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를 뒤돌아보면 70~80년대는 노동운동 탄압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는 언감생심 쟁의행위는 생각지도 못했다. 쟁의신고는 엄두도 못했다.
일기업 일노조 (一企業 一勞組)인데다 노조의 세력이 가장 약한 조직형태인 「기업별 노조」였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한마디로 얼어붙었었다. 특히 정보기관의 「조정」이 난무하는 때여서 노조집행부는 연행 대기상태였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당시 대구지역의 노동관계기관이 시내 전역에 흩어져 있어 올챙이 기자인 필자는 고생 꽤나 했었다. 섬유노조는 원대동, 금속노조는 지금 대구기독교 방송국 건너편, 택시·버스노조는 성당못 부근, 한국노총 대구본부는 동부정류장 입구, 한국 노총경북지역본부는 범어동, 외국기관 노조는 대명동 등 산재한 상태였다.
현장에 빨리 가야한다는 졸급증에 택시를 줄창 애용했다. 대구 노동청은 복현동에 위치했다. 이같은 산개는 정권의 입김이 서려 있다는 분석을 한다. 한곳에 집중돼 있으면 연대투쟁의 위험성, 통제불능 등 여러 요소를 감안했다는게 지금봐도 그럴듯한 이야기다.
노동운동탄압 족쇄는 87년에 풀렸다. 노동관계법개정으로 노동자의 욕구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불법 쟁의 행위가 판을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파업, 시위가 한꺼번에 일어나 경찰병력은 감당을 못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노동 운동이 현재 어느 수준의 이성과 안정을 찾은 것은 다행스럽다.
노사분규현장취재과정이나 노동위원회 조정위원 역할 때 아쉬웠던 것은 기업경영진들의 무지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쟁의나 쟁의 행위를 구별 못하는 경영주가 수두룩했다.
노사관계 의견 불일치, 파업·피켓팅·태업·준법 투쟁 등 용어는 해독도 못하는 판에 노사 간의 대화는 벽창호 상태다. 노사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노동자 주장에 흥분만하기 일쑤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노동자들이 내 재산을 갈취해간다」는 구시대의 논리에 매몰돼 있어 협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익의 분배는 커녕 모든 것은 기업주 몫이라는 사고는 결국 파업을 불러 사회갈등요인을 떠안는다.
평소 노동자가 기업의 동반자라는 인식결여다. 노무관리가 안됐다. 전술이 없다. 길들이기 아니라 줄 것을 주고 얻는다는 기본 원칙이 없었다. 뒤죽박죽인 셈이다. 노동위원회 조정회의 풍경은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노조측 참석자들은 충분한 학습을 거쳐 논리가 정연한 편이다. 사용자는 딱할 정도로 무지의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조정중지, 조정불성립 등으로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하는 디딤돌 역할만 한다. 한심할 정도가 아니다. 중립을 지켜야할 조정위원들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정부기관 쪽의 사정도 이 같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전 대구시에 노무관리 공무원 1명이라도 채용할 것을 촉구했다. 버스노조측이 요구한 조정회의석상에서 나온 일이다. 당시 김범일 대구 부시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채용은 없었다. 채용촉구논리는 채용의 이득이 한해에 몇 십억은 될 것이라는 추단이 근거였다.
노무관리의 허점이나 정책의 미흡이 상존해온 게 오늘의 현실이다. 현재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둘어싼 노정갈등은 내년 임금협상의 갈등증폭을 불보듯 뻔하게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노총이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격앙된 상태여서 내년 임금협상에 쟁의행위가 예상되고 있다.
또 요인은 있다. 주 52시간제 시행도 갈등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를 노골적으로 편들었지만 현장에서 비명이 쏟아진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도 되레 가계소득은 줄었고 종사자가 5~9명이라는 음식점의 임시, 일용직 노동자 월 임금은 6% 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런 요인들이 내년 「춘투」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섣불리 불쑥 던지는 최저임금 대폭인상, 그 후에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에 따른 노동자 반발은 노무관리를 게을리하는 기업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도 「장미빛 청사진류의 언사」는 멈추지 않는다. 「노자」가 말한 「쓸데없는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지경에 빠진다」는 다언삭궁(多言數窮)이다. (동일문화 장학재단 협찬)
최종진 프로필
매일신문 사우회 회장(현)
중앙대 신방과 / 대학원 신문방송학 졸업
매일신문 논설주간 · 경운대 신방과 교수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