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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환 작가- 대구출생 .대구성광고 졸업 .경북대 독문과 졸업 <주요저서>마음 중 단편 .대불(시집) .김대중 .한국전쟁 언저리 .금호강의 영혼(시집)
#매주 목요일 연재
지하세계 1
11. 금화왕국
총독과 딸아이는 잠을 깨어 비는 오지만 바깥을 쳐다본다. 세수도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시계를 보니 한나절이 지났다. 식당으로 가서 늦은 아침밥을 먹는다. 후식으로 장미꽃 음식이 나오는데 처음 보는 것이다. 장식품은 아니고 먹어도 된다는 남편의 설명이다. 샐비어 꽃잎은 달콤한 즙액을 빨아 먹는다. 해바라기 씨앗도 까먹으면 고소하다. 누구 가져왔는지 지구에서 먹던 것들이 듬뿍 있다. 가시가 있는 장미덩굴은 담장을 넘고 지붕으로, 벽으로 온통 얽혀서 꽃을 피운다. 새파란 담쟁이덩굴은 다른 식물이나 동물이 기어 올라가기 힘든 이층, 삼층 시멘트나 벽돌에 다닥다닥 붙어서 시원함을 보태주고 우거진 자연풍경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담장가로 높이높이 솟은 해바라기 꽃은 둥그런 꽃 뭉치와 씨앗이 무거워도 쓰러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다. 키 작은 샐비어는 하늘하늘 빨간 수술들이 뽑고 뽑아도 줄지 않는다. 입술에 닿는 감촉은 몹시 보드랍다. 빗속에 희미하게 그려지는 꽃밭에는 아름다운 소년이나 소녀가 아니라 총명하고 건장하며 멋있는 여섯 명의 남성들이다. 무엇을 잘못 살핀 것인가? 확인하여도 늠름한 남자들이다. 어젯밤 잠을 뒤척이다가 그렇겠지 생각하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음도 사실이다. 낯선 사람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듯하다. 휴식하는 방에는 잔잔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른다. 빗소리의 자연음을 활용하여 옮겨 놓은 곡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음률이 흐르다가 부드러운 음, 세찬 음, 무서운 빗소리가 바뀐 음, 단비가 내리는 소리가 제각각 변화무쌍하게 들린다. 청각을 자극하지 않는 소리를 들으려 하는데 마음의 귀가 덜 발달하여 아련하게만 들려지듯 느껴진다. 사람은 자꾸만 성장해야 한다. 마음의 눈도 뜨고, 육체의 눈도 밝아야 한다.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소리에 오성이 선험적으로 작용하여 인식의 일치와 심적 예술의 총체성과 사랑을 실천한다면 자연, 사람, 문학의 교차점에서 파레토최적도 나올 것이다. 캐드캠에서 초단위로 변화하는 3차원, 4차원 직선곡선, 공간의 합체구조물이 순식간에 바뀌듯이 한 방울의 빗소리는 우주와 자연에 미세부분으로 폭풍과 고요한 호수와 맑은 강물의 구성인자로 모델화된다. 카오스이론은 흐르는 물줄기의 모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세블국이나 어느 곳이나 카오스로 흐르지만 실제로는 큰 규칙이 얽이고 뒤엉켜 살아간다. 사람은 유목적적 존재다. 사람은 무목적적 존재다. 이런 명제에서 이민 오는 그들은 목적을 가진 탈출이냐? 무목적의 생명연장을 위한 탈출이냐를 따져보자. 가장 쉬운 답변은 변증법적 논리로 합목적적이란 결론을 이끌기 위한 논거들을 나열할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뜻을 해석해 버리기도 할 것이다. 장미꽃 후식이 카오스적 선택이냐? 아니면 질서정연한 선택이었느냐? 정확한 언어개념의 사용도 실제 일어나는 상황과는 벌써 인식지에서 차이가 난 순간에서 시작되고 있다. 나타난 것은 현재이지만, 그 이전에도 장미꽃은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먹는 것일 때 사람들은 달리 느끼고 행동유형에 변화가 생겼다. 결국 꽃은 음식이 되었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심성의 밑바닥 거름일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확실한가? 그 우열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비는 계속하여 내린다. 멈추는 것은 자연의지일 것이다. ‘자연법칙이다.’ 라는 단순문장에서도 ‘자연에 의지적 개념이 들어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 희미하게 비치는 여섯 남성은 괴물이다. 아니다. 뭔가 다른 사람들 같다. 이것은 언어적 문제일까? 자연법칙의 카오스 상태의 연장일까? 정말로 기력이 쇠하여 헛것을 본 것인가? 그녀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밑뿌리는 알 수 없는 남성에 대한 포옹이며 입맞춤이다. 그늘진 욕망의 달콤함과 거친 숨결이 자꾸만 소리를 치고 붙들기를 원한다. 그림자들은 점점 선명하고 확실한 모습으로 성의 분출을 맞이하고자 준비를 차린다. 리비도를 향해 돌진하는 무리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세력들이다. 이 영역을 넘어서서 살아본 자들이 드물다. 자꾸만 억센 팔을 내젖는 남자들이 성큼성큼 다가선다. 무엇인가 힘이 약동한다. 살아 움직인다. 포효하고 호랑이가 이빨로 사슴을 물어뜯는 리비도적 생명체가 움직거린다. 강한 빗줄기는 흙바닥을 사정없이 파헤치면서 쏟아 붓는 힘을 자랑한다. 리비도의 바다는 출렁이는 파도가 제방 둑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모래톱을 집어삼켜 버린다. 뛰어오는 무리들. 그들은 아무리 보아도 빗속에 살아 숨 쉬며 하늘로 뻗쳐오르는 여섯 남자들이다. 거세게 지축을 울리면서 호랑이를 앞세우고 사자의 등에서 날렵한 몸을 움직인다. 무엇인가 밀려온다. 오고 있다.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에 빠져들 듯 제1지하국가가 날아온다. 오고 있다. 현실이 닥쳐온다.
금화왕국에는 풍부한 산소에 기쁨을 느낀 많은 이주민들이 날이 새도록 잔치를 벌이고 있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활개를 칠 수 있다. 신대륙을 발견하여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사람들이 몰려와서 떠들썩하게 즐기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주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점을 알게 되어 사람들은 일부러 아귀다툼을 하지 않는다. 삭막한 생존경쟁의 나쁜 점, 사람이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다시는 참혹한 살육을 원치 않는다. 모든 조건이 세블국이 나은 것도 원인이지만 피비린내의 진동으로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도 많다. 긴 세월이 아닌 기간에 지구에서, 지하로, 우주로 뒤바뀌는 여정이다. 금화 영주는 살아온 길이 이들과 달랐으므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간접경험 자료들을 살펴본다. 총독 보좌관이 세블국과 행정적 토대들에 관하여 직간접으로 도움을 준다. 아울러 전직 천문담당관도 선이주자의 도시건설 노하우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너무 낙천적이다가 갑자기 허무적 집단히스테리를 일으키는데 준비하거나 치료할 명약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선경험자 두 사람이 귀띔한다. 애욕과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이 극락에 도착하니 정신적 진공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화와 인간의 정신적 창조물은 시간과 힘의 넘침에서 생겼음이 분명하다. 그 활짝 핀 사회를 만들려면 그 전에 스스로 술에 취하여 퇴보하지 않아야 된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에 있어서 과거 형편은 말이 아니다. 20세기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오기 까지 결혼도 안 한 연령층이 옛날에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들이다. 120세의 정상연령을 잘 살다간 인류는 희귀하다. 세블국으로 온 사람들은 희귀종에 가까워 보려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섣불리 멸망이나 죽음으로 나서진 않지만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집단질환일 때는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야 한다. 금화 영주는 집단히스테리를 늦추거나 발생치 않게 하기 위한 처방전을 찾기에 골몰한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온 것도 개인의 힘으로는 곤란하다. 철새 떼가 수만 킬로를 떼를 지어 날아가 듯 몰려온 것이다. 집단의 힘이며 원리이다. 모세가 애급에서 유대민족을 노예상태에서 광야로 끌고 나온 곳과 흡사하다. 영국에서 종교박해를 받아 이주한 아메리카인과 다를 것도 없다. 살기가 좋아지는데 이사를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풀을 찾아 움직인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강제에 의해 미국 땅에 왔다. 인디언들은 4백만 명이 거주하였는데 거의 다 죽고 그들의 터전을 몽땅 잃었다. 히틀러의 6백만 학살. 인간의 야만과 야수성이 너무도 정확하게 드러난다. 왜 이들이 세블국에 왔는가? 세블국은 왜 생겼나? 금화 영주는 왜 이곳으로 왔나? 세블국에 온 것은 피 냄새가 싫었기 때문이다. 무서움에 집단탈출이 생겼다. 왜 세블국을 만들었나? 지구가 불안했다. 언제, 어떻게 대재앙이 닥칠지 몰랐기 때문에 대비책으로 만든 것이다. 금화 영주는 더 살기 좋은 땅으로 온 것이다. 너무 환경이 좋은데도 망해버린 인류들은 어떤 경우인가? 찾아보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런 우를 범하지 말기 위하여 집단자살증후군, 집단허무히스테리는 나쁜 것이다. 그렇게 되지 말자. 방지책을 만들어 그 기준대로 살자는 교육을 한다. 교육도 피교육자들이 받아들이고 따라올 수준은 되어야 성공이다. 준거집단들이 90% 문맹이면 글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주민들은 그들 나름의 문화유형을 창조하고 발전시킨다. 중화사상으로 틀 지워진 중국인들은 긴 세월이 흘러도 대국적 국민심성이 변하질 않는다. 이주민들에게 우리는 원래 오래 사는 민족이라는 불문율의 신념체계를 은연중에 교육해야 한다. 가치관 밑바닥에 서로 죽이는 우를 범하지 않는 부류이라고 새겨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현실적 경험칙을 배운 이주민에게 발생했던 일에 어긋나는 신념체계의 주입은 정신구조상 괴리와 일탈이 생긴다. 은연중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자연적, 순응적, 신념체계이다. 시간이 변하여도 유지되는 것이 사람들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지도원리가 된다. 사랑하라. 자비로워라. 덕을 베풀라. 이런 것들은 너무나 깊이 뿌리내린 가치구조들이다. 세블국은 영원하다. 세블국은 희망이다. 만들 수 있는 가치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임이 확실하다. 영원과 희망을 새로운 별에서 찾게 되면 이들은 또 떠나게 될 것이다. 세블국에서 불안, 공포가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 진정한 인류애가 꽃피지 못하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왕국이 된다. 스스로 묘를 파다가 얼토당토않게 묻히는 인간사에서 세블국이 얼마나 더 나을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좋은 말들과 구호는 많지만 그런 것들이 외형적으로 춤을 추지 않으면서 자연 상태로 녹아내려 묻히고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힘이다. 힘이란 경제력, 국방력, 외형적 물질, 모든 것이지만 알게 모르게 이어져오고 공든 탑을 세우는 힘도 존재한다. 세블국 금화왕국은 공든 탑을 깨부수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한다. 강제에 의한 길이 아니라 우러러 샘솟는 행복스런 땅이 되면 좋은 것이다.
사시사철의 구분이 없으므로 기후변화에 대하여 즉각 준비물을 바꿀 번거로운 일이 안 생긴다. 일 년 내내 단조로운 풍경에 가끔씩 지구에서와 같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 색깔과 계절 만들기를 한다. 시간적으로 봄에 해당하면 일조량이 늘도록 조정하고 제1지하국가나 다른 곳에서 꽃들을 수입하여 만물이 약동하는 봄으로 꾸민다. 여름에는 애래우캐리야에 접목한 과일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고 무성한 잎들이 번성하게 만든다. 가을에는 추수하는 들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향수병을 치료한다. 겨울에는 인공눈을 뿌려서 추억과 추운 날들을 되새긴다. 간혹 도시전체를 제1지하국가의 초기 동굴처럼 컴컴하게 하여 지나온 자취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지금을 인정한다. 현재에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과거를 영원히, 완벽하게 묻어버리지 못한다. 예측이 쉽지 않은 미래도 무조건 반기며 맞이하기엔 조심스런 마음이다. 예상 평균수명이 남아 있는데 긴 쪽 일수록 흥미도가 떨어지고 곧 죽을 시점의 사람들일수록 훨씬 좋아한다. 사계절을 나누는 일들도 한 세대 이상이 지나면 먼 지평선에 묻히고 마는 과거지사이다. 한 사람이 지나고,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므로 나중에는 누구나 다니는 길이 된다. 처음 가는 사람은 처음 가는 것이다. 갈수록 안전의 확보가 생기고 신작로가 되고 큰 길이 된다. 세블국에 가보고 살기가 좋더라. 그러면서 인구는 불어나고 나라가 되고 제도가 생긴다. 공동체는 구성요소로부터 출발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되듯’ 모이게 되면 태산으로 가게 된다. ‘봉충다리의 울력걸음’으로 살고들 있다. 선진화되고 과학화된 기술로 사시사철을 바꾸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눈을 내리게 하면서 수박을 따고, 백합을 키운다. 일반 이주민들은 만들어진 결과물을 사용하면 된다. 이제는 낯선 풍경도 아닌 것들이 나타난다. 청춘남녀가 하늘에서 꼭 껴안고 움직이질 않는다. 신발과 장갑이 달라붙어 둥둥 떠가지고 오랫동안 있다. 처음엔 말들이 많았지만 이상한 것이 아니게 점점 세블국도 문화적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은 하루에 네 계절을 바꾸면서 꽃을 키우고 신체적응력을 단련도 한다. 아무래도 심한 활동력을 실천하는 부류들이다. 눈 속에 털옷을 입고 스키를 타다가, 수영장에서 발가벗고 헤엄을 치고, 봄가을이 되면 꽃을 가꾸고 추수를 한다. 24시간을 쪼개어 1/3은 잠을 자고, 1/3은 휴식이고, 8시간을 2시간씩으로 나누어 네 계절을 맛보며 사는 것도 가능하다. 지구와 다른 시간만큼은 조용히 명상에 잠긴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지냈는가? 에 대해 정신적 반성과 대책들을 생각한다. 외침이나 생존을 위한 노동이 필요치 않으니 통제적 문화형태들은 많이 줄어들고 계획성이 결여된 사회현상들이 부쩍 늘어난다. 여행을 떠나면 언제 어디로 가겠다는 구체성을 가지고 살았다면 이제는 어디든 미지의 낙토인 세블국에서 기쁜 심정으로 마음 내키는 시간에 사방팔방으로 아라비행선을 몰아도 된다. 행동통제도 없고 사고발생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이고 애래우캐리야 나무에 앉으면 비행장이며 주택이 된다. 정착되는 사람보다 유유자적 자유롭게 사는 쪽이 월등히 많다. 사람들은 손발과 아울러 날개를 가진 멋진 존재가 된다. 훨훨 날아다니는 행복, 멀리멀리 언제라도 왔다가갔다 하면서 세상을 살피고, 경치를 구경하는 일, 온 세상이 사람들 아래에 있는 희한한 기분, 날아다니는 것은 참으로 모두에게 마음에 드는 일이다. 욕심을 더 보탠다면 무엇이 좋을까? 영원하고 싶다는 소원, 젊은 사람으로 부활하고 싶은 것이다. 영원과 부활을 찾아 분주한 나날들이다. 날아다니는 아라비행선이 멈추는 날, 모두 생명이 끝이 난다. 온갖 곳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생명이 꿈쩍이는 일이다. 어떤 날은 현저하게 아라비행선이 뜨지 않는 날이 있다. 이날은 사람들이 지쳤거나 변덕스런 폭풍우가 계속되거나 그런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어 아라비행선과 사람들이 즐겁고 마음 편하게 날아다니지 못한다면 금화왕국으로써도 위험수위이다. 언제나 날아다니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나? 갑자기 어려움이 닥쳤나? 잘 살펴본다. 아라비행선이 내릴 애래우캐리야 숲이 파괴되어도 많은 비행장이 줄어드는 사실이므로 더욱 소홀히 할 성질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라비행선은 줄기차게 사방팔방으로 움직인다. 훨훨 날아다닌다. 거침없이 창공에 수를 놓고 자유의 무늬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희끄무레한 머리칼에 덥수룩한 옷을 입은 노인이 아침 일찍 일어나 언샘을 캔다. 보드라운 흙에 잔뿌리가 짜드득 소리를 내면서 뽑힌다. 대부분 벌린 다리는 두 갈래가 넘는다. 가늘고 자잘 자잘하게 붙은 잔뿌리에 보슬보슬한 흙가루가 살짝 묻어 있다. 광주리에 뿌리를 모아 담고 이파리는 뚝 떼어서 일이 끝난 다음 다시 모으곤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무료한 시간보단 가벼운 노동은 오장육부를 꿈틀거리게 하고 근육의 노화를 방지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늙은 할멈도 같이 일을 한다. 아무래도 덜 심심하다. 한나절 작업을 하는데 나누는 대화는 거의 없다. 젊을 때는 누가 더 많이 하나 내기도 했지만 그런 악착스러움도 필요치 않다. 고생하여 이룬 터전을 모두 버리고 떠나야 했던 심정에는 너무도 헛된 탑을 열심히 쌓았던 세월이다. 그래도 쉬지 않고 적당한 소일거리로 나날을 보낸다. 언샘잎 향기를 종일 맡고 발바닥에 흙의 감촉을 느끼는 것은 습관화된 행동유형이다. 할멈은 평생 동안 큰소리를 낸 적이 없으며 처녀 때부터 모기 같은 목소리를 그대로 변치 않고 간직하고 있다. 인물은 누구보다 잘 생겼던 처녀가 분명 벙어리는 아니지만 늘씬하고 수려한 용모와는 걸맞지 않게 너무도 가녀린 소리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대답을 하였다가 없는 줄 알고 넘기려면 여기 있다고 가냘픈 목소리를 내었다. 오히려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처녀가 큰 목소리로 답하곤 했다. 그렇지만 평생 내내 영감은 할멈에게 온순히 말을 잘 들었다. 할멈이 언제나 밝은 심성으로 영감을 편안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순간마다 용케 터지지 않고 자연스런 생활이 되게끔 이끌어 온 것은 할멈의 큰 공이 있었음이다. 심장의 더운 피가 누가 먼저 멈출 지는 예측불허이다. 살만큼 살아왔던 길에서 되돌아 갈 방법도 만들진 못한다. 이제껏 금슬 좋게 살아온 것은 ‘받는 소는 소리치지 않듯이’ 할멈은 영감을 평생 사랑의 힘으로 휘어잡을 수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깨끗한 물에 잘 씻은 언샘뿌리에는 잔잔한 털이 보송보송 붙어 있는데 날것을 씹을 때 이 사이에 제일 먼저 닿는 촉감은 거칠지도 않고 사르르 녹아내리는 크리미한 성질은 아니라도 괜찮은 편이다. 굵은 뿌리가 송곳니와 어금니에서 꽉 씹히어 씁쓰레한 진액이 흘러나오면 통째로 언샘을 씹는 기분이 상쾌하다. 늘 자근자근 달짝지근하게 씹어 먹으므로 늙은이들이지만 희고 탄탄한 이를 가지고 있다. 늙어 이가 썩은 사람들도 티타늄소재가 고급화된 것이나 임플란트로 인공치아를 해 넣으므로 오복 중에 튼튼한 이를 의술의 힘으로 모두 누리고 있다. 사포닌 성분에 리놀산까지 섭취하므로 늙음의 속도는 더뎌진다. 두 사람의 마음이 찰떡궁합인 것은 더욱 오랜 세월을 편안히 살게 한다. 양성의 조화적 삶이 순기능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위장이 받아들이는 양이 있으므로 하루에 몇 뿌리 먹지 않아도 된다. 수확한 것들은 잉여생산품이 된다. 모으면 모을수록 더 많길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넉넉한 정도를 넘어 포화상태이므로 무지막지 일할 성질이 아니다. 언샘음식이나 과자들 중에서 어린이나 노인들은 크림타입을 훨씬 좋아한다. 젊은이들은 좀 탁탁한, 끈질끈질, 입안에서 오징어처럼 작용하는 것이 낫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여 늙은이들은 잔잔하고 달콤한 맛이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은 확실히 격정적이며 거친 야생의 싱싱함을 찾는 듯하다. 저녁이 되어 천천히 늙은 내외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넓지도 않고 아담하다. 기력이 튼튼하여 계단을 올라가는 일은 예사롭다. 금화왕국에도 노인세대들이 무척 많다. 일부러 실버타운을 건설하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모인다. 공동체의 질서는 이제까지의 경험칙이 기초로 응용되므로 큰 불편은 생기기 힘들다. 공존의 언덕을 찾아서 긴 세월 참아온 사람들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같은 땅에 묻히는 것이다. 태어난 일이 결과적 사실로써는 죽음과 연결된다. 사랑의 현실은 같은 날 떠나긴 어려워도 다른 날, 다른 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이다. 회색의 머리칼에서 두 노인의 가물거리는 사랑의 신기루는 누구도 비켜가기 힘든 회자정리의 서곡이다. 쓸쓸히 울려 퍼지는 황혼의 곡조이다.
노인들이 모여 있는 두레마을에는 싱거운 소일거리가 있다. 자기의 나이만큼 탁구공 크기의 공을 가지고 무너지지 않는 탑을 세운다. 접착제나 경기에 위반되는 것은 사용하지 못한다. 누구나 일층은 손쉽게 만든다. 이층부터는 어렵다. 단순히 관찰을 하더라도 나이가 수백 살이 되거나 수천 살이 되면 층을 쌓기가 월등히 쉬워진다. 밑바닥에 많이 깔 수 있다. 만든 탑은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스르르 무너진다. 힘들기도 하고 약간 위험한 놀이는 영감이나 할멈이 상대방을 엎고 달리는 것인데 섣불리 나서질 않는다. 젊은 노인들은 시도를 하지만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아예 접근을 않는다. 이런 경기는 권유를 안해야 된다. 내용도 모르고 노인들을 모아 놓고서 한나절이나 한 두 시간을 채우면 온통 꾸지람만 실컷 듣는다. 유치원 아이들은 가르쳐 주는 방식을 따라서 즐겁게 놀이와 운동을 하지만 노인들에게는 곤란한 점이 많다. 과격한 젊은이의 운동과 너무 어린애의 몸동작과 말씨들도 안 되고 그들에게 합당한 것들을 만들어 시간을 즐겁게 보내도록 해줘야 된다. 행복한 느낌을 그들에게 선물하는 일은 원래부터 해야 되는 것들이다. 당위적 의무인데 그 일들이 점점 벅차게 되는 것과 나아진 형편에서 노약자를 돌보는 것을 줄이거나 무시해 버리면 사회는 점점 맑은 공기가 돌지 않아 문화나 인간사의 뒷걸음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동양의 주자학적 개념들은 장유유서나 인본주의에서 강하게 주장한다. 사회의 발전 속도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상태에서도 인간생활의 기초 원리들은 대동소이하다. 사람이면 모두 노인이 된다. 예외적인 일은 늙기 전에 목숨이 끊기는 것이다. 곧 닥쳐오는 일에 대비책을 찾는 것이 보통의 형편이다. 이왕 끝나는 인생인데 적극적 향락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픈 충동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 기력이 말을 듣지 않으므로 한계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못한 일들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열을 올리곤 한다. 기적이란 개념은 쉽게 일어날 성질이 아니다. 모든 노인들이 젊은이처럼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분명 기적적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한 일이 거의 없으므로 우리들은 평균적 개념의 대책 수단을 찾아 노인을 위한 오락프로그램을 찾는 것이다. 봄나들이, 꽃구경, 느리고 힘이 들지 않는 춤, 약식체조, 간단한 노래 부르기,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하면 되지만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누가, 어떤 곳에 제공을 해주어야 한다. 긴급을 요하는 부분이 아니라는 우선순위를 고집하면 손대지 못하는 영역도 많아진다. 제도와 사회적 기념비적 구축물들은 조정과 타협의 산물이 월등하다. 상대편의 요구와 입장을 너무 업신여기면 상황의 역전에서 무참히 없어지거나 배척되는 일들도 생긴다. 노인을 위한 공공시설물들이 한도 내에선 가능하겠지만 금화왕국의 예산 모두를 투입할 수 없을 것이다. 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아 조금씩 나아지는 긴 시간을 거쳐야 할 부분이었지만 점차로 많은 관심과 정책개발을 해야 할 영역으로 변한 곳이 여기이다. 무엇보다도 심리적 안정이 우선이다. 즐거운 시간이라도 개인에게 무거운 마음이면 만사가 순조롭지 못하다. 흉포한 범죄나 사람을 쉽게 해치는 풍조가 사회에 퍼진다면 구조적 취약성과 제 스스로 망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망하지 않으려고, 살려고, 발버둥 쳐도 힘든 형편에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일을 해서는 곤란하다. 많은 노인이 생존하여 있음은 그만큼 살기가 나으며 질병과 인간들의 다툼으로 인명의 손실이 적었다는 반증이 된다. 자연 환경적 우위, 사회적 해체성의 부족, 국가적 위협의 감소, 개인적 위생건강의 향상, 종합적 결과물로써 실버타운은 늘어난다. 의학의 발달도 큰 역할을 한 부분이다. 세상이 변덕스럽지 않고 안정적이며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생명연장의 기본 환경 인자를 구성한다. 유전형질로도 튼튼하고 병원체에 강한 종족이 오래 사는 것이다. 노인들을 천대하기보다는 그들의 뒷모습과 살아온 과정들을 살펴보면 금화왕국의 다음 세대들도 좀 더 오래살고, 나은 환경조건을 만들어 쾌적하며, 평화애호적인 심정을 가진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파괴와 투쟁의 역사는 조금씩 줄어들고 살기가 약간씩 나아지는 왕국이며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노인들 천국인 두레마을에서도 올바른 삶의 방향 제시는 누구든 거부하기 힘든 예정된 역할이며 삶의 원리적 기초에 해당한다. 좀처럼 멀리 움직이길 꺼려하는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아라비행선을 타고 여행에 오른다. 이들을 뒷바라지 할 인원도 따라간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건강진단과 세블국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제안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건강진단을 예비적으로 실시한다. 일차적 관문에서 여행이 곤란하다고 판정받은 많은 사람이 나온다. 완벽한 기동력이 모자라는 노인들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노인들은 제이차로 장기간 떠나있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사람들을 재 선발한다. 또 숫자가 준다. 이렇게 모든 형편을 감안하여 비행선은 줄을 지어 세블국의 넓은 땅을 날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대환영을 받을 것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서로들 새로운 곳으로 개척하기 바쁜지 신통한 반응이 안 나온다. 첫 방문국에선 제1지하국가에서 이민 오는 집단으로 오인당하여 세블국에 처음 이주하던 대우를 받다가 사실이 아니자 경계의 끈이 늦춰지기도 한다. 미개척지가 풍부하여 적당한 곳에 내려서 도시나 마을을 건설하여 살아도 큰 제약은 받지 않는다. 6등분으로 나눈 땅인데도 행정력이 미치질 못한다. 본의 아니게 치외법권적인 지역이 생긴다. 이들도 아무런 제약조건이 존재치 않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한다. 사람의 심성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수많은 사람들과 같아질 때 집단분출과 다른 땅에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혐오시설을 집요하게 싫어하는 님비현상도 있지만 좋은 곳을 차지하려는 선점욕구도 대단히 강하다. ‘늙은 소 콩밭으로 간다더니’ 이구동성으로 새 땅을 차지하여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길 원한다. 식물만 존재하는 곳에는 동물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소동화작용으로 식물이 성장하고 산소를 내놓는다. 밀림지대에 동물이 서식하지 않는다면 그 대신 이산화탄소를 방출해주는 무엇으로 무성한 숲이 형성되는가를 관찰해내어야 한다. 활동성이 약한 노인들이 모이는 새 땅에서 숲이 더욱 우거지고 언샘밭의 소출도 많아진다. 노동을 하거나 비료성분을 보태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화이다. 사람이 세블국에서 최적의 상태로 공존하는 법칙은 자연물에 인위적 훼손을 입히지 않으면서 사람자체에서 내뿜는 호흡, 배설물, 쓰레기만으로 노동의 형태가 필요 없이 영원토록 희망적인 산출물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성공적 방법이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살지 않는 곳이므로 모든 것이 안락하고 계획된 기준치로 움직이지만 인간적 웃음과 기쁨이 피어나지 않는 허전한 나날임을 거부하기 힘들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논과 밭이라면 생명의 약동이 사그라져 황량한 들녘으로 변모한다. 인구폭발도 무서움에 속하는 영역이지만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 못하고 그 새싹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 나라와 인류는 스스로의 작용에 의하여 멸망의 구렁텅이로 들어선다. 아무리 노인들을 위한 나라를 꾸미어도 방실방실 웃음 짓는 아기와 큰소리로 울어 제치는 어린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서글픈 세블국의 일부분으로써 멸망과 허무의 산을 지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대가 단절되는 것은 엄연히 인류가 멸망해가는 서곡임이 틀림없다. 초등학교가 줄어들고 입학할 아동이 없다면 상당히 심각한 사태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도 아닌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세상사에서 노인들만 사는 동네와 새 생명의 탄생이 거부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인류의 고통이 잠재되어 있음이다. 금화 영주로서도 너무 많은 실버타운의 건설은 억제하고 노소의 조화로운 삶이 공존하는 터전으로 이룩되는 마을들이 많아지게 해야 할 문제점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흘러가는 대세는 자꾸만 분리적 가족제도, 단독으로 사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가는 인간조직의 파괴내지는 처방약이 구해지지 않는 길로 점점 들어서고 있다. 완벽하게 세대 간을 단절시키지 않고 더불어 슬기롭게 공존하는 세대 간 공존도시모형을 찾아야 된다. 언제나 일이 벌어지는 현상은 같이 평등하게 자유롭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이리저리 엇갈리는 수레바퀴로 넘어지지 않게 조절하는 일에 능력이 요구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할 단계에서 올바른 판단이 마비된다면 나타나는 일들도 결코 아름다움이 넘치긴 수월찮다.
젊은 세대들이 모여 사는 곳은 일부러 만들질 않았으며 더 이상 나누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 가야한다. 옆의 사정은 정보 전달로 쉽게 파악되지만 거리상 많이 떨어져 있다. 동질성을 느끼도록 조형물, 심벌 등을 찾아보기로 한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땅을 표현하는 아무 것도 없음을 나타내면서 탑형식으로 세울 모형을 제작하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쉽게 만들어지지를 않는다. 산소가 풍부함은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공짜이므로 너무도 빨리 예전의 고통을 잊어버린다. 차후의 방비책으로 저장산소와 위험시 사용하는 방법, 용이한 이동훈련도 연습을 한다. 사람들이 싫어할 정도까지 심하지 않아야 되는 때문에 한계선을 맞추기가 항상 문제의 기초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이상으로 위험을 만들어내는 것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새로 이주한 이곳에서는 외계인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보다는 제1지하국가의 사람들을 더 잘 살게 하자는 것이기에 그렇다. 인위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만드는 집단은 누구든 찬성하기를 거부한다. 이제껏 살아온 그들도 바뀌어가는 미래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긴 불가능하다. 더구나 하는 일들이 미치광이와 같게 나타난다면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회와 조직을 누구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기본 틀이 존재한다. 멀쩡한 사회인이 어느 날 갑자기 영원한 타인으로 변해버리고 올바른 질서가 자꾸 흔들릴수록 서로들 나빠지는 세계가 된다. 아직까지 갈등의 사고뭉치가 터지지 않았다. 모두들 무형의 보배들을 닦아 빛을 발하도록 노력을 쏟는 것이기에. 참으로 힘든 것들이 서로들 욕심을 줄이자는 형태의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 혈연지간이면 양보의 폭이 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잣대가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던 사람들이 모여든 새로운 땅에서 큰 싸움이 안 일어나는 것은 대단히 자제를 하고 참아가는 성질이 숨어 있음이다. 워낙 부족하다가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음과 정신적 긴장을 심하게 느끼던 것이 줄어짐도 포함된다. 보통 속세의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 다 내어놓고, 결혼도 하지 말고, 남을 위해 평생을 살라 하면 대부분 그런 대답을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희생과 봉사의 마음이 많이 살아있다면 어느 정도의 베풀음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전쟁터이거나 다른 한계상황에서라도 생명까지 양보하라고 하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포탄이 터지고 아비규환의 죽음의 전장에선 생사를 따질 성질이 못되기도 한다. 세블국에 날아온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세대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의사나 경찰관들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것의 하나가 사랑의 힘이기도 하다. 헤어져야 한다던 사람들이 다정하게 다시 잘 사는 것이다.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스님이나 신부처럼 살 수가 없다. 낙원이라면 교도소도 필요 없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부분도 필요치 않지만 엄연히 인간 세상에는 있다. 군대도 있다. 정치적 이익을 조정하는 정당도 있다. 국가는 어느 정도의 세금을 거두어 들여도 국민들이 고통을 받지 않는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 재정정책을 편다. 세블국에선 국민에게, 이주민에게 세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쓰시다가 무세국가론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런 환상적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모두 쉬울 순 없지만 군대훈련은 상당히 싫은 것도 사실이다. 몸을 단련하는 것은 좋지만, 인간에게 총칼을 겨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사는 땅에서 싸우지 않으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되는 점이다. 확실히 인간들이 개발한 민주주의는 총칼보다는 말과 글이나 투표로써 생명을 다치지 않고 싸우니 좋아진 상태임이 분명하다. 금화왕국에서는 투표, 말과 글로 싸우는 것도 없으면 훨씬 발전된 곳인데 그것이 가능한가이다. 사람이 상상력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갈수록 실제의 일상생활이 됨을 우리는 체험하면서 살아간다. 20세기 후반의 생활용품들은 과거 왕이 30명의 신하를 거느린 것과 비슷한 수준의 상태란 것이다. 금화왕국은 여러 조건이 나아졌으므로 100명의 신하가 일을 보충해준다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는다. 그러면 투표하는 번거로움도 줄이자. 그것이 TV를 통한 선거이기도 하다. 좀 인간적 분위기가 감소하기는 한다. TV보다 월등히 좋은 화상화면을 통해 전 국민들이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각각의 집에 전원이 들어와서 투표일을 알려주고 화상을 통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해보고 편리한 시간에 응답을 하여서 집계된 상황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하루 중 운동을 하고 싶을 땐 인공운동장들이 하늘에 만들어지도록 장치를 한다. 인구가 희박하여 축구팀이나 배구팀을 이루지 못할 경우엔 시험복제선수들이 늘어서서 같이 공을 차도록 회로도를 입력하여 운동하면 혼자서 22인과 심판까지 들어가는 모델이 된다. 이것은 너무 쉬운 것이지만 수만 명이 동시에 축구나 배구를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100층짜리 공간축구장을 세블국의 상공에 스펙트럼처럼 쏘아 올려 자기구역에서 공을 가지고 즐기면 동시에 운동이 된다. 지상에서 층계를 올린 빌딩운동장을 만들지 않아도 공간은 충분하므로 큰 고민사항에 속하지를 못한다. 수만 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서로 다르거나, 똑같은 춤을, 넓은 공간을 차지하거나, 하늘의 공간 빌딩형 발레장에서 즐길 수 있다. 100층을 차례차례 비행선으로 천천히 주유하면서 황홀한 구경이 계속되고, 넓은 하늘의 공간 땅을 훨훨 날면서 하루 종일 즐겁게, 신나는 세상을 볼 수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춤을 즐긴다. 구경하는 쪽도 더 긴 시간 가능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행동시간이 다르지만 이동하는 동안에 시간대별로 편집되듯이 연결하므로 상황만 호전되면 일 년 내내 멋있는 남성무용을 세블국 전체로 일주하면서 관람이 가능해지고, 아가씨들의 사는 모습도 동일하다. 다른 시간의 행동을 일원화시키는 작업은 훨씬 쉬우나, 같은 시간에 모든 사람의 행동과 삶을 일원화시키는 것은 차이점도 많고 조금 어려운 영역이다. 아무래도 자유주의적 사고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과잉된 집단행동을 요구하기는 무리이다. 금화왕국에서의 전개되는 일상사들은 자율에 따른 원리주의에 가깝다.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자유인에게 행위의 형식, 직업의 선택, 정신적 자유, 등에 제한을 가하기는 적절치 않다. 왕국에서의 이동에 대한 자율권의 폭은 넓다. 힘차게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건강함이 사회의 힘으로 작용된다.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은 사고체계의 엄청난 포용력과 신 개념을 창출해낸다. 무기의 발달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현실화된 형태이다. 만들어가는 제도도 또한 그와 같다. 현미경이 세포조직을 관찰하고 망원경이 원거리의 혹성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사고 작용을 통하여 선악의 분별력과 양심의 도덕적 밑층을 찾아내고 파괴의 사닥다리구조도 드러난다. 사변적 몽상가들은 그들의 세계가 언젠가는 생길 것이란 해석을 달게 된다. ‘원자화된 개인이 나라이다.’라는 정의를 내려서 개인 속에서 국가의 구조를 만들어 간다. 의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신체는 신비스러움과 해결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몽상가들의 생각들이 나중의 발견들에 맞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는 기초적 부분으로 밑받침된다. 원자핵무기를 방어하는 질소보호막을 연구한다던가, 핵무기, 수소무기의 지하, 지상, 우주공간에서 현재 이동, 숨긴 지점을 추적하여 물거품을 만드는 샤론레이저를 발견했다고 금화왕국의 과학 팀에 보고 됐을 때 처음부터 성능을 믿지 않는 기존사고체계의 거부감은 존재할 수 있다. 몽상가들은 손쉽게 세계우주변혁을 만들어낸다. 수직형사고, 수평적사고, 혼합적사고, 기하학적 사고는 담는 그릇이 무한대로 변화된다. 죽음의 땅에서도 살아가고, 영혼의 궁궐에도 드나든다. 형식은 다르지만 민족의 이름으로, 국가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방식으로 분리주의적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우월성내지는 무엇을 차지해 버리겠다하면 다름 아닌 평화의 꽃밭에 던져진 슬픈 물음의 시초가 된다. 끊임없는 물음표로 이어져온 사람의 발자취들이다. 이 자리에서 몽상가들은 무엇 때문에 쓸모가 없어 보이는 논쟁거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가? 어린 아동이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늘은 왜 따뜻한가? 그것이 곧 인류발전이다. 왜 금화왕국이 그전 땅보다 나은가? 그것이 자유주의적 정치선진의식의 발로이며 토론의 장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죽게 되는가? 당연한 일이지만 몇 시간을 생각하기도 하고, 일 년을 따지기도 하고,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을 쪽도 있다. 죽는 것을 좀 더 살려고 발버둥치는 쪽은 의학이란 부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샤론레이저의 부분변형은 사람의 세포를 추적할 수 있다. 마음을 정복하려는 몽상가들은 그것이 무엇인가? 밤낮으로 생각을 해본다. 가장 첫 번 대답은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이다. 조금 나아진 쪽은 ‘불가능은 없다.’고 하다가 주저한다. 사람은 마음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나 ‘내가 곧 길이요. 진실이다.’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으므로 견제장치를 만들어 자물쇠를 채우고 분리주의적 사고유형으로 지배형을 만든다. 금화왕국은 영원과 희망이란 초원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늬, 색깔, 배경, 전달하는 의미는 천차만별로 바뀐다. 그림을 읽을 줄 모르고, 책을 그릴 줄 모르는, 마음으로 우리들은 살아간다. 허다한 일들은 의사소통에서 다르게 해석되고 뒤바뀌어지기도 한다. 무기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방어적 개념화시키지만 침략적 의도의 공격성 말은 숨어버린다. 자유의지의 마음도 그리는 화가에 따라 달리 덧칠이 된다. 무언의 사고유형이 표현되는 형식에 그림도 포함된다. 사람이 뜻을 나타내는 바는 강자의 의사이거나, 약자의 뜻이거나, 서로 간에 공통되는 흐름이 존재함이다. 역사의 반동법칙은 약자의 입지를 자꾸만 축소시키면 엄청난 파고의 반발성 기류가 분출되다가 권력의 이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 신권, 왕권이 과거사에는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인권이 앞서는 정치이념화 되었다. 세블국에선 식물권이 존중되는 사회질서이기도 하다. 인권과 식물권(植物權)은 대립개념이 아니라 진정한 공존의 모형을 찾아야 되는 부분이다. 인간은 세월이 흐르면 무생물의 흙으로 바뀐다. 인권에서 식물권을 향유하다가 무생물의 영역에 편입된다. 무생물은 식물권을 지탱하는 밑바탕이다. 식물권(植物權)은 언뜻 보기에 인권에 대결하는 구조는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식물권을 압박하고 오염을 가중시키면 인권에 타격을 입히는 생태계적 순환 고리가 발생한다. 인권이 보호받고 순탄한 세월을 보내려면 식물권을 열심히 가꾸고 보존하여야 할 당위성이 입증된다. 식물병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몸속에 쌓이는 독소를 없애는 식물군을 찾아서 긴 세월을 사용했다. 그러한 집적물에 의해 인권은 한층 더 강화된 모습으로 건강권으로 이동된다. 병에 걸리지 않고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는 건강권을 누구나 바란다. 육체건강권과 정신건강권으로 세분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사고자유권, 양심권과 비슷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사고자유권은 사실상 법적장치로도 통제하기 힘든 영역이다. 사고자유권에서 파생된 행동유형이나 결과된 정신적 재료물을 통하여 어떤 판단을 세울 수는 있어도 과학자나, 의사의 뇌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지는 못한다. 제일차적 지적재산권의 미분화된 현상인 사고자유권을 관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정신작용에 대한 완전해부를 의미한다. 물론 사고자유권은 보장되어 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100년 세월 동안에 미분화된 뇌파의 스펙트럼을 개개인에게서 살아가기 전부터 파악하는 선험적인 정신작용 관리체계가 없을까? 이것만 알 수 있으면 누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란 모든 것이 드러난다. 좀 이상스런 사회적 병리현상도 생기게 된다. 자신의 미래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어느 시점에 가면 정복할 수 있는 의학의 영역들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는 것도 현실이다. 무기나 과학의 영역도 언제쯤에는 이럴 것이다. 그렇게 되어간다. 그것은 지적재산권이나 사고자유권의 표출된 결과치에서 분석하여 제시하는 결론적 미래예측지표들이다. 그것들이 과히 틀리지 않으므로 우리들은 그러한 집적물을 많이 가진 힘센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60년 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때 피하라고 미군이 삐라를 뿌렸건만 히로시마 시민들은 믿기가 상당히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극소수만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한 사람은 살았다. 그것은 진정한 현실이었다. 순식간에 30만의 인명과 도시는 없어졌다. 미국은 B-29 폭격기로 소이탄을 도쿄에 퍼부어 100만 채의 집이 파괴되고 10만 명이 사망해도 항복하지 않자 원폭을 사용했다. 일본 비행기는 고도 25,000feet로서 미군의 고도 30,000feet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 외에도 남태평양 과달카날에서의 전투에서도 비행장 활주로를 닦는데 한국인 노무자들을 노예처럼 부려 2달 만에 만들 때 미군은 불도저로 일주일, 이주일에 만들었다. 어전회의에서 천황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이더도 일본군은 없었고 원폭의 존재는 더 더욱 그랬다. 맨해튼 계획으로 만들어진 원폭은 미국의 부통령이던 트루먼도 몰랐다. 고졸이지만 자기 고향의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어버린 인물이다. 링컨은 책이 없어 성경만 되풀이 읽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루즈벨트도 유태인 아인슈타인의 편지로 된 제안을 이해하지 못해 과학자의 도움으로 뜻을 이해하고 비밀리에 착수했다. 히틀러는 브이투 로켓까지 만들면서 앞서고 있었으나 아인슈타인이나 일설에 의하면 독일 과학자가 히틀러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미국에 협조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독일에 원폭을 투하하지 않고 일본에 떨어뜨렸다고 하기도 한다. 미국에 혼이 난 천황은 이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동아공영권이 자신의 국민의 죽음으로 이어지자 맥아더 사령부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라고 국민들에게 말하게 된다. 외무대신을 통하여 전달되는 포고령을 그대로 반대하지 말고 따를 것을 그는 국민에게 말했다. 미국은 전승 국가로써 독일군이 행한 생체실험에서 피임법이라던가,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있었고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도 그들을 살려주면서 입수했다. 브이투 연구진의 과학자들을 독일에서 미국으로 데려와 우주개발을 시작했다. 소련은 브이투 개발 참가 기술진들을 데려갔다. 미국보다는 약간 수준이 낮은 연구진이었지만. 미국은 이후에도 이라크를 3주 만에 점령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은 레이더에 한이 맺혀 50년 내내 그것에 집착해 세계 제일이 되었다. 이제는 한국이 간혹 앞서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승만 대통령 때 경무대에 세탁기가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호롱불로 살았지만. 장관도 전기세탁기를 잘 작동 시키지 못했다. 강대국의 대통령은 상당한 존재이다. 한국의 일반 국민은 30~40년 후에 전기세탁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전쟁을 해도 원폭을 사용하지 않고 제한적인 싸움을 한다. 인간은 약삭빠르기 그지없다. 깡패들이 싸워도 죽이지는 않고 팔다리 정도만 다치는 선에서 다툼을 마치는 것과 흡사하다. 깡패지만 총은 쓰지 말자. 이런 불문율이다.
금화왕국으로써도 외계정부의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받는 경우엔 몸이 움츠려들지 않는다면 비정상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고자유권은 문화권과 언어권과도 연결이 되는데 과거 한국의 입장에서 이씨 조선의 세종대왕은 사고자유권을 엄청나게 발전시킨 대업을 이루어 주었다. 어린 백성이 뜻을 나타내려 하여도 말과 글이 다르므로, 말은 한국말이고 쓰기는 한자이므로 힘들어하기에 말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서 한글을 만들어줌으로써 무한정 사고의 틀을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이 한글로는 손쉽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속의 흐름을 토해내지만 영어를 10년 배워도 영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거의가 실패한다. 사고자유권에 혁명적 도움을 유지시켜주는 부문도 상당히 중요한 영역들이다, 사고자유권(思考自由權)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고유동권(思考流動權), 사고회피권(思考回避權)이 있다. 사고유동권(思考流動權)은 기회주의적 수평사고체계의 집단에서 많이 발생한다. 사고회피권(思考回避權)은 복종성 집단의 행위 시 책임능력을 입증하거나 그들의 태도보다도 상층의 의사를 실제화 시키는 대부분의 일들에서 나타난다. 사고회피권이 전혀 존재치 않는다면 사회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고자유권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정상적 기능이 원활한 것도 아니다. 사고유동권 집단은 가장 편하게 살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의 표현치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과거의 역사에서 점차로 사고자유권적 사람이 불어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사고자유권측 영역에서 보는 세상은 온갖 발전된 모델들이 상상화 단계를 넘어 생활의 부분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고자유권측의 가능성의 세상에서 금화왕국의 나날들을 세심히 점검하여 가보자. 사고자유권 중에서 도덕권, 과학권, 미래권, 여러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사고자유권 중에서 도덕권의 부분은 가장 이상적 형태가 낙원일 것이다. 지하낙원을 탈출하여 우주낙원의 땅에서 설정되는 기준치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는 당위적 명령이다. 사람에 가하여지는 올바름에 기초한 영역이다. 올바름을 정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진으로 표시도 한다. 올바름을 정의내리는 기준치는 인간의 잣대가 우선으로 나타난다. 잣대 자체가 불확실성의 지표로 그려짐이 현실이다. 모두가 그렇다고 인정한 것이 꼭 정의만도 아닐 수 있고 모두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로 맞는 것도 있다.
사고자유권 심층심리적 전개과정의 효율성제고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발전하기를 원한다. 퇴보도 하겠지만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경우는 무엇인가 나아진 것을 찾는다. 불안한 사람은 평온을 갈구한다. 평온한 사람일 때는 불안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맞지는 않다. 행복을 찾아 나선다. 배고픔을 잊고 싶다. 아무런 이유 없는, 얼굴 없는 폭력을 싫어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무엇인가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벌써 범죄인의 심리적 구조에 빠져 있다.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괴롭히고 실상까지 하고도 세상이 모른다하여 끝이 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일을 행한 그 자신은 알고 있으므로 고통이 언젠가는 찾아온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가학성의 심성이 무의식으로 표출되는데 그것을 숨기고서 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내부 심리의 흔적이 전개된 상태이다. 범죄인의 유형에도 확신범의 경우는 자신의 합당성을 천명한다. 잡범이나 스스로의 양심에 꺼리기는 쪽은 사고자유권을 악용하여 마음의 굴곡을 수단삼아 그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방범을 채택한다. 무서운 진리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다. 그와 같이 ‘남이 모르게 행한 행위도 누구든 아는 것이며 남이 아는 것도 틀릴 수 있다.’는 논리전개가 꼭 들어맞진 않아도 사고자유권은 악용하는 범죄에 얼마든지 계획을 짜고 실행을 할 것이다. 보이지 않았다하여 그것이 성공했다지만 그 일을 발생시키거나 사고자유권을 통해 전개시킨 마음속의 영역은 그 스스로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백 명을 죽이고 그들로부터 금품을 빼앗겠다는 강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고자유권으로 머릿속에 온갖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아직 현실화 단계는 아니다. 그것이 잠재의식으로 스며들어 자꾸만 심층심리의 밑바닥에 쌓인다. 전개과정은 실제 행동까지도 하게 될 것이다.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 보장되자 효율성제고에도 성공하였다 판단하여 계속적으로 악행을 거듭할 것이다. 아울러 경제적 의미의 뜻도 포함되지만 악행을 하고도 전혀 처벌받지 않거나 이리저리 따져보아 사람을 죽이고도 얼마든지 괜찮은 것이라 여긴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듯이 자꾸만 그의 악행을 쌓아갈 것이다. 남이 모른다고 해서, 들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다고 해서, 그와 같은 방법을 계속적으로 사용하여 타인을 괴롭히고 그의 반사회적 심성에 쾌감을 느끼거나 정신병력적 일들을 일으킨다면 잘 생각하여 그런 생활은 그만두어야 한다. 강도가 사람 백 명을 죽일 수도 없다. 그렇지만 폭탄테러범일 경우는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사린가스도 그렇다. 이런 경우의 범죄인들은 모두 드러나지만. 아주 조그만 범죄를 범죄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하는 부류들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잡히지도 않고 처벌과는 무관하여 평생을 그와 같이 살아가는 사고자유권 심층심리를 전개시켜 간다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다. 선업을 적공하여 효율성을 제고하여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이 더 많으므로 이제껏 인류사회는 파멸되지 않았다. 사회병리현상의 하나인 사람을 괴롭히는 정신구조를 가지고 그처럼 행동하는 집단은 응징이 된다. 마약사범, 매춘조직, 국제범죄단,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자유권은 너무나 넓은 범위로 사람이 악해질 수 있는 부분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우려하는 점은 의사나 판사가 일생동안 수술이나 판결로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정치지도자의 경우에 외국과의 상황에서 판단이 잘못되면 600만을 학살하는 사람도 생긴다. 사고자유권을 나쁜 쪽으로 가도록 이 정치가에게 작용했다면 그것은 이처럼 비참한 결과가 초래된다. 사고자유권 심층심리의 전개과정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러한 목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미필적 고의를 일으킴은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되는 인류사의 비극을 초래한다. 이점에 있어서 어느 곳이던 많은 사람의 생사여탈에 관계되는 부분에서는 사고자유권을 악용하는 쪽으로 가게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그렇게 되도록 조장하는 세력이나 행위자들은 깨끗한 양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절대왕정의 패륜적 왕들이나 폭군들은 모두 역사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받거나 당대에도 문제꺼리가 된다. 금화왕국으로써도 다음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 제일차적으로 사고자유권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쪽으로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되고 아름다운 심성과 마음을 닦아가도록 노력을 기울인다. 보배가 무엇이 보배인가? 개인도 마음을 닦는 것이 되듯이 사고자유권이 그런 쪽으로 가지 않도록 밑받침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세상의 인심이 흉흉해지도록 일부러 만드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다. 구슬이 처음부터 구슬인가? 그렇게 만들었으므로 그런 것이다. 우리들은 무엇보다 올바름으로 사고자유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팥 심은데 팥이 나고 콩 심은데 콩이 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고자유권의 심층심리 전개과정에 자꾸만 나쁘도록 이끌어 가서 사회를 파괴할 때 그 보답은 남에게만 돌아가지 않고 그 자신에게도 벌써 화가 돌아간다. 조그만 도적이 돌아다니면 집집마다 문을 잠그고 경계의 눈초리가 생긴다. 자꾸만 불안을 만들어 가면 그 불안이 폭발하여 되돌아오는 부메랑효과가 존재한다. 지구촌의 한 쪽이 굶주리면 배부른 쪽도 마음 편한 배부름은 아닌 것이다. 그것이 인식되지 못하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인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쟁 중에 용맹을 자랑하여 적군의 코와 귀를 많이 베어오면 상을 내린다하여 귀무덤, 코무덤까지 생기는 일이 발생하다. 코와 귀가 베인 상대방이 그와 같거나 더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성립되기 어려울 것이다. 서로의 땅을 차지하려면 비슷한 힘이 들어가야 할 것이고 그것에 응당한 반대작용으로 서로가 심한 싸움이 된다면 먼저 일을 저지른 쪽도 코와 귀를 베일 수 있다. 이차대전 중 일본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이라는 보답을 받게 되었다.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세상은 지옥으로 변질된다.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여 나쁜 방법으로 나아간다면 선제행위자에게 화가 미칠 수 있다. 범인을 못 잡았다하여 영원히 묻히겠는가? 상대방 군대가 용맹스러울수록 포로를 잡거나 사체를 취하게 되면 참혹하게 다룬다. 프랑스 외인부대가 전공을 세게 떨치자 아랍권 사람들은 외인부대의 시체를 참혹하게 훼손함으로 외인부대원들은 동료의 시신을 스스로 거두어가는 불문율을 지니고 전쟁에 임하게 되었다. 시집안간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에 칼자국을 낸다면 참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지 몰라도 그것이 그렇게 쉽게 넘어가 버리게 될까? 의문스럽다. 폭력을 증오하여 그런 일의 방지에 나머지 인생의 힘을 쏟으면 좋겠지만 악영향으로 더 심하게 다른 형태로 표출되어서 멀쩡한 남자들을 칼날로 괴롭힌다면 그것도 여간한 일이 아니다. 폭력의 악순환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고통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바보짓거리이다.
잔잔한 강물이 하루도 쉬지 않고 흐른다. 써늘한 바람결에 물살이 반들반드르 수면과 굴곡무늬를 수시로 변화시킨다. 새파란 보리밭으로 채워졌던 강 언덕은 잔디밭으로 변했다. 강둑의 잔디는 알맞은 길이로 손질돼 있다. 키가 아주 작은 대여섯 그루의 오동나무가 십 수 년 후 제법 큰 키를 자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강 맞은편의 이태리 포플러는 높이높이 솟아올라 꼭대기의 이파리들은 하늘하늘 떨어질 듯 움직인다. 쭉쭉 솟은 키가 굽어지지 않았다. 잔가지는 바람에 일렁일렁 춤을 춘다. 하늘에는 양털구름이나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고 사방팔방으로 둥그렇게 빙 둘러진 산맥이 아련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겨울에 물이 줄어들면 강폭은 좁아지고 여름에 홍수 때는 제방 둑의 윗부분까지 올라온다. 가을이 되면 보리는 노오랗게 익고 잔디도 누런 빛깔로 바뀐다.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난 풀들이 많아 들나물을 캔다. 냉이, 씀바귀도 맛있다. 사마귀, 방아깨비(홍굴레), 메뚜기도 잡아서 짚새기에 끼운다. 아궁이의 곁불에 구운 메뚜기 반찬은 고소한 맛이다. 옆 논의 도랑을 따라 시간을 보내노라면 수북하게 많은 메뚜기를 잡는다. 메뚜기 튀김, 누에나방의 번데기를 처음 보았다. 깨알 같은 누에씨는 꼬물꼬물 움직였다. 잘못하여 방바닥에 쏟아졌는데 죽지는 않았다. 쓸어 담아 누에를 키우는 곳으로 옮겨 큰 누에가 되어 뽕잎을 먹었다. 누에는 징그럽게 보였다. 흰 꼬치를 벗어버리자 번데기가 있었다. 그것을 삶아 먹으면 맛있었다. 누에가 번데기와 같다고 하니 끔찍하기도 했다. 굵은 밑둥치의 감나무는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 주렁주렁 열린 감은 너무 많았다. 백 접이 넘었다. 한 접이 110개로 치면 11,000개의 감이 열렸다. 우물가로 빙 둘러싼 여러 집 가운데에서 제일 마당이 넓었다. 동네에서 본 감나무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다. 누렁소, 꼬꼬닭, 강아지도 무섭지 않지만 어두컴컴한 변소는 겁이 났다. 들판의 논도 반듯반듯 하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논은 경지정리를 하였는데 오히려 사다리꼴로 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꾸불꾸불한 많은 논이 반듯반듯해졌다. 마당이 제일 넓은 집이 나중에는 작은 집들과 같이 똑같은 크기의 집으로 변했다. 옛집의 담장이나 대청마루의 큰 기둥들이 다른 집들과 달랐는데 나중에는 똑같은 이층집으로 바뀌었다. 금화왕국의 그는 무수히 지난 어린 시절에서 자기 집의 마당이 제일 넓은 것을 노인이 되어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릴 때와 젊을 때는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 무슨 공부인지 구체적으로 몰랐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것은 영주가 되기 위한 기초학문들이었다. 그를 가르친 사람들은 생각하니 모두가 옛 땅에서 최고의 학문과 무예를 가진 선생님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는 나이가 꽤 들었다. 사실이지 그를 가르친 선생님, 환경들은 그가 영주가 되어 사람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아주 어려운 일들이었다. 어려운 일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가 살던 땅에서 경험한 것들은 그곳에서 가장 앞서고 나은 것들이었다. 세블국에 와서는 그와 같은 상황은 바뀌어졌다. 아직까지 세블국보다 더 나은 곳은 찾아내지도 가보지도 못했다. 무수히 읽은 책과 병서들은 선대왕들의 모습과 사회의 발전상, 전쟁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항상 머릿속에 생각하든 것들과 나중에는 점점 비슷하여졌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귀가 따갑게 들은 말씀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향하라’는 것이다. 홍수가 나서 집이 떠내려간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든지, 부모가 멀리 떠나버려 혼자서 밥을 짓고 동생을 먹이는 소년소녀 가장이라든지, 겨울날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거지라든지, 길거리에 왔다 갔다 하는 문둥이라든지, 기름불에 새까맣게 타버린 운전수라든지, 농약을 마시고 죽어버린 사람이라든지, 연탄가스에 죽어버린 사람도 많았다. 연탄가스에는 김칫국물이 좋은 것을 택시운전수가 발견했다. 응급실에 가기 전에 정신을 차리라고 마시게 했는데 살아나니 그 사실을 의사에게 말해서 확인이 된 실제의 사건이었다. 매일 즐거운 일만 생기진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린 아기들도 태어났다. 처음에는 모든 아기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줄 알았는데 전혀 기어 다니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간난 아기도 있었다. 어디로 걸어가면 잘 따라오지 못하는 조무래기들이 씩씩한 청년이 되고 아가씨로 바뀌었다. 엉엉 울고불고 기어 다니던 아기가 어른이 되어 자기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금화 영주의 자녀들도 출가하여 새 가정을 만들었다. 그로서는 남아있는 욕심도 크게 없었다. 자연수명이 끝나면 미련 없이 마지막을 정리하면 되었다. 세블국에 와서 금화왕국을 이끌어 가려니 힘도 들고 기쁨도 느낀다. 지나간 일들이 더욱 많고 앞으로 생길 일은 더 적다. 젊은 시절 꿈꾸던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프지 않고 지내다가 시끄럽지 않았으면 싶은 생각이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설쳐댈 힘도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데 무모한 일을 추진할 성격이 아니다. 가고 가는 중에 깨닫고 저세상으로 가는 길이 점점 넓어져 있으니 서글픈 인생의 한토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