시한다 그래서 그녀는 좀 쓸쓸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좀 쓸쓸하다 그녀는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 그래도 그녀가 없으면 거울은 좀 쓸쓸해진다 거울 속의 풍경은 이내 쓸쓸해진다 그녀는 다시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거울의 문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은 문으로 새 한마리 따라 들어왔다 나간다 잠깐, 그녀의 마음에 새 그림자 무게만큼의 그늘이 얹힌다 그늘 아래 그녀는 가파른 계단을 본다 계단은 주름으로 덮혀 있다 계단 앞에서 그녀는 초록에도 젖지 않고 꽃빛으로도 물들일 수 없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은 두루마리처럼 감긴 강물과 닿아 있다 깊은 눈물샘에서 발원한 강물, 강물에 서면 그녀가 기억하는 그녀가 있다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가 있다 문득, 왼쪽 가슴에 박힌 오래된 파편 하나의 통증이 우릿하게 그녀를 적신다 그녀는 강물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거울은 이제 깨지지 않는다
이승주의「거울 보는 여자」는 시각이 여성적이다. 시의 의식을 끌고 가는 방법은 '그녀와 거울'의 직접 소통이다. 왜 이승주의 '거울'은 그녀를 무시했을까. 사물의 '의식'은 서로가 존재 가치를 인정할 때 비로소 자각된다. 그러나 곧바로 '거울'과 '그녀'는 쓸쓸함이란 의식의 표피층에서 봉합된다.
이승주의 '거울'은 문(門)의 흔적이 없다. 그러나 그 문 속에 '새'가 산다. 이것은 무의식의 층이다. 의식을 바탕으로 한 무의식의 매개를 그는 '새'로 보았다. '새'는 그림자 무게만큼의 그늘을 얹는 인간 존재의 희망과 절망 사이다. '그녀'와 '강물'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계단'이다. '계단'은 무의식이다. 어쩌면 '계단'은 신화(神話)로 통하는 초자연적 통로인지 모른다. '계단'이 없어지는 무의식 끝에 '강물'은 '눈물샘'과 합일된다. 합일된 그 순간 기억하는 그녀인 '의식'과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 '무의식'의 경계가 선명하다. ‘왼쪽 가슴’의 상징은 잃어버린 그녀의 남성성이다. 왼쪽은 양(陽)의 세계다. 그래서 그녀는 끝없이 남성을 추구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승주의 '거울'은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을 통해 초자연적 세계를 찾아가는 '문'과 '계단'을 '거울'이란 공간 속에 확보한다. 결국 이승주의「거울 보는 여자」는 의식과 무의식을 거쳐 초자연적 세계와 융합되는 신화적 상상력까지 시의 내적 엄밀성을 끌고 나간다. 이것은 그가 시의 몸을 만질 줄 아는 시인이라는 뜻이다.
이상의「거울」이 일제하 근대 지식인의 불안과 모성 상실에서 기인한 개인의 애증 결핍에서 성장이 멈췄다면, 현대시 속에서 '거울'이란 시적 모티브를 한 차원 높은 인식 단계로 진입시킨 작품이 이승주의「거울 보는 여자」라 할 수 있다. 즉, 이승주의「거울 보는 여자」는 칼 구스타브 융의 말처럼 '건강한 인간의 총체적 노력'을 현대인의 자아 상실에 대한 치유라는 관점에서 훌륭히 격상시켰다고 할 수 있다. 대구 출생인 이승주는 95년『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으며, 밀양에서 치열한 시작(詩作)을 고민하고 있다.
김동원(사진)
약력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제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제 2시집『구멍』출간
2004년 제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현, 한국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텃밭시인학교』시창작교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